소설리스트

200화 (200/270)
  • 200화

    고약한 냄새가 산박의 코로 들어왔다. 강렬한 피비린내만 맡는 코와는 다르게 그림자 후각이라는 독특한 능력을 통해서 산박은 그 외의 자잘한 냄새 정보도 맡을 수 있었다.

    ‘철, 정액, 오물, 촛농 냄새.’

    그게 바로 그림자 후각의 진짜 장점이었다.

    산박은 가벼운 두통을 느끼며 주위를 살폈다. 거대한 석실에서 모두 정신을 차리기 바빴다. 석실에 빛이라곤 아주 작은 촛불 하나가 켜져 있는 게 전부였다.

    산박은 홰에 부싯돌의 불똥을 튀겨내서 불을 지폈다. 주홍빛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제야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산박은 귀를 괴롭히는 바람 소리가 나는 쪽에 가장 먼저 시선을 두었다. 벽의 가장 위쪽에 있는 개구멍에서 나는 바람 소리였다. 반대편에 똑같은 높이에 있는 개구멍 때문에 바람 소리가 거칠었다.

    그 이후에는 주변을 둘러봤다. 약 50평으로 제법 넓은 평수를 지닌 석실이었고,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로 가득했다.

    “윽. 빌어먹을.”

    탕만이 욕지거리를 날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임프 하나가 손바닥과 발에 못이 박힌 채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치 예수를 모욕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배가 갈라져 있었는데, 빌어먹게도 탯줄이 아래로 쭉 내려와 있었다. 그 탯줄은 바닥까지 내려와서 이내 바짝 굳은 핏덩이 하나로 이어졌다.

    위이이이잉! 애애애앵!

    탕만의 인기척에 파리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탕만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기분 나쁜 곳이었다.

    “장비와 보급 확인하겠습니다.”

    산박의 말에 다른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배낭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상이 없음을 보고하였다.

    “사장님, 저 언데드 일으킬게요.”

    “예.”

    임프 시체뿐이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전의 2레벨 던전에서는 유골 하나 얻지 못했다.

    “인간 유골이 아닌데도 가능해요?”

    “네. 다만 처음 하는 거라서 실패할 수도 있어요.”

    이시은은 제법 정신을 집중하는 척을 했다. 당연히 이시은은 인간 외의 시체를 일으켜 세운 적이 많았다. 느긋하게 뱃살이 차오른 도시의 길고양이부터 들개와 멧돼지까지 가릴 것 없이 죽여서 시체를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건 이시은에게 있어서 몇 없는 재미였다.

    이제는 흥미가 없어서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죽여야만 하는 이시은에게 있어서 그런 방식으로 네크로맨시를 연마하는 건 살육을 조금 다르게 즐길 수 있게 해줘서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시은의 네크로맨시는 인간보다 동물이나 인외 종족에게 특히나 잘 적용할 수 있었다.

    일부러 천천히 속도를 줄인 채 임프의 유골이 일어나서 스켈레톤이 되었다. 체격은 당연히 작았다. 하지만 이를 대비해서 관련 언데드 장비도 가져왔다. 그냥 작은 단검 하나 들려 줬음에도 단검에서 거무튀튀한 뭔가가 몽글몽글 나와서 임프 스켈레톤의 뼈를 타고 흡수돼 갔다.

    “무슨 장비죠?”

    산박이 흥미로워했다.

    “자주 못 보는 단검이죠. 적패 네크로맨서만 구매할 수 있는 거거든요.”

    시은이 빙긋 웃었다. 효과는 단순했다. 1m 미만의 스켈레톤의 뼈 강도를 높여주는 1레벨 던전 무기, ‘약체 뼈 강화 단검’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끝났나요?”

    “아뇨.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려고요. 한기를 부여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동시에 임프 스켈레톤을 서리 해골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서리 해골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게 이시은이었다. 이 또한 어렵지 않게 해냈다.

    그사이에 산박은 불꽃두더지 파수병 매듭의 전사 카누토를 소환하고 외눈붉은곰도 소환했다.

    야만신의 소환 북에 깃들어 있는 외눈붉은곰은 한번 상처를 크게 입으면 그게 치유될 때까지 소환할 수 없었다. 또한 역소환 이후 새로 소환해도 그 개체가 나타난다.

    소환을 위해서는 소환 북에 마력을 충분히 저장시켜 놓아야 했다. 물론 이건 산박의 재능 탓에 없어도 상관없었다. 직접 주문을 읊으며 자신의 힘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한 야만신의 소환 북을 해석한 것이 산박이었다.

    “든든하네요.”

    작은 대지 골렘은 소환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든든했다. 물의 마법사 대장삵에 불꽃두더지 파수병에 외눈붉은곰까지. 솔직히 임프 던전에서는 과잉 전력이나 다름없었다.

    “문이 잠겨 있습니다.”

    “힘으로 부숴야 합니다.”

    산박은 접이식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는 곡괭이를 꺼냈다. 그 길이는 일반적인 곡괭이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자물쇠를 부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전사인 탕만이 이를 받아 들었고, 작업을 시행했다.

    ‘임프 던전의 첫 번째 장애물이지.’

    자물쇠를 일일이 부숴야 했다. 동물 지방이 잔뜩 묻어있는 자물쇠라서 전혀 녹슬어 있지 않아 쌩쌩했다. 무식하게 부숴야 했다. 록 픽의 경우 임프 던전의 자물쇠는 난해하고 구조도 매번 달라서 애를 먹기 쉬웠다.

    ‘그리고 맞지도 않지.’

    무식한 던전 기믹이었다. 모습만 자물쇠일 뿐 잠금장치를 열어도 풀리지 않는 막장스러운 것이 임프 던전이었다. 그런데도 임프들은 개구멍을 통해서 잘만 다녔다.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근처에서 올 수 있는 임프는 죄다 몰려올 거다.’

    즉, 이 석실이 첫 번째 싸움터였다. 굳이 개구멍을 막지는 않았다. 임프의 공격 수단은 적었고, 약했다. 고로 최대한 빨리 몰려들게 해서 죽이는 게 이 던전을 최대한의 효율로 클리어하는 방법이었다.

    ‘보이지 않는 타임 어택이지.’

    인원수가 적다. 준비한 보급량이 적다. 그만큼 임프를 죽이지 못하고, 이동 거리도 짧아진다. 이 모든 것이 임프 던전의 노림수였다.

    ‘보너스 던전이기에 더더욱 제한이 심할 수밖에 없다.’

    카르마부터 시작해서 기술과 주문을 모두 한 개씩 준다. 그런 던전이기에 더더욱 시간을 잡아먹는다. 던전이 클리어되는 방식은 악마상(惡魔像)을 부수면 됐다.

    ‘악마상은 곳곳에 존재한다.’

    빨리 나가라는 듯이 자주 등장하는 게 악마상이었다. 이 던전이 보너스 던전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던전은 쉽게 들어서지 못한다. 1억이라는 엄청난 고가의 던전 키가 필요했다. 서민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국밥을 2만 번 넘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1억짜리 던전 키 하나 살 바에는 차라리 소고기로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하는 게 이득이었다.

    “끼익! 껙! 께에에에엑!!”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탕만이 자물쇠를 부쉈다.

    “열어 두세요. 벽을 두고 싸우죠. 어차피 날아다녀서 의미가 없겠습니다만.”

    산박의 말에 모두가 이를 따랐다. 그리고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작은 놈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환도를 들어 올렸다. 그들이 쥔 환도는 당연히 잔잔벼락의 환도였다.

    ‘더는 눈치를 볼 이유가 없고, 애초에 들킬 염려도 없다.’

    만에 하나 들키더라도 어차피 부산 은행 쪽에 넘긴 것이라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잔잔벼락의 환도를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부채꼴 형태의 좁은 범위에밖에 효력이 미치지 않지만 임프를 상대로는 가장 극대화된 살육력을 보이는 것이 잔잔벼락의 환도였다. 그것도 1인당 두 자루씩 가지고 온 상태였다.

    ‘이걸로 이 던전에서 카르마를 잔뜩 뜯어낸다.’

    똑같이 임프 던전에 들어와도 죽인 임프 숫자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산박은 여분의 고구마도 가져왔다. 대장삵의 치료수는 식수로 쓸 수 있었다.

    ‘뽕을 뽑는다.’

    산박은 임프 던전을 이용해 3레벨로 향하는 길을 극단적으로 줄일 생각이었다.

    “크릉, 커컹.”

    외눈붉은곰이 짐승 소리를 냈다. 곧 다가올 위협을 깨달은 듯했다. 물론 실제로 임프는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50cm에 달하는 임프는 평범한 사람에게나 위험하지 무장한 던전 사용자에게는 그저 도살장에 알아서 찾아오는 광증 걸린 양보다도 못했다.

    “끼에에엑!”

    개구멍과 열어놓은 입구에서 닥치는 대로 임프들이 날갯짓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바로 일행에게 덤벼들었다. 동시에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무형의 칼날이 쏘아졌다.

    핏! 찰그락!

    천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산박은 체인 메일에서 전해져 오는 가벼운 감각을 느꼈다.

    촤악!

    손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임프를 그 어떤 어려움 없이 단칼에 베어냈다. 중단에서 쭉 팔을 뻗어 단번에 아래로 내려쳐서 임프를 가르고, 몸을 다른 임프에 부딪쳐서 떨어뜨리고, 다시 검을 들어 올려 잔잔벼락의 힘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케레레레레레레렉!”

    임프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하필이면 떨어지면서 산박의 무릎에 머리를 박아서 그대로 옆으로 픽 땅에 떨어졌다. 흥건한 피가 돌을 적셨다.

    파다다다닥!

    귀를 시끄럽게 할 정도로 많은 임프들이 모여들었고, 서로 부딪히며 떨어지거나 벽에 부딪혀서 떨어지며 다른 임프와 뒤엉키기도 했다.

    엉망진창이었지만 매우 위협적이고 사람을 패닉에 빠뜨리기 좋았다. 동굴에서 박쥐만 떼로 나와도 몸을 수그리며 가슴이 쫄깃해지는데 그것보다 큰 임프가 공격까지 한다. 하지만 일행은 미리 임프 던전에 대한 정보와 그 대처법을 충분히 가져왔기에 침착할 수 있었다.

    뻑!

    다만 시은이 일으켜 세운 임프 스켈레톤은 단박에 곤죽이 나버렸다. 체중 차이가 심해서 잠깐 시간을 벌어준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임프의 숫자는 수백 마리에 달했다. 그야말로 벌 떼 앞의 토끼처럼 죽어 버렸다.

    “크아앙!”

    외눈붉은곰은 뭐가 지나가면 닥치는 대로 입에 물어서 아작을 내고 양 앞발을 휘둘러서 순식간에 몇 마리의 임프를 타격해 떨어뜨렸다.

    솨사사삭!

    임프의 날카로운 바람 마법에 의해서 털이 잘렸지만, 가죽에 흠집 하나 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임프들은 순식간에 외눈붉은곰의 곳곳에 들러붙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어딜!”

    불꽃두더지 파수병 카누토가 입에서 불을 뿜어내며 달려드는 임프들에게 화상을 입혀 내쫓아 버렸다. 할버드로는 외눈붉은곰의 머리나 목에 붙은 임프들을 때려서 떨구었다.

    붉은곰의 등에는 대장삵이 바짝 달라붙어서 물의 화살을 쏘고 있었다. 날렵하게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 어그로 핑퐁 하는 데 대장삵의 바람과도 같은 날렵함은 압도적이었다.

    그사이에 산박의 갈래 불꽃이 허공을 한번 휘저었다. 순식간에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지옥도가 펼쳐졌다.

    아비규환이 일어나자 일행은 숨을 돌렸다. 환도에 묻은 온갖 이물질을 ‘이물질 제거 소가죽’을 꺼내서 한두 번 만에 말끔히 털어냈다. 손바닥만 한 것이 효과는 대단했다.

    “으, 제기랄. 임프 놈들.”

    탕만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전투한 시간은 5분도 채 안 되지만 임프란 것들은 지나치면서 똥오줌을 닥치는 대로 갈겨 대었다. 개같은 놈에게 침 뱉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전략은 실로 유효했다. 사람의 정신력을 깎아 먹기에 좋았다. 이런 드잡이질을 오래 할 수가 없었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도 들게 했다.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던전을 금방 빠져나가고 싶어 할 정도였다.

    당장에라도 대장삵으로부터 물을 맞고 싶었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죽었음에도 임프의 호전성은 대단했다. 결국 마지막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다.

    “우웨에에엑!”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린 탕만이 안에 것을 게워냈다. 이시은은 일부러 헛구역질했다. 그만큼 끔찍함밖에 남지 않았다.

    촤아아악!

    얕은 피 웅덩이가 되어버린 석실에서 모두 면갑을 한 번 물의 마법을 통해서 씻어냈다. 족히 백 마리는 죽은 듯했다.

    “대장삵, 그다음에는 붉은곰을 치료해줘.”

    “알았다.”

    붉은곰은 한쪽밖에 남지 않은 눈도 다쳐서 끙끙대고 있었다. 강한 만큼 약점도 확실한 게 외눈붉은곰이었다. 그래서 2레벨 소환 주문에 있기도 했다.

    “다친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도요.”

    갑옷에 물을 잔뜩 집어넣어서 청량감을 느끼며 두 사람이 대답했다.

    그 뒤에는 당연히 부산물 획득이 이어졌다. 바로 임프의 날개였다. 날개의 길이는 40cm로 한 마리당 총 80cm였다. 임프의 크기에 비해서 작은 편이다. 이를 잘라내서 가져온 배낭에 담으면 끝이었다.

    찰박. 찰박.

    피 웅덩이가 된 곳을 밟아서 지나가며 산박은 임프의 등을 밟고 양 날개를 한 손으로 바짝 당긴 다음에 단검으로 단칼에 베어 수거했다. 다른 이들도 이를 대충 보고 똑같이 작업을 시작했다. 날개가 잘린 임프는 한쪽으로 던져 놓거나 밀었다. 그래야 분별하기 쉬웠다.

    ‘보기 드문 놈들이기에 값이 제법 나간다.’

    전투력과 비교하면 상품 가치는 높은 편이었다. 중고 레벨 저주 물약에 사용되는 편이라 금방금방 재료가 소진되어서 팔리기도 빨리 팔려 좋았다.

    한 장당 무려 만 원짜리다. 백 마리에 2백 장이 나오니 2백만 원이었다. 세 명으로 나누면 두당 대충 66만 원은 가져갈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이 정도였다. 수익성도 2레벨 던전치고 매우 높았다.

    떨어져 나간 날개 파편은 아예 제외했다. 대략 150여 장에 달하는 날개를 배낭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밖에 나가서 좀 쉽시다.”

    산박이 탕만을 보며 말했다. 그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 그들은 통로 밖으로 나가고, 다시 문을 닫았다. 그제야 탕만은 깊은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적어도 고문실 내부보다는 복도가 그나마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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