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270)
  • 173화

    * * *

    준달독 차장과 태산박은 다시 한번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만남을 가졌다.

    “이번에는 제발 좀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 돈이 되고 피가 되는 건데 어찌 허투루 합니까?”

    차장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산박은 너무 깐깐한 양반이었다. 상관으로 만나면 욕을 많이도 했을 터였다. 반면 나랏밥 먹고 사는 자였다면 국위 선양 제대로 했을 양반이 태산박이었다.

    ‘팍팍한 양반일세.’

    백성에게는 욕 처먹어도 뒤 시대의 사람들은 영웅이라 추앙할 수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젠 좀 그만 만나고 싶었다. 준달독 차장은 특히나 더 그러했다. 빨리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넘을 산이 많았다.

    “로열티 비율은 조금 생각해 보셨습니까?”

    “일단 기대 영업 이익률부터 말씀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계산하신 게 있을 텐데요.”

    “기대 영업 이익률이라고 해봤자 말 그대로 첫 사업 아닙니까? 그걸 어찌 계산하겠습니까?”

    “그래도 한번 말씀을 해보세요. 제가 몇 %의 가치가 있습니까? 제가 가져가야 할 배분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입니까?”

    “가장 먼저 공장을 짓는 데 얼마를 투자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돈 얘기가 절로 나왔다. 공장 하나 짓는 데 들이는 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수십 명이 떵떵거리며 평생을 살 돈을 쏟아붓는 게 최첨단 공장이었다.

    그렇기에 AI가 발전을 해도 사람의 일자리는 언제나 존재했다. 기계를 쓰는 것보다 사람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서 반복 일을 시키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예상외로 인간의 인건비는 기계보다 싸다. 적당히 자동화를 해도 결국에는 인간보다 돈이 안 된다. 그게 현실이라는 놈이었다.

    “계속 말씀하십시오.”

    산박은 변명 하나 하지 않았다. 공장 짓는 데 자기가 아무리 기를 쓰고 돈을 집어넣어 봤자 1%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비밀 엄수를 위해서 혈족이 건설에 참가하고 완전 자동화를 할 생각인 것이 부산 은행이었다.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

    회사도 여럿 쓰면 아무 상관 없이 잘 끝마칠 터였다.

    “하면 제대로 할 생각입니다. 국내부터 국외까지 현지 협력 업체 앞세워서 점진적으로 점유율을 올릴 생각입니다. 유통 쪽이나 무역에 회사 하나 가지고 계십니까?”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는 힘쓸 수 없었다. 고로 다음은 유통을 조졌다. 준달독 차장의 말에 산박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박조조? 1년 365일 스물다섯 시간 돌아다니면서 물건 팔아도 부족했고, 그런 일을 할 박조조가 아니었다. 워라밸도 못 챙겨주는 직장은 사장 뚝배기를 뚝! 깨부숴도 무죄를 해줘야 할 만큼 무서운 곳이었다. 고로 당연히 불가능했다.

    “말씀 계속하세요.”

    그렇기에 산박은 또 변명 한마디 못 했다. 그렇게 원투 펀치를 그대로 맞는 모습에 준 차장이 미소를 지었다.

    ‘고소하다.’

    기반도 없는 놈이 사업이라니, 눈탱이가 밤탱이도 아니고, 웃음만 나왔다.

    “그것뿐만이겠습니까? 던전 사업은 위험이 따르지요. 경호원부터 시작해서 판매 대행업체 선별은 물론이고 모든 일을 대신 진행하고 관리할 인사도 필요하죠.”

    그 수많은 조건들 속에서 산박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많이는 쳐드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말을 모두 들은 산박이 이내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레시피가 유출될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죠. 맞습니까?”

    “아무리 핏줄이 중요해도 흘러갈 가능성은 있죠.”

    “제대로 작업 친다면, 재료는 알 수 있겠죠. 그걸 어떻게 속이겠습니까?”

    산박은 스스로 단점을 입에 담았다. 준 차장으로서는 기분이 이상했다.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꼴 아닌가?

    “속일 수야… 없죠.”

    “결국 로열티율을 높이려면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지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예.”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가능하다…고요?”

    준 차장이 의문을 표시했다. 재료는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걸 숨길 수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아무리 높게 보안을 지켜도 뚫리는 게 방패 아니겠습니까?”

    “하나.”

    “예?”

    “딱 하나의 재료가 이곳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겁니다. 흔해서 어느 곳에서나 구할 수 있죠. 그렇기에 숨기기도 좋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대장간 하나, 문화 체험 캠페인만 하나 있으면 됩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확실히 현실화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요는 가짜 사업을 내세우고 그 뒤로 해당 자원을 당겨 와서 사용하는 셈이었다.

    “참 나……. 좋습니다. 근데, 그게 뭡니까?”

    “말해도 됩니까?”

    준 차장이 부산 은행, 그 내부에서 확실한 영향력을 가졌는지를 산박이 돌려서 물었다.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안 됩니다. 하지만 메일 하나는……. 아니, 잠깐만요.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부탁하겠습니다.”

    일찍 끝내자고 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준 차장은 갈피를 못 찾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산박이 씨익 웃자 준 차장이 헛기침을 했다.

    “참, 짓궂으십니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말씀하시지.”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지가 로열티 책정의 가장 큰 부분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많이 해 봤자 5%도 안 되는 거 아시죠? 생명 공학, 의료 쪽도 평균 5%입니다.”

    “최대는요?”

    “예? 최댓값요? 에이, 그건 말해 봤자 의미가 없죠.”

    “그렇긴 하죠.”

    산박은 준 차장의 말에 냉큼 뒤로 뺐다. 하지만 5%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11%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의 11%요? 그건 너무 폭리입니다.”

    “한번 전달은 해보시고 그렇게 말씀을 해주세요.”

    “음…….”

    준 차장이 눈썹 윗부분을 손으로 긁었다.

    ‘이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약에 있어서 간단하게 결정하면 그만이라 여겼지만 태산박은 몇몇 ‘무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언급했고 그건 준 차장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들뿐이었다. 그조차도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로열티를 높게 부른 것은 산박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이 사람 다음에 나올 사람을 보고 싶다.’

    욕심이 생겼다. 특히 부산 은행의 생각을 준 차장을 통해서 확인하고 나니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100% 자동 공장. 그만한 걸 지으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추진할 생각을 가졌다.

    ‘절대 다시는 못 만나는 사람이 지금 이 일에 손을 대고 있다.’

    10년에 한 번? 어림도 없다. 대통령처럼 한 번 직접 보기도 힘든 사람일 공산이 컸다.

    ‘그런 돈과 사업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나와 만날 인연이 없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 또한 두 가지의 일을 제대로 끝맺음 하고 싶을 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 아이템을 지킬 방법. 산박에게 주는 로열티. 이 두 개를 처리하는 데에는 더 높은 자가 나서는 게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유도를 했다. 그 외에는 모든 걸 합의하고 대부분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사인은 모든 걸 결정하고 나서 해도 되죠?”

    “그럼요.”

    두 사람이 일어났다. 악수를 나누고 떠나갔다.

    물론 이 녹화본을 첨부한 보고서를 본 송서아는 편안한 표정은 지을 수 없었다.

    “덫이긴 한데, 내가 안 가면 안 되는 덫이네.”

    “그냥 갔다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놈과 엮이면 난리 난다고 하던 사람이 누구더라?”

    “…….”

    “어떻게 할까…….”

    송서아는 고민했다. 자신보다 급이 떨어지는 가문 사람을 보내도 괜찮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숟가락을 얹게 된다.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산박이 던진 떡밥이 실로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 * *

    인천 공항. 선글라스를 낀 일단의 남자들이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뭐가 이렇게 좋아? 서울 폐허 되고 끝장나서 나라 이름까지 바뀐 곳이라더만?”

    “한민족 아닙니까, 행님.”

    “지랄.”

    그들은 단번에 택시를 타고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잠을 청하고 로비에 모였다. 푹신한 소파보다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커피를 앞에 두고 잠을 쫓기 바빴다. 이들은 대련(다롄) 항구 도시의 지역 카르텔 크루키히(Khoorkhii)의 조직원들이었다.

    만주로부터 들어오는 비행 편은 대한민국에는 없다. 고로 그들은 중국 쪽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야 했다. 이는 현재 서만주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던전 경제로 부흥을 했음에도 대우가 형편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주의 경제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대한민국으로는 가고 있지 않았다. 2위는 당연히 56국으로 분열되어 버린 중국이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고려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그 어떤 뿌리도 한국인과 같지 않았다.

    행동 대장 추자해구(锥子海鸥). 조직원 초약렬염(草药烈焰), 곤료총림(困了丛林), 노향왕(老向往), 간한적산(干旱的算). 중국식 이름으로 개명당한 지 오래였고, 그건 거의 보편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를 되돌릴 민족적 움직임조차 없었다.

    “대장님, 사무실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초약렬염이 두툼한 입술로 나불거렸다. 담배를 어찌나 피우는지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입술은 거무튀튀했다. 거기에 이들 모두 북방 민족답게 떡대가 대단했다. 씨름부가 모인 것처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사무실은 무슨. 너 이 새끼, 내가 지금 허리띠 풀어서 여자 만져본 지 며칠이 지났는지 알기나 알아?”

    “예?”

    초약렬염이 멍청한 소리를 내는 사이에 곤료총림이 냉큼 간사한 혀를 놀렸다.

    “한국 여자들이 그렇게 피부가 희고 곱답니다. 제대로 맛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들어 보니 경찰도 단속을 날 잡아서 하지, 평소에는 누구나 드나들도록 하고 있답니다. 신고해도 안 잡는다더군요.”

    “선비의 나라는 무슨……. 선비가 되고 싶은 나라네. 원래 그래. 자기들이 부족한 걸 내세우고 자랑하는 거라더라. 근데 한국 여자는 맛 좀 보고 싶긴 하다. 흐헤헤.”

    그들이 절로 웃음소리를 냈지만 노향왕만은 조용했다. 척 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성미가 강한 노향왕이었지만 대화에 전혀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 누구도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사람 죽이는 실력은 노향왕이 행동 대장 추자해구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추자해구 행동 대장이 노향왕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우리는 창녀촌으로 갈 생각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오는데, 너는 어떻게 할 셈이냐?”

    “약속 잡아 놨습니다. 전부터 연락하던 형이 있는데, 동생 나 미치는 꼴 보고 싶냐고 하도 만나자고 그래서 오늘 만날 생각입니다.”

    “으, 제기랄.”

    모두 몸을 떨었지만 불만 하나 내뱉지 못하고 혼잣말하듯이 욕을 내뱉는 것밖에 못 했다. 게이 새끼는 먼저 일어났고 다른 이들은 창녀촌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현지 조폭들에게 현금을 줘 정보를 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바로 심부름센터 같은 곳에 가지는 않았는데, 현지 조폭을 이용해서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르기 때문이었다.

    한 발 빼고 가슴 좀 주무르다가 나온 행동 대장 추자해구는 대포 폰을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매만졌다.

    “한국 도착했습니다, 형님.”

    ―그래, 근데 도착 시각보다 보고가 좀 늦다?

    “헤헤, 쌓인 게 많아서 좀 푼다고…….”

    ―이 새끼가……. 사타구니 그만 좀 생각해.

    “예.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사과한다. 그게 우직한 추자해구의 사회생활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일에 투입될 수 있었다. 믿을 만한 아랫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놈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추자해구가 순중가를 언급했다. 혹시라도 상황이 변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일 없다. 의사는 뇌 정지가 왔다고, 사망 처리 하라고 하더라.

    “그럼 추가 정보는 없겠군요.”

    ―충분히 나오고도 남았지. 박조조라는 트럭 상인부터 털어. 대가리를 찾아. 죽여도 되지만 정보부터 얻고 죽여. 알았어?

    “예, 형님.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여자 좀 그만 처먹고 다니고. 차라리 술이랑 담배를 하란 말이야.

    “아니, 유전자인가 뭔가, 남자의 본능 아닙니까. 그… 생물학적인 그런 거 아닙니까?”

    ―새끼야. 이혼 세 번 한 내가 말하는 게 진리야. 다른 놈들이 말하는 거? 싸악 다 거짓부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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