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270)

186화

* * *

첫날에는 사막 악령과 싸웠고 둘째 날에는 굴을 탐험해서 크리스털 조각을 획득했다. 셋째 날부터는 철저한 배분을 시작했다. 서서히 던전 공략을 조율해야 했다.

적응하는 것과 같았다. 첫날에 10의 자원을 소모했다면 셋째 날에는 8 혹은 7 정도만 소모하고 똑같은 결과를 내야 했다. 즉, 공략에 효율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번과 똑같이 계곡에 진형의 변화가 찾아왔다. 울퉁불퉁 솟아오른 바위들이 깎아지른 벽에 사정없이 튀어나와 있고 쓰러져 있었으며 널브러져 있었다.

“정지. 이번에도 사막 악령이 나타날 겁니다.”

저번의 경우에는 큰 그늘을 만들어 내는 바위가 나타났을 때 사막 악령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었다.

모두 긴장한 채 바라봤을 때, 바람이 한번 크게 불어닥쳤다. 모래는 없었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곧 거센 모래바람이 닥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래는 거대한 바람 속에서도 대기 중에 둥둥 떠있을 터였다. 마치 구름처럼!

“쓸 만한 돌이 많습니다! 최대한 쌓고 쌓아서 사막 악령이 못 들어오게 막으세요!”

“두 명씩! 세 명씩! 연정 씨는 시은 씨랑 같이 움직여 주세요! 대장삵! 너는 선행해 나가서 모래 구름의 위치를 꾸준히 살펴라!”

“알았다!”

모두 서로 뭉쳐서 돌을 운반했다. 돌은 충분히 들 수 있었지만 매우 무거워서 느릿느릿했다. 산박은 작은 대지 골렘을 일으켜 세워서 공사 일을 도왔다. 그 덕에 빠르게 끝맺을 수 있었다.

‘곰은 소환하지 않는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양옆에 삐쭉 솟아오른 돌들을 박고 기울이고 세워서 사막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전방에 전사들을 투입하고 2열로 세웠다.

전투 준비를 마쳤을 때, 대장삵의 고함 소리와 함께 모래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휘오오오오!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와는 다르게 모래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전혀 움직임이 없었고 둥둥 떠다녔다. 그 속에서 모래가 휘몰아치며 단번에 사막 악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슨 무기도 모래에서 쏟아져 나왔다.

슈슈슉!

투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방에서는 방패로 막혔고, 후방에서는 작은 대지 골렘이 양팔과 상체를 숙여서 지붕 역할을 했다. 이번에 작은 골렘은 돌진을 하지 않았다. 후방에서 든든히 고개를 숙여 지붕이 되어줬다.

따당! 챙! 창!

그곳을 뚫은 투창은 할버드를 쥔 불꽃두더지 파수병과 장굉려가 처리했다. 완벽한 수비 태세였다.

앞에서는 용용 형제와 김각두가 거칠게 소음을 내고 있었다. 적은 괴물. 그런 소음에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왼발을 구르고!

쾅! 쾅! 쾅!

방패의 아랫부분으로 땅을 친다. 김각두의 경우에는 양손 망치의 망치 부분을 철 글러브로 쳐대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따금 호흡을 맞춰서 고함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에는 피지컬로 밀어버릴 생각을 한 것이 그들이었다. 모두 산박이 지닌 무식한 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그 산박이 전술을 요구해서였다. 강자가 그렇게 하자니 그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막 악령은 길쭉한 돌들이 쌓인 곳으로 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가려져서였다. 대신 소음과 함께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용걸섭과 갑균을 향해서 돌진해 왔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둘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부러 앞으로 나와 있다가 적들에게 인식되자마자 다시 뒤로 물러난 것.

전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방패로 무기를 막고 버티는 사이에 양손 망치로 적들의 모래로 이루어진 몸을 흐트러뜨리고, 팔을 흩뜨렸다. 뒤에서 주문을 사용해서 차근차근 처리해 나갔다. 그 덕에 경상자만 나왔다.

사막 악령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렇게나 무기를 휘두르고 찌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방에 있던 전사들도 자잘한 상처만 입고 무사할 수 있었다.

촤아아악!

치료수로 치료를 하고, 작은 대지 골렘이 만든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전사들만 죽을 맛이었다. 땀을 철철 흘려서 곧바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물은 생각보다 흡수율이 낮기 때문에 스포츠 음료수를 마셔야 했는데 그런 건 던전에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대신 소금을 한 움큼 집어먹고 물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그사이에 후방 직업들은 태평했다. 곰과 골렘으로 흔들고, 대충 때려잡는 전투가 아니라 시간은 걸려도 확실하고 안전한 전투 방법 덕분에 주문도 효율적으로 소모했으며 아이템도 조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시은은 돌무더기 사이에서 발견한 언데드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밤 없는 계곡 던전에서 서리 해골은 큰 이득이었다. 주변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전투 상황에서 전사들의 뒤에만 있어도 전사들의 활력이 천천히 소모될 수 있었다.

김연정은 김각두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염장질이었지만 워낙 보기 좋은 그림이라서 탕만이나 다른 남자들은 멍하게 그걸 구경했다. 욕하기에는 아까운, 훈훈한 광경이었다.

반면 산박은 모래를 움켜쥔 채 조용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無)와 공(空)이 공존하는 모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무(無)는 없음이다. 유(有)의 반대말이다. 허무(虛無)의 무(無)다.

공(空)은 비어 있음이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중도(中道)에 속하고 유무(有無)를 벗어난 개념이다.

그렇기에 무와 공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래서야 이런 모래가 있을까?’

공(空)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없으면서(無) 텅 비어있다(空). 혹은 그 반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전후(前後)가 다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소모된 모래니까.’

사막 악령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바로 이 모래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소환하고 사라진 모래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있었지만 더는 없고, 그저 비어 있었다.

즉, 사막 악령이 되지 않았다면 모래에는 유(有)와 공(空)이 있는 셈이다. 비어있는 곳에 있음이 있고, 있음이 소모되며 없음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 모래는 특별하다.’

산박이 골똘히 생각에 빠진 것도 당연할 정도로 깊은 진리가 숨어 있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모래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충호가 박수를 쳤다. 눈치 좋게 행동에 옮긴 간사함이 돋보이는 광경이었다. 산박이 몸을 일으켰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그러면서 계곡 던전의 루틴을 파악할 수 있었다. 30~40체에 달하는 사막 악령과 싸우고 나면 크리스털이 있는 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단조로웠다.

“계곡 던전의 장점입니다. 외길인 데다가 이렇게 방식도 적응하기 쉽게 되어있죠. 하지만 사막의 더위를 생각해야 합니다. 컨디션이 한번 나빠지면 답이 없습니다.”

일사병이라도 걸리는 순간 하루, 이틀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했다. 태양과 사막의 조합은 무섭다. 그리고 태양이 계곡의 중천에 떠있었기에 항상 햇빛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연정은 산박이 꾸준히 컨디션을 확인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까다로운 행동을 하고 있기에 다른 팀원에게는 쉬워 보이는 것이었다.

‘삐끗하면 떨어진다는 것도 모르지.’

단 한 번의 실패가 ‘정화의 크리스털’의 획득 실패로 이어진다. 뜬금없는 곳에서의 실수가 결과에 정확하게 한 획을 거침없이 그어 버리는 잔혹한 곳이었다. 그걸 깨닫는 자는 매우 드물다.

‘던전 공략 팀을 이끄는 팀장만이 알 수 있지.’

내가 팀장이 아니면 던전의 동선, 처음과 끝, 작은 문제와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모두 훑고 총평을 낼까? 전혀 아니다. 그냥 자신의 컨디션, 물품 관리만 해도 귀찮고 힘들었다. 그런데 팀 전체를 아우르는 관리력을 토해낸다? 일개 팀원인데? 그냥 민폐였다. 그렇기에 하지 않는다. 고로, 시야가 짧았다.

굴의 그늘에서 휴식하고, 산박은 김각두와 함께 김연정의 컨디션을 확인했다. 김각두는 김연정과 관련된 일이라면 조금 선을 넘는 경우도 있기에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다. 그는 훌륭히 자신의 연인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냉정한 태산박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큰 위기 없이 차례차례 일수를 채워가며 진행률을 높였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 짓거리를 하던 2레벨 던전과는 다르게 팀으로 운영하고 확실한 체계가 잡혀 있었기에 완벽에 가까웠다. 자잘한 실수가 있어도 소환수가 이에 대처했다.

그 속에서 산박은 하나의 진리에 서서히 도달해 나갔다. 사막 악령과의 전투 전후로 착실하게 탑을 쌓아 올려 태양에 도달했다.

‘임의의 적색’, ‘임의의 청색’. 색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해와 체득을 위해서 색을 입혔다. 그 개념은 빠르게 산박의 내부에 자리 잡았다.

‘부딪침을 통해서 공(空)에 유(有)를 일으켜서 소비하고, 무(無)로 돌아간다.’

그게 모래의 비밀이었다. 힘과 힘이 부딪친다. 하지만 거기에는 확실한 구분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진리였다. 입자 하나하나 그렇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박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부딪쳐서 생기는 힘은 증폭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사막 악령을 도와줄 정도로 대단했다. 제대로 된 육체 없이 2레벨 던전에 나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까다로운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죽이는 게 어려운데, 모래 때문에 체력도 높은 셈이다.’

그제야 구름 형태로 바람과 상관없이 체류하던 모래의 대류 정체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럴 가치가 있었다. 그 모래 구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래 악령의 내구력이 증가하였다. 더 오래 싸울 수 있는 셈이었다.

‘이용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

산박은 단번에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보통은 색을 입히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뇌’가 판단을 빨리할 수 있었다. 즉, 기존의 진리가 아니라 산박이 임의로 난이도를 낮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좌수와 우수를 통해 이를 나누었다. 나누어서 관리하기 쉽게 만들어 제어력에 대한 난이도를 또 낮췄다. 이를 합치면 그만이었다.

‘이번에도 빼앗기겠지.’

모래가 아니라 흙만 있어도 가능했다. 흙에도 힘을 담을 공간이 있기는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만물에도 통용 가능했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완전히 다른 진리가 되어 버린다.

[적청사운유무공(赤靑沙雲有無空)의 진리를 회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르마 시스템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도중에 끊겼다. 동시에 산박은 환몽을 경험했다.

사막을 경유하며 아무것도 없는 유목민에게 건네준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힘. 모래를 힘으로 바꾸는 힘. 이를 통해서 사막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랐으며, 호수가 만들어졌다.

‘압도적인 광경이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서 고막을 때리는 철 소리가 들려왔다. 자원이 생기면 인간의 이기심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벌 떼처럼, 해일처럼 몰려오는 검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와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련하게 들려오고 환몽이 끝났다.

정신을 차린 산박은 어느새 감았던 눈을 떴다. 그 눈에는 그저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가난한 집에 들이닥친 1등 복권이 만들어낸 결과나 다름없었다. 일장춘몽, 한 번의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 남는 것은 그저 평생 아물지 않는 한 줄기의 상처 자국뿐이었다.

‘언젠간 써먹을 수 있겠지.’

산박은 자신이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되었을 때를 지금부터 대비하고 있었다. 던전은 산박의 레벨이 허락되었을 때, 진리를 사용하게 해금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의 손으로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그 어떤 일도 계곡 던전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보스 몬스터는 만나지도 못했다. 열두 조각의 크리스털을 모아서 ‘정화의 크리스털’을 완성한 순간 던전이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2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진리 회수의 보상으로 주문 또는 기술 중 하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야만신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소환 주문 한 개 혹은 드루이드 주문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또 야만신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의뢰?’

산박의 눈에 한기가 서렸다. 딱 듣자마자 혀에서 피 맛을 느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 백정으로서의 길, 피로 이루어진 길을 걸었기에 본능적으로 느낌이 팍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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