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의뢰>
산박은 일단 기술과 주문을 획득해 나갔다.
‘소환수는 밸런스를 무너뜨리니까 반드시 획득해야 하지.’
야만신은 은근슬쩍 소환 주문 외 드루이드 주문을 선택 가능하도록 했지만 그런 걸 선택할 산박이 아니었다. 특히 소환하고 나면 특별한 행동 외에는 따로 유지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소환 주문을 선택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소환사가 최강이야.’
머릿수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던전의 인원수 제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머릿수를 ‘100%’ 확률로 획득 가능한 야만신의 소환 주문을 얻는 게 유리했다.
“야만신의 선물로 소환 주문을 획득한다.”
[야만신의 선물, 소환 주문을 획득합니다.]
[꿀통백까마귀(Honey bucket White Crow) 소환 주문을 획득했습니다.]
그걸 듣자마자 산박은 자신이 꽝을 뽑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꿀통백까마귀에 대한 정보가 뇌로 들어왔다.
‘크기는 65cm.’
까마귀치고는 큰 편이다. 사실 까마귀 자체가 좀 크기는 크다. 솔직히 마주하면 도망치기 바쁠 정도로 큰 놈이 까마귀였다.
‘새하얗다니까 미관상 좋긴 하겠네.’
문제는 숨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숨으려면 되레 하늘을 나는 게 더 형편이 좋을 정도다. 즉, 전투용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전투력이 높지 않았다.
‘용도가 양봉이라니. 야만신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꽃을 키우고, 오랜 기간 부리를 이용해서 큰 나무도 쓰러뜨리는 미친놈이 꿀통백까마귀라는 놈이었다. 물론 다른 능력도 많이 존재했다. 전투력이 없는 만큼 힘이 다른 능력치에 고루 배분되어 있었다.
‘하나는 언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이건 특히 굉장히 좋은 이점이었다. 현실에서도 제법 사용할 만했다. 던전에서는 사실 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고, 떨어졌을 때 사용할 수 있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까마득한 확률의 주사위를 던져 봐야지만 알 수 있었다.
‘식량과 수원을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
의미가 없었다. 자원이 풍요로운 것이 현대고, 던전에는 보급품을 가져간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장삵을 통해서 치료수를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즉, 계륵이다. 부리가 단단해서 동물을 잡는 데 유용하지만 던전에서 활약하기는 어렵다. 2레벨 던전에 평범한 동물이 나오는 경우는 잘 없었고, 그런 걸 잡는다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현실에서 활약시켜야 한다는 소리네.’
산박은 어렵지 않게 부동 지구의 앞과 옆을 막고 있는 두 개의 산을 기억해 냈다. 그곳에서 양봉 질을 하거나 빈 땅을 구해서 꽃을 심도록 한다면 알아서 잘 관리할 것이었다. 다만, 내키지가 않았다.
‘고작 까마귀 한 마리가 뭘 하겠어?’
야산에 풀어놓고 그냥 알아서 살게 놔뒀다가 나중에 그 효과를 확인해 보고 방치하거나 긴급 시 재소환하여 연락책으로 쓸 생각을 가졌다.
‘내가 푸른 새로 변한다면 같이 다닐 수도 있고.’
공중 부대? 그 정도로 거창하진 않았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좋았다. 산박은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쪽박을 치다니. 왜 소환 주문 외 드루이드 주문을 선택할 여지를 줬는지 알겠다.’
변명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충분히 선택지를 줬다 이거다.
거기에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그렇게 주문을 주는데 그게 전부 제대로 된 전투 소환 주문이라면? 야만신조차도 그 정도로 산박이 파워 업 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였다. 던전에서 최소한의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신은 완성된 챔피언을 원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개같을 뿐이었다.
‘던전 클리어를 통해서 얻는 건 주문보다는 기술이지.’
주문은 다양성을 줄 수 있었고, 새로운 강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박은 현재 2레벨 풀 장비를 통해서 강력한 범위 불꽃 마법과 골렘 소환이 가능했다. 대부분은 이 정도로 정리가 가능했다.
‘특수 던전만 안 걸리면 무난하다.’
그렇기에 스펙을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했다. 대표적으로 ‘숲지기의 몸’이나 ‘땅의 부름’이 있다. 숲지기의 몸은 가장 낮은 육체 능력 두 종류를 1씩 상승시켜 줬고, 땅의 부름은 땅을 걸어가면 힘의 회복이 가능하고 힘이 소폭 증가된다. 이처럼 드루이드는 주문보다는 기술이 좋은 게 많았다.
“던전 클리어 대가로 기술을 획득하겠다.”
[기술, 정령 부름을 획득합니다. 정령 부름 기술은 주변에 존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정령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정령은 당신을 도와줄 수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정령 친화도가 소폭 증가하고 정령과의 교감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뭔 개소리야?’
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황당한 논리였다.
‘이제는 드루이드 기술까지 날 뒤통수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실하게 정령을 확보한다면 그나마 쓸 만해질 기술이라 여겼다.
‘대기만성 형태의 기술인 셈이다.’
산박은 진리 회수에 대한 보상은 기술 획득에 쓰지 않았다. 야만신의 소환 주문부터 시작해서 던전 클리어 보상 기술 또한 변변찮은 것이라서였다.
‘현재 나는 장비 의존도가 높다.’
물량을 상대로는 집중성탄은 의미가 없고, 별빛탄은 위력이 약하다. 사막 악령을 상대로는 재미를 봤지만 그건 그만큼 초월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괴물이라서였다. 제대로 된 육체를 지닌 괴물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위력이 약한 게 별빛탄이었다.
‘주문도 많이 부족하지.’
1레벨 카르마를 죄다 2레벨로 올라오는 데 썼기 때문이다.
“진리 회수 보상으로 주문을 획득하겠다.”
[주문, 바람곰의 흉터(Scar of Wind Bear)를 획득했습니다.]
‘공격 주문!’
산박의 눈이 빛났다. 그 주문에 대한 정보가 뇌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큰 제약이 산박의 머리에 떠올랐다.
‘동물 변신 시에만 사용 가능.’
큰 제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물로 변신하면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한다. 마구 뒤엉키며 털가죽으로 변해서였다. 그때는 장비 아이템을 사용하지 못한다. 기괴한 변형이지만, 그런 주문이었다.
‘2레벨 던전에서 동물 변신 주문을 사용할 때가 오긴 올까?’
글쎄올시다였다. 워낙 갈래 불꽃 주문이 좋기 때문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경우에는 집중성탄을 갈기면 된다.
‘외눈붉은곰과 함께 날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산박은 주문의 효력을 자세히 살폈다.
‘바람 속성.’
불처럼 뜨겁지도 않고 물처럼 저지력이나 물리력이 큰 것도 아니다. 같은 무게로 따졌을 때 물만큼 무거운 건 찾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액체다.
‘바람은 이도 저도 아니지.’
태풍, 토네이도 정도는 되어야 무섭다. 하지만 그 정도면 다른 것도 무섭다.
‘절삭력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 바람 주문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솔직히 바람곰의 흉터는 좋은 주문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바람이 주는 상처가 다섯 줄기다. 곰의 발가락 개수와 같았다. 즉, 위력이 다섯 개로 나누어진다.
‘그래서야 좋은 절삭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다만 범위는 마음에 들었다. 바람 마법답게 넓은 범위를 훑고 지나갈 수 있었다. 즉, 2레벨 던전에서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총평은 고만고만하다.’
갈래 불꽃이나 후방 지원을 포기하고 동물로 변해서 전방에 서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전술적으로 행동의 강제를 불러일으키는 주문이 바람곰의 흉터였다. 하지만 주문 자체의 수준은 2레벨 던전에서 쓸 만했다.
‘방어구가 없는 놈들에 한해서지만.’
사막 악령을 예로 들면 뛰어난 주문이었다. 곰이나 호랑이로 변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나쁘지 않을 터였다.
‘두 발로 설 수 있는 곰 상태에서 앞발로는 투척물을 쳐내고 바람곰의 흉터 주문을 사용하면 괜찮은 그림이 나오지.’
그렇게 산박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선택지를 사용했다. 마지막 남은 건 야만신의 의뢰였다. 의뢰는 양피지로 되어 있었다. 이를 잡자마자 카르마 시스템이 말했다.
[야만신의 의뢰서입니다. 현실에 돌아가면 손에 잡혀 있으므로 주의하십시오.]
‘현실로 전송되는 의뢰서.’
그만큼 위험했지만 그게 안 된다면 암기를 해야 했기에 필요한 처치였다. 양피지는 접어서 숨기기에도 좋았다.
촤르륵!
양피지를 펼쳤다. 그곳의 가장 위에는 수많은 야만적인 존재들이 그려져 있었고 양옆으로 주욱 늘어나며 문양으로 변했다. 모서리에는 X 표가 쳐져 있었으며 양옆에는 클래식한 기둥이 새겨져 있었다.
[챔피언 후보자 태산박에게 의뢰를 준다. 반드시 수행하라. 그러지 않으면 그 전에 있었던 모든 혜택, 앞으로 주어질 모든 혜택은 사라질 것이다.]
‘살벌하네.’
경고문부터 대뜸 때려 박는 게 실로 야만신다웠다.
‘하긴, 그만큼 받았으니까.’
오히려 이런 경고가 그전까지 없었다는 게 이상했다. 만약 산박이라면, 애초에 혜택을 주지도 않았겠지만 정말로 억지로 줘야 했다면 하루에 한 번씩 독촉 전화 혹은 경고 메시지를 꾸준히 보냈을 것이었다.
그만큼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이다. 죽을 걸 살려놨을 때는 은인에게 고개 숙이고 간이고 쓸개고 심장이고 내주는 척하지만 등이 뜨뜻해지고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면 강도로 변하고 고개를 홱 돌려서 자기 밥 빌어먹으러 가기 바쁘다.
고개 숙이며 고맙다고만 해도 양반이다. 되레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경우가 자신에게 닥칠 확률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였다.
산박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은혜로운 야만신의 보살핌 속에서도 그 은혜를 저버리고 다른 신에게 들러붙은 간악한 던전 사용자, 박지아를 찾아 죽여라.]
‘피 냄새가 나더라니. 쯧.’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의뢰였다. 그 밑으로는 그녀가 자주 가는 곳, 은밀하게 죽일 수 있는 장소들(암살 포인트), 그녀의 무력 수준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냥 암살만 시키기에는 야만신의 호구력이 남달랐다.
[여의치 않으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야만신의 선물,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를 회수하라. 만약 그녀가 착용하고 있다고 해도 처단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은신에 도움을 주고, 딱 10초 투명화가 가능했다. 기능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무리하게 뛸 수 없었고 다른 행위도 어려웠다. 걸어갈 수만 있는 2레벨 장비였다.
‘단순히 장비를 훔치는 것만으로도 의뢰를 해결할 수 있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부터 물렁물렁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상까지 주네.’
산박의 눈이 좁아졌다. 야만신은 상상 이상으로 호구였다. 이미 월급을 가불받은 사람한테 월급을 또 주는 사장 같은 신이 야만신이었다. 월급쟁이들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사장이었다.
[강탈한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를 보상으로 주고 야만신의 은총 그림자 후각을 하사하겠다.]
‘그림자 후각이라…….’
어떤 것인지 조금 감이 왔지만 봐야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의뢰를 수락한다.”
그렇게 말한 산박은 손목 아랫부분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그곳에는 검은색의 화살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가만히 팔에서 힘을 빼면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방향 감각이 존재했다.
‘이걸로 추적하라는 소리네. 나름 최첨단이야.’
친절하기까지 했다. 되레 산박은 이런 능력을 얻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생길 이권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저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더욱 필요한 건 상대를 찾아서 죽이는 힘이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산박은 얼굴 없는 악굴종의 아래턱이 담긴 포대를 옮겼다. 당연히 ‘정화의 크리스털’은 가슴팍 안쪽에 집어넣어서 꼼꼼히 보관하는 걸 잊지 않았다.
‘박조조도 없고……. 장 노인한테 판매를 부탁해야겠다.’
워낙 비싼 물건이라서 들고튀기 딱 좋았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사업 파트너에게 판매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박은 사회에 짓눌려서 빼앗기거나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었다. 약한 사람일수록 더욱 풍파에 마모되기 쉬운 게 현실이라는 곳이었다. 그저 부자인 것만으로도 삶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반면 빵 하나 사 먹기 힘든 궁핍한 가정에 삶은 지옥보다 더 지옥으로 변할 수 있었다.
산박 다음으로 사람들이 속속 계단을 올라와서 합류했다.
“아래턱이 든 배낭은 좀 가만히 두시지 그러셨습니까.”
“일찍 온 사람이 해야지 조금이라도 빨리 뒤풀이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보다 박조조 씨는……?”
시은은 모든 내막을 알면서 물었다. 그녀가 태산박의 동태에 투자하고 있는 돈과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정이 있어서 갈라졌습니다. 대신 다른 트럭 기사가 올 겁니다. 소개를 받았거든요.”
산박도 이제 어엿한 권력자였다. 이제는 소개를 통해서 중요 인력을 배치하는 사장이 되었다. 더욱더 규모가 커지면 엘리트 외부인을 들여올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떤 분입니까? 앞으로 저희 회사의 부산물을 가져갈 복 받은 분은?”
“보시면 압니다.”
트럭이 들어왔다. 척 봐도 새것처럼 보이는 말끔한 트럭이었다. 오직 옥시모론 회사의 것만 취급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배둔국이라고 합니다! 장굉려 사장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드루이드 사과를 유통하는 배둔국이었다. 그는 제법 일 처리를 잘하고 선도 잘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장 노인이 기회를 줬다. 물론 공짜로 준 것은 아니었다. 배둔국은 장 노인에게 천만 원을 현찰로 건네주고 이 기회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