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270)
  • 179화

    <계곡 던전>

    산박, 즉 옥시모론 팀의 2레벨 던전은 지금은 폐허가 된 서울특별시에 있었다. 지하철이 가장 많은 서울에 던전이 가장 많이 존재했다.

    폐허가 치워진 곳은 서울 중에서도 몇 곳 없었는데, 그중에 가장 멀쩡한 곳이 바로 강남구였다. 이곳에서 던전 공략을 한다면 다양한 인프라 덕을 볼 수 있었다. 그게 폐허를 빨리 치운 이유이기도 했다.

    던전 사용자들을 위한 호텔이 있었고, 식당도 존재했다. 값은 제법 나갔지만 2레벨 이상 던전 사용자들은 무리 없이 이용 가능한 가격대를 가지고 있었고 맛도 뛰어났다.

    또한 원클릭 보급 전달 사업체도 있었다. 보급을 하나하나 구매할 필요 없이 패키지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보급을 패키지로 판매한다는 건 단순히 생각할 거리를 하나 줄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보급은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가진 자원은 회사마다, 팀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 맞춰서 보급해 준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물론 이 바닥이 다 그렇듯이 그냥 평균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그런 자들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의 일부는 그들 배로 들어간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보급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진짜 수완가가 운영하는 보급 사업체가 아니면 이용할 가치도 없지.’

    그렇기에 산박은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똑똑하게 보급을 챙기는 사람은 아직 만나 보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을 이용한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줘야 했다. 자연스럽게 보급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해도 손해, 저렇게 생각해도 손해였다.

    그렇기에 산박은 자신이 직접 보급품을 준비했다. 특히 여기에는 강합의 노력이 동반되었다.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웠는데, 그 명령을 하는 게 산박이기 때문이었다. 철두철미했기에 조금이라도 값을 줄이기 위해서 조사는 필수다.

    2레벨 팀 지급 물품은 산박이 모두 정하고 구매했지만 그 외에도 다른 공통 보급품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걸 모두 강합이 준비해야 했고 회사에 적재된 던전 지급 물품 또한 가져가야 했다.

    강합과 산박은 보급품을 같이 운반했다. 운전은 강합이 했다. 강합은 산박과 보급품을 놔두고 다시 세종시로 향했다.

    1톤 트럭 한 대도 운용하는 것이 제법 회사 티가 났다. 렌트한 것은 아니고 중고로 구매한 것이었는데, 1톤 트럭은 대한 제국 시절부터 TOP OF TOP을 찍었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잘 팔리는 게 대한민국의 1톤 트럭이었다. 꼬레아 봉고는 전 세계 누구나 알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수고하십시오!”

    강합이 떠나는 모습에 산박이 손을 흔들어 줬다.

    ‘던전 공략 외에는 모든 걸 다 하는 사무실. 나쁘지 않지.’

    직원도 아래에 여럿 두면 강합의 자존감도 높아질 것이다. 박조조의 대체재로 나쁘지 않았다.

    산박을 시작해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시은은 자기 차를 몰고 도착했다. 유료 주차장에 보름 치를 결제해 놓았다. 돈 씀씀이가 거침없었다.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이 팀장도 잘 지냈어요?”

    “전 공부하느라 바빴죠. 사장님도 스킬 수련 많이 하시잖아요?”

    “요즘엔 명상이죠. 드루이드는 스킬 얻을 때마다 간헐적이고 단편적인 드루이드의 행보에 대해서 얻는데…….”

    이시은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산박도 성실하게 대답해 줬다. 자주 못 만나기 때문에 이럴 때 서로의 관계를 굳혀야 했다. 이시은은 A급 듀얼 클래스를 지닌 인재였다. 말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사장님도 나이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제가요?”

    “보니까 여자 친구 하나 안 사귀시던데, 삼귀는 사람 없어요?”

    “네?”

    “썸 타는 사람도 하나 없냐고요.”

    “아직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안 그래요?”

    “안 그렇습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오게 되었고, 온갖 이야기로 잡담을 떠들었다.

    자신들이 A급 전사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용갑균, 용걸섭 형제가 가장 꼴찌로 도착했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습관적이네.’

    아무래도 지각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내비치는 듯했다. 물론 겉으로는 사과하고 굽신거렸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어쩌라는 식이겠지.’

    오히려 더욱 질이 나빴다. 하지만 산박은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그들은 실력이 있는 A급 전사들이었다. 합격술도 나쁘지 않고, 2레벨에 잔류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하청 시스템은 1차 하청인 갑균과 걸섭에게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되레 개인임에도 포스코 타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었다. 김각두나 김연정이나 하청 시스템으로 희생된 던전 사용자였다.

    “장비 확인하겠습니다.”

    섬광 단검부터 시작해서 세컨더리 힐링 팩도 나누고 회오리 화염 철구를 비롯한 다양한 2레벨 팀 지급 물품을 나누었다. 그중에 1레벨인 것은 섬광 단검 하나뿐이었다. 워낙 물량이 많고 효과도 나름 좋을 때가 있어서 적정 수준 던전까지는 꾸준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이상 없습니다.”

    모두 변동 사항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번의 보급품에는 식수가 많았다. ‘물의 연어’를 식수 사업에 동원하고 있어서 던전 내부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해서였다.

    그들은 도곡역의 내부로 들어갔다.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건조한 공기가 산박의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모래도 씹혔다.

    ‘또 사막은 아니겠지.’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후끈거리는 기후가 산박의 피부를 덮쳤다. 절로 짜증이 팍 올라왔다. 여름에 싸움이 가장 많이 나는 것처럼, 더위는 사람의 인내심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기 좋았다. 그렇기에 던전은 사막 기후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다.

    “와……. 계곡 보세요. 진짜 까마득하게 높네요.”

    양옆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자연의 벽! 그리고 구불구불거리듯이 이어지는 길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산박은 단번에 암기한 던전 정보를 통해서 결과를 도출해 냈다.

    ‘계곡 던전이면서 외길 던전.’

    나쁘지 않은 던전이었다. 하지만 살을 익어 버리게 할 정도로 내리쬐는 태양은 산박의 기분을 잡치게 하기 좋았다.

    * * *

    강합은 여전히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 ‘라인’이 좋아서 이 도움, 저 도움 받기 좋아서였다. 여친을 나 몰라라 하고 아저씨들이랑 점심을 먹는 이유는 괜한 게 아니었다. 얻어먹을 게 있기 때문이었다.

    늙은 사람이여! 젊은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돈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 볼지어다.

    “강합 씨 맞지? 옥시무른인지 그 외국 기업에 다니고 있잖아?”

    “예? 외국 기업요?”

    “오호호홍! 아니야? 아무튼, 잠깐 이리 와봐.”

    매번 주문을 받아 가던 아줌마가 강합만 콕 집어서 말했다. 모두 어리둥절해할 법했는데 모두 웃고 있었다. 반면 강합은 당황하기도 해서 엉덩이도 일으키지 못했다. 솔직히 가게 보는 아줌마가 중매? 남에게 소개해 주기에는 좀 그랬다.

    “여기서 말하세요.”

    “아, 그래? 내가 갑자기 소개비를 받아서……. 그 태 사장이라는 분, 어떤 분이야?”

    “네? 갑자기요?”

    그 말에 다른 사무직 아저씨들이 웃었다.

    “나도 말해줬어. 하여간 꿈은 크신 분이니까, 그냥 말해줘.”

    “나도 궁금한데. 태 사장이라는 양반이 어떤 성격인지. 도통 말을 안 해주잖아?”

    너도나도 강합을 압박했다. 제법 돈을 먹은 티가 났지만 강합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황이 웃기기도 웃겼고, 그럴듯해서였다.

    “그게… 좀 냉철한 분이시죠. 냉정하다고도 할 수 있고요.”

    가장 먼저 단점을 말했다. 사람 소개하기에는 그른 모습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편견으로 조질 중매쟁이가 강합이었다. 그는 결코 중매와 소개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이 밝혀졌다.

    “좋은 점을 말해야지.”

    아저씨 하나가 훈수부터 툭 내뱉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해야 할까요? 워커홀릭 기질도 좀 있고요. 여자도 안 사귀고 일만 하신다니까요?”

    “칭찬이 아닌데.”

    “많이 당했나 봐?”

    “이해해 줘야지! 오늘도 트럭 몰고 서울까지 갔다던데. 사무직이 무슨 막노동이야, 뭐야? 화이트 셔츠 입은 사람한테 무슨…….”

    산박이 땀 흘리는 일에 사무직을 쓰자 화를 내는 아저씨도 있었다.

    “뭐, 그래도 저는 오랜만에 땀을 빼서 좋았습니다.”

    강합이 산박을 변호했다.

    “어허, 허허. 직원이 사장을 보호해 주는 거 보니까 그렇게 나쁜 사장은 아닌가 보네.”

    “돈보다는 사람을 생각하는 분이시죠.”

    강합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일화들을 이야기해 줬다. 특히 자신이 PTSD를 극복하지 못해 던전 공략을 포기하고 은퇴를 결정했을 때 자리까지 만들어 줬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그 순간만은 모두 대단한 호응을 보여줬다.

    “응, 고마워. 복 받을 거야!”

    이모는 그렇게 사라졌다.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프닝으로 생각해 되레 재밌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배가 든든해야 한다는 사장들의 마인드 덕분에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게 대한민국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30분밖에 주지 않는 게 보통이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죠?”

    “자주 봤는데 원래 저래. 전에는 꽃차 팔아서 뭐 해 먹겠다고 하더라고. 거기 텃밭에서는 그냥 상추 키운대. 그게 더 돈이 된대.”

    “상추는 인정해야지. 요즘 상추가 얼마나 비싸? 손바닥보다 작은 것도 한 묶음에 몇천 원은 해.”

    “어미 뒤진 중간 유통업자 누가 싹 다 안 죽이나 몰라.”

    “난 불로 소득으로 재미 보는 건물주한테나 죽창 찌르고 싶다.”

    “그것도 옛말이야. 그냥 건축사랑 투기꾼들만 재미 보는 거지. 공실 보면 몰라?”

    너도나도 아주 그냥 수십억 대 사업가처럼 입을 놀렸다. 집 대출로 30년 대출 노예가 되어서 한 달에 20만 원도 못 쓰는 직장인 주제에 주둥이는 자본가 저리 가라였다.

    그 정보는 자연스럽게 송서아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경호원 대유준이 말했다.

    “저,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굳이 개인적으로 태산박 사장을 알 이유가 있습니까?”

    “…….”

    “아가씨?”

    “응? 으응? 왜?”

    송서아의 모습에 대유준은 직감했다.

    ‘이거 파랑새가 왔구나.’

    원래 안 하던 사람이 하게 되면 급발진 하기 마련이었다.

    “아가씨, 결혼은 아주 힘든 거 아시죠?”

    “미쳤어? 무슨 결혼이야. 아직 연애도 안 해봤는데.”

    “그, 렇죠. 연애부터 시작해야죠. 근데 아시죠? 형님들, 그런 거 많이 신경 쓰시잖아요.”

    “지긋지긋해. 난 그 때문에 중학교도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쳐야 했어.”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송서아는 오빠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너무 지나칠 때가 있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글펐다.

    그때 송서아는 위축된 아이에 불과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줬기에 철창을 천국이라고 느꼈다. 차가운 철의 감촉조차도 꽃밭의 꽃으로 여겼다.

    그래서 지금의 송서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

    “근데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잖아요?”

    “잘생긴 사람이 사람 패고 죽이고 다니면 넌 사귈 거야?”

    “그럼 전 게이가 되는데요.”

    “아……. 그럼 미녀가 그렇게 하면 사귈 거야?”

    “그야… 예쁘면 여자 친구 정도로만. 결혼은 좀…….”

    그 말에 송서아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근데 정말로 이런 조사는 그만두세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이건 그 연애가 아니라……. 너무 좀, 딱딱하잖아요?”

    “딱딱해? 그럼 연애의 시작이 뭔데?”

    “예? 어… 그야 러브 레터…부터 시작하겠죠?”

    “요즘 세상에 러브 레터?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에이, 잘생긴 사람은 한 번쯤은 받는 게 러브 레터예요. 아직도 다이어리 좋아하는 여자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진짜 아가씨는…….”

    그가 뒷말을 삼켰다. 송서아가 무서운 눈으로 쳐다봐서였다.

    “연애 소설 5년 내로 순위권 10위 이내에 랭크된 것만 싹 다 가져와요.”

    “네? 제가요?”

    “그럼 누가 할까요? 옛날 생각 나게 해줄까요?”

    “아뇨……. 저, 저는 그럼…….”

    “네. 나가 보세요. 운전할 때 또 부를게요.”

    대유준이 고개를 숙이며 도망치듯이 나갔다. 그가 나가자 송서아는 조용히 있다가 컴퓨터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러…브… 레…터…….’

    탁탁탁탁!

    쓰자마자 바로 지웠다.

    ‘이건 미친 짓이야. 스무 살도 넘어서 반오십이 되었는데 러브 레터를 쓰는 성인 여성이 있다고? 거짓말일 거야.’

    그녀는 검색하지 않고 글자를 지우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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