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174/270)
  • 174화

    * * *

    “어? 사장님?”

    아침 출근 하는 강합이 놀라며 산박에게 다가왔다.

    “출근 시간 항상 지키시는군요.”

    “예. 요즘 일거리가 많아서……. 팀원들 사무 일을 봐주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도 다 한다고 하더군요. 부동산부터 은행 대리까지 난리도 아닙니다.”

    “하하하.”

    산박이 웃었다. 거의 개인 비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라도 안 하면 월급 받는 의미가 있습니까?”

    “그건 그렇긴 해도 강도가 점점 강해지니까요. 힘들어서 하는 소리입니다. 근데 사장님은 이렇게 아침 일찍 무슨 일로?”

    “아침 일찍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벌써 열 시인데요.”

    탄력적 근무제를 하기 때문에 강합은 자연스럽게 열 시 출근이 굳어진 상태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홉 시에 일어나는 게 최고였다. 아침형 인간? 싸대기 맞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다.

    “서 팀장이랑 탕만 씨도 오라고 했으니까, 두 분 오면 강합 씨도 같이 들어오세요.”

    유일하게 분리가 된 사장실로 들어가 산박이 문을 닫았다. 그는 아직도 2레벨 던전 정보를 암기하는 데 시간을 제법 할애하고 있었다.

    곧, 점심 전에 충호와 탕만 그리고 강합이 들어왔다. 산박은 곧장 서류를 세 부 나누어서 그들에게 줬다.

    “이게 뭡니까?”

    “회사 차원에서 작은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수익을 세 분에게 적당히 나눠 드리려고요. 회사의 중요 인물 아닙니까?”

    그 말에 충호의 시선이 강합에게로 향했다. 그가 중요 인물? 그럴 리가 없었다.

    ‘무슨 생각이신 것인지, 잘 모르겠네.’

    반면 강합은 산박이 ‘잔잔벼락 사업’의 대체재로 이걸 주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강합만 입을 다물면 박조조는 나머지 절반의 레시피를 알 방법이 없었다.

    ‘한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꾸준한 돈을 원하는 사람이 있지.’

    강합은 후자였다. 당장 월급쟁이인 것이 그였다. 그전까지는 잔잔벼락 사업 때문에 제법 목돈을 만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목돈마저도 꾸준히 들어오는 수익이었다. 한탕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서만주까지 가야 하는 게 잔잔벼락 사업이라서 돈 들어오는 날짜도 뜨문뜨문했다. 꾸준히 저축하듯이 해야 했던 사업이었다.

    ‘충호랑 탕만은 세트지.’

    A급 전사는 스카웃당하기 쉽다. 반면 B급 전사는 자기 자리 유지하기도 힘들다. 고로 두 사람 간의 정(情)이라는 놈을 최대한 밀어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자주 보도록 해야 했다.

    “그냥 돈을 다달이 받는 게 아닙니다. 던전 사용자이기에, 그만한 일을 하셔야 합니다. 회사에 속한 직원의 신분을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해지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서류, 다음 장으로 넘겨 주세요.”

    “예.”

    “…수익은 4등분입니다.”

    세 명이 일을 하지만 공돈 얻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연히 산박이었다.

    “물 원가가 이렇게 싸요? 2L가 300원이네요?”

    “예. 평균 판매 가격은 950원 정도죠.”

    “중간에서 몇 배나 해 먹는 거야?”

    모두 어처구니없어했다.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가격과 원가의 차이가 너무 심해도 이렇게 심할 수가 없었다. 무려 세 배가 넘게 차이가 났다.

    “원래 그런 겁니다. 유통 쪽은 그 누구도 못 건드려요. 푯값이랑 직결된 거라서.”

    건물 속에서 스마트 농법을 하려는 기업을 농기구로 다 때려 부수는 게 한국인이었다.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끝장으로 달린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었다. 하려면 법으로 건드려야 하는데, 법을 올리는 곳은 푯값으로 좌지우지된다. 그 어떤 정치인도 하기 싫은 짓인 셈이었다.

    “한 달에 11만 2천5백 원씩. 일 년이면 135만 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한 달에 겨우 백만 원 버는데, 일 년에 그들 한 사람의 월급봉투 하나 가져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는 없었다. 달마다 11만 원이면 큰돈이었다. 누군가의 일당보다 높았다. 그 사람이 땀 흘린 하루를 그냥 공짜로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 분은 아시겠지만, 앞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게 물의 연어 소환 주문입니다. 매년 혹은 2년마다 계약서 갱신을 할 겁니다. 수익 때문에요.”

    “옙.”

    모두 대답만 알차게 했다. 그 외의 그 무엇도 필요 없었다. 오로지 굴복. 그것만이 이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이었다. 공짜로 돈이 들어오는데 딴소리할 놈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강합 씨.”

    “예.”

    “자주자주 해당 공장에 들러서 관리하는 척이라도 하세요.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거라서요.”

    “예…….”

    예상외의 일 처리가 강합에게 떨어졌다.

    ‘어쩔 수 없다.’

    장 노인을 무조건 믿을 수 없었기에 틈틈이 확인을 해봐야 했다. 물의 연어의 거처를 공장 내부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의 연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루 300L. 오직 그것에 대한 생수 수익을 30% 떼어서 그들에게 주는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장 노인도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앞으로 부산 은행과의 행보가 어찌 될지 모르니까, 장 노인을 만족시켜 줘야 한다.’

    생수 사업은 안 팔릴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도 생수로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이 절대적 다수다. 가격 경쟁을 하기도 좋았다.

    ‘얼마든지 계약을 철회할 수도 있고.’

    실제로 장 노인은 한 달에 4백만 원 이상의 매출을 물의 연어를 통해서 올릴 수 있었다. 이걸로 더 공격적인 사업이 가능할 터였다. 고로 자연스럽게 생수 산업에 힘을 기울일 수 있고, 이는 곧 산박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 중 하나가 될 공산이 컸다. 그렇기에 장 노인에게 7할을 떼어주는 것이었다. 애초에 생수를 생산하는 공장이 장 노인 가문의 것이기도 했다.

    ‘장 노인의 가업을 도와주고, 그 가업에 내 비중을 높인다.’

    거위 배를 가를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 거위를 지키는 데 힘을 쓸 터였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혈족을 거느리고 있는 게 부동 지구라는 촌 동네의 힘이었다. 사람이라는 힘. 그건 산박은 결코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도 그 휘하에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뿐이고, 그들도 산박에게 깊게 속한 게 아니라 돈과 경력 때문에 모인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너도나도 산박에게 고개를 숙였다. 돈 주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돈을 주기 때문에 갑질도 가능했다. 이제는 정말 자연스럽게 산박에게 고개를 냉큼 숙였다.

    카리스마도 결국에는 돈이 있어야 했다. 돈 없는 왕 아래에 어떤 기사가 있겠는가? 늙고 노쇠하고 애꾸눈인 기사도 없을 터다. 며칠 굶어보면 정신이 번쩍 들며 깨닫기 마련이었다. 충성보다는 밥 한 끼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강합은 이걸로 당분간은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고…….’

    나머지 시간을 부산 은행과의 만남에 투자하기로 한 산박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한동안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던진 떡밥은 두 개.’

    하나는 로열티 비율, 다른 하나는 갈대 씨앗과 청동 가루로 만들어지는 에너지 브론즈 공법이었다. 청동 가루의 확보가 언제든지 가능하다면 그 누구도 잔잔벼락 레시피를 알아내지 못할 터였다.

    ‘청동을 만들어서 문화 체험 하고, 실제 주문을 인터넷으로 보내는 곳을 만들면 끝이지.’

    그곳에서 나오는 가루를 써도 무방하고, 실제 주문을 배송을 통해서 공장으로 보내면 그만이다. 가족이 이를 처리하면 아주 비밀스럽다. 특히 가루가 적게 들어간다는 것이 주효했다.

    ‘몸이나 배낭에 숨겨서 옮길 수 있다.’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지.’

    하나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 은행이다. 애초에 두 가지 꾀를 내어서 준달독 차장의 위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더는 볼 기회가 없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산박은 머리가 타들어 갈 정도로 고민했다. 카페인을 섭취하고 달달한 커피를 새벽 두 시까지 홀짝이며 인터넷도 뒤졌다.

    “후우…….”

    소득은 전혀 없었다. 실로 아쉬운 일이었다.

    * * *

    행동 대장 추자해구는 명의를 도용한 대포 차량의 조수석에 앉은 채 밖을 바라봤다. 트럭 상인들이 자주 오는 던전 물류 센터였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던전 아이템을 구할 수 있었다. 가장 잘나가는 건 역시 사용 인구수가 가장 많은 ‘1레벨 던전 아이템’이었다. 값이 싼 만큼 수요도 많았고 공급도 많았다.

    “저 트럭입니다.”

    박조조 트럭 상인의 트럭이었다. 단번에 액셀을 밟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늦은 밤까지 박조조를 따라다녔다. 들킬 법도 했지만 그건 드라마나 관련 현직에 종사하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대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주변 환경을 잘 둘러보지 않는다. 평화롭기 때문이다. 자신이 범죄에 휩쓸린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어폰 꽂고 길을 걷다가 한순간에 차와 부딪쳐서 그대로 죽는 사람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모르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결말이 똑같았다.

    “읍!”

    트럭에서 내린 박조조를 그들이 양옆에서 단번에 덮쳤다. 트럭 차체가 커서 주차하고 나서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큽.”

    약 냄새가 코를 강렬하게 찔렀다. 그걸로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박조조는 이내 기절해 버렸다.

    이들은 박조조를 단번에 차에 태우고, 손발을 묶고, 얼굴에 천을 씌우고 입에 구멍을 작게 내줬다. 손을 뒤로 묶어서 질식사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코 손을 앞으로 묶지는 않았다. 공격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정했던 대로 움직여서 세종시 서쪽에 있는 ‘국사봉’산에 속한 ‘밤실 소류지’ 인근의 숲으로 깊게 들어갔다. 워낙 무식한 놈들이라 정신 나간 짓이 가능했다.

    촤악!

    흙냄새와 숲 냄새가 코로 맡아지며 콧물이 주룩 나오는 야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손발이 묶인 박조조의 얼굴을 덮고 있는 천에 생수 500ml를 그대로 콸콸콸 쏟아부었다.

    “크…헉! 커헉! 헉헉! 켁!”

    박조조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헉! 헉…….”

    숨소리는 빠르게 진정됐다.

    “박조조 트럭 상인 맞나?”

    “아뇨. 아닌데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지랄하네, 미친 새끼가!”

    조직원 간한적산이 단번에 박조조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억!”

    박조조의 몸이 들썩였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흙냄새, 나무 냄새 그리고 거친 바람 소리.

    “사라아아암! 사라아아암 살려여어어어어!”

    고함을 내지르자마자 돌이 박조조의 이빨을 후려쳤다. 입술이 짓이겨지고 이빨이 부서졌다.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이 새끼가, 또 지랄해봐. 그때는 다음 없어.”

    “야, 이렇게 조져 놓으면 말은 어떻게 하니? 생각이 없니? 으잉?”

    “죄송합니다.”

    “도와줘라.”

    추자해구의 말에 곤료총림이 간사하게 혀를 놀렸다.

    “뭐 하냐? 빨리 뭐라도 해.”

    그 말에 초약렬염이 혀를 차며 숨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 이빨을 뱉도록 도와줬다.

    “…….”

    박조조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날것 그대로 피가 쏟아져 내려오는 상황 속에서 박조조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태산박 사장에 대해서 모든 걸 말해야 할 거다. 우리도 제법 조사를 했다. 하나라도 다르면 죽는다. 어이!”

    “예!”

    추자해구의 말에 다른 이들이 냉큼 대답했다.

    “삽으로 땅 파라. 이 새끼가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어?”

    “예!”

    조직원들이 가져온 삽으로 거침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네 명 모두 던전 사용자였고, 전부 근접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거침없이 땅을 파는 소리가 박조조의 귀를 파고들어 왔다. 공포스러운 소리에 박조조가 닭똥같이 눈물을 흘렸고, 코를 먹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천이 적셔지는 모습에 추자해구가 혀를 쯧쯧 찼다.

    “왜 울고 그러냐, 사람 마음 아프게. 그러니까 왜 거짓말을 해? 처음부터 고분고분했으면 이런 건 안 했을 텐데…….”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제발요. 제발!”

    박조조가 오열했다. 말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가 지쳐서 울지 못하게 됐을 때 박조조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어~! 오랜만에 땀 배니 기분 좋다!”

    “킬킬킬. 지랄, 어제도 그렇게 허리 돌리면서 힘썼으면서.”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너도나도 농담을 던지고 낄낄거렸다. 그 속에서 박조조는 혼자 침묵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했다.

    “응. 고마워. 이렇게 협조적이면 얼마나 좋아? 응?”

    추자해구가 박조조의 목뒤를 거칠게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악! 아, 아으아아아아악!!”

    박조조가 발악을 했다. 추자해구는 박조조를 거칠게 구덩이에 집어 처넣었다.

    “흐윽! 흐아아아악!”

    지랄 발광을 해대는 박조조를 보며 추자해구가 말했다.

    “더 말할 거 없어? 없으면 이거 진짜 아쉽게 됐어.”

    “있습니다! 있어요! 잔잔벼락의 레시피 절반요! 그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겠지.”

    추자해구가 다시 박조조를 구덩이에서 끌어당겼다.

    “허억! 허억! 헉헉!”

    박조조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과호흡 증세가 오려는 걸 본 추자해구가 박조조의 복부에 주먹을 구겨 넣었다.

    “욱!”

    “숨 너무 쉬지 말아. 그러다가 병원 가야 하니까. 당분간 조용히 지내게 될 거야. 먼지가 좀 나오는 후미진 반지하에 월세를 얻었거든? 너무 떠들지 마. 떠들면 옆에 지키는 애 보고 그냥 멱따라고 할 테니까.”

    제법 중요한 걸 알고 있는 박조조는 일단 명줄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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