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270)
  • 199화

    * * *

    마지막 티켓의 주인. 그 선택권은 오롯이 시은에게로 돌아가 버렸다. 시은이 생각보다 쉽게 산박에게 그 티켓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지만, 세상사, 그렇게 쉽지 않았다.

    “외부 인사는 좀 피해 줬으면 하는데, 그래야 기업 내에서 불만이 적어요.”

    자기가 못 가는 것도 서러운데 엉뚱한 놈이 끼어있다?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다른 팀원이 불만을 느낄 수 있었다. 외부와 내부의 차이는 극심하다. 회사의 자원이 엉뚱한 사람에게 계속 간다면 그 회사에 어떤 이미지가 박힐지는 눈 감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사업 하나만 같이하게 해주세요. 돈이 궁해서요. 사장님 돈 많이 벌잖아요.”

    “무슨, 같이할 게 어딨다고요. 그리고 시은 씨도 마녀 쪽 개발하면 돈은 부족하지 않잖습니까.”

    “그래도요. 안 그럼 그냥 임프 던전 키 장물로 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건 아니죠. 이렇게 불러 놓고서는…….”

    산박이 칵테일을 한 모금 했다. 자몽 향이 확 들어왔다.

    ‘포스코 타워의 압박이 있나?’

    개별적 사업을 다른 사람과 함께할 정도로 압박을 받는다면 이시은의 행동도 이해가 간다. 혹은 포스코 타워 내에서 높은 위치에 서려고 하는 걸지도 몰랐다.

    “진솔되게 말해 봅시다. 포스코 타워에서 한자리 꿰차려고 하시는 겁니까?”

    “전혀요. 다만 제 개인 사업을 하고 싶은데, 자본금이 부족해서요.”

    “물약요?”

    “더 디테일하게 공격적인 물약만 취급하는 숍을 열려고요. 처음에는 쇼핑몰처럼 운영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납품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법 자세했다.

    ‘확실한 그림을 그리고 있군.’

    “첫 사업인데 너무 큰돈 들이는 거 아닙니까? 요즘 3천만 원만 넘어도 창업하는 데 3년은 보고 하는데…….”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출받기는 싫어서요. 은행의 VIP 취급 받는 게 얼마나 거지 같은데요.”

    누군가의 VIP라는 것은 그 사람의 호구라는 뜻이었다. VIP는 결코 자랑할 거리가 되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임프 던전에 간다는 것부터 남들과 다른 행보였다. 그만큼 평범한 던전 사용자들에게는 꿈에 그리는 경험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보상은 준수했고, 자랑할 만했다. 이를 회사 내부인에게 써야 하는 게 산박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차례를 기다리셔야겠는데요. 선약이 있어서요.”

    “사업에 무슨 선약이에요?”

    “전 있습니다.”

    산박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꼬여 버리면 어떻게든 말이 돌게 된다. 시은에게 드루이드 사업을 하나 주게 되었을 때 만에 하나 부산 은행이 이를 알게 된다면? 황당하게도 이를 이시은이 퍼뜨린 것이라면? 곤혹스러워지는 것은 산박이었다.

    고로, 여기에는 원리 원칙이 필요했다. 가장 단단한 사람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물고기 하나 살지 못할 만큼 맑은 물 같은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철퇴로 패 죽이는 방법뿐이었다. 산박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럼 다음번이라도 좋아요.”

    “…아니면, 생수 사업에 한 다리 걸치실래요? 시은 씨도 물의 연어 가지고 계시잖아요.”

    “네. 관상용으로요. 한번 죽으면 끝이라서…….”

    산박과는 다르게 이시은이 지닌 물의 연어는 죽으면 끝이었다.

    “그거 받고, 다음 번 사업도 해주세요. 어차피 여러 사람이 걸치고 있으니까 저한테 권유해 주신 거잖아요?”

    한마디를 지지 않고, 추측도 제법 날이 바짝 서있었다. 실제로 산박과 연기 장가(家)의 생수 사업에는 몇몇 다른 팀원들이 발을 척 걸치고 있었다.

    고로, 이번 일과 저울질을 하면 부족했다. 그냥 발을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이시은의 물의 연어 또한 공장에 보관되기 때문이다. 정당한 교환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오케이, 땡큐.”

    시은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산박과 조밀하게 얽혔다.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었다.

    보통 여자나 남자에게 이별을 고하면 그대로 끝인 것에 반해서 사업적으로, 돈이 얽히게 되면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인연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만 돈 관계는 쉽게 사라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정보다 보이는 돈의 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럼 시은 씨, 마지막 티켓의 주인공은 제가 임의로 정해도 되는 거죠?”

    “네. 근데 김각두 씨는 빼주세요. 아직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잖아요.”

    어렵지 않은 요구 조건이었다.

    “서 팀장도 빼주시고요.”

    “서충호 씨? 왜요?”

    산박이 물었다. 그는 A급 전사였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내이기도 했다. 실제로 2레벨 던전 클리어 이후 몇몇 곳에서 비밀스러운 이메일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스카우트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간을 보려고 그냥 이메일을 보낸 기업도 분명 있을 터였다. 간잽이질은 세상에서 가장 나쁘지만 평범한 사람이 더 잘 먹고 잘살려면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3년, 5년 동안 다른 회사 알아보고 동아줄 두 개는 쥐고 있는 부장님이 때로는 존경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었다.

    ‘서충호는 노력 안 해도 동아줄이 곳곳에서 내려오지.’

    서서히 그에 대한 이목이 잡히고 있었다. 던전 사용자끼리는 그런 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빅 데이터는 항상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런데 그런 서충호를 제외한다?’

    “이 팀장이 원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상관없어요.”

    이시은이 확신에 가까운 소리를 했다.

    “저도 라이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원래는 사장님을 라이벌로 생각했는데 같이 따라가려다가 다리 찢어질 것 같아서요.”

    ‘파벌의 조짐인가. 아직은 크게 한 소리 할 수는 없지.’

    내부 경쟁은 장단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걸 조율하는 일은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거기에 그러한 경쟁 시도를 확 잘라내고 철 밥통 기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막는다고 해서 막힐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산박이 물었다. 갑과 을이 뒤바뀐 모습이었다.

    “제 마음은 탕만 씨를 포함하는 거예요. 뭐, 그냥 제 생각이니까, 참고만 해주셨으면 해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산박은 순순히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감성적으로 생각하면 괘씸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갑과 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 택배 가져다주는 기사님이 자신의 고객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갑을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시은이 제안한 모든 것은 자잘한 것에 불과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를 잘 배웅하고, 산박은 곧바로 서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 전화를 걸지는 못했다.

    반응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산박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산박은 곧바로 서 팀장과 마주했다. 아침 일찍 마주했다.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예. 앉으세요.”

    식사는 그렇고, 카페에서 커피만 두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갑자기 불렀기에 서충호는 이후에 예정이 있는데도 급히 산박의 부름에 응했다.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매우 불규칙한 패턴을 지닌 게 던전 기업이었다. 이는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알고 있어야 하고, 전화상으로는 말하면 안 될 중요한 일입니다.”

    “예.”

    충호가 얼굴을 굳혔다.

    “이 팀장이 임프 던전 키를 가져왔습니다. 인원수는 세 명. 하지만 거기에 서 팀장이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던전 키……! 그 비싼 걸… 어떻게 얻었답니까?”

    “말해 주지는 않더군요. 인천 네크로맨서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외에 산박은 최대한 많은 걸 이야기해 줬다. 그걸로 충호를 다스리려고 했지만, 충호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걸 툭 던져줬다.

    ‘사용할 수밖에 없겠어. 리스크는 언제나 있지만, 감수를 해야겠지.’

    “2레벨 던전, 저랑 이 팀장 없이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책임지고 말입니까?”

    “예. 용용 형제를 붙여 달라고 하면 붙여 드리겠습니다. 기분 나빠도 A급 하청 팀 아닙니까.”

    두 명으로만 이루어진 팀이면서도 이름값이 있었다. 충호와 조금 트러블이 있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최대 인원으로 가도 됩니까?”

    “예. 마음대로요. 한쪽에서 이 팀장이 치고 오는데 다른 쪽으로라도 치고 달려야죠. 안 그래요?”

    “알겠습니다.”

    충호가 듬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A급 전사 세 명이면 과잉 전력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풀 인원까지.

    ‘한 번이 힘들지, 두 번부터는 할 만하다.’

    범부나 세 번, 네 번 해서 겨우 감각을 얻는다. 서충호는 직업이 그림자 기사라서 약간 준A급처럼 보이지만 마인드부터 몸까지 훌륭한 A급 전사였다. 산박이 건넨 떡밥, 커리어. 그걸 충호가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래도 좀 아쉽습니다. 탕만을 지목하다니……. 보통은 김각두 아니면 장굉려를 지명했을 텐데요.”

    충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산박은 절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무언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듯한 알싸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미약한 직감에 불과했다.

    “그러게요.”

    짧은 말로 대답했다. 그 뒤로 성에 안 찼는지 충호는 밥 한 끼를 같이 먹자고 했고, 그들은 국밥집으로 향했다.

    “크어어어어어어!!”

    한 뚝배기를 뚝딱 해치우고 남자답게 헤어졌다.

    탕만에게는 통화를 통해서 해결했다.

    ―예? 제가요? 충호 형님은요?

    탕만은 멍청한 소리를 두 개 했다. 하나는 탕만에게 명령이 내려올 정도면 충호는 당연히 알고 있으리란 사실을 간과한 점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팀장님이겠죠.”

    호칭이었다. 사장 앞에서 충호는 팀장이다. 탕만의 형님이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 서 팀장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준비하고 문자로 보낸 날에 해당 지하철역으로 오세요. 제법 멀리 가야 합니다.”

    ―예!

    장소는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이다. 인천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나오는 곳이었고, 수도권이라고 할 만했다.

    * * *

    촤라락! 촤라락!

    철 소리를 내며 탕만이 택시에서 내렸다. 이제는 제법 택시를 타고 다닐 정도로 지갑에 여유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소개팅을 하고 다니고 있었다. 던전 사용자답게 배가 불룩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탕만은 좋은 신랑감이었다. 적어도 옆에서 함께하고 싶은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였다.

    “아무도 안 왔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임프 던전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산박이 말해 줬기에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임프 대응책을 바리바리 짊어진 전사가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체인 메일을 입고 있었다. 총무게가 15kg에 달할 정도로 무식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지만 전신에 걸치는 것이기에 실제로 크게 무겁지는 않았다. 거기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면갑이 있는 투구를 배낭에 걸어 놓았다. 검은 환도, 그리고 방패는 없었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탕만의 뒤로 시은 그리고 산박 순으로 도착했다. 모두 체인 메일을 입고 빈틈없이 꼼꼼히 무장했다. 마치 전사 세 명 같았다.

    “이물질 제거 소가죽입니다. 비싼 거니까 분실하면 안 됩니다.”

    산박은 가기 전에 임프 던전을 비롯해서 2레벨부터 전사들이 애용하는 편의 물품을 건네줬다.

    “오. 이거 유명한 거잖아요.”

    “요즘 트렌드죠.”

    무게 감소가 요즘 전사들의 트렌드였고, 자연스럽게 전부터 있던 아이템이 반짝 빛을 발하며 소비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바로 이물질 제거 소가죽이었다.

    재활용할 수 있고, 월 1만 9천 원이면 언제든지 새로운 걸 얻을 수 있었다. 보내는 방법은 업체 주소로 착불 택배를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만약 분실 시에는 15만 원을 줘야 했다. 그렇기에 결코 분실하면 안 되는 물품이었다.

    이물질 제거 소가죽은 무기와 방어구 손질에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한 번만 슥 하면 이물질이 전부 딸려 나온다. 무게도 가볍고 크기는 손바닥 정도에 불과해서 숫돌 따위를 들고 다니고 그 외에 부위마다 제각각의 손질 물품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간편했다.

    “다들 임프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계실 겁니다. 약하지만 숫자가 많고, 바람의 마법을 사용합니다. 머리를 노릴 수 있으니까 그것만 조심하면 됩니다.”

    “예.”

    “넵.”

    두 사람이 모두 대답했고, 각자 배낭을 짊어지며 지하철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이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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