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270)
  • 193화

    산박은 먼저 부산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자마자 택시 아저씨가 산박을 힐끗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그, 연산…….”

    “연산역? 아따마, 그렇게 복잡한 곳으로 가는데 택시로 되겠능교? 만만찮게 나올 텐데.”

    부산 사람답게 오지랖이 너무 도움 되는 소리를 했다. 보통 오지랖 하면 부정적인데 부산은 역시 부산이었다.

    “괜찮습니다. 거기 아시아 실내 체육 센터로 가주세요.”

    “예, 예. 어디 아지야는 거, 거 운동 코치님이신가?”

    “아뇨.”

    “그럼 와? 와 거 갈라고 하는데? 엉?”

    “만날 사람이 있어서 갑니다.”

    “무슨 CAI도 아니고 글케 비밀스러우면 사람이 냉정해 보인다고.”

    “그럼 제가 경찰 했죠.”

    “하하하하!”

    CIA를 잘못 말하는 택시 기사의 말에도 산박은 적당히 받아치며 해당 지점에 내렸다. 차가 제법 밀릴뿐더러 산에 지은 도시답게 도로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람 여럿 죽어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잔돈은 됐습니다!”

    “아이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순식간의 태세 전환은 사회인의 기본이었다. 산박은 대답도 하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다. 곧 택시가 출발했다. 재수가 제법 붙는 날이라 여길 것이었다.

    아시아 실내 체육 센터의 건너편에는 ‘연산 국민 체육 센터’와 초등학교가 있었다.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국민 체육 센터와는 다르게 그 반대편에 있는 아시아 실내 체육 센터는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현대식 실내 체육 센터였고, 차이가 확 났다.

    ‘일부러 여기에 지은 게 틀림없다.’

    서로 경쟁하고 차별하고 비교하는 게 인간이었다. 자신이 아닌 자기 자식한테도 그걸 강요하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빵집 옆에는 빵집이 있고, 편의점 옆에는 편의점이 들어선다.

    ‘딱 봐도 돈 잘 벌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박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이야기는 다 되어 있다고 들은 차였다.

    1층에는 어린이 수영 교실이 있었다. 규모가 상당해서 부산에서 여기 안 들어오면 솔직히 급이 낮은 학부모로 본다는 소리가 있었다.

    “태산박요. 배드민턴 하려고요.”

    “아! 네!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프런트에서 앉아 있다가 산박이 들어오자 일어난 여직원이 허둥지둥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손까지 떠는 걸 본 산박은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쥐 잡듯이 잡은 거야?’

    그 물음의 대상은 송서아가 아니었다. 이런 프런트 직원이 지점장에게 으름장을 맞는 경우는 0%에 수렴했다. 송서아의 명령을 하달받은 센터장이나 그 밑에 있는 관리장이 단단히 말을 해둔 듯했다.

    “감사합니다.”

    키를 받은 산박에게 전화가 울렸다. 아직 약속 시각이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도 송서아가 전화를 했다.

    산박이 이렇게 일찍 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세종시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서였다. 먼 거리를 가는 만큼 여유 시간을 삼십 분~한 시간은 두고 움직여야 했다. 그게 시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분의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 자기 시간을 버릴 수 없다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대개 이기적이다. 자신의 시간을 아끼는 만큼 남의 시간을 개밥으로 여기기 쉬웠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돈이 많든가. 아무리 지각을 밥 먹듯이 해도 항상 한턱내는 놈이면 매번 부르기 마련이었다.

    “여보세요.”

    ―아직 도착 안 하셨죠?

    “도착했죠. 세종시에서 오는 거라 일찍 출발했거든요.”

    ―잘됐네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거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배드민턴 물품은 구매하셨어요?

    “네? 라켓만 일단은요.”

    ―네.

    전화가 바로 끊겼다. 그녀의 목소리 뒤편으로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미용실인 듯했다.

    산박은 로비에 있는 가죽 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훑었다. 배드민턴 잡지였다. 대충 훑던 산박은 눈을 좁혔다.

    ‘의외로 연애 이야기가 많아.’

    남녀 혼합 복식 기술이나 대회 결과, 대회 개최를 알리는 소식도 많이 보였다. 선수의 코치를 받을 수 있는 레슨 광고도 제법이고, 현역 실업 팀 선수가 무슨 모델처럼 나와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상업적이네.’

    상상 이상으로 돈에 미친 모습이 많았다.

    ‘배드민턴이 이랬던가?’

    관심이 없어서 의외의 연속이었다.

    “태산박 사장님.”

    “아, 지점장님.”

    송서아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산박이 잡지를 접으며 일어섰다.

    “배드민턴 원데이잖아요? 이런 거 보시나 봐요?”

    “아뇨. 있길래 봤어요.”

    “아!”

    송서아가 웃었다. 자신이 실수해서였다.

    “재밌던데요?”

    “그렇죠? 저도 자주 봐요.”

    “잘생긴 사람 많이 나오던데요?”

    “요즘에는 씨름 선수도 잘생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국가 예산이 점점 스포츠에서 멀어지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원하니까요. 백번 국위 선양 해봤자 본인들 세금만 펑펑 사라지니. 요즘에는 지자체에도 실업 팀도 잘 없다면서요?”

    “다 사비로 해야 하는 추세죠.”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국가가 조건 없이 선수에게 돈을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가는 시민운동을 위한 예산 비율을 늘리고 전문 선수에 대한 예산 비율은 줄이고 있었다.

    그게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제국의 면모는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더는 나라의 이름값을 위해서 돈을 쓰기 힘들었다.

    “라켓 봐요. 비(非)브랜드죠?”

    “요즘 노브랜드도 인기인데요. 너무 브랜드 따지는 거 아니에요?”

    산박이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에 송서아가 눈웃음 지었다.

    “받아들이세요. 아니면 지금 그냥 세종시로 가실래요?”

    그 말에 산박이 엄살을 떨었다.

    “근데, 경호원님들은?”

    “오늘은 원거리에서 경호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경호원이 좀 늘어났지만요. 거기에 태 사장님도 있잖아요? 무엇보다 여기는 부산이에요. 전 세계 관광 도시 중에서 가장 공권력이 강한 곳이고, 치안이 가장 좋은 곳이죠.”

    송서아와 태산박은 그대로 건물 뒤편에 있는 배드민턴 전문 숍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야넥스 브랜드로 하는 게 좋아요. 가장 오래된 곳이면서도 중저가 브랜드죠.”

    “브랜드라고 하시길래 전 고가 브랜드를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브랜드는 유명세예요. 야넥스 브랜드는 충분히 절 만족시키고 있죠.”

    “아하…….”

    산박은 야넥스 브랜드로 풀 무장을 했다. 보호대는 당연히 필수였다. 가벼운 셔틀콕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체력 소모가 심하기로 유명한 게 배드민턴이었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동호회식으로도 할 수 있지만 땀 뻘뻘 흘리면서도 할 수 있는 게 배드민턴이었다.

    “야광 셔츠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30년 전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이거 어떠세요? 부산 실업 팀복이에요.”

    “좋아하시나 봐요?”

    “부산 은행이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 스포츠가 배드민턴이거든요. 해외 원정도 나가요!”

    그녀는 굉장히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남에게 이야기할 때는 누구나 흥분한 기색을 띤다.

    “전 나중에 제 실업 팀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경기장도 아까 보셨던 실내 체육 센터처럼 꾸미고…….”

    “어린이 수영장이 1층에 있는 곳처럼요?”

    그 말에 송서아가 웃음을 제법 크게 터트렸다가 입을 가렸다. 그리고 좌우 눈치를 살폈다. 실내에서 이렇게 경박하게 웃은 적은 처음이었다.

    “죄송해요. 그렇지만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시면 어떡해요?”

    볼이 발갛게 붉어진 그녀의 말에 산박이 웃었다.

    “적어도 서아 지점장님을 기분 좋게 만들기는 한 것 같은데요?”

    “어쨌든… 수익성을 생각하면 1층 정도는 그렇게 굴리는 게 사업가로서 뛰어난 판단이니까 비슷한 걸 하기는 해야겠죠. 여기는 초등학교가 바로 옆에 있어서 어린이 수영장으로 떼돈을 벌고 있을걸요.”

    수익성을 짐작하며 서아가 눈을 굴렸다. 갈색을 띠는 눈동자가 선명할 정도로 진했다.

    산박은 배드민턴 물품을 잔뜩 가지고 계산대로 향했다. 법인 카드를 꺼내 든 태산박에게 직원이 말했다.

    “이미 계산이 다 되셨습니다.”

    “네?”

    “온라인으로 자동 결제거든요.”

    고개를 돌려보니 송서아가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이러면 제가 곤란합니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 태산박의 소리에도 송서아는 하나, 둘 구매한 물품을 산박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완전한 무시였다.

    되돌아가서 4층에 있는 배드민턴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방탄유리로 복도를 구분 짓고 유리 너머에는 잔디가 잔뜩 있었다. 칸마다 빌려서 배드민턴을 할 수 있는 듯했다.

    복도는 제법 넓었고, 셀프로 음료를 뽑을 수 있는 곳이 구석에 있기도 했다. 테이블은 여덟 개 정도로 상당히 많았다.

    “남자 탈의실은 저기 쉼터 쪽에 있어요. 여자는 출입구에 바로 있고요. 환복하고 봐요.”

    “예.”

    산박은 탈의실에서 로커에 키를 집어넣고 빠르게 환복했다. 나오고 나서 콜라와 얼음을 뽑아서 테이블에 앉아 빨대로 쪽쪽 빨아 먹었다.

    ‘연회비나 회비가 제법 비쌀 것 같다.’

    차와 커피는 5층에 있다는 안내판을 보며 산박이 생각했다.

    그사이에 송서아도 복장을 갈아입고 나왔다. 발목과 손목에는 검은 밴드를 차고 새하얀 배드민턴화에 검은색 속바지가 새하얀 스커트 아래로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앞머리로 이마를 항상 가리고 다녔던 송서아였는데 새하얀 헤어밴드로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올렸다. 머리는 한곳으로 모아서 뒤로 질끈 묶었다. 검은색 헤어밴드를 써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 또 붉은색 리본으로 크게 포인트를 줬다. 척 봐도 한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매력적이고 건강미를 보여줬다.

    송서아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뭐 하나 마시고 시작하실래요?”

    “얼음물 하나만 주세요.”

    산박은 자동으로 일어났다. 미인에게는 뭐든지 해주고 싶은 게 남자였다. 괜히 성형 수술이 핫한 게 아니다.

    “배드민턴은 어쩌다가 좋아하게 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좀 많이 약했거든요. 배드민턴으로 체력을 많이 높였죠. 그래서 전 배드민턴이 제 인생을 바꿔 줬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렇게 중요한 운동을 저한테 소개해 줬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정리하고 한 곳에 들어갔다.

    셔틀콕을 능숙하게 통통거리던 송서아가 제법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산박을 보며 웃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함께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재밌었다. 그냥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사랑은 미소를 만들고, 미소는 모든 걸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제법 준비하셨나 봐요?”

    “대회 영상 하나 보고 쫌 따라 하기는 해봤죠.”

    통!

    송서아가 가볍게 셔틀콕을 올렸다. 하이 클리어. 배드민턴에서 가장 기초이며 가장 어려운 기술이었다. 엔드 라인 끝에서 갑자기 훅 떨어지는 송서아의 하이 클리어는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정교했다.

    탁!

    산박은 이를 힘과 스피드로 이겨냈다. 던전 사용자로 능력치 보정을 받아서 평범한 사람보다 빠른 게 그였다.

    송서아는 세 걸음 뒤로 가서 라켓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멀리 갔던 그녀의 셔틀콕이 이번에는 네트 근처로 떨어져 내렸다.

    산박이 냉큼 달려왔다.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로 정신없이 달리던 산박은 그냥 스매시를 때려 버렸다. 물론 네트에 수평으로 치는 무난한 궤적을 지닌 셔틀콕에 스매시는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네트에 걸렸다.

    “좀 봐주면서 해봐요.”

    “그래도 받아치는 건 잘하시는데요? 방금 건 안 좋았어요. 스매시를 칠 궤적이 아니잖아요.”

    서로 대화하며 서로 다가갔다. 송서아의 새하얀 스커트 자락이 좌우로 움직였다.

    “서로 주고받기 해요. 승부 보지 말고요.”

    “좋아요. 대신 놓치면 저녁 사기.”

    “스매시 금지!”

    산박의 말에 송서아가 기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두 시간 가까이 배드민턴을 쳤다. 땀이 엄청나게 나왔다.

    “후아!”

    던전 사용자라도 결국에는 인간인 산박도 예외는 아니었다. 땀으로 샤워한 것처럼 온몸에 땀이었다. 나중에는 라켓이 미끄러져서 자기 이마를 때렸다. 송서아는 그 모습에 아주 자지러졌다.

    샤워하고 밖으로 나온 산박이 물었다.

    “제가 부산은 자주 안 와서요. 맛집 아세요?”

    “전에 갔던 한식당에 가요. 제가 먹을 걸 많이 가리거든요. 건강 때문에요.”

    “좋아요.”

    경호원이 이미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곳에 탑승한 서아는 스마트폰으로 오늘 보여준 배드민턴 기술을 보여줬다.

    “이게 드롭이에요. 여기에 많이 당하셨어요.”

    “스매시처럼 보이는데 멀리 안 가고 네트에서 떨어지는 게 이거였어요?”

    “네.”

    송서아가 웃음을 흘렸다. 큰 스윙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뒷걸음질 치다가 확 달려오는 산박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났다.

    “다음에는 안 봐줄 겁니다.”

    “많이 연습해 보세요. 언제 절 이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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