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270)
  • 175화

    * * *

    산박은 문자를 받았다. 준달독 차장? 아니다. 주제도 모르고 어디서 감히? 한 번 마주했다고 그 급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이번에 그가 산박을 만난 것은 특수한 상황이라서였다. 송서아가 굳이 그를 세종시로 보내서였다. 그리고 계장급을 많이 이용하지 못한 것도 컸다. 수달군 과장부터 출장을 나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보통 은행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 뒤에 송서아가 있기에 가능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정체는 수달군 과장이었다. 그곳에는 부산의 한 한식당 주소가 적혀 있었다.

    태산박의 다음 행선지는 부산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부산 은행의 뒷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가 원했고, 그렇기에 그는 세종시를 떠나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야 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준달독 차장과는 더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있더라도 몇 년 뒤겠지.’

    그때까지 부산 은행이 산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터였다. 그를 만나려면 적어도 사업 규모가 제법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 갭 투자니 뭐니 허접한 대출은 과장 선에서 끝나고 그것도 영업을 안 뛰는 여자 과장 혹은 낙하산으로 내려온 계장을 마주할 것이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계급 없는 사회는 계급을 만든 지 오래였다. 자유로운 사회는 자유를 속박한 지 오래였다.

    SRT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산박은 시간을 확인하고 급히 택시를 탔다.

    “부전2동 길에 그냥 내려 주세요.”

    “아지야요, 어디 가는교? 무슨 길에 내려 달라고 해.”

    택시 기사는 말투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으며 싸움을 거는 것처럼 굴었다. 길바닥에서 방금 도축한 닭의 털을 뽑으며 말하는 백정의 말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것이었다.

    “그 부산장꼬막정찬이라는 곳인데……. 지도에는 복잡한 곳에 있어서요.”

    그 말에 얼굴이 새까맣게 탄 택시 기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마! 걱정 마쇼. 거~ 얼마나 유맹한 곳인데! 택시 기사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

    그렇게 말하며 택시 기사는 단번에 칼치기로 좌회전 차선에 들어섰다.

    빵빵!

    거칠게 소리가 났지만 택시 기사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급정거, 급출발은 기본이고 좌회전을 하는 순간에도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었다. 산에 있는 도시라 도로는 엉망이고, 사람들도 상남자의 기질을 타고났다. 웃긴 건 이 부산에서는 모닝을 타고 다니는 아줌마들도 한가락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모닝이 저렇게 무섭게 달리지?”

    산박의 말에 택시 기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남들 하는 거 보면서 배우는 거지! 이 부우싼에는 어잉? 운전 못하는 놈이 없어요. 왠지 알어?”

    “모르겠는데요.”

    “다 뒤졌거든! 파하하하하하!!”

    “하하…….”

    산박이 땀을 흘렸다. 자연스럽게 뒷좌석 창문 위에 있는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아~ 겁 많으시구만. 내가 이 바닥에서 운전대 잡은 지 벌써 15년요. 죽지 않으니 걱정 마쇼! 근데 어디 사람?”

    애초에 택시에서 그런 주제로 말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택시 기사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세종시에서 업무차…….”

    “경기도? 허어……. 딱해서 어쩌나? 서울 그거 완전 폐허가 됐다 카던데.”

    “예? 뭐, 시간 지나면 차근차근 회복되겠죠.”

    “아니이, 세금 말이여, 세금. 세금으로 수복하고 있는 게 좀 그렇다는 거지이.”

    택시 기사 하면 정치 주제가 빠질 수 없었다. 산박은 대충 대답하다 목적지에서 내릴 수 있었다.

    “동전은 가지세요.”

    “아따마, 상남자네. 하하하!”

    택시 기사가 크게 웃으며 좋다고 거스름을 챙기고 지폐만 건네줬다. 충무공이 그려진 오만 원권을 집어넣고 세종대왕이 그려진 만 원짜리를 척척 건네줬다.

    “수고하세요.”

    “아지야도!”

    손을 흔들며 택시 기사가 나아갔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산박의 귀에 빵빵거리는 클랙슨 소리가 거세게 고막을 때렸다.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평범한 한식당은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웨이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 반대편에는 예약 손님을 받는 곳도 있었다. 절반은 예약, 절반은 그냥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저, 태산박이라고 합니다.”

    “아, 예. 잠시만요.”

    예약자를 확인하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산박을 안내해 줬다. 룸이었고, 분위기가 상당했다. 한옥집인 것은 물론이고 한국적 풍미가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함 없이 가득했다. 다만 좌식은 아니었고,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었다.

    산박은 클래식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곳에는 이미 남자가 한 명 있었다.

    “태산박 사장님이십니까?”

    “예.”

    사내가 일어나며 악수를 권했고, 산박이 이를 잡았다.

    “저는 송한치(宋瀚緇) 상무라고 합니다. 부산 금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주인공이 이렇게 먼저 와계실 줄 몰랐습니다.”

    “하하하. 주인공 아닙니다. 그냥 태산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잠깐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산박의 말에 송한치가 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잘생긴 남자였다. 어디서든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말씀을 또박또박 잘하시네요. 스피치 연습이라도 했습니까?”

    “원래 이렇습니다. 말끝 흐리는 사람을 보고 난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요.”

    “그걸 실천하시다니, 자기 관리가 뛰어나신 듯합니다?”

    “그것보다 아까 말씀을 들어 보니 초대받지 못하신 것 같은데… 이렇게 계셔도 됩니까?”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그냥 걱정되어서 온 것뿐입니다.”

    “걱정이라뇨?”

    그 질문에 송한치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신 산박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했다.

    “결혼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까?”

    “제가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있습니까?”

    “가벼운 잡담입니다.”

    “죄송하지만 전 잡담을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닙니다. 물론, 저와 사업 이야기를 하실 분이라면 잡담도 재밌게 할 생각이 있습니다.”

    “…음,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좋은 태도는 아니군요.”

    협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소리였다. 이에 산박은 냉큼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없습니다.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를 많이 만나 보셨습니까?”

    “아뇨. 저 혼자 몸을 가누기도 힘든데 어떻게 여자를 만나겠습니까?”

    “좋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저 이익을 위해서 결혼할 수 있습니까?”

    산박은 들어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이에 송한치가 일어나서 산박과 강제로 악수를 하고 웃으며 손등을 탁탁 쳤다.

    “역시, 제가 보는 눈이 있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자기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어디까지나 달려가는 경주마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죠. 그런 사람들과 태 사장은 닮아 있습니다. 하하하.”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산박은 코웃음을 쳤다.

    ‘동래 송가도 엉망진창일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급작스럽게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부터 예의에 어긋났다.

    밖으로 나온 송한치 상무는 단번에 스마트폰을 놀렸다.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미쳤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응. 서아야, 네가 싫어하는 짓을 하니까 전화를 안 받았지.”

    ―둘째 오빠랑 첫째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 알았어? 진짜 미친 거 아냐? 그 자리를 왜 오빠가 가?

    “아니, 위험한 던전 사용자를 만난다길래 내가 얼굴 한번 본 건데 뭐가 나빠? 그리고 형들도 다 나보고 가라고 했거든?”

    그 말에 송서아는 배신감을 느꼈다. 가족 단체 톡방에서는 셋째 오빠의 돌발 행위라며 욕을 같이 해주기 바빴던 두 오빠들이 뒤로는 셋째 오빠를 밀어주고 있었다.

    ―두고 봐. 한 달 뒤에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어어? 서아야? 나 다음 달 생일인데……. 서아야? 아니지? 아니지?”

    통화는 그대로 끊겼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병약해서 던전 회복 아이템을 달고 사는 여자가 송서아였다. 그 덕에 부모는 물론이고 오빠들로부터도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과보호되고 있었다.

    예쁘기도 예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안 어른들조차도 다른 친척 애들보다 더 예뻐해 줬을 정도였다. 거기에 못하는 게 없고, 최연소의 나이로 부산 은행 지점장이 되기도 했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진행하고, 대유준은 차에 남았다. 서아는 소준석을 데리고 산박에게로 향했다.

    다른 예약자들이 명단을 확인하고 들여보내졌다면 송서아는 그냥 프리 패스였다. 자주 오는 음식점이었고, 애초에 이 음식점은 동래 송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한식처럼 균형 잡힌 식단을 조금만 하지 않아도 송서아의 컨디션이 저조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송서아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준석은 앉지 않았다. 대신 묵례를 하며 먼저 태산박에게 예의를 갖췄다. 태산박도 고개를 까딱했다. 그리고 송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산박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송서아 지점장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젊다.’

    ‘젊어.’

    시선이 닿았다. 서로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다.

    ‘아! 뭐, 야?’

    송서아는 순간의 거대한 심장의 고동 소리에 몸을 움찔했다.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감정이었다. 산박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은 태연했지만 속으로 크게 당황했다.

    ‘뭐야? 심장이 왜 이렇게 나대?’

    산박은 조금 급하게 물 잔을 잡아서 물을 들이켰다. 그는 본능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동요를 감출 수 있었다. 반면 송서아는 목이 조금 붉게 변했다. 이를 파악한 소준석이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어, 으응…….”

    송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석을 손으로 밀어냈다.

    그녀의 새하얀 손가락이 앞 머리카락을 만지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움직여 검은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손톱에는 그 흔한 매니큐어도 발라져 있지 않았다. 독하기 때문이다. 송서아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집중하자.’

    그녀는 지금 이 가슴의 두근거림을 밀어냈다. 그녀에게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일단 마음 한구석으로 걷어찼다.

    “준 차장과 수 과장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송 지점장님에 대해서 듣지를 못했습니다.”

    “누가 함부로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는 사람만 알 뿐이죠.”

    송서아가 담백하게 말했다. 식사하며 송서아는 태산박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사업의 시작, 팀원 중에서 돋보이는 사람, 던전 사용자의 삶.

    “그러면 나중에는 사업을 더 많이 하신다는 겁니까?”

    그녀의 말에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레벨이 높아지고, 더 많은 직원들이 있을 텐데요.”

    “거기에 드루이드잖습니까?”

    그녀의 딱딱한 말투에도 산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서아의 시선이 그 미소에 확 집중됐다.

    ‘잘생겼다.’

    하지만 그 집중은 0.5초도 가지 않고 음식으로 뚝 떨어졌다.

    “예. 드루이드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라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서로에 대해서 알아 갔는데, 듣던 소준석이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취미는요? 따로 가지고 계신 게 있습니까?”

    “일에 파묻혀 삽니다. 송 지점장님께서는요?”

    “저도 일 집 일 집입니다.”

    “그래도 젊으시면……. 아, 저도 젊지만. 하하하.”

    산박이 웃음소리를 내자 송서아도 웃음소리를 냈다.

    ‘으응?’

    서준석이 이상한 기류를 포착했다. 썸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딱 식사 시간까지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로열티를 11%나 달라고 하셨는데,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받는 곳도 있습니다.”

    “인프라 구축이 필요 없고 자본을 크게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이나 그런 분야에서나 가능하고 옛날에나 그런 사례가 있었을 뿐입니다. 현재와는 맞지 않습니다.”

    산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욕심도 없었다.

    ‘부산 은행은 엄청나게 팔겠지.’

    로열티가 적어도 많이 팔면 자연스럽게 그 덕을 크게 볼 수 있었다.

    “송 지점장님은 몇 퍼센트가 적정선이라고 보십니까?”

    “공장이 필요하다는 점이 크기 때문에 5.5%에 만족하셨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개인에게 돌아가는 돈은 평범한 수준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산박이 단번에 수긍했다. 이러려고 준달독 차장에게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싶을 정도로 쉬웠다. 하지만 송서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이 비율을 가져가시려면 잔잔벼락 사업의 ‘울타리’가 얼마나 견고한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에 산박이 입을 열었다. 송서아의 눈이 그 입을 바라봤다.

    “오미자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소준석이 테이블 아래에 있는 벨을 능숙하게 눌렀다. 곧 종업원이 오고, 추가 주문을 받아 갔다. 하지만 산박은 그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경호원 없이 송 지점장님과 말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소준석이 말했다. 산박의 눈이 송서아에게로 향했다.

    “왜 저를 보십니까? 당연히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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