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70)
  • 196화

    * * *

    산박은 3일을 잠복근무에 임했다. 여관과 모텔이 집중된 곳이었기에 방 하나 잡고 여관의 동태를 살폈다.

    ‘천지신교의 여관.’

    그곳에 들락날락하는 사람 중 태반이 불자 혹은 스님들이었다. 불자들을 구별하는 건 간단했다. 팔찌를 보면 금방이다. 불교 티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물론 다른 종교 또한 별반 차이가 없었다.

    특히 현재 박지아는 불교쟁이들을 추수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대구의 돈이 모이는 수성구의 바로 밑에 있는 대덕사. 그곳에 가는 이들은 모두 돈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목돈 없는 이가 없었다.

    ‘전도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바로 사람 전도다. 추수라고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효과가 뛰어난 전도가 있었다.

    ‘돈.’

    전도해서 헌금을 얼마나 얻느냐도 매우 중요했다. 12지파의 장이 되려면 이 두 가지 모두를 휘어잡아야 했다. 박지아는 사람 전도는 충분히 했고, 순위권에 올라있는 전도사였다. 그것만으로도 12지파장의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돈이다, 돈. 돈이 필요했고, 헌금을 해야 했다. 그래야 진정 천지신교의 심장이 될 수 있었다.

    산박은 힐끔 서류를 들어 올려서 훑었다.

    ‘세대교체.’

    천지신교는 지금까지 두 번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세대교체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교주가 언제 쓰러질지 몰라서였다.

    ‘세대교체에 필요한 건 돈.’

    도교, 불교, 유교, 기독교. 수많은 종교를 받아들였던 것이 한국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먼저 종교에 세금을 먹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일반 시민보다도 세금이 높은 건 바로 부동산이었다. 건물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새로운 교주에게 넘기려면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했다.

    특히 천지신교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에 세무원이 틈틈이 연락까지 하는 종교 중 하나였다. 수틀리면 세무조사 들어오는 건 우습다.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세금의 자유는 없는 셈이었다. 그만큼 너무나도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천지신교였다.

    특히 그들은 원양 어선 쪽으로 큰 손님 중 하나였다. 지적 장애부터 시작해서 장애인이란 장애인은 죄다 배에 처박아 버리기 때문이었다. 배에 탄 장애인들은 다리가 잘린 채 그물을 잡아당기며 평생을 살아야 했다.

    죽으면? 얼굴에 염산 붓고 지문 지우고 바다에 버린다. 장애인은 신이 내린 노동자라고 교리로 가르칠 정도였다.

    비싼 기계 하나 들이는 것보다는 그냥 사람 하나 쓰는 게 싸다. 그 결과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천지신교의 가장 중요한 신도들이었다.

    아무튼 현재 천지신교는 현금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박지아를 죽일 기회가 있지.’

    던전 사용자도 등쳐 먹는 게 천지신교였다. 빚까지 지게 해 저레벨 던전 전담 팀을 꾸려서 돈을 쪽쪽 빨아먹었다.

    박지아 또한 던전 사용자. 그 무서움은 크다. 현실에서는 고레벨 던전 장비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를 훔칠 기회는 이 여관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불자들과 스님들을 길게 상대하면서 박지아의 경계는 많이 내려가 있었다.

    위험 하나 없이 여관에 여신도들을 데려와서 불자들과 스님들을 현혹시키고 개종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빈털터리가 되면 바로 돌변해서 천지신교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먹고살려면 천지신교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개미지옥.’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하면 사기를 쉽게 본다. 하지만 그렇게 사기가 쉽다면 사기 범죄는 자연 도태 되듯이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기를 우습게 본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세상 사람 모두 멍청해서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니었다. 방심하는 순간 코 잘라 가는 게 사기꾼들이었다. 그 공포! 그것은 하나의 장작이 되어서 거세게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전도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 들어오는 돈이 다른 천지신교는 활화산과도 같은 곳이었다.

    새벽 네 시 오십 분, 3일 동안 동태를 살핀 산박은 밖으로 나섰다. 그 누구도 없으며 가장 어두운 시간, 조용히 여관의 옆으로 돌아간 산박은 검은 배낭에서 금괴같이 투박한 직사각형의 무언가를 꺼냈다. 기름 먹인 가죽으로 단단히 밀봉되어서 공기 하나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침투 바’. 골드바와 비슷해서 이름 붙여진 던전 아이템이었다. 벽 표면에 존재하는 ‘힘’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힘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소모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대로 운영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아무리 큰 구조물에도 능히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침투 바는 평범하게는 얻을 수 없었는데,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져서였다. 즉, 아는 사람만 알고, 구매는 더더욱 힘들었다.

    침투 바는 공기에 노출되자마자 빠르게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닳기 시작했다. 산박은 이를 벽에 꾹 누른 채로 벽면을 훑었다.

    파직!

    스파크가 터져 나갔다. 그러고 나서 산박은 곧바로 이를 잘 밀봉해서 배낭에 넣었다. 배낭의 줄을 바짝 잡아당겨서 몸에 밀착하게 한 다음 단번에 도시가스 관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박은 굳이 박지아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교에 싸움을 거는 미친놈은 이 세상에 없다.’

    천지신교의 숫자는 못해도 30만 이상이다. 30만 이상의 표를 내던질 정치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규모는 그만큼 크고 거대하며 다른 곳곳의 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가진 자들이 형벌을 적게 받고 집유로 끝나거나 그냥 묻히는 이유는 괜한 게 아니다. 제대로 싸우면 서로 피가 터지기 때문이다. 그곳에 민중과 시민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처단한다고 해서 30만 이상의 표를 민중 따위가 어찌 내던질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한 번에 한 번의 투표밖에 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묻히고, 유명인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이슈 몰이가 시작되어도 웬만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나서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현실이라는 놈이었다.

    ‘야만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박지아를 죽이는 건 조금…….’

    양피지에 기록된 대로 조끼만 챙길 생각을 가졌다. 어차피 야만신의 분노를 박지아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굳이 산박이 안 해도 될 일이었다.

    산박은 조용히 창문에 손을 가져갔다. 워낙 높은 곳이라서 창문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담배 냄새가 창문 틈으로 삐져나와서 산박의 코로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면 환기를 자주 할 수밖에 없지.’

    안으로 들어간 산박은 조용히 어둠 속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 방에서 지냈기에 생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이동식 옷걸이까지 한구석에 있었다.

    산박은 조용히 움직였다. 한 바퀴 훑어본 다음에 작은 플래시를 켜고 장롱을 펼쳐서 옷을 훑었다.

    ‘쯧.’

    이내 혀를 찼다. 양피지가 알려준 정보와는 다르게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가 없어서였다. 여행용 가방을 칼로 헤집어 놓았기에 다시 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곳곳을 조사한 산박은 이내 박지아의 장부를 확인했다.

    ‘명단.’

    수기로 기록한 것이 고약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바로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상금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침대 아래, 매트리스 속에 끼워놓은 봉투.

    ‘수표.’

    도난 방지 처리가 된 수표다. 하지만 그런데도 산박은 이를 챙겼다. 딱 봐도 차명이다. 즉, 도난 신고를 할 수 없는 수표였다. 먹는 놈이 임자인 셈이었다.

    ‘어지간히도 조심스럽군. 생각보다 적이 많아.’

    액세서리 함도 챙겼다. 반지부터 목걸이, 브로치까지 던전 아이템이 아닌 게 없었다. 모두 잔뜩 쓸어 담았다.

    산박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다시 자신이 머물렀던 모텔로 들어가서 모든 걸 챙기고 렌터카를 주차해 놨던 유료 주차장으로 도보로 8분 이동, 그 후에 곧바로 빠져나갔다.

    ‘박지아가 모텔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에 죽인다.’

    그는 대덕산으로 향했다. 3일을 기다린 탓에 제2안, 제3안을 마련해 놓았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을 피하는 방법은 차선의 차선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계획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좋지 않아.’

    이른 새벽 대덕산으로 향하며 산박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

    간단히 여행 가는 것부터, 심지어 신혼여행까지 운이 따라줘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산박의 시도는 운 때문에 곤두박질쳤다고 할 수 있었다.

    ‘박지아가 던전 장비를 챙겼다.’

    워낙 던전 아이템이 많았기에 쓸어 담다시피 가져갔지만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는 없었다. 그 의미는 한 가지뿐이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변수가 일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빠져야지 안전하다.’

    예측할 수 없는 비일상에 들어선 박지아의 행동을 파악했기 때문에 대덕산에 있는 대덕사로 향하면 안 된다.

    피식.

    산박이 웃었다.

    ‘야만신의 의뢰를 거부한다면, 그걸로 끝.’

    그렇기에 산박은 수많은 변수가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적어도 박지아가 입고 있는 그림자 털가죽이라도 회수해야 했다.

    ‘박지아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군.’

    여성은 신체적으로 근력에 한계가 존재한다. 거기에 남자가 요구하는 ‘매력적인 여성’은 80kg이 넘는 동료를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담벼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쭉쭉 빵빵한 미녀였다. 여성들 또한 약간 연예인? 그런 남성에 눈을 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고로, 산박은 박지아가 살아 있기를 원했다. 손쉽게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AM 5:49.

    대덕사 뒷길은 비포장도로였다. 시주는 시주대로 받았지만 ELS 주식에 때려 박기 바쁜 게 대덕사의 현실이었다.

    종교는 돈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유명한 십일조처럼 불교 또한 돈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었다. 안경 하나 맞추는 것도 돈이다. 주경야독하며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스님들에게 필요한 건 쌀보다는 높은 도수의 안경이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스님이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빨간색의 두툼하기 짝이 없는 큰 플래시를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면서 어두컴컴한 길을 내려갔다.

    “이판승님.”

    “헉.”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덕사의 돈을 관리하는 이판승 문수행(文殊行)이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홱 고개를 돌렸다.

    “오셨구려.”

    이판승이 박지아의 몸을 빛으로 비추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에 스포츠 백 하나 메고 있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눈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욕망이 깃든 박지아가 이판승의 팔에 손을 집어넣으며 팔짱을 꼈다. 가슴의 감촉을 느낀 이판승 문수행은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향수 냄새가 코로 들어가자 욕정이 일어났다.

    그 거친 반응에 박지아가 미소 지었다. 수많은 남자를 상대했던 그녀였다. 이 정도는 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은 아직도 자고 있죠?”

    “도박판 하나 벌이면서 술에 잔뜩 취하게 해 재워 놨습니다. 다른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요일에 중요한 사람이 어찌 절에 오겠습니까? 이제 내 걸림돌은 삼각(三覺)만 남았습니다. 그놈만 말끔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부전 스님 삼각. 부전 스님은 행사를 주관하기에 가장 인기 있어서 타락하기 쉬웠다. 하지만 대덕사의 부전 스님이라는 놈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위선자였다. 적어도 이판승 문수행에게는 그랬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 깨끗할 수 있느냐. 고로 놈은 위선자다.’

    속에는 검은 능구렁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삼각은 문수행의 사형이었지만 둘의 사이는 매우 나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 깨끗한 척을 할 수 있는지 보자. 내 오늘 너의 가면을 벗겨서 마음 편하게 살아볼 것이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은 조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때에 맞춰서 도착한 산박은 이미 그들의 뒤에 있었다. 그 손에는 나침반이 있었는데, 도망자를 잡을 때 즐겨 쓰던 것이었다.

    ‘이런 야산에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도 필요한 곳에 도달할 수 있지.’

    대덕사가 아닌 곳을 가리키는 ‘사람 나침반’은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추적했다. 그 덕에 산박은 힘들게 산길을 오르는 박지아를 정확하게 표적으로 삼아서 무리 없이 뒤를 밟을 수 있었다.

    ‘암살.’

    대덕사의 내부 정치를 위해서 아마도 거사를 치르는 듯했다. 만약 산박이 일찍 박지아를 쳤다면 결코 이곳에 닿지 못했을 터였다.

    대덕사 내부에서는 그 어떤 제지도 없었다. 큰스님들이 도박판을 벌일 때 그걸 보고 자란 다른 스님들도 나름 고스톱 잔치를 벌이다 곁들인 술에 취해 잠들어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하지만 어디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썩은 곳이라도 결국은 불교.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도자들을 배출한 곳이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도박과 성매매, 돈에 의한 내부 정치, 다른 종교로부터 썩은 물이 들어오는 곳이 되어버린 대덕사에도 멀쩡한 스님은 존재했다.

    더러운 연못 속에서 꽃 피는 연꽃처럼 해가 뜨는 걸 기다리는 목탁 소리는 그야말로 이질적이었다. 죽이러 가는 박지아와 죽이러 오도록 만든 이판승, 그리고 그 뒤를 쫓아서 들어가는 산박에게는 기분 나쁜 목탁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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