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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188/270)

188화

배둔국의 매입은 정당했다. 그 자신의 손에 들어가는 마진율은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그 또한 던전 경제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서였다. 정확히는 산박의 따까리, 시다바리, 부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트럭 장사가 제법 되면 한량 같은 가족 하나 끌어들일 생각을 가졌다. 어디에서든 돈 버는 게 힘든 게 이 바닥이었다. 전담 팀까지 존재하는 옥시모론 기업의 전담 트럭 상인이 된다는 건 제법 짭짤한 벌이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개인 시간이 많다는 게 좋았다. 그만큼 수익이 옥시모론 기업에 의존되어 있지만, 훨훨 날아오를 게 옥시모론이었다. 당장 드루이드 사과만 해도 옥시모론 기업이 고꾸라질 거라고 여기지 않게 만드는 상품이었다.

‘그 덕에 사과 농장도 하나둘씩 고꾸라지고 있다.’

사과 독점. 그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사과 가격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그만큼 사과 업계에 종사하는 자들이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둔국은 전혀 양심에 찔리지 않았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였다.

3백 원짜리를 천 원에 파는 사람, 7백 원에 파는 사람이 있다. 그 마진율을 보고 계산기 다 때려본 뒤에 사업에 뛰어드는 게 자본주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그런 것도 안 하고 5천만 원, 1억 자본금을 때려 붓고 보는 사람은 천치다. 군주정에 살아갈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산기를 두들겨서 단번에 옥시모론 기업 계좌에 돈을 입금한 배둔국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산박을 떠나갔다. 그 모습은 실로 간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모습이었다. 강자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자본주의였다. 배둔국은 확실히 자본주의에 잘 적응한 인간이었다.

“이 근처에 곱창 맛집 있어요. 5인 이상 가면 서비스도 넉넉하게 준다고 리뷰가 많아요.”

이시은이 말하자 모두 뒤풀이에 갈 생각을 가졌다. 용용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태산박의 소환수들을 보며 그 밑으로 들어갈 흑심을 품고 있었다. 다분히 의도가 있는 모습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서 전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었기에 욕할 정도는 아니었다.

“갑시다. 비싼 거 얻었으니 제대로 쏘겠습니다.”

산박이 법인 카드를 흔들었다.

“호우! 호우! 호우!”

탕만이 허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자, 그럼 술 게임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술 게임도 시작됐다. 김연정은 애초에 사이다를 들고 있었기에 이시은이 목표였다. 남자라는 것들이 다 그렇다. 하지만 시은 또한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다. 능숙하게 수많은 술 게임을 돌파해 나갔다.

술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곱창 가게를 전세 낸 것 같았다. 술을 많이 주문하고 안주도 거침없이 시켰기에 사장님도 각종 서비스를 냉큼냉큼 알아서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야, 어떻게 시은 씨는 한 번을 안 마시세요?”

“그냥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이거 사기 아니야?”

시은이 이렇게 술 게임을 돌파 가능한 이유는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너튜브에 술 게임을 치고 수많은 조사를 하고 직접 시뮬레이션도 하며 익힌 게 그녀였다. 소위 필승법이나 편법도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몸에 좋아~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몸에 좋아!”

짝! 짝! 짝!

진탕 마신 사람들을 뒤로하고 산박은 계산을 하고 나왔다. 모두 2차를 갈 생각은 없었다. 노래방 갈 사람을 구하던 충호는 그냥 탕만과 같이 동전 노래방에 간다고 했다.

하나둘 택시에 태우고 보냈다. 시은이 산박에게 착 달라붙었다.

“아, 사장님. 저 취한 것 같아요.”

“아까 틴트 능숙하게 바르는 거 다 봤거든요?”

“어쩜 남자가 그렇게 매정해요?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셔 주세요. 저는 차 끌고 와서 여기 근처 모텔에서 자야 하거든요.”

산박은 조금 고민했다. 하지만 시은이 술을 조금 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낮술을 마셨고, 초저녁에 술자리가 끝났다. 던전을 나온 시간이 그러했다.

“좋아요, 커피 한잔 정도라면야……. 갑시다.”

역시나 가오의 민족답게 커피값이 김밥 세 줄 가격이었다. 하지만 능숙하게 주문을 마치고, 산박이 커피를 가져와서 시은에게 건넸다.

“왜 아이스아메리카노 시키셨어요? 전에는 다른 거 시켰잖아요.”

“사장님 마시는 거 보고 저도 건강 생각해야겠다 싶어서요. 왜요? 아아는 사장님이 특허 낸 거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산박이 커피를 한 모금 했다. 그걸 이시은이 지켜봤다.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긴 속눈썹이 화려하게 드러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하는 것이 이시은이었다. 그녀는 이 사회에서 ‘일류’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남들은 피자 하나 먹는 거, 치킨 하나 먹는 것도 참기가 어려운데 그녀는 그 이상의 것을 해내며 자기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태산박 때문이었다.

‘깔끔한 살인 실력.’

결국, 그도 자신과 동류였다. 거기서 오는 동질감은 또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먹잇감이라서.’

그 끝에 도달하면 잡아먹을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감정도 생겼다.

‘날 이해해 줄지도 몰라.’

감히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다. 말하는 순간 사회적으로 말살될 수 있었다.

대한 제국이던 시절에는 범죄자 인권이 가장 좋은 곳이 이곳이었다. 하지만 ‘판타지 쇼크’ 당시 국회 의원의 딸을 성범죄 전과 13범이 겁탈하면서 교도소 예산이 절반 가까이 까이게 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 까인 부분은 당연히 범죄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그 덕에 현재 대한민국은 재범률은 높아도 교도소를 좋아하는 노숙자는 없었다. 절반만의 성공을 이룬 셈이었다. 그렇기에 시은은 아직도 주저하고 있었다.

산박은 시은이 조용히 있어도 함께 있어줬다. 이렇게 있는 이유는 술이 깰 시간을 위해서였다. 거기에 대화는 불필요했다.

“보통은… 이럴 때 남자가 리드하던데.”

“전 아직 이성을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니까요.”

“에이, 그래도 성욕이 있는데.”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결 가능합니다.”

“손으로요?”

“…….”

산박은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 부끄러워한다.”

“아니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왜 말을 놓으세요, 이 팀장님?”

“네, 사장뉨.”

산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외모 때문이라도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렇기에 치명적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애 하나를 가졌을 정도로 진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산박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시은은 별다른 소득 없이 태산박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전과 다르게 매정하게 가지는 않았다. 이시은은 회사에 필요한 인력이었다. 잔혹한 말이지만 그녀의 호감을 이용해서 회사에 묶어두는 건 효과적이었다.

“들어가세요.”

“모텔은 우리 집이 아니거든요. 사장님도 조심히 돌아가세요.”

올 때는 강합과 함께 왔지만 갈 때는 알아서 가야 했다.

그녀를 배웅하고 났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를 확인한 산박의 표정이 굳었다.

‘부산 은행.’

수달군 과장이었다. 분명 던전 클리어 결과가 전산화되었고, 이를 통해서 확인 후에 문자를 보낸 것이리라.

‘무슨 용무로?’

절로 긴장되었다. 연락이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없어서였다. 산박은 문자를 확인했다.

[(부산 은행)안녕하십니까. ^^ 수달군 과장입니다. 연락처에 혹시 추가해 놓으셨을지 몰라서 이름부터 말씀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던전을 갔다 오셨다는 걸 전산으로 확인하고 이렇게 문자를 드립니다.]

부산 은행을 미리 메시지 앞에 둔 것만으로도 다분히 빨리 보라고 한 문자였다.

[던전 경제 사업에 큰 공로를 내놓으신 태산박 사장님에게 현재 경과를 알려 드릴까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는 세종시로 지점을 옮긴 상태라서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습니다.]

[굳이 세종 지점에 오지 않으셔도 제가 찾아갈 수 있으니, 장소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정중했다. 그걸 두 번 읽은 산박은 의문을 느꼈다.

‘뭔데 이렇게 저자세야?’

은행원 남자는 영업직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도 갑을 관계의 전문가들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산박은 몇 가지를 가정했다. 하나는 레시피의 유출이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 하지만 잘해 봤자 50% 유출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브론즈 에너지 공법은 결코 누출될 수가 없다.’

강합을 납치라도 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번번이 넘어져서 앞으로, 미래로 확 질주하는 것보다는 돌다리 두드리며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다른 가능성.’

연기 장가(家)의 개입이다.

태산박은 아직 장 노인이 ‘부산 전기 사업의 투자’ 허락을 받은 걸 몰랐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큰 사업거리를 부산 은행이 맡았기에 장 노인이 지분을 요구했을 수 있었다.

‘그 중개를 맡는 건 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부산 은행이 문자를 했다. 하지만 장 노인의 부재중 통화는 1건도 없었다. 미리 선수를 칠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애초에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장 노인답지 않다.’

고로 그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태평하게 나와 그냥 관계를 깊게 하려고 만나기에는 계급이 어중간하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면 차장급은 와야 했다. 그게 지금 산박이었다.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견제받을 수 있는 부산 은행이 던전 경제에 한 발 들이밀게 하였다. 그렇기에 그의 세력이 보잘것없는 던전 기업이라고 해도 부산 은행만큼은 그를 대우해 줘야 했다. 이를 통해서 상대가 가져올 사안의 경중을 살펴볼 수 있다. 그게 사회생활이었다. 급에는 급에 맞는 걸 가져오고 가져가야 했다.

‘단순 심부름도 아닐 테고…….’

산박의 고민이 길어졌다. 이내 그는 문자를 보냈다.

[내일 점심 전에 한식당에서 봅시다. 장소는 제가 내일 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초저녁이었기에 답장은 곧장 왔다.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내일 뵙겠습니다.]

산박은 서울에서 세종시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부산 은행이 의외성을 나에게 투척했다. 그게 뭘까?’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너도 아몬드 먹을래? 꼬소해.”

무릎에 앉은 대장삵이 말했다. 산박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으로 대장삵의 등을 쓰다듬었다. 뚠뚠이답게 살집이 아주 잘 잡히는 대장삵의 등은 굉장했다. 뚱냥이를 한번 만져본 사람만이 아는 그 푹신함과 따뜻함은 마약과도 같았다.

* * *

“예. 차장님. 예. 내일, 예. 예.”

산박의 문자를 받은 수달군 과장은 준달독 차장에게 연락했고, 차장은 곧바로 송서아의 경호원 소준석에게 문자를 남겼다. 경호원은 송서아에게 이를 전했다.

불과 5분 내로 이루어진 보고 체계였다. 모두 이를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던전 클리어의 전산 체계 덕분이었다. 디지털 하면 대한민국이었다.

저녁을 항상 일찍 먹는 송서아는 책을 읽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고를 다양화시킬 수 있는 독서는 필수 취미였다. 만화부터 시작해서 영화와 드라마조차도 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에 사실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송서아는 꾸준히 책을 읽는 편이었다.

종이책만의 그 감촉과 그 시간은 멘탈 힐링에도 좋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거운 업무를 하는 그녀에게 정신과 주치의가 추천해준 것이었다.

“아가씨, 물었습니다.”

“잘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조치를 하셨죠?”

“예. 아주 평범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크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세요.”

“예.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던 보고서입니다.”

송서아가 이를 받아 들었다. 그곳에는 태산박의 근황이 적혀 있었다. 이를 꼼꼼히 살핀 송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종시 쪽에 던전 사용자 사설 훈련장을 알아보세요.”

“예.”

경호원 소준석이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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