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이시은의 주문은 여덟 마리의 사막 악령들을 덮어 버렸다.
치이이익!
매캐한 연기가 끝도 없이 솟아 나오며 모래가 타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덟 마리가 순식간에 느려졌다. 활동성이 폭락했고, 몸의 크기도 줄어들어 갔다.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허공에 흐느적거리는 먼지와도 같은 모래가 탄 모래를 대체하며 탄 모래는 바닥으로 쏟아지듯이 떨어져 내렸다.
여덟 마리가 느려지면서 뒤로 밀려 나가자 상대적으로 빨라진 놈들이 서로 부딪치며 혼란을 빚어냈다.
솨솨삭!
사막 악령 중 몇몇이 투창을 던졌다. 척 봐도 위협스러웠다. 투창은 특히 전사들을 넘어서 후방 직업을 노렸다. 대장삵의 워터 샷과 불꽃두더지 파수병의 할버드가 이를 쳐냈다.
투창하고 난 사막 악령 몇몇은 그대로 쌍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하지만 사막 악령들은 작은 대지 골렘의 돌진과 이시은의 범위 공격 때문에 두 번 흔들렸기에 처음 부딪치는 인원은 소수가 되어 버렸다. 워낙 엉켜 버려서 먼저 도착한 놈들이 있는 반면 뒤늦게 대거 도착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렇게 많이 몰려왔을 때, 김각두가 양손 망치를 있는 힘껏 내려치며 한 놈의 육신을 뭉개고 품에서 회오리 화염 철구를 투척했다. 화염이 단번에 일어났다. 대여섯 마리가 그대로 화염에 휩싸였는데 모래가 까맣게 타는 건 물론이고 굉장히 허무하게 무너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생각보다 ‘힘’에 약하다!’
산박은 이를 보자마자 블루 오션 페어리 스타라이트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모든 주문에 보정치를 넣어주고 워터 샷을 사용 가능케 하는 돈지랄 스태프였다.
촤아악!
단번에 워터 샷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전장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하나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여럿에게 분산된 피해를 줬다.
동시에 놈들의 활동성이 무뎌졌다. 겉보기와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나약했다. 방패로 후려치면 모래로 된 몸은 무너지고, 다시 일으켜 세워지지만 그것마저도 ‘힘’이 들어간다. 유기체가 아닌 괴물이 지닌 한계였다.
“윽!”
탕만의 귓불이 거칠기 짝이 없는 녹슨 검에 베였다. 워낙 기상천외하게 팔 자체가 꺾이고 늘어나는 놈이라 전사 입장에서는 갈피를 못 잡았다.
그나마 A급 전사가 세 명이나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길탕만은 싸우면 싸울수록 상처가 늘어 갔다. 상대는 방어력이 두터운 곳이 아니라 틈새를 노렸다.
쿠구구구……!
작은 대지 골렘의 돌진은 끝도 모르고 이어졌다. 체중이 거의 없는 모래로 이루어진 놈들을 상대로 너무나도 훌륭한 주문이었다.
산박은 ‘갈래 불꽃’ 같은 추가 주문을 사용하는 대신에 워터 샷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놈에게 작은 주문 피해를 줬다. 대장삵은 돌진해 탕만과 싸우고 있는 사막 악령의 무릎을 뚫고 지나가면서 몸을 무너뜨렸다.
“와라와라와라!”
매듭 전사라 불리는 불꽃두더지 파수병이 입에서 불꽃을 내뿜었다.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양쪽에서 덤벼들던 사막 악령 중 하나의 팔이 그냥 타 뚝 떨어지며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불꽃두더지는 사막 악령을 할버드로 일도양단하고 몸을 틀면서 단번에 앞발 차기로 탕만을 도와줬다.
휘오오오오!
거친 바람이 다시 한번 불어닥쳤다. 똑같이 40체에 가까운 사막 악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사이에 탕만은 투구를 벗고 치료수를 머리 위에 부었다.
촤악!
“흐으!”
목에도 얕게 베인 상처가 있었는데, 모래가 스며들어 와서는 고통이 말도 아니었다. 호흡할 때마다 입으로 모래가 들어왔다. 주변 시야도 나빠서 일행은 서로 바짝 붙어있는 원형진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쿵…쾅!
작은 대지 골렘이 날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 속에서 그들은 2차, 3차로 치고 들어오는 사막 악령과 사투를 벌였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고 입 안이 모래로 바짝 말라 버렸을 때는 제법 위험했다.
“헉. 큭!”
산박조차도 환도를 들고 싸워야 했다. 이제는 잔잔벼락의 환도를 거침없이 팀에 보급한 상태였다. 부산 은행에 사업이 넘어갔기에 가능했다.
꽈자작!
작은 전류가 단번에 전방을 지졌고, 사막 악령이 무너져 내렸다. 방패로 막으면서 최대한 힘을 회복하고 있는 전사 네 명과는 다르게 김각두와 장굉려는 침까지 흘릴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그런데도 진형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공격을 맞아도 적의 체중이 낮은 편이라 밀려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상처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마저도 뒤에 있던 후방 직업이 치료수를 쫘악 상처에 뿌렸다. 많은 치료수가 소모되었지만 모래바람이 사그라들 때까지 사망자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정말 위험했습니다.”
가죽 포대에 있는 물을 단번에 마시며 너도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산박이 직접 전투에 나섰기에 ‘힘’이 남아있던 터라 대장삵은 치료수를 이용해서 샤워해 줌과 동시에 상처도 치료했다. 갈증도 그냥 해소시켜 버렸다.
‘힘’ 대부분을 소모했기에 일행은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이곳에서 힘이 회복되기까지 쉬기로 했다. 딱 그늘이 있는 곳이라서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깨달았다. 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럴 거면 물의 연어를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었다.
세 시간? 네 시간 정도 잠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난 산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늘 밖에는 더위 때문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산박은 자연스럽게 전의 전투를 복기했다.
‘사막 악령.’
자잘한 상처를 주는 경보병들이었다. 무너져도 다시 몸을 일으킨다는 것 때문에 장기간 싸워야 했다. 족히 한 시간이 넘도록 싸웠다.
‘잔상처가 많아서 치료수를 많이 써버렸다.’
공격 물품도 제법 소모했다. 한 번 혹은 두 번 이런 경우를 맞이한다면 아이템을 전부 소비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때부터는 답이 없었다.
‘이 정도로 계곡 던전은 어려운 게 아니다.’
즉, 먼지바람을 피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산박은 고개를 들어 올려서 넓적하면서도 길쭉한 큰 바위를 바라봤다.
‘흙을 쌓아서 방벽을 짓고 격전을 벌일 곳을 줄이는 게 정답이었군.’
지형을 간과했다. 산박은 단검으로 그늘의 흙을 파보았다. 조금 팠을 뿐인데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흙이나 돌도 많이 나타났다.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적은 피해로 충분히 싸움을 끝냈을지도 몰랐다.
‘물을 통해서 진흙처럼 만들면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 악령도 제힘을 쓰기 어려웠겠지.’
싸움 방식도 잘못되어 있었다. 적들을 노리기만 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물로 바닥을 적셔놓는 게 놈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약화했을 것이었다.
‘‘야만신의 양피지 책’도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고민을 해봐야겠다.’
힘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소환 북이었다. 이를 소환한다면 자연스럽게 이목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용갑균과 용걸섭에게 특히나 보여주기 싫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다.
‘까딱 잘못하면 큰 사달이 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산박은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그런 모래에서 모래 악령 혹은 사막 악령이라 불리는 괴물이 나타났다. 그건 산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으로 만들어지는 힘의 괴물을 구성하는 물질에 힘이 없다?’
그런 식이면 사실 초월의 힘에 타격을 받았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무너진 것이 말이 안 된다. 즉, 어떤 비밀이 이 모래에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산박은 놀라운 지혜로 그 비밀의 존재를 파악했지만 그다음으로는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근접전을 겪었기에 몸과 정신에 알게 모르게 피곤함이 남아 있었다.
태양이 존재한 채로 자정이 지나고, 힘이 회복되자마자 팀은 다시 몸을 추스르며 활력을 집어넣었다. 대장삵과 불꽃두더지 파수꾼 덕분에 불침번을 사람이 설 일은 없었다. 그 덕에 모두 전날의 피로가 싹 가신 표정을 지었다.
“정지. 잠시만요.”
걸어가던 산박은 땅의 부름 기술로 인해 추가 힘이 확보되자 대장삵을 통해서 빈 가죽 배낭에 치료수를 담았다. 이를 가면서 몇 번이나 행하였다.
선두에 있던 충호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쪽에 굴이 있습니다.”
산박이 앞으로 나서서 이를 확인했다. 아지랑이 속에서 보이는 굴의 크기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빛나는 조각이 있는 곳 같네요.”
“빛나는 조각… 말씀입니까?”
“던전 클리어 중의 하나입니다.”
“보스 몬스터와 10일 이상 진행하기 말고 다른 게 있습니까?”
“예. 빛나는 조각 열두 개를 모아서 크리스털을 완성하면 던전이 클리어됩니다. 계곡 던전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산박은 이어서 말했다.
“완성한 크리스털은 ‘정화의 크리스털’이라고 불립니다. 병원 공원이나 재활하는 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수많은 부호가 좋아하는 던전 아이템이었다. ‘소모되는 힘’이 높아서 유지비가 비싸 일반인은 있어도 쓰지를 못하는 던전 아이템이었다. 늙은이들에게 활력을 주고 회복을 돕는다는 점에서 비싸기로 유명했다.
그 가격대는 외국 경매가의 경우에는 4억~10억을 호가하지만 브로커가 돈에 눈이 멀어서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3~5억에 거래되는 형편이었다. 워낙 비싸서 사려는 사람이 적고, 어디에 팔아야 할지를 몰라서 실제 던전 사용자에게 떨어지는 돈은 더욱 적었다.
또한 파는 데 제법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동시에 몇몇 국가 혹은 기업의 인증도 받아야 해서 수백만 원이 깨지는 건 기본이었다. 세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잭팟이지.’
얻으면 대박이다. 하지만 거기에 닿는 길은 매우 어려웠다.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십니까? 바로 들어갑시다.”
“열두 조각을 다 모으지 못하면 기껏 모은 조각도 던전이 무너지면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적어도 열두 개의 굴을 공략해야 하죠.”
그 말을 하며 산박은 일단 굴 입구에서 쉬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렇게 알려주면 대번에 묻기 시작해서 처음에 말해주지 않았다.
굴 입구는 생각 이상으로 더욱 컸다. 바람이 훙훙 불어왔고, 그늘이라서 시원시원했다. 그곳에서 산박은 말을 이어 나갔다.
“리스크가 아주 큰 편입니다.”
“하지만 모래 악령을 사냥할 때 저희는 아무런 부산물도 얻지 못했어요. 여기서라도 크게 한탕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시은이 수익성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현재의 전력이라면 사실 무서울 게 없었다. 처음 모래 악령과 싸울 때는 전술이 잘못되어서 큰 소모를 겪었지만 다음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다른 분들은요? 말이 최소 4억이지 세금 떼이면 3억이고, 거기서도 또 판매 대금까지 생각하면 2억 9천입니다.”
“무슨 세금이 1억입니까?”
충호가 혀를 내둘렀다.
“우리나라는 복지 국가잖아요.”
그런 말을 들어도 사실 산박 또한 충호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복지 국가라고 해도 실제로 밑바닥에 쥐어지는 도움은 쥐꼬리만 하다. 그 많던 세금이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두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당 4천만 원은 들어온다. 용용 형제는 하청이기 때문에 고정금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평불만을 할 만했지만 조용했다. 태산박이 하는 꼴을 보면 그들에게도 수당 이상의 돈을 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을 홀대할 양반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납득하지 못할 만큼 큰돈을 줄 것이다. 그런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만큼 소름 돋을 정도로 태산박의 카리스마는 냉철했고, 공정했다.
“까짓거 해봅시다. 사막 지형이라서 밖으로 가도 이상한 악령만 나오고 철 덩어리는 스크랩으로 0.t 단위로 팔아야 하는데, 그 짓거리 하는 것보다는 한 방이 좋지 않겠습니까?”
충호의 말에 너도나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산박은 굴속의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굴 내부에 있는 괴물은…….”
* * *
Z.O.P 무역 회사 부장 변초두. 그는 전통주를 마시며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오식 선박의 사장, 방침두가 있었다.
“마무리 잘해서 다행이야.”
“부산 은행 쪽에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감사를 오늘에서야 올립니다. 하하하.”
“군산 하면 항구인데, 요즘 인천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아무렴요! 말만 하십시오. 최대한 얼른얼른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남 보여주기 힘든 것도 제가 잘 받아들여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마약의 시세가 가장 비싼 곳이었다. 그만큼 단속도 심할뿐더러 박봉 받는 주제에 마약에 목숨 거는 미친놈들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득실거렸다. 야근 수당 안 받는데 야근하는 또라이들은 지옥에서 튀어나온 병신들이었다.
Z.O.P 무역 회사의 이면에는 마약이 있었고, 그들은 필리핀과 태국에서 마약을 제조하여 대한민국으로 들여보내 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마약의 30%가 이 회사로부터 뿌려졌다.
전과 5범이든 10범이든 30범이든 어차피 다시 사회로 나오는 게 대한민국의 형법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골 마약 사범이 또 마약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누범자였기에 재사회화는 불가능했고, 교화 또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저 Z.O.P 무역 회사를 대신해서 형법의 총알받이로 사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