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270)
  • 197화

    불교에서 스님을 순위로 매긴다면 홀로 참선하는 스님이 제일(第一)이요, 강의를 잘하는 스님이 제이(第二)요, 절을 잘 운영하는 스님이 제삼(第三)이요, 마지막으로 기도를 잘해주는 스님이 제사(第四)다.

    그리고 모든 스님이 하기 싫어하는 게 기도를 해주는 스님이었다. 매번 불자들을 만나고 매번 그들과 함께 기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해도 강의 잘하는 스님보다 인지도도 낮다.

    그렇기에 감투를 쓴다고 해도 가장 쓰고 싶지 않은 감투가 바로 부전 스님이라는 직책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얻는 것은 적다. 차라리 일신의 수양을 위해서 홀로 참선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삼각 스님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일이 있을 때면 종종 찾아오는 불자들도 이렇게 평범한 평일 새벽에는 보기 힘들었다. 물론 사시나 오후 혹은 저녁에는 그를 찾아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거나 같이 하는 불자들도 제법 됐다.

    삼각 스님이 하는 기도는 사분 정근(四分精勤). 하루 네 번 하는 정진 기도이며, 1억을 줘도 1년 내내 스님 혼자 하기가 어렵기로 유명한 기도였다. 한자에 부지런해야 하고, 쌓는다는 뜻은 어디에 들어 있을까요? 한다는 뜻이 담겨있을 정도로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 기도였다.

    그런 기도를 삼각은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 하루에 사분 정근 외에도 행사마다 때마다 다른 기도까지 올려야 했기에 피곤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으나 눈은 총명함으로 가득했다.

    삐걱.

    문소리가 들려오자 삼각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문수행이 바로 들어섰다.

    “네가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도박판 깔면서 콩고물 얻어먹는 재미로 사는 게 문수행이었다. 자신과 1년 차이로 대덕사에 몸을 의탁했는데 하는 짓은 뒷방 똥개보다도 못했다. 적어도 똥개는 남에게 피해는 안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자주 절을 나가는 모습을 보여서 이미 삼각의 마음은 그에게서 떠나 있었다.

    “올해로 사분 정근 하는 날이 몇 해째입니까?”

    “9년째다. 곧 10년에 다다른다.”

    하나의 성(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박지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위선자.’

    9년, 이제는 곧 10년에 다다르는 정진 기도를 계속해 왔기에 타락한 대덕사에서조차도 부전 스님에 불과한 삼각의 입김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문수행은 그를 의심하고,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착한 짓을 해도 너도 대덕사의 으뜸이 되려는 하이에나 중 하나일 뿐이다.’

    사업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긴 사람조차도 그를 보고 꾸준히 돈을 보내오고, 틈틈이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5일 내내 지내다가 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모두 그에게 속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정말 구역질이 났다.

    그만큼 9년 동안 똑같은 기도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삼각 스님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새벽에 그처럼 나오는 사람은 적었고, 이런 대덕사에는 없었다. 유명한 절에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온 것을 보니 공양주(供養主) 때문에 온 것이냐?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삼각의 말에 문수행이 킬킬거렸다. 그래, 그것도 있었다.

    “하하, 공양주, 공양주 말씀입니까? 다른 절도 하는 것을 왜 우리는 하면 안 됩니까? 다들 한 달에 150 주고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그것의 배를 줘라? 공양주가 돈 벌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입니까?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스님도 아니지. 세속에도 연이 있으니 그에 맞춰서 주는 게 옳다. 그리고 그 정도 발언은 들어줘도 괜찮지 않나? 대덕사는 넉넉해.”

    “넉넉하다고 곳간을 털어내면, 그다음에는요? 만약 바닥이 나버린다면요?”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렇게 매번 위선자처럼 말하면 남들은 뭐가 됩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

    그 말에 삼각은 조용히 기도를 제시했다. 더 말해줘 봤자 결국 평행선이었다. 그저 자신의 눈에 계속 밟히는 악업을 닦기 위해서 다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살금살금.

    이제 열린 문으로 박지아가 조용히 들어섰다. 야만신의 은총을 받은 아티팩트 덕분에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왜소하기 짝이 없는 스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놈만 죽이면 대덕사는 완전히 타락한다.’

    그렇게 되면 대덕사는 천지신교의 제2차 거점이 될 것이었다. 부처의 뒤에서 천지신교를 퍼뜨리는 선교의 장소가 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미소가 절로 피어 나오는 극적인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박지아와 문수행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내 문수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지 한 걸음 물러섰다.

    뒤에서 그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삼각이 말을 시작했다.

    “자비의 시작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악업은 닦으면 된다. 미움이 피어오르면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다음 생을 위해서 지금 자신이 할 수……. 큽?!”

    푹!

    목에 그대로 단검이 쑤셔 박혔다. 소리 하나 낼 수 없이 삼각 부전 스님이 옆으로 픽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을 더듬거렸다. 이내 검의 형태를 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지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한 걸음 멀찍이 물러난 문수행의 모습까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위, 위선자 놈. 맛이 어떠냐……! 대덕사는 내, 내가 쟁취한다! 너, 너 따위 악귀에게 줄 곳이 아니다!”

    말을 떨며 문수행이 입을 놀렸다. 마치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삼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모든 불합리함과 고통을 받아들였다.

    ‘이 또한 업보다.’

    삼각은 자신이 절에 들어오고 1년 뒤 들어온 문수행과 끝없이 부딪쳤다. 그리고 수행의 끝에 삼각은 업장 소멸을 위해서 사분 정근에 들어갔다. 그게 이번 삶에 주어진 사명이라 여겼다. 무려 9년의 삶을 정진 기도에 임했다.

    “흐으. 흐으!”

    숨의 헐떡임이 느껴지고, 곧 그는 질식사했다. 하지만 조용히 그 어떤 발악도 없이 죽었다. 누구를 저주하거나 탓하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그렇게 죽어 버렸다.

    “…….”

    그 모습을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던 문수행은 박지아가 삼각의 품을 뒤지는 모습을 봤다. 끔찍했다. 그 끔찍함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으, 흐!”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바로 앞에 부처가 있는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뭐야, 이건?”

    종이 한 자락을 박지아가 들어 올렸다. 무언가 남긴 모습에 문수행이 서둘러 그걸 낚아챘다. 그 바람에 종이가 찢겼다. 박지아가 나머지를 건네주자 문수행이 이를 붙였다.

    [본각(本覺) 맑고 깨끗한 본성을 깨닫는 거. 시각(始覺) 불법을 열시미 들어서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거. 구경각(究竟覺) 모든 힘을 다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깨달음을 찾는 거. 이게 내 이름인 삼각(三覺)의 뜻!]

    오래되어서 탈색된 종이였다. 아마 어린 삼각이 자신의 법명을 받았을 때 그 뜻을 적어놓은 듯했다.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엉망진창의 필체를 지닌 어린애의 글이었다.

    구깃!

    문수행은 바로 이를 구겼다. 그의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서둘러 돌아가세요. 전 나머지를 처리할 테니까요.”

    시체를 짊어진 박지아가 말했다. 삼각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시체도 가져가야 하는 게 옳았다. 그만큼 삼각이 이곳에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컸다.

    문수행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우웨에에에엑!”

    피비린내에 그대로 안에 것을 게워냈다. 이를 본 박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로 형편없는 남자였다. 자신이 사주하고 죽였음에도 그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을까? 그대로 버리고 간다.’

    그를 보살필 여유는 없었다. 해야 할 일이 태산만큼 쌓여 있었다. 그만큼 사람 하나를 죽이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흡!”

    박지아는 그대로 시체를 짊어지고 움직였다. 단검이 박혀 있어서 피는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겁기 그지없었다.

    박지아가 밖으로 나오며 계단에 발을 디뎠다. 동시에 옆에서 태산박이 그녀의 목을 날카롭게 단검으로 베고 다른 손으로는 박지아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쿠당!

    단번에 넘어지며 박지아의 턱이 땅과 부딪쳤다. 박지아는 그대로 기절했다. 던전 사용자고 나발이고 턱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은 곧바로 뇌를 흔들었다. 피가 흥건하게 흙을 적셨다.

    단 한 번의 방심이었다. 던전 아이템을 쓸 순간조차 없었다. 보호력이 없는 목에 바로 단검이 꽂혔다. 물론 태산박의 단검은 ‘송곳 단검’이라 불리는 1레벨 던전 장비였다. 중무장한 상대에게 관통력과 물리력을 행사하는 물건이었다.

    푹! 푹! 서걱!

    산박은 박지아의 겨드랑이 양쪽에 단검을 찔러 넣고 마지막으로 뒷머리와 목뒤 사이에 옴폭 들어가는 부분을 단검으로 베어냈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태산박은 헛구역질을 하는 문수행의 뒤에 섰다. 머리채를 잡아당겨서 턱을 위로 올리게 했다. 목이 베기 좋은 형태를 그렸다.

    서걱!

    단번에 멱을 따내고 버둥거리는 놈을 덮쳐서 갈비뼈, 특히 폐가 있는 오른쪽을 정신없이 찔렀다. 서서히 몸이 굼떠지자 그제야 칼질을 그만두고 태산박은 박지아의 품을 뒤졌다.

    상시 보호를 일으키는 던전 장비는 보호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목은 보호해 주지 못했다. 몸 전체를 보호하는 방어 막은 발광하기 마련이라 이런 암살의 순간 그리고 그 후에는 사용할 생각을 못 했다.

    ‘제대로 된 암살자가 아니지.’

    무엇보다 자신보다 항상 약자만 상대하는 티가 났다. 그녀의 삶에서부터 물씬 풍기는 냄새는 고약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산박이 의뢰를 받고 자신보다 강자를 죽여 왔다면 박지아는 오로지 약자만을 죽였다. 기도하고 불쌍히 여김을 알기에 사랑을 베풀 길을 걷는 스님을 거침없이 죽였다.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일반인을 죽이는 일은 그만큼 쉬웠다. 던전 사용자였기에 자신감도 넘치는 게 박지아였다.

    그러나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병신 같은 퇴로를 구축한 것부터 어리석었다. 그렇기에 태산박은 딜을 걸었고, 훌륭하게 판돈을 따냈다.

    ‘히트 맨도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살인하는 놈이 제대로 된 놈일 리가 없지.’

    강자는 항상 약자만 상대하고 싶은 법이다. 같은 강자를 만나면 악수하고 포옹하고 서로 같이 사업 이야기 하기 바쁘다.

    산박은 다른 경로로 되돌아가서 렌터카마저 버렸다. 필요한 물품은 이미 모두 수거했고, 렌터카 내부도 깨끗이 청소한 뒤였다. 어차피 자기 이름으로 렌트한 것도 아니었다. CCTV에 걸릴 염려도 없었다.

    태산박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옷을 갈아입고 평범하게 되돌아온 산박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일어났을 때 산박은 자신이 야만신의 보상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림자 후각.’

    코는 마비가 된다. 같은 냄새를 꾸준히 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림자 후각은 그걸 가능하게 해줬다. 동시에 ON, OFF도 할 수 있었다. 강력한 힘이었다.

    ‘후각의 성능 강화.’

    실로 사냥꾼 같은 은총이었다. 특히 인간에게는 매우 유의미했다. 시각으로 대부분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후각도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쉬운 일이었다.’

    약자만 죽이는 암살자를 기습하는 건 산박에게 너무나도 쉬웠다. 무엇보다 장소 자체가 산속에 있는 절이다. CCTV가 있을 수가 없었고, 있다고 해도 돈이나 귀중품이 있는 곳에나 설치돼 있었다.

    ‘야만신이 나를 밀어주고 있다.’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런 판단을 미리 했지만, 실제로 일을 치르고 나서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

    동시에 이번에 회수한 은총 장비를 확인했다. 야만신의 은총이 깃들어 있었고 2레벨 던전 장비였다. 물론 현실에서 쓰기에 더욱 좋았다. 팀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이걸 쓸 이유가 없었다.

    ‘억지로 혼자 다니지 않는 이상은 효능을 얻기도 힘들지.’

    은밀함이 필요한 상황에만 빛을 발하는 장비였다. 그렇기에 실제로 던전에 들어가서 사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던전에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똘똘 뭉쳐 다닐뿐더러 산박은 후방 직업인 드루이드였다. 소환수가 네 마리가 된 시점에서 그가 앞으로 나설 일은 적었다. 나서더라도 전투 때 나서게 될 뿐이었다.

    ‘야만신이 날 키우기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의뢰를 준다면 잘 챙겨둬야 한다.’

    산박은 자신의 개인 낚시터에 있는 오두막에 이를 잘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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