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270)
  • 198화

    <임프 던전>

    ‘사회의 강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은이 최근 고민하게 된 질문이었다. 그 해답을 얻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태산박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사자였고, 계속 산의 정상으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시은은 가장 먼저 사회의 강자를 차근차근 죽여 나가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본인의 힘이 강해야 했다.

    ‘나 개인의 암살 능력 수준을 높여야 해.’

    그렇기에 이시은은 먼저 1:1 암살 능력을 키우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하려면 희생자가 있어야 했다.

    첫 번째 그녀의 피해자가 된 것은 고작 1레벨에 불과한 던전 사용자였다. SNS를 많이 하고, 무엇보다도 예쁜 여자의 SNS 계정에 고추 사진을 집어넣는 걸 최고의 쾌락으로 여기는 남자였다. 그는 시은이 뿌린 떡밥을 덥석 물었고, 순식간에 죽임당했다. 한 문장으로 서술할 만큼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1레벨 던전 사용자는 돈도 없고 실력도 없다. 죽이는 건 간단하고, 현대에서는 흔한 던전 장비 하나 갖추고 있지 않다.’

    그 허무한 결과 속에서도 시은은 경험을 획득했다. 여유도 없는 던전 백정이 바로 1레벨 던전 사용자였다. 그렇기에 아무런 방비가 안 되어 있었다.

    케이스에 들어가 저수지에 가라앉는 한 명을 바라보며 시은은 서서히 ‘강자 죽이기’를 시작했다. 물론 1레벨 던전 사용자를 한 명만 사냥하고 끝내지는 않았다. 표본은 많을수록 좋았다.

    ‘진작에 이래야 했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던전 사용자를 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강함을 짓눌러 죽일 수 있어야 했다. 태산박이든 부산 은행의 중책이든 어찌 되었든 그녀는 경험이 필요했고, 던전 사용자는 훌륭한 경험치가 될 공산이 컸다.

    그렇게 여덟 명을 죽였을 때, 시은은 카르마 시스템의 부름을 느꼈다. 꿈속에서 마주한 새하얀 공간은 실로 갑작스러웠다.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만 나타나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았다.

    [죽음의 신이 당신에게 은총을 내립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죽음의 신…….’

    네크로맨서만 취급하는 신이었다. 그는 특히 ‘양민 학살’을 좋아하는 신으로 유명했으며 엘리트에 사족을 못 쓰는 자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한 것치고는 보상이 짠 편이라는 평가가 네크로맨서들 사이에 있었다.

    ‘나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어.’

    마녀의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마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직도 이시은은 신의 은총은 고사하고 접촉도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던전 사용자를 현실에서 죽이는 게 죽음의 신과 만나는 방법인가.’

    “받아들이겠어.”

    [여덟 개의 죽음의 열쇠 함(Eight deaths Key Box)을 획득했습니다. 1레벨 던전 사용자 여덟 명을 죽이면 1~2레벨의 던전 키를 획득하게 됩니다. 조심하십시오.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던전 키는 평범했고 검은색에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열쇠 함은 새까만 색상에 새하얀 뼈가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임프 던전으로 향하는 던전 키입니다. 2레벨 특수 던전입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맙소사.’

    시은이 눈을 반짝였다. 고작 1레벨 던전 사용자 여덟 명을 죽여서 얻을 수 있는 보상치고는 대단해서였다. 절로 산박이 생각났다. 그가 좋아할 것이 틀림없었다. 이시은이 웃음 지었다.

    * * *

    이시은 팀장의 연락이 왔다.

    [임프 던전 키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임프 던전!’

    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만큼 임프 던전은 평범하지 않은 던전이었다. 무엇보다 2레벨 던전의 현 상황을 빠르게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 걸음 성큼 걸어갈 수 있다.’

    이시은이 전과 다르게 애매하게 물어본 것도 괜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가 가져온 것은 컸다. 이를 통해서 산박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려는 듯했다.

    ‘소가죽도 못 뚫는 임프들의 손톱.’

    커봤자 50cm밖에 안 되는 덩치. 거기에 바람 마법을 쓴다고 해봤자 마찬가지로 큰 도움이 안 된다. 실핏줄 하나가 전부다. 그 덕에 매우 안전한 던전이었다.

    ‘행복한 천국행 특수 던전이지.’

    거기에 던전 클리어 시 기술과 주문을 모두 한 개씩 획득 가능했다. 다만, 레벨 업을 위한 카르마는 적다고 평가되고 있었지만 그건 애초에 단점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던전 두 개를 도는 것처럼 기술과 주문을 하나씩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사장님, 이럴 때는 카페에서 만나죠, 라고 말씀을 하셔야죠.]

    ‘…….’

    [저녁이나 한번 같이 먹죠.]

    [전 한우가 땡기는데요.]

    임프 던전 키의 시세는 1억.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억을 내놓아야 했다. 당연히 임프 던전에 들어서는 대가로 한우면 싸도 정말 쌌다.

    [좋습니다.]

    [영화도요.]

    [좋아요.]

    [호텔 1박 콜? 진탕 함 가요?]

    [싫습니다. 하지만 바에서 한잔합시다.]

    산박은 철벽을 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타협안을 제시했다. 시은은 냉큼 거기에 올라탔다.

    다음 날 저녁에 약속을 잡은 산박은 다시 한번 임프 던전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외장 하드에서 찾았다.

    가장 먼저 산박이 생각해 봐야 할 것. 바로 인원수였다.

    ‘3인 제한 던전.’

    클리어하는 것만으로도 기술, 주문을 획득 가능하다. 두 번의 혜택이 돌아온다. 1+1 던전 클리어 보상이었다. 당연히 인원이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솔직히 두 명이 가도 충분했지만, 혜택은 최대한 여럿이서 받는 게 좋았다. 그래서 시은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 것이기도 했다. 기분 좋게 한 다음에 한 명 더 꼽사리 끼게 할 생각이었다.

    ‘그 대상은 서충호.’

    밀어주는 놈을 한 번 더 밀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산박은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게 한 사람에 대한 올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활동하는 게 이 바닥이다. 서충호는 거의 홑몸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관계있는 사람은 B급 방패 전사 탕만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고개를 홱 돌리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수 있었다.

    ‘내가 약했다면, 충호를 키웠겠지.’

    하지만 야만신 코인을 탄 산박은 일인 군단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티팩트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혼자서 네 마리에 달하는 소환수를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이제 인재 구하기는 제2순위였다.

    ‘고로 균등하게 키우는 게 베스트다.’

    산박은 자신이 이렇게 흥할지 몰랐다.

    ‘탕만도 나쁘지 않지.’

    명분도 충분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 탕만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우받아야 마땅한 전사였다. 저레벨 던전에서 가장 우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에 가장 노출된 존재였다.

    ‘다른 전사 직업을 지닌 자들의 불만이 사라지기도 쉽다.’

    같은 분야의 사람이다. 빼앗기보다는 밀어주기 쉽고, 다른 직종의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길 것이었다.

    ‘김각두 혹은 김연정도 좋겠지.’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 것이 두 사람이었다. 워낙 하자가 있는 묶음이라서 알게 모르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독립 세력 내지는 중립 세력으로 알차게 우뚝 서게 하기도 좋았다.

    ‘파벌도 없는데 밀어주는 건 별로.’

    이내 그런 생각도 나중으로 돌렸다. 김각두과 김연정 두 명을 송곳처럼 노출해 대우해 주며 알 박기를 시키는 건 파벌이 나타났을 때나 할 법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산박은 장굉려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부산 은행의 건으로 흠집이 나기 전에 미리 두텁게 만든다.’

    던전 사용자들의 훈련장. 그걸 놓칠 산박이 아니었다. 이다음에 사업거리가 생기면 그는 그것을 장 노인이 아닌 송서아 지점장에게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얻는 게 크기 때문이다.

    ‘다른 걸로 장 노인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산박은 장굉려를 키워 주면서 이를 우뚝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산박은 이시은을 기다렸다. 그녀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다. 몇 번의 시도 끝에도 산박을 함락 못 시켰기에 이제는 장기적으로 가기로 했다. 아예 편한 친구가 되기로 한 것.

    그녀는 검은색 가죽 재킷에 밝은 톤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물론 포인트로 목이 조금 파인 셔츠를 입었고 그 사이로 금색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귀에는 점처럼 작지만 붉은 루비가 박힌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재킷 때문에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금색의 얇은 목걸이와 귓불의 붉은 귀걸이가 강렬했다.

    “무슨 조폭이에요? 금목걸이가 다 뭐예요?”

    “블랙재킷파라고, 제가 이번에 새로 창단했어요. 사장님도 들어오실래요? 금목걸이 필수요.”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산박은 바로 한우 고깃집으로 향했다. 척 봐도 인테리어가 좋아 보였다.

    “비싼 곳 아니에요?”

    “요즘에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겉멋 좔좔 흐르는 곳도 싼 곳이 많아요.”

    인터넷의 힘. 점점 강해지는 SNS의 위력과 영향력은 임대가 싼 곳도 충분히 갈 가치가 있으면 사람이 몰리게 만들었다.

    가게 입구부터 마련되어 있는 포토 존에서는 커플이 서로서로 개인 사진을 한 장 찍은 뒤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커플들의 손을 통해서 커플 사진까지 찍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찍어요. 빨리요.”

    산박은 못 이기는 척 이에 응해줬다. 송서아가 걸렸지만 아직 그녀가 고백한 것도 자신이 고백한 것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시은은 재킷도 벗고 팔까지 걷어붙였다. 제대로 먹을 생각인 듯했다.

    “임프 던전 키는 어디서 얻었어요?”

    “말해주면 뭐 해주실 거예요?”

    “돈? 돈 드릴까요?”

    산박의 말에 시은이 깔깔 웃었다.

    “돈으로 팔기에는 아까워요.”

    ‘궁금하다.’

    산박은 흥미가 돋는 걸 느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조각 케이크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인천에서 준 거예요?”

    “아뇨. 질문은 그게 끝이에요. 더 하면 제 소원 하나 들어주기~”

    결국 산박은 물어보는 걸 포기했다.

    그 이후에는 배를 꺼트리기 위해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잡담이나 가십거리는 아니었고, 대부분이 던전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서로 공통되는 주제였기에 시간 보내기 좋았다.

    ‘의외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산박은 이시은이 생각보다 높게 날아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큼 그녀는 착실하게 용이 되려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직접 눈으로 보는 기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완전히 네크로맨서로 갈아탄 겁니까?”

    “저요? 글쎄요. 마녀는 돈 벌기 좋으니까요.”

    마녀 클래스는 물약을 제조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였다. 특히 공격적인 물약을 제조 가능해서 인기도 제법 있는 편이었다. 혈혈단신인 이시은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보며 산박은 속으로 생각했다.

    ‘인천 네크로맨서의 하수인은 되지 않겠군.’

    돈은 자유를 뺏는 하나의 자원으로 사용되기 충분했다.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큰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 시은이 인천 네크로맨서의 규모와 힘에 매료되었다면 네크로맨서 클래스에 보다 더 집중했겠지만,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포인트였다.

    ‘던전 키는 포스코 타워에서 준 것일지도 모르겠어.’

    시은이 구할 수 없는 것을 선물로 준다면 마음의 빚을 지울 수 있다고 여긴 듯했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네크로맨서는 인천 포스코 타워에 소속될 수밖에 없을 텐데도 제대로 지원해 주고 있어.’

    저력이 있는 집단이었다.

    “한잔해야죠! 이제!”

    두 사람은 5성 호텔에 있는 바에 들렀다.

    “스푸모니 하나 주세요.”

    자몽의 상큼한 맛이 일품인 칵테일을 주문했다.

    “스크루드라이버 하나요.”

    사람 하나 죽이기 쉬운 독한 칵테일도 나왔다.

    물론 스푸모니를 시킨 건 산박이고, 상남자다운 스크루드라이버를 시킨 건 이시은이었다. 그 모습에 바텐더가 웃었다.

    “이렇게 취향 다르신 분이 같이 오시다니, 오늘은 운이 좋네요.”

    “그래요?”

    “그럼요. 서로 상반된 사람이 만날 확률이 얼마나 낮아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왔으니 더 확률이 낮다고 할 수 있죠.”

    바텐더는 능숙하게 말하며 잔을 건네줬다.

    “여기는 어떻게 아셨어요?”

    “블로그 리뷰로요.”

    산박이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스푸모니 칵테일을 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 자몽 칵테일이 진짜 대박이라고 난리더라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많죠? 다 스푸모니 마시려고 온 거예요.”

    “정말…….”

    이시은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전부 스푸모니만 마시고 있었다.

    “미리 말씀해 주시지.”

    “시은 씨 칵테일 취향도 모르는데 괜히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서요.”

    “아……. 그건 그렇고, 임프 던전의 인원 제한은 세 명까지인 거 아시죠, 사장님?”

    “예? 혹시 이미 정하셨나요?”

    “네. 설마 김칫국 들이마신 건 아니시죠? 제가 던전 키를 제공하는데 사장님이 다른 사람을 점찍어 놓았다든가, 그런 부끄러운 생각은 안 하셨죠?”

    “예? 하하……. 이 팀장도 짓궂은 구석이 있어요. 그런 생각 전혀 안 했습니다.”

    서로 빙긋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