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70)
  • 165화

    * * *

    부산 은행의 세종 지점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런 곳에 출근하는 수달군 과장은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큰일을 맡는 건 처음이다.’

    부산 은행은 부산 금융의 모기업이다. 기업 규모를 생각하면 부산 금융 밑에 부산 은행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그 두 회사의 지분을 7할 이상 가지고 있는 건 네 개의 가문이었다. 그들 가문 한 곳당 정확하게 17.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을 시작으로 크게 가문이 성공한 동래 송가(家)부터 시작해서 양산 대가, 진해 부가, 김해 소가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당연히 어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지지 않는 곳이었다. 철저히 저위험 투자를 강행하기 때문이다.

    부산에 적을 둔 가문이라 부산 사람을 등쳐 먹는 짓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외의 지점은 해당 사항 없이 다른 은행이 하는 짓거리 그대로 하는 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해외 투자 자산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해외 투자 자산 9할이 서일본에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만했다.

    ‘큰 기회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수달군 과장은 몇 번이고 서류를 검토했다. 어제 새벽 세 시에 겨우 눈을 붙였는데 잠을 자지 못했다. 막대한 책임감과 성공에 대한 절박감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이내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송서아의 운전과 경호를 겸하고 있는 대유준이 이를 받았다.

    ―예. 대유준입니다.

    “아, 예! 유준 님. 저는 수.달.군. 과장입니다.”

    ―아, 과장님. 진행이 잘되셨나 봐요?

    “예, 예.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락을 드립니다.”

    ―송 아가씨에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계장들 투입한다 이거죠?

    “예. 문서는 팩스로 보냈습니다.”

    ―전에 오프라인으로 말씀드렸던 인쇄소 번호로 보내셨죠?

    “네. 저 또한 인쇄소를 통해서 보냈습니다.”

    ―CCTV 없는 곳 맞죠?

    “네. CCTV 없는 곳입니다.”

    ―좋습니다. 수고하세요.

    “옙. 옙. 수고하십시오.”

    전화가 끊기자 수달군 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일개 경호원이 아녀서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는 서둘러 소파에 몸을 누였다. 이제는 상황을 보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가 활발히 움직여야 했다.

    * * *

    송서아가 호텔 로비에서 대유준이 건네준 서류를 훑었다.

    “세종시에 무슨 던전 기업이 210곳이나 돼?”

    “정확히는 420곳입니다. 그중에 유령 회사가 100여 개. 실제로는 320곳입니다.”

    “그렇게 많다고?”

    송서아가 눈을 찌푸렸다. 지방 정부가 던전에 제대로 힘을 쏟아붓고 있는 듯했다. 매우 공격적이었다.

    “건설사들이 세종시 쪽에 힘을 보태고 있나 보네.”

    데이터를 살펴본 송서아가 이내 납득했다. 아무래도 임대 사업 관련해서 세종시 지방 정부와 모종의 합의를 본 듯했다.

    “320곳 중에서 110곳은 제외했는데, 다른 가문이 이미 점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렇게 적혀 있네.”

    서류를 미리 읽어본 대유준의 말에 송서아가 가볍게 대꾸했다.

    가문의 입김이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210곳이었다. 우후죽순같이 무분별하게 개업하고 폐업하는 인력 사무소처럼 득실거리는 게 던전 기업들이었다. 그렇기에 그중에 부산 은행의 선택을 받은 기업은 32곳뿐이었다. 그중에 기업 옥시모론도 속해 있는 건 당연했다.

    ‘시기도 적절해.’

    태산박은 인천 네크로맨서, 인천 포스코 타워의 프로젝트에 팀장 이시은과 함께 참가하여 2레벨 던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했다. 팀원은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저 다른 팀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뿐이다. 고로 팀 내 사망률에는 어떤 변동도 없었다.

    ‘때와 운이 맞춰졌다.’

    여기서는 자잘한 실수가 있어도 나아가야 했다.

    “32개의 기업을 파악했을 때 회수율은?”

    “네? 수익률을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송서아가 웃음소리를 작게 냈다. 새하얀 손이 입을 살짝 가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따라갈 정도로 우아했다.

    “최대 1억 무이자에 그 이상은 이자율 8%로 잡기로 했었나?”

    “11%로 하셨습니다.”

    “최대 3억까지.”

    “예.”

    “그런데 어떻게 수익이 나? 죄다 1억만 땡기고 그나마 1억 5천? 그렇게 해봤자 갚으면 5백5십만 원이야.”

    1억 5천을 땡겨 쓰는데 5백5십만 원. 끔찍한 수익률이었다. 32곳에 투입되면 최소 32억. 그런 것에 비해서는 들어오는 돈이 적다.

    “그러니까 회수율을 봐야지.”

    “데이터를 보시면…….”

    “네가 말을 해야지. 봤을 거 아냐.”

    그 말에 대유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익률만 봤기 때문이었다.

    “유준아, 너 운전만 하고 경호만 하고 싶어? 나 보면서 배우라고 여기에 들어왔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그럼 내가 하는 거, 내가 생각하고 보는 거, 내가 판단하는 거, 닥치는 대로 베껴서 가져가야지. 너 지금 여기 있는 거 그냥 공짜로 있는 거 아니야. 진해 부가(家)는 너 하나 내 밑에 집어넣는 데 30억짜리 자산을 그냥 우리 동래 송가(家)에 줬어.”

    절로 그의 고개가 숙여졌다.

    “이번이 세 번째인 거 알지? 가볍게 보고 넘기는 거. 그리고 내가 말했지?”

    “세 번 이상으로 지적이 넘어가면 더는 지적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는 감정이 섞이기 때문이야. 이제 나는 데이터 가지고 너한테 뭐라고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까먹고, 그런 건 이제 네 소관이라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예.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거 없어. 나한테 넌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 그저 네 혈족들한테 죄송해야 할 거야.”

    송서아가 서류에서 기업 8곳을 체크했다.

    “여기 8곳은 빼. 최종적으로는 24곳만 지원하겠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가 서류를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소준석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실로 살 떨리는 모습이었다.

    머리 쓰는 거 싫고 그냥 운동하는 게 좋은 준석은 이미 내놓은 자식이었고, 그렇기에 송서아를 경호할 뿐이었다. 반면 대유준은 머리가 있다. 저걸 썩히는 게 싫은 진해 부가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었다. 다만, 자잘한 실수가 있는 게 흠이었다.

    ‘그런 디테일은 밑에 사람한테 맡기면 되니까.’

    큰 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송서아는 차를 타고 그대로 장 노인을 찾아갔다. 태산박은 장 노인과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그와 연결을 놓기 위해서는 장 노인의 허락부터 맡아야 했다.

    물론, 이건 ‘허락’이 아니었다. 거의 예의 바른 통보에 가까웠다. 연기 장가는 결코 부산 은행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타협뿐이었다.

    장 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송서아가 처음 방문하고 나서부터 장굉려를 집 안에 들여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그럼? 다들 사업하고 일하고 직장 다니는데 네놈 혼자서 잘 먹고 잘 놀겠다? 에라이, 이놈아!”

    “아! 그래도 던전 다니잖아요.”

    “임시 팀원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말했다더만?”

    “아, 태 사장이 그것도 말했어요?”

    “그럼, 네놈보다 내가 더 도움이 되니까!”

    들어온 복도 고새 걷어차는 놈이었다. 이제는 좀 더 확실하게 돈벌이를 해야 했다. 성질을 내던 장 노인이 이내 굉려에게 말했다. 

    “들어라. 스님들이 말씀하기를, 짐승도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하셨다. 너는 네 밥벌이 하니까 이제 짐승 같은 사람이 된 거다. 그럼 이제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기 밥벌이하면 다 된 건데 그걸 짐승이라니, 무슨 스님입니까, 그분.”

    “시끄럽고, 들어. 지 밥만 챙기는 게 짐승이지, 그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수두룩한 게 이 인간 세상이야. 좋은 말이니 딴죽 걸지 말고 들어! 너 부산 은행 쪽의 연락책을 해야겠다. 던전 돌고 남는 시간 많잖아.”

    “에효……. 예, 예. 그렇게 하세요.”

    “태 사장 밑에 알차게 붙어있고.”

    “네. 알았다니까요.”

    이런 상태에서 송서아가 방문했다. 굉려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후딱 끝낼 수 있으니까.

    송서아가 경호원 하나만 대동한 채 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동양 미인이라고 할 만했고, 피부에 잡티 하나 없었다. 티 없이 맑은 검은 눈동자부터 남다른 매력을 풍겼다. 그 어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은 착 내려앉아 있어서 더욱 차분해 보였다.

    * * *

    덜컹! 덜컹!

    차가 두 번 크게 흔들렸다.

    “이 새끼가, 방지 턱 안 보여?”

    “형님 차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차체가 왜 이렇게 낮습니까?”

    “새끼가 말이라도 못 하면…….”

    운전석, 조수석, 뒷좌석까지 네 명의 사내로 득실거렸다. 승용차는 그저 중고가에 불과했지만 입을 참 잘 놀리는 막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에어컨 나오는 곳에 고정해 놓은 태블릿에서는 연신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야, 저 여자 누구야? 엉덩이 미쳤는데…….”

    “가수 겸, 배우 겸, 아나운서 겸…….”

    “니미럴. 직업이 몇 개야…….”

    “원래 자기 직업 수만큼 구멍이 있다고…….”

    “뭐?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하하하!”

    “크히히히!”

    저급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아무도 이상하지 않게 여겼다. 끼리끼리 논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텅, 텅!

    방지 턱도 아닌데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X발, 야, 갓길에 차 세워봐. 지금 시간이 새벽 한 시인데, 이 새끼가 처돌았나.”

    갓길에 차가 서고, 철이 붙은 가죽 장갑을 낀 사내들이 내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막내 빼고 전부 내렸다. 세 명이 내려서 뒤 트렁크를 열었다.

    “읍! 읍!”

    “개새끼가 정신 차리고 지랄이야.”

    퍽! 퍽! 퍽!

    바로 얼굴 찜질이 세 번 들어가고, 옆에서는 그걸 지켜보고, 다른 한 놈은 품에서 가루를 꺼내서 손가락에 푹 찍어 그대로 상대 코에 쑤셔 넣었다.

    “큭! 크흡! 큽!”

    가루약이 코 속으로 들어가자 금세 박쇠패의 몸이 진정되었다. 아니, 강제로 그렇게 되었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이 개새끼가 똥을 퍼질러 쌌네. 어디까지 지랄을 해댈 거야, X부랄 새끼가.”

    퍽! 퍽!

    얼굴을 두 번 내리 때렸다. 박쇠패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던전 사용자 레벨 2? 웃기는 소리였다. 인터넷 자판 두들기기 바쁜 놈들이나 전투력이 높으면 무조건 다 이긴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약물에 절여진 박쇠패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대로 질주했다. 거제도에서 붙잡힌 박쇠패는 고스란히 다시 경기도로 잡혀 왔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 팔당 댐을 지나… 팔당호에 도착했다.

    수자원 본부가 있는 선착장에는 배가 여러 대 있었는데 그중 한 척만 불빛을 내고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관광업을 통해서 팔당호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도 해가 떴을 때뿐이었다.

    야심한 밤에 열린 문으로 승용차가 그대로 들어갔다. 그제야 배에서 사람이 나왔다. 상몌종(尙袂琮) 소장. 이 선착장의 가장 큰 직함을 단 사람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만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거칠게 서로 악수하고, 박쇠패를 둘러멘 사람이 그대로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장에게는 흰 봉투가 전달됐다.

    “전부 현금입니다.”

    “언제나 고마워. 사람 죽는 날이 가장 기분 좋은 날이라니까?”

    “하하하.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에이! 그만큼 돈이 중요하다는 거지. 뒤처리 깔끔하게 하고, 문만 잠그고 가.”

    “예.”

    고개를 깊이 숙이고 사내도 배에 올라탔다.

    터더더더덕.

    엔진이 돌았다. 배의 옆에는 ‘소내섬, 대하섬으로!’라는 글자가 턱 적혀 있었다.

    “시멘트 안 묻게 잘해라.”

    “예.”

    서억! 서억!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박쇠패는 눈이 가려지고 팔다리 또한 강하게 묶였다. 동대문 시장에서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저급한 여름 셔츠로 묶였다.

    침낭에 들어간 박쇠패에게 남자들이 시멘트를 하나, 둘, 거침없이 퍼서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큰 침낭으로 싸고 그 안에 또 시멘트를 넣었다. 그다음에는 그냥 지퍼를 잠그고 기다렸다.

    “낄낄낄.”

    태블릿에 있는 예능을 보고 웃던 이들 중 막내가 소리를 냈다. 동이 트고 있었다.

    “단단하게 굳었네.”

    “으쌰!”

    그대로 물속으로 집어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박쇄패는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포스코 타워가 관리하는 시체 매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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