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70)
  • 171화

    장굉려가 한옥 대저택의 입구에서부터 산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산박의 말에 굉려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어째 피부가 더 좋아지셨습니다.”

    “장 어르신 좀, 어떻게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산박이 단번에 장 노인에 대해서 언급했다. 장굉려의 의견대로 그를 임시 팀원으로 놔두니 장 노인이 성화였다. 제대로 굴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강제로 그렇게 하면 팀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석이지만, 열의와 실력은 똑같이 노는 경우가 잘 없었다. 20%의 노력과 80% 재능이 모든 걸 결정한다. 장굉려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꼭 필요한 팀원이었다.

    “저도 포기했습니다. 2레벨 장비도 벌써 구매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군요. 다음 던전 공략 때는 꼭 데려가야겠습니다.”

    “예.”

    두 사람은 마당을 지나고 몇몇 별채를 넘어 장 노인이 사는 곳에 들어섰다.

    “음! 왔어?”

    “예. 어르신, 잘 지내셨습니까?”

    “많이 바쁠 텐데, 이렇게 미리 와도 괜찮겠어?”

    “제가 괜히 일찍 왔겠습니까? 제가 모르는 거 가르쳐 주십사 하고 일찍 온 것이지요.”

    “역시 수완가야, 수완가. 어여 들어오고, 굉려야.”

    “예.”

    “넌 가서 술이나 가져와라. 난 요즘 건강을 차려야겠으니 데운 술로…….”

    “술이 백해무익한데 무슨 건강을 차립니까?”

    “효능이 좋다는 연구 결과가 많잖아.”

    “주류 회사가 후원금을 전달하는 연구소의 말은 믿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티격태격하면서 장굉려가 물러갔다. 장 노인과 오랫동안 한집에 살면서 제법 기고만장해진 모습이었다.

    “저렇게 놔둬도 괜찮습니까?”

    조금 경박했고, 예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장 노인은 웃으면서 이를 넘어갔다. 산박은 몰랐지만 장굉려의 재능은 단순히 암살과 공격형 던전 사용자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맡기면 다 할 줄 아는 놈이다.’

    곁에 오래 두고 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 노인은 저 욕심 없는 장굉려를 사원을 관리하는 데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산박의 손을 잡으며 장 노인이 말했다.

    “장굉려를 잘 부탁하네. 결코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야. 자네도 몇 번 던전 공략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네.”

    “걱정 마십시오. 그는 훌륭한 던전 사용자니까요.”

    산박이 장 노인을 안심시켰다. 그는 장 노인만큼 장굉려를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알 만큼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장 노인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 이상 말해 봤자 깨닫지도 못할 터였다.

    술을 마시면서 장 노인은 산박에게 부산 은행에 대해서 말해줬다.

    “던전 사업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중개 사업이고, 자기 이름도 안 쓰고 있지.”

    부산이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퀄리티를 내야 한다. 특히 부산 금융과 부산 은행은 부산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그 인간관계는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중국의 꽌시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투리를 쓰지 않거나 쓰까 묵지 않으면 호통 세례를 받을 정도! 서울 가서도 사투리가 안 고쳐지는 갱상도 싸나이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런데 이 중개 유통은 대중들에게도 잘 안 알려지잖아?”

    “그렇죠. 무역 회사 이름 꿰차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하하하!”

    산박이 장 노인의 말을 받았다. 물건이 어느 유통사를 거치는지, 어떤 중개인에게 물건이 가는지 까막눈인 게 대중이었다. 마트에 오기만 하면 거기서 끝이다. 그 이상은 귀찮아서, 삶이 힘들어서 보지 않는다.

    “근데 왜 자네한테 관심을 가지겠어? 스타트를 크게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적당히 시작할 만하지. 적어도 남들은 못 가지는 걸 가지고 있을 테니까.”

    “예. 그렇겠죠.”

    산박은 그걸 들으면서도 의문이었다.

    ‘장 노인이 부추겼을지도 모르지.’

    그에게는 손해다. 자기보다 강한 뒷배를 불러온 것이나 다름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날 안다.’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기보다는 늑대와 동침을 하는 게 낫다. 부산 은행이 호랑이라면 장 노인은 늑대였다. 산박은 차라리 늑대와 함께하는 걸 택하는 자였다.

    ‘오히려 장 노인의 가치가 높아졌다.’

    부산 은행의 영향력에 산박은 압사당하기 쉽다.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자는 현재로서는 장 노인뿐이었다. 다른 자는 믿을 수도 없고, 찾기도 아쉽다. 최대한 적은 사람이 자신을 알았으면 하는 게 산박이었다.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소득과 손해가 다 다르다.’

    그 수많은 지표 속에서 장 노인이 부산 은행을 끌어들이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언젠가 호랑이가 몰려온다고 생각했겠지.’

    장 노인의 입장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을 터다. 갑자기 부산 은행이 방침두로부터 튀어나왔으니. 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삼기를 택했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말처럼, 어차피 들킨 거 부산 은행과 적당히 어울리는 게 좋다는 판단은 썩 나쁘지 않았다. ‘늙은 사람’이 할 만한 무난한 선택이었다. 이는 산박도 잘 알았다.

    ‘가장 먼저 거리가 멀다.’

    세종시와 부산은 먼 거리였다. 거리가 멀면 자연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 외에도 수많은 조건들이 장 노인을 안심시켰을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부산 은행에는 던전 기업이 없다.’

    용병 쓰듯이 경비업체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고로 장 노인처럼 현실에서만 산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만약 인천 네크로맨서들… 포스코 타워였다면 기를 쓰고 막아 줬겠지.’

    현실과 던전, 두 곳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게 포스코 타워였다. 하지만 부산 은행은 그렇지 않았다.

    ‘보수적인 투자사.’

    장 노인의 취향과 비슷하다.

    홀짝.

    서로 술을 기울였다.

    “부산 은행이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까?”

    “흐흐, 그럼 너한테 뭘 더 기대해? 이번 일은 부산 은행 내부의 지점장 하나, 그 사람의 커리어 한 줄이다. 명분 만들기지.”

    “명분… 만들기요?”

    산박이 기분 나빠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근데 상대편에게는 승진의 명분으로 삼을 커리어의 한 줄이라니.

    “그래, 이놈아. 그러니까 나도 쉽게 부산 은행을 끌어들인 거야. 봐라. 강한 사람보고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어? 괘씸해서 들어와서는 다 때려 부수겠지.”

    “대신 와라, 와라 하면 쉽게 넘어간다?”

    “그렇지.”

    그게 진실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간사한 혓바닥일지 담백한 현실일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닐지는 오직 장 노인만 알 것이었다.

    “그럼 오늘 만날 사람도 진짜 뒷배는 아닌 겁니까?”

    “당연하지, 멍청한 놈아.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만나? 네가 성골이야?”

    “그놈의 성골, 부산 사람한테 물들었어요? 망한 나라 사회 계급은 왜 꺼내고 그래요?”

    “왜? 그럼 대성팔족(大姓八族)이라고 불러줄까?”

    “전라도 사람한테 맞아 죽을 일 있습니까. 지금도 백제 성씨로 족보 장난치면 얼마나 난리가 나는데요.”

    “클클. 서일본으로 도망친 버러지 같은 놈들이 뭐 무섭다고. 그놈들은 한민족이 아냐.”

    장 노인이 실로 재밌어하며 웃었다. 산박은 양손을 들며 농담을 던졌다.

    “전 이 주제에서 빠지겠습니다.”

    탁.

    장 노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마쳤다.

    “어찌 되었건, 조용히 잘 마무리해. 너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니까.”

    “대신 한 가지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데…….”

    그 말에 장 노인이 물었다.

    “뭐? 또 다른 사업거리라도 있는 거냐?”

    “생수 사업요.”

    그 말에 장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생수 사업? 법과 규제로 떡칠이 되어 있는데 무슨…….”

    장 노인이 학을 뗐다.

    “땅도 많으셔서 생수 사업으로 재미를 좀 보신 듯한데요?”

    “그것도 20년 전이나 그렇지. 제주도 지하수 거덜 나고 해수가 들어와서 제주도에는 이젠 농사도 못 짓는다. 그 이후로 얼마나 난리가 난 줄 알어?”

    유럽으로 엄청나게 수출된 대한 제국의 생수 사업은 안 하는 놈이 병신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성행하고 남발되었다. 그 결과 제주도는 지하수가 텅텅 비게 되었고, 그 빈 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찼다. 한번 찬 바닷물은 나가지 않았다. 그 덕에 제주도는 농사를 못 짓는 곳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2,500억 규모의 생수 산업도 그걸로 팍 꺾였죠.”

    “지랄 났지.”

    “그래도 하고 계시잖아요?”

    “공장 하나만 있다.”

    “하긴 하네. 어디에 있는 공장인데요?”

    “어허, 이놈이? 먼저 네가 가진 걸 내놔봐. 왜 자꾸 묻기만 해?”

    그 말에 산박이 물의 연어를 꺼냈다. 그리고 단번에 술잔을 채웠다.

    “마셔 보세요.”

    “허, 이거?”

    “정령수입니다. 물론 평범한 물이죠.”

    꿀꺽.

    장 노인은 단번에 물을 마셨다. 물맛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물이 맛있어서 먹는 건 제주도 화강암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처음이었는데…….”

    장 노인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20년 전, 해수가 침수한 것을 가장 먼저 보고한 것은 농민들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제주도는 그야말로 끔찍한 섬이 되어 버렸다. 모든 걸 외부에서 가져와야 했고 자연스럽게 물가가 치솟았다. 중국인 자본도 제주도에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한순간에 박살이 나서 제주도 하면 칼부터 뽑아 드는 중국인 부자들이 많았다.

    “어르신? 물맛이 그렇게 좋습니까?”

    “최고다. 정령수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약수터에서 마시는 물 같구나. 뒷맛이 당겨서 계속 마시고 싶을 지경이다.”

    그 말에 산박이 웃었다. 이에 장 노인이 짧게 대답했다.

    “천태산에 공장 하나 있다. 산은 당연히 우리 가문이 가지고 있고, 울타리까지 쳐놨다.”

    “천태산……. 거기가 어디죠?”

    “나중에 알아봐. 공장에서 만드는 생수는 다섯 곳으로 납품된다.”

    그 말에 산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직접 배송하십니까?”

    “브랜드가 다섯 개다.”

    “한 물 다섯 브랜드라니……. 허, 참!”

    산박이 황당해했다.

    “요즘엔 다 그래.”

    “나쁘지 않네요. 요즘도 생수 수출합니까?”

    “수출은 무슨……. 제주도가 그렇게 망해 버렸는데, 너 같으면 국내 수자원을 다른 나라에 보내겠냐? 제대로 철퇴 맞았다.”

    “공산 국가도 아니고…….”

    산박이 혀를 찼다. 장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나라였다.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부산 은행에서 찾아왔습니다. 별채에 모셨습니다.”

    “그래? 끙차.”

    장 노인이 일어섰다.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라. 지금 너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문을 나서서 산박은 장 노인과 장굉려를 따라갔다.

    * * *

    SUV가 질주했다. 야심한 밤을 지나며 저수지로 향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저수지에서는 벌레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하아아.”

    이시은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조그마한 달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신선한 밤공기가 그녀의 폐 안으로 들어갔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이시은은 마음이 따뜻하게 변하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과는 감성 자체가 달랐다.

    덜컹.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꺼냈다.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살인이 끝났기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굳이 경찰의 이목을 끌 필요도 없었다.

    토막 난 시체는 캐리어에 잘 들어가 있었고, 검은 봉지에 싸여 있었다.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이시은은 캐리어를 다시 닫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으로 캐리어를 더듬거렸다.

    파르르…….

    손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몸을 움찔움찔했다. 거센 파도가 그녀의 몸을, 감각을 휘감고 지나갔다.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했던 ‘짐승’에서 벗어나고 냉정함을 알게 된 시은은 야수에서 사냥꾼이 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항상 굶주려야 했다. 그 껍데기를 벗으면 짐승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행위는 시은에게 필요했다. 단순히 캐리어를 더듬는 것이 아니었다. 인천 네크로맨서로서 엘리트 네크로맨서의 길을 걷는 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산박의 동태도 살펴야 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어쩔 수 없어. 내가 살기 위해서야.’

    육식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이시은은 사람을 죽여야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도 다른 이들과 똑같았다. 도축된 고기를 웃으면서 먹는 이들과 같았다.

    그녀에게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많이 죽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되새김질을 했다. 캐리어를 더듬으며 이 사람을 죽였을 때의 순간을 끝없이 떠올렸다.

    그건 큰 도움이 되었다. 다섯 번의 사냥을 한 번으로 줄일 만큼 정신적 안정에 도움을 줬다. 종종 사람을 죽였던 장소에 찾아가서 이를 더듬기도 했지만 그건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살인마들은 다 되던데.’

    무언가가 그녀를 변화하게 만들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면 ‘짐승’ 같은 살인마가 ‘사냥꾼’ 같은 살인마가 된 것도 이상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

    이시은은 무엇이 그녀를 변화하게 만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떠올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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