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4/270)
  • 194화

    * * *

    “조심하셔야 해요. 제 오빠들은 과보호가 너무너무너무! 심하거든요.”

    “폰까지 다른 걸 쓰실 정도니까,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도망칠 자신은 없는데요.”

    “싸우지는 마세요.”

    “맞으면 제가 더 이득 아닌가요? 지점장님이 혼내줄 수 있잖아요. 딱! 현행범 체포죠.”

    “흐흐훗. 제가 경찰이고요?”

    “에이, 어떻게 비교를 해도……. 판사죠, 판사.”

    “크응……. 후흐흣……!”

    한식당에서도 산박은 농담을 걸며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갔다. 그 자신감은 송서아를 특히나 더 풀어지게 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보기와는 다르게 귀여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소리를 내는 걸 싫어하는 듯해서 약간 참으려고 하니까 더 웃음소리가 재밌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웃음소리를 콤플렉스로 여기는 듯했다.

    그렇기에 산박은 그 웃음소리에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남을 놀려서 만들어 내는 웃음은 저열하다. 거기에 동조하든 안 하든 한 명의 사람을 인신 공양 해서 얻어내는 웃음에 불과했다.

    디저트를 앞에 두고 조용히 술을 시켰다. 물론 잔을 원샷 하는 일은 없었다. 세 번에 나누어 마신다. 그게 법도였다. 주도(酒道)를 배우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노가다를 뛰는 자조차도 날을 잡아서 아이에게 주도를 가르친다.

    그게 안 된다면 아내가 주도를 바로잡아 준다. 술 처먹고 남에게 민폐 끼치는 술 묻은 백정이 되기 전에 어떤 술버릇이 있는지,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등등 실제로 알아야 하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주량조차도 모르면 풍류를 즐기는 선비라고 할 수 없었다. 선비의 나라답게 대한민국의 주도는 엄했고, 엄한 만큼 주류가 성행하고 있었다. 문턱이 높으면 그걸 지나가고 나서는 재미난 법이었다. 어려울수록 그곳을 넘었을 때 오는 쾌감이 크다.

    탁.

    “맛은 어떠세요? 이번 전통주는 제주도에서 공수를 했다고 하네요. 유통 기간이 7일인데 오고 가는 데 3일. 그래서 마실 수 있는 기간이 무척 짧다고 해요.”

    “보통은 제주도 여행 가서 마실 수 있겠네요. 톡 쏘는 정도가 특이해요.”

    산박의 말에 송서아가 미소를 지었다.

    “맛을 아시네요. 해산물에 흑돼지까지, 제주도의 술은 산미가 강해야 할 수밖에 없거든요. 쌀을 가장 적게 먹는 곳이죠.”

    쌀보다 다른 걸 더 많이 먹는 곳 중에서도 유명한 게 제주도였다. 밥이 거의 사이드 메뉴 취급을 받을 정도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 지대라 논을 부치기 어려워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까무러치기도 한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인데 쌀밥이 반찬 취급이라니! 실로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밥심 모독이다. 그 덕에 제주도 식당에 가면 항상 이를 미리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옥시모론 기업에는 던전 사용자 전용 훈련장이 없죠?”

    그 말에 산박이 침을 삼켰다. 갑자기 훅 들어와서였다.

    “…예. 대부분 사설 훈련장이니까요. 국가에서 관리할 수가 없죠. 예산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돈을 가장 적게 쓰는 방법은 민영에 맡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던전 사용자 전용 훈련장의 유지비는 매우 비싼 편이라, 이용하고 있는 던전 사용자는 대부분 기업에 속한 자들뿐이었다.

    “무료 이용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상대방이 제시하는 조건을 들어 봐야겠죠.”

    잠깐 침묵이 나돌았다. 송서아는 산박의 대응에 만족하고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지.’

    그 자체만으로도 의도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다음 사업을 준비하실 때 저한테 말씀해 달라는 거예요.”

    “어렵지 않은 부탁이죠. 그런데 그걸로 되겠어요? 훈련장 유지비가 장난 아닌 건 모두가 알잖아요.”

    “괜찮아요. 어차피 던전 경제에 발을 들이게 되었으니 던전 기업을 인수하는 작업도 해야 하거든요.”

    하나가 터지면 다른 것도 터진다. 던전 경제에 들어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모든 걸 얼추 모양새라도 내야 했다. 그것도 다른 기업의 방해 속에서 싸워야 했다.

    “힘드시겠네요. 국내에서 도와주는 기업은 거의 없을 텐데요.”

    “네. 그래서 다른 곳도 좀 알아보고 있어요. 괜히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겠어요?”

    송서아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동시에 산박은 이번 만남 속에서 송서아가 장 노인을 내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려울 텐데.’

    공직에 몸담은 혈족이 많은 게 연기 장가(家)였다. 그들이 작정하고 미적거리면 제대로 된 허가를 받지 못한다. 차일피일 보고가 늦게 올라가고, ‘전산상 오류’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는 복수겠지만 그것도 5년, 10년 계속되면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뇌물을 먹인 고위직 인사를 밥 빌어먹듯이 호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공직 가문의 위대함이었다. 철 밥통을 앞세우고 땡깡을 부릴 수 있었다.

    이곳저곳 거주지를 바꿔서 지방 곳곳에 검버섯처럼 피어있는 게 연기 장가였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장지건처럼 다른 일을 하는 편이었다.

    “장 어르신이 알아도 되는 겁니까?”

    “서로 순번 뽑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산박은 술잔을 들어 올려서 입을 축였다. 톡 쏘는 제주도 전통주는 고기를 당기게 했다.

    ‘음흉하다.’

    앞으로 2레벨, 3레벨 던전을 뻗어 나가며 5레벨 이상의 고레벨 던전 사용자를 보유한 던전 기업이 되면 던전 사용자 전용 훈련장은 필수였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유지비가 들어간다.

    던전을 파괴하기 위한 존재가 바로 던전 사용자였다. 그들이 제대로 훈련하면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2레벨 이하의 던전 사용자는 야산에서 훈련해도 티가 안 나지만 3레벨부터는 다르다. 교통사고의 흔적처럼 대미지가 남게 된다. 이를 계속해서 훈련 때마다 복원시켜야 했다.

    바닥을 모래로 하든 콘크리트를 때려 박든 결국에는 유지비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고로, 송서아는 거기까지 보고 미리 떡밥을 던졌다.

    ‘아직 옥시모론 기업은 저레벨 던전 사용자들뿐이다.’

    그렇기에 무료로 던전 훈련장을 빌려줘도 나쁘지 않다. 유지비가 적게 드는 고객이었다. 동시에 장 노인과의 경쟁에서도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실로 똑똑했다.

    산박에게도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결국 나중에 옥시모론 기업이 성장한다면, 던전 훈련장 무료 이용은 강력한 카드가 된다.

    “기간은요?”

    “부산 은행과 옥시모론 기업이 갈라질 때까지요.”

    그 말에 산박이 눈을 깜빡였다.

    “보통은 저와 지점장님의 관계가 부서졌을 때라고 말하지 않나요?”

    “으흠.”

    송서아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헛기침으로 대신 답변했다. 왠지 산박은 조금, 더위를 느꼈다. 손에 땀이 차서 휴지를 한 장 꺼내서 대충 닦았다.

    “…그럼 고민을 좀 해도 될까요?”

    “다음 2레벨 던전 공략 가시기 전에 말씀해 주세요.”

    “예.”

    일단 산박은 결정을 보류했다. 당장 한다면 송서아에게 좋은 이미지를 씌워 주겠지만 던전 떡밥을 바로 무는 물고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익을 취한다. 그게 내가 사업에 임해야 할 자세다.’

    거기에는 송서아 지점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 * *

    두 사람은 서로 적당히 덕담을 나누며 헤어졌다.

    “잠시만요, 태 사장님.”

    “예, 지점장님.”

    “이제 직함으로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하지 않나요?”

    “그러는 지점장님도 절 딱딱하게 부르시잖아요.”

    “좋아요. 그럼 서로 가볍게 부르기로 해요.”

    “말도 놓을까?”

    그 말에 송서아가 웃었다. 거절의 웃음이었다. 반말은 천박하다. 자신의 감정이 너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존댓말을 하면 감정을 숨기기 편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서아 씨. 즐거웠어요.”

    “하루 쉬고 세종시로 잘 들어가길 바랄게요, 산박 씨.”

    찰칵.

    그 모습을 이시은이 줌을 당겨서 찍었다. 상당한 고가의 카메라였고, 거치대까지 존재했다. 마치 저격하듯이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신용 카드를 이용해서 10개월 무이자로 긁어도 비쌌다.

    ‘음…….’

    이시은은 마음 한편이 매우 심란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데이트였다. 하지만 지금 표정을 보면 사업가와 사업가의 만남이다. 분명 한식당 내부에서 제법 무거운 이야기를 짧게 주고받은 게 틀림없었다.

    ‘부산 은행은 건들 수 없어.’

    몇 년을 소비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수많은 연쇄 살인마가 죽인 자들은 대부분 약자다. 반항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늙은이, 공포심에 쉽게 집어삼켜지는 여자, 폭력 앞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 정신 구조를 지닌 자들뿐이었다. 거기에 엘리트는 없다. 되레 살인마가 엘리트라면 엘리트다.

    거기에 부산 은행은 보통 부자가 아니었다. 경호원 하나 두지 않는 졸부랑은 달랐다. 진짜 지킬 게 많은 곳이라서 진짜로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런 곳을 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도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시은에게는 불필요했다. 살인마에게는 살인마 나름의 살인 철칙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첫 줄이 ‘노인과 약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성인 남성은 근육량만 봐도 죽이기 힘들고 리스크도 크다. 출혈을 일으킨다고 해도 오래 버티고, 제대로 빨리 죽이려면 질식사를 시켜야 한다. 그냥 뒤를 치면 그만이라고 여긴다면 살인을 해보지 않은 자의 가벼운 소리에 불과했다.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한 ‘육식 동물’이다.

    송서아에게 닿기 위해서는 그런 성인 남성, 그것도 평균보다 건장한 경호원들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시은의 눈은 송서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바로 산박 때문이었다. 그가 ‘큰 놈’에게는 ‘큰 보상’이 따른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기에 송서아는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사냥감이었다.

    ‘저 여자를 죽인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사회의 반향은 실로 이시은을 기쁘게 만들 것이었다. 하지만 허투루 진행해서는 안 된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차근차근 진행한다.’

    이시은은 강한 탐욕에 휩싸인 눈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 * *

    부산 금융. 과장 송지림이 오사카 국제공항에서 빠져나왔다.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여성이면서도 곳곳에 출장을 다니고 영업을 뛰는 그녀는 불과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과장까지 오른 무지막지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고졸에 그친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사회 성공을 위해서 내달렸고, 이제는 외가든 친가든 누구든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제사는 걷어찬 지 오래였다. 친가의 모두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소리는 찍찍 내뱉으면서 준비는 막내인 자기 엄마에게 하나하나 다 시켰기 때문이었다.

    구질구질한 집구석의 분위기를 한 번에 역전시키며 동래 송가의 방계로 받아들여져서 사원에도 출입할 수 있게 된 지 이제 갓 1년이 지나고 있었다. 과장 승진과 함께 이루어진 대우였다. 아무리 혈족이라고는 하나 그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혈족도 있는 법이었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림 과장은 그걸 탓하지 않았다.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왈가불가해 봤자 개새끼가 허공에 대고 짖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송지림 과장님, 맞습니까?”

    매우 능숙한 한국어를 들으며 송지림이 악수를 건넸다.

    “예. 한국어가 대단히 능하시네요.”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아닙니까.”

    “제국 때만큼은 못하지만요. 서일본이 오히려 대단하죠.”

    서로 악수를 하고 나서 상대가 자신을 소개했다.

    “교구몬(Kyokumon, 敎公文)의 테이바치 츠요시(Teibachi Tsuyoshi, 鄭撥 彊)라고 합니다. 직급은 부장입니다. 교토까지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대단히 극진한 립 서비스였다. 여기에 헤벌쭉하면 뒤통수 당하기 일쑤다. 약속 시간은 잘 잡지만 퇴근 시간은 지키지 못하는 게 일본식 영업이었다. 아무리 한국에 그 뿌리를 둔 테이바치 가문이라고 해도 일본에서 터를 잡았기에 그 물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버림받은 가문.’

    공적을 세우고도 도망치듯이 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세월이 흐르고 나서는 많이 희석되었다.

    송지림은 리무진에 타서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사카는 니쥬니구치구미(二十二口組)라 불리는 야쿠자들에 의해서 세금 확보를 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와서 국제공항 운영까지 축소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교토는 괜찮습니까? 요즘 야쿠자들 때문에 문제라던데.”

    “문제가 되었기에 형편이 좋죠. 일본은 그런 나라입니다. 대한‘민국’과는 다르죠.”

    테이바치 츠요시가 민국에 악센트를 넣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판타지 쇼크로 서울은 폐허가 되었고, 제국은 민국이라고 국명조차 수정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리 떼에 의해서 양단당했을 터였다. 중앙 정치 의회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었기에 생긴 정치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패배한 개새끼마냥 고개를 숙였다.

    “교토는 여전합니다. 그 누가 테이바치 가문의 텃밭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야쿠자들도 도망친 곳인데요.”

    운전하는 기사가 웃음을 지었다. 그도 교토인일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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