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270)

164화

* * *

불꽃두더지 파수병, 매듭의 전사라 불리는 카누토. 그가 야만신을 논하였다. 산박에게 야만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속삭였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충격적이고 소름 돋는 뒷거래의 현장이었다.

‘다른 신들도 이런 모종의 뒷거래를 한다.’

단번에 추측 하나가 떠올랐다. 신뢰성이 매우 높은 추측이었다.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산박은 던전 사용자가 하나의 거대한 ‘인력 시장’의 구성원이라는 걸 파악해 냈다. 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은 ‘선수’를 원했다. 던전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성과를 내고 생존하는 강력한 전투 머신을 가늠하고 자신에게 맞는 이들을 계약을 통해서, 다양한 혜택을 통해서 이끌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음을 이 작은 권유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산박은 동시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계조차도 신들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었으며, 보이지 않는 권력자였다.

심하게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판단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사실이 아닐 수 있었다. 모두 신에 의해서 자신의 소임을 받는다고 쳐도 무방했다. 그만큼 이번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산박이 알고 있던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허나, 이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의심을 지울 수 있는 확신이 필요했다.

“크어어.”

대장삵이 코 고는 환경에서 산박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 세계는, 지구는 신들에게 조종당해서 만들어진 세계인가?”

“아니다. 던전은 그렇다. 허나 이곳 행성과 차원의 주인은 없다.”

던전 사용자와 신 사이를 ‘매듭’짓는 ‘매듭 전사’ 카누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금 더 의심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면 태산박은 거대한 신념을 지닐 것이 분명했다. 자신들의 자유 의지를 해치는 신을 향해서 검을 들어 올리는 건 필멸자에게 있어서 거대한 사명감이었고 마약이었으며 끝없는 쾌락이나 다름없었다.

‘거기까지 파악하다니, 역시 야만신은 대단하시다.’

이런 똑똑한 인간은 지하 연합에 필요했다.

“인간을 조율하고 세뇌한다고 치자. 그렇게 한다면 똑같은 수준의 인간밖에 안 생기겠지. 영웅이 태어나는 곳은 변수가 가득한 곳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신에 의해서 세뇌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야만신이 말씀하시길 ‘세뇌는 그 어떤 존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따른다고?”

“만약 그러지 않으면 야만신이 그 어떤 손해를 보고서라도 끝장을 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신들은 야만신을 두려워하시지.”

“흠.”

산박이 고민에 빠졌다. 카누토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내가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다른 신들은 결코 너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야만신의 제안을 거부한 던전 사용자를 누가 추켜올려 주겠나?”

호구 중 호구, 킹 오브 호구로 불리는 게 야만신이었다. ‘던전’을 만든 수많은 회원 중 하나인 야만신의 호구 명성은 유명했다. 그런 호구 신의 제안도 거부한 자라면 볼 것도 없었다.

던전 회원 신들은 서로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소문을 익히 접할 수 있었다. 던전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던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신끼리도 격과 힘의 차이가 있는데 그저 이름만 알 뿐이었다.

완벽한 중립 지대가 바로 던전이었다. 신들은 질 좋은 필멸자를 챔피언으로 삼을 수 있어서 현상 유지를 원했다. 다양한 신들의 보호를 받는 던전 사용자들끼리 대립하여 싸우고 경쟁하여 올라서면 그만큼 더 좋은 챔피언이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신은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 모든 걸 이야기해 주는 거지?”

“선택받았기 때문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말할 생각은 없다.”

비사(祕事)를 전해 들은 산박은 침을 삼켰다. 던전은 말 그대로 신들의 ‘챔피언 영입소’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그리고 자신은 야만신의 챔피언 후보자로 선택당했다.

‘무를 수가 없지.’

“원래 2레벨에 선택당하나?”

“아니. 넌 특별하다. 많은 신이 너를 원하고 있지.”

“근데 왜 다른 신들의 접촉이 없지?”

“웬만하면 야만신과 겨루는 걸 좋아하지 않아. 대부분 쉽게 포기한다. 날고 기는 던전 사용자는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많다. 던전에서는 출신 성분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오로지 강함!”

카누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함뿐인 것이다.”

“야만신을 계속 믿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필요할 때 부를 것이다.”

“불린 적이 있나? 다른 챔피언들은?”

“물론. 하지만 그렇게 자주 부르시는 분은 아니다. 그분은 태평성대를 좋아하는 분이셔서 덤비는 놈들만 상대하신다고 들었다.”

“들었다고? 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거냐?”

“당연하다! 그래서 더 궁금한 건 있냐?”

“내가 그를 믿겠다고 하면 뭐가 변하는 거지?”

“지하 연합의 수많은 소환수가 널 도울 것이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이지.”

카누토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어차피 소환 주문 상태에서 죽으면 역소환될 뿐이었기에 거침없었다. 카누토가 자연스럽게 속삭였다. 음모를 논하는 쥐새끼마냥 음습했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야만신께 충성을 맹세하고 따른다면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선물의 형태로 ‘소환 주문’을 하나씩 예외적으로 전해 주겠다.”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산박에게는 하나의 확신이 필요했다.

“난 이 세계에서 내 도시를 지배하고 싶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

“걱정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인격신이라 폄하받지만, 그 누구보다도 필멸자를 사랑하는 분이시다. 나처럼 소환 주문의 형태로 소환되어서 약간의 시간만 그분을 위해서 사용하면 된다.”

“정확하게 보장하라.”

“…만약 소환을 당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길어 봤자 3년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대개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고. 그런 상황이 왔더라도 자신이 무조건 소환된다는 것도 아니다.”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야만신 코인을 타고 있었던 것이 산박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야만신이 주는 혜택이 너무 컸다.

‘야만의 오른팔, 문명의 왼팔’은 ‘야만신의 석상’과 연결되어 강화하여서 최대 2레벨 주문 2회에 근민체를 1씩 올려줬다. 그뿐만 아니라 마력 충전의 혈석도 제조 가능한 게 야만신의 석상 효과였다. 즉, 언제가 되었든 결국 산박은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속된다고 해도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좋다. 다만, 지금 그 말에 거짓이 담겨 있다면 무효로 하겠다.”

“마음대로 해라.”

퉁명스럽게 대답한 카누토는 품에서 두툼한 양피지로 이루어진 책을 꺼내 산박에게 건네줬다.

“뭐지?”

“‘야만신의 양피지 책’이다. 외눈붉은곰을 소환할 수 있다. 2레벨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너무 쉽게 클리어하게 해주는 것 아닌가?”

“이미 검증은 끝났다.”

그렇게 말하며 카누토가 몸을 일으켰다. 턱짓하며 역소환하라고 하자 산박이 그를 역소환했다.

‘이미 검증은 끝났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하고 순식간에 베팅했다. 은근한 호구 신에 대한 소문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도박사의 손놀림이 보였다.

‘방심할 수 없는 신일지도 모르지.’

산박은 양피지 책을 펼쳤다. 그곳에는 외눈붉은곰이 한 페이지도 남김없이 그려져 있었고 다채로운 기하학적 문양부터 알 수 없는 언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환책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금방 덮었겠지만, 산박은 달랐다. 그는 수많은 던전 정보를 기억하고 실제로 던전에 적용하는 정신 나간 자였다.

‘앞으로 꾸준히 할 일이 생겼군.’

철저하게 이 소환책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산박은 그것을 그저 공짜 소환 아티팩트로 여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힘의 체계였다. 그걸 기억해 둔다면 분명 써먹을 때가 올 수도 있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걷어차 버리는 것보다는 지금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무분별해 보이는 책이었지만 확실한 체계가 잡혀 있었다. 3회독 하는 것만으로도 산박은 이것이 ‘주술 소환책’임을 파악했다. 소름 돋을 정도의 직관력이었다.

* * *

“아하하! 길 사장!”

강합을 부르며 삼겹살집에서 아저씨 두 명이 손을 흔들었다. 그들 모두 정부와 TDH 건설의 도움으로 임대 사무실을 싸게 얻은 기업의 사무직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 하는 일이 비슷하고 시간대도 잘 맞는 데다 무엇보다 죽이 잘 맞아서 요즘 점심도 함께하는 편이었다.

TDH 건설사와 정부의 임대 사무실 사업은 대부분 던전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창조 경제나 다름없었기에 그만큼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사람을 일단 집어 처넣으면 수익이 나고 던전 상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로, 이들은 점심부터 소주는 기본이었다.

“캬아아.”

한 잔 받은 강합이 절로 소리를 냈다. 아직도 낮술은 그에게 힘들었고 그나마 반주 하듯이 한 잔을 세 번에 나누어서 마실 뿐임에도 절로 리액션이 취해졌다.

“낮술은 진짜 나랑은 안 맞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구만.”

“근데 왜 이렇게 늦었어? 던전 기업이 사무 볼 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 기업에 으뜸 전사가 있는데……. 전에 말했잖아.”

“아~ 서충호인가 뭔가? 근데 전사도 아니라며. 그림자 기사라며? 들어 보니까 좋은 직업은 아니라던데?”

“하이브리드 직업이 뭐가 좋겠어? 한 우물이 아니라 두 우물 파는 직업인데.”

서로 낄낄대었지만 강합은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남자가 헛기침하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을 했길래?”

“삼을 파는데 이것저것 도와 달라고 해서 상표 등록 하고 왔다.”

“머슴이네, 머슴. 무슨 그런 일까지 해줘?”

“하는 일 없는 거 거기도 잘 알더라. 인턴으로 좀 해본 적이 있대. 그런 사람 앞에서 주름을 어떻게 잡아? 바쁘다고 어떻게 말해?”

“쩝. 그럼 어쩔 수 없고.”

충호는 산박의 개인 낚시터에서 키우는 삼을 가져다가 인터넷을 통해서 팔기 시작했다. 몇몇 SNS에서도 주부들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돈이 절실했다. 그에게 던전은 쉬웠지만 사업은 어렵고 귀찮은 일의 연속이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건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삼은 꾸준히 하면 반년에 백만 원, 1년에 2백만 원짜리 사업이었다. 1년에 2백만 원이면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부업으로 생각하면 크다.

또 물의 나무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자연히 삼은 그 덕에 더욱 빨리 자라고 더 커질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삼 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 가능했다. 나중에는 1년에 5백만 원짜리 사업이 될 수 있었다.

“돈은 된대?”

“몰라, 고객은 자기가 어찌나 챙기는지 명단 하나 못 받았어.”

“가격은 알 거 아냐.”

“그냥 상표 등록인데 뭘 알어.”

“쩝.”

돈 얘기에 흥미가 돌았지만 강합이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자 흥이 식었다. 대신 ‘돈’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가 흘러들어 왔다.

“부산 은행 인턴들, 요즘 매일같이 사무실에 찾아오던데. 길 사장한테도 갔지?”

뭐만 하면 사장이다. 기업 내에서의 직함이 다 달라서 그냥 퉁치고 서로 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서로 대우받겠다는 속셈. 강합은 거기에 어울려 주고 있었다.

“어찌나 순진해 보이던지, 술술 불더만.”

“크흐흐.”

서로 웃음소리를 냈다. 애송이에 허술한 놈들 얕잡아 보고 욕하는 건 실로 재미났다.

“내 말이. 지들이 설문 조사 해서 어쩔 건데?”

“야야, 그래도 문화 상품권 만 원이 어디냐? 애들 용돈 챙겨 주기도 빠듯했는데 그런 거라도 해줘야지.”

“성실하게 대답한 것처럼 들린다?”

“돈 받고 성실하게 답해야지.”

“넌 그럼 안 했냐?”

“했지…….”

한 달 용돈이 정해져 있는 유부남 두 명은 냉큼 설문 조사에 임했다. 반면 강합은 자기 여자 친구 때문에 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공돈 얻는 거니까, 나도 했지.”

“부산 은행이 왜 세종시에 와서 이 난리야?”

“고객 유치하겠다는 거 아냐?”

“설마 그러려고. 그냥 인턴들 통해서 싸게 시장 조사 한번 하는 거지. 보니까 죄다 인턴뿐이고 계장 하나 없더라.”

황당한 일 처리였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한다고 소리를 지르기 바빴다.

“근데 전단지 보니까 진짜로 세종시에 제대로 뿌리박을 것 같은데.”

강합의 말에 다른 이들이 웃었다.

“대도시에도 지점장 하나만 박아놓는 곳인데 뭔 소리야. 부산 은행은 로컬이야, 로컬. 부산 벗어나면 개병신 은행이라는 거지.”

“마, 니 쓰까 묵나? 니 붓싼 싸람이가?”

서로 히히덕거리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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