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270)
  • 190화

    * * *

    인천, 네크로맨서들의 도시. 포스코 타워, 68층이 아닌지 확인 필요. 인천에서 가장 높은 빌딩. 그곳은 백제 귀족 출신 각복모의 후예들이 세운 곳이었다. 이들은 서일본에도 세력이 뻗쳐 있었고, 반대로 국내에는 인천 외에 크게 관계가 깊은 곳이 없었다. 그저 두루두루 연결된 상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적당한 관계조차도 포스코 타워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서일본 전체 자본의 10%가 그들의 손에 운용되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이시은은 빙췌몽과 경왜, 두 명의 황패 네크로맨서에게 접촉했다. 당연히 라인을 타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필요한 일이다.’

    부산 은행의 움직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산박과 최대한 비슷한 위치, 경력을 마련하는 게 이시은의 방침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방침을 위해서 그녀는 무리해서 포스코 타워에 들어갔다.

    ‘거의 따돌림당하고 있는 상황이야.’

    포스코 타워에서 그녀의 위치는 반짝거리는 별 하나에 불과했다. 그 별은 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다리를 놓으려는 것도 같은 적패 중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황패 두 명이 시은의 포텐셜만 보고 영입하려고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관계가 전무하다시피 한 시은의 위치는 그녀가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기 발전, 산박의 동태 확인, 스트레스 해소 및 무분별한 욕망 분출을 막기 위한 선별 살인 등.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많았다. 고로 포스코 타워는 주(主)가 될 수 없었다. 그 결과가 고립이었다.

    ‘다행인 점은 나는 네크로맨서에 재능이 있다.’

    마녀로서의 재능도 있었지만, 네크로맨서의 재능 또한 좋았다. 그 덕에 이시은은 언데드 연구자로서 떡잎이 컸다.

    ‘언데드 연구자가 되면 개인 시간이 많다.’

    무엇보다 성과가 곧 커리어였다. 커리어는 시은이 포스코 타워에 적을 두는 데 큰 받침대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딱히 필요 없었다.

    ‘단순 논문이라도 도움이 되니까.’

    실력에 대한 증명을 이론으로 버티고 나중에 실력을 인정받으면 개인 연구자가 되면 된다. 혹은 후배를 몇 둬서 이것저것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 효율이 그녀의 최대 관건이었다.

    또한 고립된 시은은 어찌 되었든 내부 파벌에 속해야 했다. 외로운 늑대는 파벌 싸움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자조차도 무리 생활을 한다.

    포스코 타워 중층, 51층. 49층부터 시작되는 중층은 51층까지 독대를 할 수 있거나 작은 회의를 열 수 있는 방으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이시은은 빙췌몽과 만남을 가졌다. 황패 네크로맨서는 황색 복장을 하고 있어서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새하얀 백발을 지닌 자가 입을 열었다. 머리 색에 비해서 피부는 매우 젊었다.

    “용맹하다, 용맹해. 황패 네크로맨서 사이에서 고민하다니.”

    “패가 두 개 들어왔는데 한쪽을 어떻게 택하겠습니까?”

    이시은이 공손히 말했다.

    “택하지 않는다고?”

    빙췌몽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을 택해도 피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면 왜 이런 자리를 요청했느냐.”

    “당연히 그 한쪽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흥.”

    빙췌몽은 고민했다. 이시은은 솔직히 말하며 자신을 보호해 주길 요청하고 있었다. 포스코 타워에서 무럭무럭 자랄 것이 분명한 게 이시은이었다.

    빙췌몽은 말을 돌렸다.

    “이번에 논문을 두고 적패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 제법 이슈가 되었더군.”

    “보셨습니까?”

    “볼 수밖에 없지. 동물 뼈를 성형해서 스켈레톤을 일으켜 세우는 생각은 천재적이야. 만약 그걸 가능하게 한다면 산업 창출은 물론이고 인간 시체 가격조차도 내려갈 거야.”

    포스코 타워는 인간 시체를 구매하는 집단이다. 도시 하나에 군림하고 있었기에 시장부터 표밭까지 상당한 정치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체의 상업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도를 제외하고는 암암리에 전부 판매가 되고 있는 게 시체 거래였다. 물론 대놓고 하는 곳은 많이 없었다. 실제로 흑패에서 적패가 된 시은도 시체를 구할 기회가 없었다. 돈이 있어도 구매할 수 없었다.

    합법임에도 이 정도면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뼈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시은은 동물 뼈 성형 논문을 올렸다. 포스코 타워의 시체 구입 예산을 크게 낮출 수 있는 방안이라 현재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당장 실무에 적용해도 괜찮을 정도의 신뢰도 높은 통계를 다방면으로 올린 게 대단하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빙췌몽은 고민을 끝냈다. 시은은 꾸준히 결과를 내고 있었다. 특히 다른 동물의 뼈를 성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인공 뼈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건 그저 뼈를 닮은 인형이나 다름없어.’

    그곳에는 죽음이 없다. 하지만 동물의 뼈에는 죽음이 있고, 이를 인간 형태로 만든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공장 하나면 투표에도 도움이 된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게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그들의 표를 돈으로 사는 게 자본주의였다. 인천은 포스코 타워의 아래에서 주먹을 들어 올리며 더욱 하나 됨을 외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논문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매우 실용적인 것이라 가능했다. 다분히 ‘돈’에 집중된 논문이라 솔직히 말해서 탐욕스러운 논문이었다.

    “경왜는 내가 막아줄 수 있다. 아니, 막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다른 선물을 줘서 뒤탈도 없게 해주마.”

    “경왜 님께서도 똑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흐흐흐, 그렇겠지.”

    곧 자리가 날 백패에 올라설 두 명의 황패 네크로맨서가 빙췌몽과 경왜였다. 그들은 라이벌이고, 라이벌을 가진 사람은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 비슷해진다. 즉 조건은 솔직히 거기서 거기였다.

    “비슷하다면 날 부른 이유는…….”

    “경왜 님은 저와 독대 한번 안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보다는 빙췌몽 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렇지. 그놈은 자기 언데드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거든. 배신을 크게 당해 봐서 그러니 이해해 주게. 독 때문에 머리도 벗겨지고 피부도…….”

    그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이시은은 그로부터 황패 네크로맨서 빙췌몽의 라인에 탔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상당한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 관리하는 데 이골이 난 것이 황패 네크로맨서였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적패 네크로맨서도 황패를 잘 달지 못하는데, 그 위로부터는 관리직이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서 다시 적패로 내려가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웃대가리일수록 한순간의 실패에도 책임지고 내려가야 하는 게 포스코 타워의 직책 시스템이었다. 그만큼 황패를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거기서 백패로 올라갈 생각을 하는 빙췌몽과 경왜는 조심해야 할 인간이었다.

    ‘눈에 띈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시은은 동시에 특혜를 받았다. 필요하다면 하품(下品)의 인간 유골을 요청할 수 있었다.

    ‘계곡 던전에서는 유골 하나 찾지 못했어.’

    그걸 해결해 냈다.

    * * *

    ‘무슨 호텔이 이렇게 커?’

    택시에서 내린 산박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현대적인 호텔 건물은 적어도 20층은 되어 보였다. 숙박은 6층부터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다양한 설비가 존재했다. 주차장은 한국의 전통으로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서 5성급 호텔의 위엄을 볼 수 있었다.

    “실례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산박은 티켓을 보여줬다. 그걸 본 직원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는 프런트 직원을 호출해서 산박을 직접 안내토록 도와줬다.

    ‘완전히 반대로 내렸네.’

    호텔의 별관 같은 곳에 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숙박객이 내리는 곳에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빙 돌아가야 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연못을 지나서 영빈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연회장이네.’

    에메랄드관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는 모든 준비가 거의 끝마쳐져 있었고,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일찍 왔네.’

    새하얀 천으로 식기를 다시 한번 닦던 직원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괜찮으시다면 앉아서 기다려 주셔도 됩니다만 아무래도 번잡한 상황이라서……. 죄송하지만 공원이라도 산책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앉아 있으면 준비 열심히 하시는 분들께 방해가 될 수밖에 없죠.”

    산박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그는 연못으로 향했다. 뒤편에 있는 연못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꾸준히 관리하는 연못은 돌 하나하나 잘 닦아 놓아서 앉아도 될 정도로 말끔했다. 비단잉어가 이리저리 느긋하게 움직였다. 작은 연못이었지만 깊이가 제법 되었다.

    가만히 이를 구경하다가 산박은 인기척을 느꼈다.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송서아 지점장.’

    산박이 살짝 고개를 숙여서 묵례했다.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 몰라서였다.

    그녀가 다가왔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대단히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절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산박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모를 리가 없죠. 전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사람 얼굴 기억하는 건 특기예요.”

    산박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이번에는 송서아가 고개를 숙였다. 새하얀 목이 산박의 눈에 보였다. 가릴 건 다 가렸음에도 목 하나만으로도 눈길이 갔다.

    “지점장님께서 잘못 내리지는 않으셨을 테고, 이 연못을 보러 오셨습니까?”

    “네. 제가 초등학교 때 본 연못인데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방문합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연못을 유지하다니…….’

    산박이 혀를 내둘렀다.

    “이 비단잉어도 그때 그대로죠.”

    “수명이 그렇게 긴가요?”

    “25년? 35년? 잘 관리하면 40년도 산다고 해요. 그리고 저기 보세요. 돌 하나만 색깔이 다르죠? 제가 떼를 써서 집어넣은 거예요.”

    그 말에 산박이 웃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순수한 법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웃을 수가 없었다.

    ‘깡패나 다름없네.’

    “그 덕에 부산 직원들이 여기를 애용해요. 저희 가문이 비용의 50%를 부담하거든요. 서로 윈윈하게 되었죠.”

    “아하…….”

    초등학생 하나 때문에 간섭을 받게 되었지만 그 아이가 자라나 수백 혹은 수천의 고객을 끌고 오게 되었다.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전에는 호텔도 이렇게 크지 않았어요. 판타지 쇼크 이후 새로 건축해서 이렇게 크게 되었죠.”

    둘의 대화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가씨, 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에메랄드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테이블에 앉았는데, 산박이 두리번거렸다. 한 테이블에 다섯 명이 앉는데 세 명이 아직 오지 않았고 나머지는 꽉 차있었다.

    ‘이거, 노린 거구나.’

    그제야 산박은 이 자리가 송서아가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게 이 자리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명단을 만들어 놓고 표를 배분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알아도 못 구하는 게 이 자리였다.

    “저…….”

    “저…….”

    두 명의 남녀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음, 먼저 말씀하세요.”

    송서아가 양보했다. 이에 산박이 물었다.

    “부산에서 여기 오시는 데, 시간 많이 걸리지 않습니까? 휴가라도 쓰시고 오신 겁니까?”

    왜 자신을 여기 불렀는지는 묻지 않았다. 가장 찐따 같은 물음이었다. 그런 건 뒤에서 파악해야 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자신이 뭘 하느냐였다. 그렇게 가지치기를 해서 얻은 건 송서아와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일이었다.

    ‘그녀 또한 날 사업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런 자리를 만들었겠지.’

    “보통은 휴가를 안 써요. 이런 것도 인간관계고, 사업이니까요. 잠재적 고객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보내는 데 휴가를 쓰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오늘은 휴가를 썼어요.”

    산박이 그 이유를 물으려고 했는데 직원이 다가와서 수프를 올려놓았다. 평범한 수프처럼 생각했는데 그 위에 거무튀튀한 치즈 가루를 슥슥 뿌렸다.

    ‘윽, 냄새.’

    작은 가루였음에도 향이 굉장했다. 인상을 찡그리는 산박을 보며 서아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순수하게 웃었다.

    “Le parfum qui remplit la pièce.”

    “네?”

    “방을 채우는 향기라는 명성을 지닌 프랑스 치즈예요. 맛은 평범한 치즈보다 강하지 않고 오히려 옅은데 향은 대단한 독특한 치즈죠. 그 신기함 때문에 유명한 셰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 중에 하나예요. 요리에 의외성을 줄 수 있거든요.”

    “신기하네요.”

    “요즘 요리는 의외성이 대단히 중요한 추세라서요. 갑자기 반짝 떴죠. 본래는 그램당 달러는커녕 잘 만들지도 않는 치즈예요. 요즘에는 그램당 얼마였지? 2백 달러는 할 거예요. 동굴 치즈에 속하는데…….”

    “대단히 잘 아시네요. 요리를 좋아하시나 봐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 병원식만 많이 먹었거든요. 산박 씨는요?”

    “전 가난해서 못 먹었죠.”

    그 말에 송서아가 의미심장하게 질문을 하나 찔러 넣었다.

    “지금은요? 충분히 구매하실 수 있을 텐데요.”

    “사서 먹으라고 하면 안 먹을 것 같아요. 제가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요.

    그 말에 송서아가 만족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돈을 쓰는 기업가가 아니다. 돈을 들고 오는 기업가였다.

    ‘데릴사위로는 일등감이지.’

    그런 생각을 한 송서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나 미쳤나 봐. 이런 적 처음이야. 너무 두근거려. 좋아 죽겠어.’

    그녀는 이를 숨기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여 수프에 스푼을 쿡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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