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270)
  • 185화

    ‘10일 이내에 열두 곳의 굴을 공략하고 크리스털을 확보하기.’

    산박은 이걸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았다. 하지만 카르마 획득을 위해서, 그리고 손해만 있는 계곡 던전이 될 수 있기에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를 위해서 그는 비밀스러운 야만신의 소환 북을 사용했다. 소환수 4체를 사용 가능한 산박은 실로 강력한 던전 사용자였다. 현실에서와는 다르게 던전에는 몇 가지 제약이 존재했기에 더욱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쳤다.’

    당연히 그 모습에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고 체감도 크게 되었으며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혼자서 5인분을 할 수 있는 순간을 산박이 보여 줘서였다.

    자연스럽게 그 숫자만큼 던전 공략 팀의 인원수를 줄여도 되고, 그냥 유지한 채 빠르게 혹은 안전하게 공략할 수도 있었다. 야만신이 괜히 ‘소환 북’을 준 게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던전 공략에 숨통이 트인다. 그렇기에 산박은 야만신 코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제대로 역지사지할 줄 아는 신이다.’

    청철 문장이니 뭐니 추가 주문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다만 이런 방식은 던전 공략을 너무 쉽게 만들어서 제대로 된 시련을 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즉, 인재 영입에 있어서 복불복이 심해질 수 있었다. 꾸준한 발전과 시련을 통해서 여물어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었다. 재능 있는 사람은 그런 시련 따위 없이 고속 도로를 질주하듯이 나아간다. 범인에게나 시련이 중요하지, 난놈에게는 시련이 찾아올 수가 없었다.

    ‘야만신 또한 그 나름대로 생각하고 준다는 것이지.’

    산박의 모습을 보며 용걸섭과 용갑균은 혀를 내둘렀다. 정상적이지 않은 무력 수준이었다.

    ‘저게 2레벨이라고?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형, 대박인데? 이렇게 쉽게 전투가 끝났어.”

    “외눈붉은곰이 상처 입기는 했지만 저렇게 덩치 큰 곰이야.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전투를 경험하고 역소환되겠지. 엄청나…….”

    “부럽다…….”

    그들은 특히나 외눈붉은곰에 시선을 뒀다. 한쪽 눈이 없어서 허벌나게 한쪽만 공격당한 곰은 간지가 철철 넘쳤다. 나는 비록 외눈이지만 가오 하나로 전장에 선다는 느낌이었다. 눈이 있는 곳은 멀쩡한 반면 눈이 없는 곳은 털이 잘려 나가고 가죽이 보였기에 비장미가 대단했다.

    “저놈 저거 다른 쪽 눈도 멀쩡했으면 3레벨이나 4레벨 던전에서 나올 법한 놈 아니냐?”

    “그렇겠지. 근데 4레벨은 너무 크게 봤다. 3레벨 정도야. 엘리트 괴물 정도면 저 정도지.”

    “그래도 2레벨 던전에 외눈 끼워 넣어서 저렇게 소환하는 것 봐라. 지린다, 지려.”

    실로 똑똑하게 보이는 소환 주문이었다. 용걸섭은 그런 대화를 동생과 하면서 눈을 빛냈다.

    ‘버러지 같은 김연정도 회사에 입사했는데… 나도 못 할 것 없지.’

    어찌 되었든 2레벨 던전에서 활동하며 제법 명성을 높인 A급 전사가 용용 형제였다. 누구나 원하지만 머리가 커서 다른 사람의 밑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는데, 산박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갔다.

    사람이란 것은 간사한 법이다. 남이 잘되면 거기에 발 하나 얹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였다. 산박이 지휘하는 소환수의 군세는 간지가 철철 흘렀고 실제로도 위력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머릿수를 채운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던전이라는 곳은 항상 인원 제한이 되어 있었고 수익성 때문에 대가리를 줄이는 게 일이었다. 그런 던전의 특징상 자연스럽게 소환수는 오버 파워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던전 나가면 옥시모론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날 잡아서 말해야겠다.’

    용용 형제는 산박의 덕을 보고 싶은 마음을 크게 키웠다. 그만큼 소환수의 힘은 대단했다.

    그들은 손쉽게 굴을 돌파했다. 아무리 인간 체격을 지녔다고 해도 외눈붉은곰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소환수의 힘으로 그냥 밀어 버리고 외눈붉은곰은 역소환되었다. 상처가 많아서였다.

    ‘이득이다.’

    외눈붉은곰을 한 번 소환해서 굴 하나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악굴종은 곰에 약했다.

    사실 인간 형태를 지닌 건 죄다 곰한테 약할 수밖에 없었다. 마비 독액을 아무리 뿌려 봤자 방수 털을 뛰어넘어 피부에 닿는 건 어려웠다. 또 닿았다고 해도 근육까지 퍼지는 것도 힘들었다. 곰 가죽과 지방 때문이다. 악굴종의 카운터가 바로 곰인 셈이었다.

    그걸 뒤늦게 전투 복기로 깨달은 산박은 다음 전투 노하우를 추가했다.

    ‘나도 곰으로 변신해서 날뛰면 더 오래 외눈붉은곰을 운용할 수 있다.’

    외눈붉은곰의 눈이 안 보이는 쪽에서 활동하면 될 일이었다.

    산박은 정화의 크리스털을 집었다. 석회 물이 떨어지는 곳에 둥둥 떠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굴이 너무 깊은 탓에 아직 그들의 침입을 모르는 악굴종이 습격해 올 수 있었다.

    “속전속결로 왔지만 되돌아갈 때는 악굴종의 아래턱을 회수하세요. 마비 독낭이 턱뼈 속에 있는데 제법 돈이 됩니다. 시중가는 3만 원 정도인데 8천 원에 건네주는 편입니다.”

    “빌어먹을 중간 유통 새끼들.”

    모두 운송업 종사자들을 욕하기 바빴다. 요즘에는 채소와 야채 쪽도 건드리고 있어서 원성이 자자한 것이 현재 유통업의 상황이었다. 고기보다 비싼 애호박 드쉴?

    그래도 혹시 몰라서 꼼꼼히 회수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입에 단검을 넣어서 지렛대의 원리로 벌리게 한 다음에 주먹으로 검 면을 친다. 그럼 이빨이 부서지기도 하지만 턱이 나가 버리는데 그때 양옆과 아래쪽으로 단검을 움직여서 잡아 뜯으면 그만이었다.

    요령이 없으면 몇 번이나 칼질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회수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달랐다.

    휘릭, 휙휙!

    산박은 해병대 조교처럼 다소 딱딱하게 직각으로 이를 수행했다. 그래야 힘이 잘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반면 힘이 조금 더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래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래턱을 발로 걷어차면서 이놈 저놈 자르고 다니다가 대충 모이면 천으로 감싸 거꾸로 확 돌려서 운반했다.

    “빠르시네요, 사장님.”

    이시은이 악굴종의 아래턱을 배낭에 넣으면서 다가온 산박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개수를 세 알렸다.

    “저랑 비슷한데요?”

    “시은 씨가 그렇게 잘한다고요?”

    “제가 요령 하나는 빨리 터득하거든요. 한번 보실래요?”

    “됐어요. 일이나 일찍 끝내세요. 악굴종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산박이 거절했다. 남이 보면 꽁냥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 이성은 있는 게 산박이었다. 그리고 사실 시은과는 선을 그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녀의 뒤에는 포스코 타워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포스코 타워의 영향력이 나한테 올 수 있다.’

    시은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거기서 도망치는 건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선을 유지해야 했다. 아무리 예뻐도 산박은 그런 것에 심취하지 않았다. 미인의 목도 많이 그어본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울수록 가시가 날카로운 법이었다. 그리고 시대가 암울할수록 그런 가시가 돋친 장미들이 많았다. 태평성대에는 장미도 가시가 없지만 배고픈 곳에서 태어난 미녀에게는 시멘트가 입에 박혀서 바다 밑에 가라앉거나 목이 잘려서 산에 버려지는 미래뿐이었다.

    물론 돈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그 돈을 받아먹고 사는 기생충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뿐이었다.

    “체엣.”

    시은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는 도축한 악굴종의 피가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산박이 직각을 통한 힘으로 단번에 끝장을 낸다면 시은은 여자답게 기술을 통해서 악굴종의 아래턱을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 산박의 눈이 멀리서 도축하는 시은을 바라봤다. 자신과는 다르게 어떤 방법을 쓰는지 궁금해서였다.

    퍽! 퍽! 퍽!

    그녀는 그냥 아래턱을 발로 한 번 내지는 여러 번 걷어차서 탈골시킨 다음에 아래턱의 옆 부분을 푹 찌르고 어깨를 아래로 살짝 비틀어서 체중을 실었다. 당연히 체중이 단검에 집중되었고, 아래쪽이 찢어지면서 턱이 덜렁거렸다. 그러면 이를 발로 밟아서 찢어냈다.

    ‘야만적이지만 굉장히 좋은 방법인데?’

    어차피 아래턱 속에 낭이 있어서 충격에도 잘 버틸 수 있었다. 산박도 이를 따라 했다. 큰 기술이 필요 없었다. 어깨를 비틀어서 단검에 무게 중심을 싣는 게 중요한 요령이었다. 연습해도 일 머리 없는 놈들은 백날 못 하는 짓이었지만 산박은 능히 이를 실천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이시은 탈골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패도 제법 했지만 무리 없이 모양새는 낼 수 있었다. 특히 발을 사용하는 구간이 있어서 손아귀 힘을 쉴 수 있다는 게 최고였다. 연속적으로 열 개밖에 못 하는 거 끝도 없이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빨리 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다음으로 진행하죠.”

    “벌써 이틀째인데 더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충호가 자신만만해했다. 산박의 활약으로 모두 힘이 아직 제법 남아 있었다.

    “아직 첫걸음인데, 연속 전투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태 사장님께서 괜히 하신 말은 아닐 텐데. 목소리 하나하나가 무거우신 분입니다.”

    반면 용갑균은 산박의 편을 들었다. 형인 용걸섭은 일단 관망하다가 참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말에 충호가 그를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뭡니까?”

    “예? 지금 화내시는 겁니까?”

    딱 두 마디로 단번에 분위기가 변화했다.

    “전투 때도 그렇고, 사람 말을 들어야지. 그냥 넘어가려고 했더니 자꾸 시비를 거네.”

    “반말하지 마시죠. 아무리 오퍼 팀이라도 서로 존중하셔야지.”

    “그럼 왜 사람 명령을 무시합니까? 그게 존중입니까?”

    “무시 안 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 아닙니까? 이야기 돌리지 마시고 태 사장님 말씀이나 들으시죠.”

    “뭐? 잘못한 놈이 뭐가 이렇게 당당합니까?”

    중간에 탕만이 충호를 잡아당겼다.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놔봐라. 이참에 교통정리 좀 해야겠다.”

    “교통정리 같은 소리 하네.”

    갑균이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충호의 표정이 더욱 악귀처럼 변했다. 이에 산박이 나섰다.

    “두 분 다 그 정도만 하세요.”

    산박이 이를 중재했다. 하지만 그런 ‘척’한 것에 불과했다. 손짓하며 충호를 불렀다.

    “자세히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누가 무시를 했습니까?”

    “저 새끼들이요. 제가요… 어떻게 했냐면요…….”

    서충호가 단번에 일러바쳤다. 그 모습을 용용 형제가 보며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덩치는 큰 놈이 하는 짓은 간신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서충호는 상대가 제법 말을 잘했기에 자신 혼자서는 저들을 혼꾸멍내 주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다. 능동적인 전술을 사용할 줄 알아야 진짜다. 순식간에 태세 전환을 하는 걸 보니 좋은 전술가가 될 수 있어 보였다.

    모든 걸 들은 산박이 용걸섭과 갑균을 불렀다.

    “지금 간 보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간이라뇨!”

    그 말에 산박이 웃었다.

    “자기 집도 아닌데 청소하러 오고 살림하러 오는 아줌마들 아십니까? 그런 아줌마들은 하나씩 선을 넘습니다. 가볍게는 감자 몇 개, 고기 몇 점. 그렇게 자기 집에 싸 들고 갑니다.”

    “…….”

    “계속 선을 넘다 보면 결국에는 돈까지 건듭니다. 옷도 건들기도 하고, 안 쓰는 거, 잘 안 보이는 거는 그냥 가져가기 시작해요.”

    “저희는 아닙니다.”

    두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산박에게 고개를 숙였다.

    “서 팀장한테 고개 안 숙이고 끝나면 그다음에는 이 팀장한테도 고개 안 숙일 테고, 나중에는 저한테도 고개를 안 숙이게 되겠죠. 그게 선을 넘은 걸 지적 안 했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생각 없이 굴었습니다.”

    두 명 모두 꼼짝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산박의 비유가 너무 찰떡처럼 떨어져서였다. 여기서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면 그들은 꼼짝없이 개새끼가 되어 버린다. 고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남의 집에서 일하면서 스리슬쩍 선을 넘나드는 아줌마가 되기는 싫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저도 사과를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끝내겠습니다.”

    충호는 산박이 나서서 일을 마무리 짓는 모습에 냉큼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첫 전투였기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는지 모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잠이 그렇게 많지 않은 대장삵과 불꽃두더지 파수병은 품에서 조잡하게 나무로 조각한 카드를 꺼내서 땅에 배치했다.

    “방식은 전에 말했다시피 클래식이다.”

    서로 사는 곳이 달라서 카드놀이도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통일을 시키고 만든 것이 이번 클래식 카드놀이였다.

    “드로(Draw).”

    모두가 잠자는 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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