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 *
조용하던 잔잔벼락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저 순중가입니다. 다롄으로 한번 오실 때 되지 않았습니까?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봅시다. 사업 얘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최근에 배를 싸게 한 대 더 구하고, 사람도 몇 구했습니다, 태 사장님.]
‘지나치게 조용하고 무난했지.’
다만, 산박은 분노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왜 지금까지 조용한지 이해를 할 수 없던 차라 오히려 홀가분했다.
[태 사장님 전화 아닙니까? 전에도 서만주로 오셨지요. 이번에 다시 와주십시오. 가족들에게 제 사업 파트너 소개 정도는 하게 해주셔야죠.]
서만주 자치국에 옮겨서 팔았던 잔잔벼락 무기였는데, 국내에서는 장 노인이 커버를 쳐줘서 큰 문제로 번지거나 다른 이들에게 널리 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서만주에서 일이 터졌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문자들이었다.
‘순중가.’
결국 그놈이 지역 카르텔에 목이 따인 듯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가장 먼저 국제 전화로 전화를 걸어오지 않고 문자뿐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태산박은 잔잔벼락 환도 유통의 최고 위치에 올라서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문자로 본론을 꺼낸다? 순중가답지 않았고,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침묵했다. 그 어떤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 덕에 피를 본 사람은 당연히 박조조였다.
두 번째 이유, 바로 순중가가 호들갑을 떨듯이 박조조를 비롯한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문자 질을 했다는 점이었다. 죽어 가면서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듯했다. 그 덕에 박조조도 덜덜 떨며 산박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진정하시고, 가만히 계세요. 괜히 넘어가지 마시고.”
―태 사장님,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습니까? 네? 서만주 길이 끊기면 어떻게, 다 망하는 거잖아요.
“길은 다 있습니다.”
박조조는 돈 때문에 벌벌 떨었다. 이미 전과 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돈 없을 때의 박조조는 제법 똘똘했는데, 큰 금액이 오고 가고 엎어지려고 하자 정신을 못 차렸다.
‘사람이 돈 앞에서 이렇게 변하다니.’
트럭 상인일 때는 제법 노련해 보였지만, 그것도 돈을 적게 굴렸을 때였다. 조건이 조금만 달라졌는데도 손발을 덜덜 떨며 오또케스트라를 외치고 있었다.
산박은 그를 다독거렸다. 동시에 단번에 박조조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꼬리를 잘 말고 다니며 5천만 원 사업까지나 겨우 맡을 사람에 불과하다.’
잔잔벼락 사업을 계속 끌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박조조는 쉽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내놓을 것이었다. 사회에서 살며 고개 숙이는 법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세 번째 이유.’
잔잔벼락 사업은 한 번 유통 루트를 바꾼 적이 있었다. 서천 창고에서 육로를 통해서 인천으로 흘러가던 것을 장 노인의 중재 덕분에 다시 군산 항구를 통해서 만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5일 이후, 약속된 날에 순중가는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자기도 잘 알고 있었겠지.’
그거까지 말하면 다음이 없다는 것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큰 부상을 입어서 오지 못했다.’
이런 추측 또한 가능했다. 중요한 건 결국 순중가는 다롄 항구 도시에서 영향력을 잃었고,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즉, 사업의 패망을 의미했다. 여기서 그가 살아남아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고 해도 산박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사업 루트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흠이 나있으면 버려야 했다. 찜찜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산박은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빠각!
순중가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는 대포 폰이기 때문. 그저 부수어서 버리고 잔잔벼락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이를 알리면 그만이었다.
‘국내 루트를 이용하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연기 장가는 거기까지는 못 지켜준다. 덩치 큰 하이에나들을 상대로 가능한 것은 오직 타협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잡아먹히든가.
‘서일본.’
순중가가 대부분 정보를 토해 냈다면 중국 쉰여섯 개 자치국으로 유통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지역 카르텔끼리 정보 공유가 되어있을 공산이 컸다. 그만큼 잔잔벼락의 무기는 재미난 무기였다.
‘1레벨 던전에서는 목숨 보험이나 다름없지.’
오죽하면 2레벨 던전에서도 쓰는 이들이 있을까? 다만 산박은 잔잔벼락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서 쓰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운’으로 자신에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는 상태.
‘구매력을 생각한다면 서일본이 좋겠지만, 결국 루트가 어려워.’
부산은 온통 마천루뿐일 정도로 악독한 세속적인 동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관광 도시이기 때문에 이권이 죽을 기세로 들러붙어 있었다. 중동조차도 관광이 많은 곳이면 종교보다는 세속적 면모가 매우 컸다. 국제적인 공통 특징인 셈이다.
그렇기에 산박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서울도 세속적이지만, 부산은 거기에 ‘지역적’ 특징까지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항구 도시다. 예로부터 바다에 나가는 인간만큼 흉포한 자들이 없다고 했다. 뱃놈들의 환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질 것 없었다. 산적은 쉽게 쫓기기에 적당히를 알았지만 해적은 막장 중 막장이었다.
경찰조차도 부산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부산으로의 진출을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매우 강했다.
‘인도네시아나 인도? 나쁘지 않겠지.’
산박은 군산의 선박업주, ‘오식 선박’의 사장 방침두를 떠올렸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서로 마주침이 있었고, 상대가 패배하긴 했지만 그건 결국 돈 때문이었다. 거기에 다시 껴주겠다고 한다면 방침두는 웃음을 활짝 펴며 손을 건넬 것이었다.
‘이참에 서천과 군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도 필요해.’
만주의 놈들, 대한민국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생각을 마쳤음에도 산박은 바로 방침두를 만나지 않았다. 그 전에 필요한 경비를 계산기로 두들겼다.
‘2레벨 던전 공략.’
2레벨 던전 사용자가 많아서 하청 받는 팀이 많았다. 하지만 산박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팀으로 공략을 하고 싶은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김각두와 김연정을 입사시킨 것도 그러기 위함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노선으로 간다.’
그 끝에는 고레벨 던전 기업이 있었고, 산박을 위해서 함께하는 던전 사용자가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년 멤버’가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그들 모두 끝까지 데려가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원년 멤버를 만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림자 기사, 서충호.’
A급 전사다. 직업은 전사가 아니지만 그런데도 A급이었다. 멘탈부터 시작해서 덩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사 그 자체였다.
‘어딜 가도 성공할 남자.’
고로 가장 먼저 편의를 봐줘야 했다. 그는 실제로 큰 편의를 보고 있었다. 산박의 개인 낚시터에서 물의 나무를 통해서 빠르게 자라나는 삼들을 얻고 있었다. 반년에 한 번 수확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굵직한 삼이 나온다.
‘강합이 이것저것을 봐주고 있겠지.’
그러라고 만든 사무실이었다. 딴짓할 시간이 있을 정도로 느긋한 것이 던전 기업의 사무실이었다.
‘충호는 성실하게 1레벨 던전 장비 가격도 건네줬다.’
1레벨 던전에 갈 때는 그 장비로 꾸준히 갈 것이다. 2레벨 풀 장비는 2레벨에서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1레벨 던전에 들어서면 하향 조정 되기 때문에 1레벨에서보다 효율성이 떨어졌다.
‘1레벨 던전에서 2레벨 물품이 파손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지.’
서충호는 다시 한번 차용증을 쓸 것이었다. 고로 2~3천만 원의 지출은 불가피했다.
‘이시은은 제외.’
이미 포스코 타워, 인천 네크로맨서에 속하고 있어서 2레벨 풀 장비를 획득한 상태였다.
‘길탕만.’
방패 전사다. 하지만 결코 A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새싹에 불과했고, 잘 쳐봤자 B급이었다. 그는 강합의 은퇴를 봤기에 제법 열정이 존재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던전 사용자의 경력. 보통은 물러서기 마련이지만 서충호의 멘토링 덕분에 동기 부여가 된 케이스였다. 강합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현재는 충호랑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연히 탕만도 나한테 차용증을 쓰겠지.’
충호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게 분명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충호가 나서서 탕만을 끌어올 것이었다. 거기서 충호의 제안을 산박이 거부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4~6천만 원.’
그다음, 마지막 한 사람.
‘장굉려.’
암살자다. 본인의 요청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레벨에 올라섰다고 보고는 해둔 상태였다. 장 노인을 통해서 2레벨 던전에 갈 때 꼭 데려가 달라는 입김을 받았다.
‘자기가 선택해야지.’
산박은 물어볼 것이고, 그가 간다고 한다면 장 노인이든 그든 알아서 해결할 터였다.
‘김각두와 김연정은 이미 2레벨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 지급 물품만 줘도 만족하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마, 그게 합당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분명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김각두의 삶.’
김연정이라는 족쇄를 차고 던전 사용자가 되었다. 그가 겪었던 일들. 산박은 거기에 집중했다. 그게 김각두의 거대한 열등감이었다.
‘난 실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세상이 자신을 내던지기를 반복했다. 박혀있던 돌일 때에도, 굴러들어 온 돌일 때에도. 그는 세상 풍파라는 놈에게 휘몰아치듯이 휘청거려야 했다. 모두 체력 수치가 극히 낮은 김연정 때문이었다.
‘왜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김각두는 태산박에게 있어서 이레귤러나 다름없었다. 특히 던전 사용자는 한계에 내몰릴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탈피 혹은 적응된 던전 사용자는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김각두는 아니다.’
끝까지 김연정을 챙겼다. 병약한 그녀였기에 더더욱 남성성이 빠르게 타올랐다. 거대한 활화산처럼 이글거릴 수밖에 없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격발시키고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집어 던진 건 반대에 반대를 외쳤던 가문 사람들의 부추김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차에 던전 기업에 속하게 되었다.’
하청이 아닌 2레벨 던전 공략을 내세우는 신생 기업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준다? 나쁘지 않다. 수긍할 만하다. 자기들은 이미 2레벨 던전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납득에 불과했다.
‘김각두는 A급 성기사다.’
고로 고레벨 던전까지 끌고 가야 할 인재였다. 김연정이 죽어도 김각두는 산박의 아래에 속해야 할 근거가 존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지출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8천~1억 2천.’
거기에 팀 지급 물품에 2레벨 소비 아이템도 몇 가지 추가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2레벨 던전 공략에 들어서고 팀원들을 생각해 주는 기업임을 보여줘야 했다.
‘대략 3천.’
총 1억 5천.
‘현재 내 수중에 있는 목돈은 5천만 원.’
아쉽게도 1억이 부족했다.
* * *
“부산 사람이 이렇게 자주 경기도로 올라와도 되는지 모르겠구만.”
장 노인이 송서아를 보며 말했다.
“부산 사람이니까 더 자주 와야죠. 가까운 곳에는 익숙한 것이 많고 먼 곳에는 생소한 것이 많은데. 장 어르신께서는 어디에서 배우시겠습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군. 여기에 온 이유는 태 사장 때문이겠지?”
“예. 군산 쪽에서 소문이 제법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허락을 맡으려고 왔습니다.”
“허락은 무슨……. 부산과 부동 지구, 비교도 안 될 곳이지.”
“본가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공직에 많은 분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죄다 5급 밑이야. 그게 뭐가 무서워?”
“무섭죠. 중간 관리직에서도 가장 윗급인데.”
“바빠서 사원도 잘 안 와.”
그렇게 말했지만 장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라 와 있었다. 연기 장가는 시험을 치는 데 제법 재능 있는 핏줄이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어느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없지만, 태 사장을 설득하는 건 도와주지.”
산박이 모르는 곳에서 산박과 관련된 일이 결정됐다. 너무나도 쉬운 허락이었다. 하지만 송서아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장 노인이 건네줬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내어줘야 했다. 오가는 게 있어야 관계도 이루어진다.
송서아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눈짓하자 경호원이 서류를 건네줬다. 이를 송서아가 다시 장 노인에게 전해줬다.
“열어 보십시오. 만족하실 겁니다.”
“이건……?”
서류에 든 것을 꺼내자마자 장 노인의 눈이 흔들렸다.
“부산 전기? 지금 공기업 사업을 가져온 건가?”
“지분은 15%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좋아하실 건 아닙니다.”
부산 태양광 발전 사업. 관광 도시, 해양 도시에 전기는 필수적이었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를 맡고 있는 전기 공기업인 부산 전기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지분 획득.
‘실패하지 않는 사업이다.’
장 노인은 서류에서 눈을 돌려 송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웃음 짓고 있었다.
“잘 좀 도와주세요.”
“지금 바로 연락하지. 내가 하면 부리나케 달려오는 사람이 태 사장이야.”
“감사합니다.”
송서아가 고개를 숙였다. 장 노인은 서둘러 고개를 들게 했다. 돈이다, 돈. 사업이다, 사업. 그런데 가만히 고개를 숙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