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 *
[SNS는 안 하세요? 여러 가지 있잖아요.]
산박은 톡톡 톡톡톡 스마트폰을 놀렸다.
[어느 순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요. 실제로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더 알차다고 느꼈거든요. 서아 씨도 몇 년은 재밌을 거예요. 저처럼요. ^^]
다른 사람의 의견과 충돌하기에 산박은 뒷말을 덧붙였다.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다는 걸 보여 주면서 동질감을 잃지 않았다.
송서아와의 메시지 교환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산박은 거기에 시간을 제법 투자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송서아 지점장이 가진 권력이 탐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산박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감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
그렇기에 산박은 감정적인 메시지를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여자 친구야?”
운전하는 함희두가 말을 걸었다. 그냥 새하얀 시멘트로 된 도로였기에 조금 덜컹거려도 말을 할 만했다.
“아뇨. 아직은요.”
“얼굴에 꽃이 피었네, 피었어. 어지간히 마음에 드나 봐?”
“네. 집안이 좋고 예쁘기도 예쁘고, 빠지는 게 하나 없어요.”
“하하하!”
그 말에 함희두가 웃었다. 남의 연애 이야기는 모든 이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드라마부터 온갖 매체에서 연애는 결코 빠질 수 없었다. 오죽하면 검색 포털 사이트에도 연애란이 따로 있을 지경이었다. 일반인의 연애든 연예인의 연애든 일단 보면 즐겁다.
함희두는 이것저것 물었지만 산박은 대답을 회피했다.
“아, 자네와 나 사이인데 정말 이럴 거야?”
“됐습니다. 부끄러워서 더는 말 못 해요. 그러다 깨지면 저만 쪽팔리는 거 아닙니까.”
장 노인에게 빌어먹는 것이 함희두였다. 당산 부동산을 운영하는 그였기에 산박은 그 덕을 곳곳에서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산박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함희두의 나이 꼰대질에도 참는 편이었다.
‘굳이 날 무겁게 대하게 할 필요가 없지.’
오히려 함희두의 방심을 통해서 장 노인에 대해 많은 걸 훔쳐 들은 게 산박이었다. 편할수록 주둥아리 잘못 놀리는 건 나이에 상관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카사노바라 불렸던 사람이야.”
“근데 왜 아직도 자식이 없으세요.”
“나한테 내 시간 쓰기 바쁜데 자식은 무슨. 취미가 시간 투자하기 딱 좋은 거면 절대 결혼하지 마!”
“예.”
설렁설렁 대답하며 산박은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흔하디흔한 무질서한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죄다 산이었다.
“까악! 꿀 줘!”
산박이 힐끔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65cm나 되는 위협적인 체격을 지닌 꿀통백까마귀와 대장삵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아니, 나 한 입 너 한 입 하기로 했잖아.”
“네 입이 더 크잖아. 난 두 번 먹어야 해.”
서로 꿀을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워낙 걸쭉한 것이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먹을 수 있었다. 그걸 보며 산박이 대장삵에게 말했다.
“넌 왜 먹어? 요즘 벌꿀이 얼마나 비싼데.”
“그럼 난 입도 아니냐? 난 주둥이야? 물의 마법사이신 나님에게 벌꿀도 못 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TV에서 엿치미라고 막 가족 싸움? 그런 거 하는데 정말 재밌어. 너도 봐봐. 인간들은 정말 바보라니까.”
“엿치미는 무슨…….”
차는 끝없이 올라가서 멈췄다. 시멘트 길의 끝에 섰는데, 그 양옆으로는 빈 땅이고 푸른색의 1톤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차가 오는 걸 보고 트럭에서 노인 하나가 나와 손을 흔들었다. 밭일하는 사람인지 피부가 새까맸다.
“오랜만이여, 노 이장!”
와촌리의 장, 노갑비(盧胛譬). 그가 이번에 태산박의 거래 대상이었다.
당산 지구의 옆에 있는 와촌리는 깡촌이나 다름없었지만 보건 의료소도 있고, 늙은 사람들이 제법 지내는 곳이었다. 특히 나라 쌀을 생산해서 돈 벌어먹는 곳이었다.
나라 쌀은 나라에서 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영하는 사업 시스템이었다. 보통은 복지 쪽으로 많이 소비되는 쌀이었다. 그렇기에 큰돈은 만질 수 없었지만 꾸준히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중요했고, 종자를 구매하는 것도 쌌다. 국가 종자를 쓰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 산박이 온 이유는 당연히 꿀통백까마귀를 어떻게든 굴리기 위해서였다. 소환수는 한번 소환하고 난 뒤에는 사실 유지에 큰 힘이 소모되지 않는다. 주문을 사용할 때만 소비되는 편이다.
“이분이 이번에 양봉 사업을 하겠다는?”
“엉. 젊은 친구지만 장 어르신한테 신임을 받고 있다고.”
그 말에 노갑비 이장의 표정이 달라졌다. 같은 읍면리나 다름없는 곳에 ‘지구’라는 특별한 지칭어를 받은 것이 장 노인이었다. 국가 행정의 중간 관리가 많은 덕분에 가능했다. 그런 자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사기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갑습니다. 태산박이라고 합니다.”
“태 사장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만. 저, 근데 함희두, 이 양반이랑은 그냥 말을 트기로 했는가?”
“마음 편히 말하십시오. 갑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국이라니까. 근데 돈은 안 빌려줘.”
“이런 시골에서 무슨 돈이 필요해! 하하하!”
그가 거친 손을 내밀어서 태산박과 악수했다. 농사일은 고된 일이었다. 토양에 화학 비료를 뿌리고, 수많은 토종 생물을 독살한다. 똑같은, 돈 되는 종자만 돌보고 나머지를 죽인다. 만약 식물이 고통을 표출할 수 있다면 노갑비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살육마였다.
그만큼 농사일에서는 많은 생명이 선별되어서 죽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징그러운 벌레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였다. 본질은 감정적 존재이면서도 한없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싶어 하는 자들의 형편없고 일그러진 말로는 그저 끔찍한 지옥보다도 더 비틀어져 버린 무언가에 불과했다.
“트럭에 있는 저 새집 같은 건 뭡니까?”
“요즘 양봉 일도 좀 쉽게 하려고 저렇게 하지. 원심 분리기를 안 쓰는 양봉이야.”
텅.
트럭 옆 부분의 쇠고리를 돌려서 단번에 내리고 벌통 하나를 끄집어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임에도 근육이 대단했다.
“나무인데 해외산이야. 해외는 벌꿀이 정말 인기거든.”
나무를 탕탕 치며 노갑비가 말했다. 그리고 옆을 돌리자 유리관이 보였다. 내부에는 으레 양봉 하면 생각나는 직사각형의 판자가 있었다.
“보이지?”
“예. 나무네요.”
“여기에 있는 레버를 반 바퀴 돌리면 비틀어지고 꿀이 나오지. 그럼 중력에 의해서 관을 타고 내려가서 이렇게 여기 관의 뚜껑을 열면 꿀이 떨어져.”
“세척하기가 힘들겠는데요?”
“취미로 할 거라며? 그럼 이런 게 최고지. 사람 구해서 반나절 하면 금방 끝나.”
“일단은 다섯 개만 할게요.”
트럭에 올려진 것 중 다섯 개를 내려놓았다.
“여기는 잡초를 다 쳐내셨네요?”
“안 사는 빈 땅을 사겠다는데 그 정도는 마을에서 해줘야지.”
산박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런 곳에 비밀 별채를 건설한다면 제법 괜찮아 보였다.
“경치가 좋네요. 이런 곳에 집 한 채 지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그 말에 노갑비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외부인은 안 받아. 그것 때문에 법원까지 가봤어. 으휴!”
“뭐 때문에요?”
“마을에 천만 원을 들여서 새로 수도를 해놨는데, 그걸 아무렇게나 이용할 수는 없잖아? 매달 만 원씩 내라고 했지. 근데 날 고소한 거야.”
“허.”
“그것 때문에 법원까지 오고 가고 기름값이 어휴! 말도 말아! 세금 좀 지원받기는 해도 나머지는 생돈 들어가는 일이 널려있어. 시골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야. 나야 여기서 났으니까 여기서 사는 거지.”
“평당 천 원 맞죠?”
“으잉. 그렇게만 줘. 대신 다른 건 못 지어. 양봉만 해. 농사도 되지만 건물은 지으면 안 돼. 컨테이너 한두 개는 놓아도 되지만 전기 끌어다 쓸 거면 얘기하고 물도 쓸 때 얘기해야 해. 훔쳐서 쓸 것처럼은 안 보이지만…….”
그는 이것저것 말했다. 계약서는 차 위에서 썼다. 산박은 바로 입금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마을 회관으로 오라며 먼저 내려가 버렸다. 오랜만에 술 한잔 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 피해 안 가게 해라.”
“까악!”
그렇게 외친 꿀통백까마귀는 날개를 펼치며 한 바퀴 쉭 돌았다. 그 부리에는 말벌이 한 마리 잡혀 있었다.
“근처에 말벌이 있나 보네. 내가 처리해줘?”
“내가 알아서 한다!”
아카시아 씨앗이 든 봉투를 차에서 내려놓고 산박과 함희두는 마을 회관으로 차를 돌렸다. 온갖 전에 전통주로 낮술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에 부동 지구로 돌아갔다.
산박은 꿀통백까마귀에 대한 생각을 놓았다.
‘자급자족만 해도 만족한다.’
그 뒤로 산박은 창고로 돌아가서 컴퓨터를 켰다. 보안 번호를 입력하고 외장 하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외장 하드는 당연히 다른 곳에 숨겨 놓거나 항상 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메일에서 자료를 받은 걸 외장 하드에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서 집어넣었다.
[PGA]
박지아, 이름의 약자를 쓴 폴더명이었다. 그곳에 자료를 옮기고 메일에서 자료를 파기했다.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워낙 폐쇄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활동하는 여자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대구와 부산 일대를 오고 가며 정보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형 조폭이 없었다면 정보를 모으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업소를 운영하며 돈으로 시작하고 이제는 정보를 얻어 가고 있었다. 대구에는 특히나 부동산 부자가 많았기에 성매매로 돈 벌기가 아주 좋았다.
멀쩡히 일하는 직장인 하나 꼬드겨 3억, 5억 대출을 짊어지게 해서 한 방에 인생 망가뜨리고 5년, 10년 된 집 하나 주면 그렇게 이득이었다.
그런 늙은 놈들 상대하는 성매매는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가 없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들은 정보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악인은 잘 보이지 않지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었다. 원양 어선에 장애인 하나 집어 처넣는 건 일도 아니다.
산박은 그런 위험한 놈들에게 접촉해서 필요한 걸 얻어냈다. 인간 백정 노릇을 하며 하나의 라인을 만들어 놓았기에 안전하게 가능했다.
‘박지아.’
종교 카르텔의 중간 간부.
‘얼마나 미친년이면 야만신을 뒤통수쳤을까.’
분명 제대로 된 여자는 아닐 것이다. 산박이 정보를 훑었다.
‘두류 대교회, 대덕사…….’
수많은 곳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사람들을 천지신교로 개종하게 만드는 게 그녀의 임무였다. 그녀는 12지파 대구 창천 예수 청년부의 장(長)이었고 젊은 신도를 통해서 수많은 이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산박은 빠르게 박지아의 행동을 훑었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하는 것.
‘1년째 공을 들이고 있군.’
제법 큰 프로젝트였다. 바로 대구 남동쪽에 있는 대덕산에 있는 대덕사의 불자들을 선교하고 개종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젊은 신도를 이용해서 아줌마, 아저씨, 노총각, 노처녀 가릴 것 없이 전부 떡심으로 개종하게 하고 있었다. 서로 살을 부대끼면 없던 정도 생기는 게 사람이었다.
‘무시무시하네.’
한 명을 개종시키면 그녀가 가져가는 돈은 백만 원이 넘었고, 지위에 따라서 들어오는 돈은 천만 원이 넘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억대였다.
‘불심을 떡심으로 이겨내고 재림 예수를 믿게 한다.’
효과적인 선교 방식이었다. 필요하다면 최음제도 사용할 정도였다. 산박은 박지아의 커리어를 확인했다.
‘고아…….’
세상에 버려졌다. 사이비 종교에 물들기에 충분한 이력이었다. 던전 사용자가 되어서 2레벨까지 도달했고, 그 뒤에는 던전 공략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천지신교의 청년단 장(長)으로 활동했다.
병원에서 낙태를 일곱 번 이상 했다는 정보도 그곳에 끼어 있었다. 1년에 1주일 혹은 1개월 이상 정신 병원에 입원한 흔적도 보였다.
‘처참한 인생이구나…….’
불쌍한가?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산박에게 있어서 이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야만신은 의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상을 주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고, 그 과정마저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산박이 이렇게 철저하게 정보를 획득한 이유는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야만신이 준 양피지와 대조를 하고 모든 것이 일치하자 이내 산박은 일정을 잡았다.
‘부산 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구에 들러서 야만신의 의뢰를 해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