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270)
  • 183화

    변초두는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 태산박이라는 사장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지금은 부산 은행이랑 뭔 사업을 같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오직 아는 사람들, 있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커뮤니티의 소문이었다.

    “예? 부산 은행이랑 사업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직 못 들었나 보군. 자네도 본가에만 있지 말고 부산이나 인천으로 와. 개성이나 평양은 너무 위잖아?”

    “그래도 거기는 토박이들 잔칫상 아닙니까. 군산 떠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튼, 정말 몰라?”

    “저야……. 음…….”

    방침두는 말을 아꼈다. 이걸 말해도 되는지 않아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이에 변초두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니, 지금 내가 앞에 있는데 할 말 안 할 말 가리는 거야?”

    “응? 어어, 응? 그게 아닙니다. 그…….”

    말을 더듬거리던 방침두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부산 은행이 던전 경제에 손을 뻗을 것 같아서…….”

    탁!

    그 말에 변초두가 눈을 크게 뜨며 잔을 바닥에 강하게 놓았다. 방침두는 그 소리에 절로 술이 깼다.

    ‘젠장, 말 안 할 걸 그랬다.’

    방침두는 혀에서 쓴맛을 느꼈다.

    “진짜야? 진짜로, 부산 은행이 던전 경제에 한 발 들어온다고?”

    “예? 아니, 저는 그냥 그럴 것 같다… 추측입니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마약 사업 하는 Z.O.P 무역 회사의 부장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실무, 현장에서 변초두의 입김은 무시무시했다. 돈 하나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필리핀과 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그리고 다시 필리핀과 태국으로 오고 가는 돈과 마약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국의 ‘원’과 태국의 ‘밧’ 그리고 필리핀의 ‘페소’는 서로 통용되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국의 돈은 달러로도 바꾸기 수월한 편에 속했기에 그 가치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방침두는 절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오늘은 조금 더 빨리 일어나고 싶은데, 괜찮겠지? 아! 그리고 태 사장이랑 만나고 싶은데 연락처 하나 주게.”

    “예? 제가요?”

    “자네 모르나?”

    “알긴 압니다만 본인이… 좋아할지…….”

    “사업하는 사람이 다른 회사 사람 아는 걸 뭘 싫어하겠어?”

    그 말에 결국 방침두는 산박의 전화번호를 넘겼다. 변초두는 허둥지둥 떠났다. 계산은 방침두의 몫이었다.

    방침두는 서둘러서 산박에게 메시지를 남겨 자신의 실수를 알렸다. 빨리 사과하는 게 서로 좋았다.

    동시에 방침두는 간악하게도 부산 은행에도 연락을 취했다. 전에 얼굴을 본 과장에게 모든 것을 알렸다.

    ―아니, 사람이 참. 그걸 왜 말해? Z.O.P 무역 회사? 그 새끼들 진짜 악질인데.

    “죄송합니다. 제가 바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

    ―후우……. 일단은 알았네.

    전화가 끊겼다. 방침두는 전통주를 하나 더 시켰다.

    ‘Z.O.P 무역 회사는 필리핀과 태국의 던전 자원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있지.’

    그들은 부산에 적을 두고 있었다. 당연히 부산 은행이 던전 경제에 끼어들게 되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오기 전에 막아야 했다. 다른 던전 경제에 종사하는 기업 모두 다 벌 떼처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부산 은행은 강력한 상대였다. 부산 금융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돈은 썩어나는 게 부산 은행이었다. 부산 금융부터 부산 전기까지 돈 되는 것이면 일단 돈부터 들이밀고 경쟁사 싹 쓸어 버리는 게 그들이었다.

    그들은 이를 이용해 전기와 도시가스를 전국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부산에 제공하고 있었다. 부산 시민은 당연히 그들을 좋아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개새끼들이었다. 개돼지같이 기억력 나쁜 대중들 편을 드는 부산 은행은 같이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로 상놈의 자식들이나 다름없었다.

    ‘당분간 쥐 죽은 듯이 지내야겠다.’

    방침두는 결심했다. 일이 끝날 때까지는 조용히 지낼 생각을 가졌다. 주문해서 마시던 병 속에 있는 전통주를 대부분 남기고 그는 서둘러 도망쳤다.

    호다닥!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도망은 그의 몇 없는 장기 중 하나였다.

    방침두가 쏘아 올린 Z.O.P 무역 회사와 부산 은행의 싸움은 서서히 보이지 않는 곳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막걸리부터 시작해서 여덟 종류에 달하는 전통주의 주류 사업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뜬금없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부산 사람이면 무조건 가지고 있는 게 전통주 자긍심이고 자부심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 지역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해서 만취하여서 애먼 곳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타지 사람은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특히 자신이 대학 새내기다? 그런데 타지 사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경상도 사람으로 변모될 공산이 컸다. 방학을 맞이해서 돌아가서도 사투리를 쓸 수 있었다. 그만큼 부산 사람의 침투력은 굉장했다.

    생선 두 개 가지고 가격 비교 하고 있는데 스윽 보면서 ‘저건 파이다! 이게 좋다!’라고 휙 가버리는 사람도 왕왕 볼 수 있었다.

    Z.O.P 무역 회사 또한 마약을 취급하기 때문에 당연히 주류 사업에도 끼고 있었다. 그들이 주류 산업부터 부산 은행에 싸움을 건 이유는 현금 장사 하기 좋은 게 주류 사업이라서였다.

    ‘부산 은행이 던전 경제에 한 발을 집어넣는다면 시작부터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런 계산이 있었다. 짜잘이로는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부산 은행이었다. 전기부터 도시가스 산업은 물론이고 하수구 정화 사업조차도 짤짤이로 안 하고 크게 크게 해버린다.

    ‘엄청난 현금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주류 산업의 현금 조달을 막아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가격 경쟁이었다. 출혈 경쟁을 유도하면 아무리 팔아도 실제 영업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걸 유도했는데, 결국에는 고객 싸움, 사람과 단골 싸움이었다. 경쟁 업체 술값이 낮아지면 자신들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트렌드, 방향 하나만 조금 늦게 틀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사장되기 쉬웠다.

    30% 세일 경쟁부터 거대한 싸움이 불어닥쳤다. 동시에 부산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마트부터 시작해서 온갖 가게까지 죄다 술 가격이 30% 이상 깎여서였다.

    그 기세는 순식간에 일어나서 SNS를 타고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언론도 곳곳에서 보도를 시작했다.

    [외국 맥주 죽이기? 전통주 세일 폭탄!]

    [이번에도 부산 큰손들이 시작했다? 주류 기업의 지분 분석!]

    [경제 보는 시민들도 깜짝 놀랄 사태에 주식 변동 조짐까지?]

    [부산 구단 3곳과 주류 업계의 비밀스러운 주류 협정? 루머를 파헤친다! 신뢰도 99.9%!]

    온갖 헛소리가 퍼져 나갔다.

    * * *

    “굴 내부에 있는 괴물의 정체는 얼굴 없는 악굴종(惡屈從)이라는 괴물입니다.”

    악에 굴종한 존재. 척 봐도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듣기만 해도 불길한 이름이었다.

    “어떤 놈들입니까?”

    그늘의 서늘함 속에 몸을 맡기며 충호가 물었다. 다른 이들도 더욱 산박에게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산박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불꽃두더지 파수병이 흥미진진해하는 표정으로 대장삵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오는 편이야?”

    “그래. 저렇게 보여도 싼박이는 모범생이거든. 공부를 많이 해.”

    “난 귀찮아서 안 하는데.”

    “거기 조용.”

    산박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이에 두 마리의 소환수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도 적이 어떤 놈들인지 듣기는 들어야 했다. 전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수많은 굴을 뚫어놓고 살아가는 악굴종은 어디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천장에서 뚝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얼굴 없는 악굴종은 기괴한 놈들답게 곳곳에 굴을 파놓았다. 마치 토끼 굴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굴의 크기가 더 크다. 굴속의 굴인 셈이다.

    사막 악령과는 다르게 산박은 대처법도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소 3억, 4억에 팔리는 물건이다. 잊을 수가 없었다.

    “한번 튀어나오면 서른 마리는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난전으로 쉽게 번지기 때문에 후방 직업을 지키는 게 최우선입니다.”

    본인이 칼침을 맞아도 후방 직업의 목숨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자신은 스쳐 맞지만 후방 직업은 아차 하면 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전방 직업의 경우에는 전력을 다해서 후방 직업을 지켜줘야 했다.

    “놈들이 기습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하지만 한번 그렇게 떨어지고 구도가 잡히면 그때 수비를 점점 공세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돌진력을 지닌 채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오고 툭 떨어지는 놈들의 맹공을 ‘먼저 버텨야’ 했기에 매우 불편하고 기분 나쁜 싸움 구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선공을 무조건 당한다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있는데 먼저 기습당하겠어?”

    그 말에 산박은 고개를 저었다.

    “얼굴 없는 악굴종은 너무 조용한 적들입니다. 자신의 감각을 믿다가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놈들의 공세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한곳으로 최대한 뭉치고 바닥과 천장부터 확인하셔야 합니다. 자기 바닥과 천장 확인 후에 다른 사람을 도우세요.”

    가장 위험한 것이 발밑, 천장에서 떨어지는 놈들이었다. 거기에는 솔직히 답도 없다. 개인의 상황 판단에 맡겨야 할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건 인원이 많다는 점이지.’

    열 명은 아니지만 던전 사용자의 수가 기본보다 한 명 많은 아홉 명이었다. 이는 오히려 옥시모론 팀이 특이하다는 걸 보여 줬는데, ‘물량’이 특징인 2레벨 던전은 보통 열 명이서 공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하청에 하청의 하청이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머릿수가 많은 만큼 편법을 써서 공략해야 했다.

    ‘내게는 대장삵과 불꽃두더지도 있지.’

    즉, 열한 명인 셈이었다. 거기에 대장삵은 다른 인간들보다 체구도 작아서 바닥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놈들의 머리통을 워터 샷으로 날려 버리는 일도 능히 가능했다. 아니면 손톱으로 눈을 확 그어 버리고 워터 샷으로는 다른 한 놈을 또 요격하는 등의 2인분도 가능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도 마찬가지였다. 입에서 불을 내뿜을 수 있었기에 못해도 1인분이었고, 잘하면 2인분이 가능했다. 중갑옷을 입고 있어서 적의 공격에도 용맹해질 수 있었다.

    “조심해야 할 건 놈들이 마비 독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저림이 오기 시작하면 곧 해당 부위가 안 움직여질 겁니다. 그땐 치료수를 부어야 합니다. 피부 흡수가 되는 것이기에 조심해도 사실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비 독……!”

    너도나도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서른 마리가 튀어나오면 솔직히 말해서 독에 안 당하기가 힘들었다. 투척물이기 때문이다. 뭉쳐야 하는 팀의 입장이었기에 회피하는 것도 어려웠다.

    “비싸지만 ‘포이즌 큐어 스틱’을 사용해야 합니다.”

    모두 절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려 11만 원짜리였다. 그걸 사용할지도 모른다니……. 손발이 덜덜 떨렸다. 지하철도 100원 할인받으려고 카드 발급하는 게 서민이었다. 그런데 한 번의 전투에 11만 원이 그냥 허공에서 사라진다? 두려움이 컸다.

    “표정이 왜들 그래요? 아까 던진 회오리 화염 철구는 20만 원짜리예요.”

    “헉.”

    “그, 그렇게 비쌌습니까?”

    너도나도 눈을 부릅떴다. 2레벨 던전의 수익성을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사냥하고 레벨 업 하는 데 현질을 해야 하는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산박이 하는 건 말 그대로 돈을 퍼부으면서 레벨 업을 하는 짓이었다. 왜 2레벨 던전 공략이 대부분 하청 하청 하청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게 이 구간의 현실이었다. 또 물량이 기본으로 탑재된 던전이라서 까딱 잘못하면 죽기도 쉬웠다. 적에게 둘러싸이고 아군이 지원해줄 수 없을 때 사람은 아주 끔찍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우악스러운 손발과 무기들이 닥치는 대로 본인의 모든 것을 억압해 팔 하나 까딱하지 못할 때의 절망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패닉에 빠지면 그걸로 끝이고, 냉정하게 대처해도 열에 아홉은 죽는다.

    ‘시작부터 그런 상황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렇기에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굴 없는 악굴종의 투척물에는 마비를 일으키는 독이 있었다.

    “놈들의 덩치는요?”

    용걸섭이 물었다. 아무리 2레벨 던전을 자주 다녔다고는 해도 그들도 모르는 던전이 존재했고 그들은 던전 정보를 암기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귀찮기도 귀찮았다.

    “사람이랑 다를 바 없고,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으며 무기는 짧은 무기가 많습니다.”

    160~180까지 다양했다. 체중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참…….”

    너도나도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마비 독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치료수가 있다고 해도 적과의 싸움 속에서 해당 부위에 치료수를 뿌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마비 독 하나에 모두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산박은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어찌 되었든 나는 레벨 업 하는 게 중요하니까.’

    사실 부산 은행이 로열티를 지급할 것이기 때문에 이제 ‘개인’ 범위의 돈 씀씀이는 탈출한 것이 산박이었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정화의 크리스털이라고 해도 산박에게는 큰 메리트가 아니었다. 드루이드와 관련된 사업은 앞으로 계속 창출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산박은 믿고 있었다. 자신의 성공을! 그렇기에 이들과는 다르게 딱히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럼 조금 쉬고 사막으로 가죠.”

    산박이 휴식을 명령했다. 주저한 것도 잠시, 그들은 휴식하면서 결국 돈에 대한 욕망이 점점 타오르는 듯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은근슬쩍 엉덩이를 떼서 상의하기도 했다. 사장이 확 끌고 가지 않으니까 안달이 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산박은 속으로 웃었다. 결국, 사람은 돈이었다. 그들은 결국 얼굴 없는 악굴종을 잡으러 갈 것이었다. 그리고 악굴종을 잡을수록 산박의 레벨 업도 빨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가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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