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70)
  • 163화

    * * *

    “딱 대.”

    “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냐?”

    대장삵의 아침밥을 챙겨주며 자신도 새벽 일찍 밥을 먹는 산박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대장삵은 뭐 말을 시작하면 ‘딱 대’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애도 아니고…….’

    황당할 노릇이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이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며? 근데 나랑은 인사도 안 했잖아.”

    “그건 그렇지.”

    새하얀 던전에서 한 번 소환한 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그저 대장삵에게 소환 주문을 획득했다는 통보만 했다. 이걸 며칠을 고민하더니 이제야 답을 낸 듯했다.

    산박은 아주 살짝 매콤한 카레에 삼겹살을 푹 찍어서 대장삵의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에는 살짝 탄 삼겹살에 간단한 소금 혹은 소금장이나 된장을 좋아하더니 이제는 제법 향신료로까지 입맛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식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그래도 삼겹살은 중대 사안이다. 식비를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근데 전투 상황이 아니면 소환하지 말라고 했는데.”

    “으휴.”

    대장삵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소환수 상황 따져 가며 소환하면 제대로 일이 돌아가겠어?”

    “그럼 너는?”

    “난 특별하지.”

    짱깨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자국 탈출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그러냐. 그래서, 소환해줘?”

    “그래. 전투 상황이 되면 내 명령을 들어야 할 거 아냐.”

    “내 명령을 듣겠지.”

    “내 명령을 들어야지. 넌 바쁘잖아. 맨날 퍽 하면 동물 변신 해서 돌진하고, 갑자기 작전 바꾸고. 그걸 밥 먹듯이 하면서 무슨.”

    “그만큼 상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가 두더지 파수병과 딱 이야기를 한다고. 왜 자꾸 인간이 끼어들려고 해? 네가 소환수 할래?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대장삵이 말랑거리는 뒤 발바닥을 척 보여주며 말했다.

    “소주 몇 병 가져와. 고기도 더 가져오고.”

    “…….”

    산박은 심호흡을 했다. 싸워 봤자 이득이 없었다. 이런 거로 싸우는 것보다는 쌓고 쌓다가 중요한 일에 이를 들어서 곤죽을 만드는 게 서로의 관계를 위해서도 좋았다.

    “대신 너도 도와.”

    “그 정도야, 뭐.”

    대장삵도 이것저것을 도왔다. 앞발이 조금 불편해도 물어서 가져오면 그만이었다.

    세팅을 하고 난 다음에 추가 삼겹살이 좋은 냄새를 풍겼다. 동물 기름이 고기를 튀기는 소리가 기가 막혔다.

    “김치, 김치도!”

    “두더지 파수병은 그런 거 못 먹어.”

    “내가 먹으면 돼. 삼겹살 기름에 김치 안 구워 먹는 놈들은 다 사형이야, 사형!”

    대장삵이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하여간 삼겹살에 구운 김치의 조합을 무척 좋아했다. 산박은 은근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들의 식문화를 좋아하는 대장삵은 솔직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2레벨 마법사가 대장삵이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 소환.”

    허공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토해지며 165cm에 달하는 중갑옷을 입은 파수병이 단번에 할버드를 쑥 내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 그의 코가 꿈실꿈실거렸다.

    ‘맛있는 냄새!’

    그의 시선이 단번에 구워지고 튀겨지고 있는 고기로 향했다.

    “뭐냐? 전투 상황이 아니잖아?”

    그 말에 대장삵이 탁 말을 내뱉었다.

    “그럼 돌아가.”

    “뭐?”

    “돌아가라고. 잘못 부른 거니까.”

    “네가 뭔데 돌아가라 마라야? 날 소환한 사람은 드루이드인데.”

    “나도 소환수니까 널 돌려보내라고 말할 수 있지.”

    “너도 소환수야? 나돈데.”

    그 둘 사이에 산박이 윤활유를 칠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두더지 파수병이 대장삵에게 농락을 당하는 감이 없잖아 있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뭔가 이루어져도 나중에 불만으로 여겨질 게 분명했다.

    ‘함께하는 데에는 공정함이 필요하지.’

    특히 캡틴 레오파드 캣과 블레이즈 몰 센트리는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했다. 누가 갑이고 을이 아니라서 불평등한 계단은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전투를 해야 한다면 소환수인 대장삵과 네가 어느 정도 만남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부르라고 쟤가 말했어.”

    “한잔혀.”

    대장삵이 소주잔을 건네줬다. 불꽃두더지는 눈에서 불똥을 터트리더니 이내 할버드를 내려놓고 척 앉아서 소주잔을 냉큼 받아 마셨다. 그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저급한 술이로군. 거지 같은 알코올에 거지 같은 단내가 풀풀 풍겨 와. 이딴 쓰레기 같은 술은 왜 마시는 거지? 그냥 화학 약품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두더지가 품에서 호리병을 척 꺼냈다.

    “무슨 술인데?”

    “이스핀 산딸기 독주다. 너에게 주긴 아까운 술이지만,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줄까?”

    산박도 흥미를 가졌다.

    “나도 한 잔 할 수 있을까? 다른 세계의 술이라니 군침이 돋는걸.”

    “좋아.”

    그렇게 술을 한 명, 한 명에게 따라주며 불꽃두더지 파수병이 말했다.

    “내 이름은 카누토(Canuto)! 매듭의 전사라 불리고 있다.”

    “난 대장삵이다.”

    “이름은 없나?”

    “그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군. 그냥 삵이라고 불러라.”

    “알았다. 삭!”

    “삵.”

    “살!”

    “삵!!”

    “사륵!”

    한창 소리를 지르던 이들이 포기하지를 않아서 산박이 중재했다.

    “그냥 레오파드 캣이라고 불러.”

    “레오파드 캣!”

    “그게 낫다.”

    산박은 중재를 하고 나서 소주잔에 따라진 독주를 살폈다. 일단 색이 대단히 진했다. 검붉은색이었는데, 지나칠 정도로 과일 향이 강했다.

    ‘독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술 자체의 향보다는 과일 향이 너무 심했다. 이래서야 독주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박은 단번에 한 입 했다.

    “큽!”

    코로 술이 뿜어져 나왔다.

    “콜록!”

    “크, 크하하하하!”

    단번에 불꽃두더지 카누토가 웃음을 빵 터트렸다.

    “도, 독하다.”

    그렇게 말했지만, 어느새 또 한 모금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술이 맛있기 때문이다.

    단번에 몸이 달구어지는 것도 일품이었다. 맥주의 경우는 마시면 마실수록 몸이 차가워져서 늙으면 좀 싫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술은 마시면 소주처럼 몸이 달구어졌다.

    “처음에는 과일 향이 강했는데 끝맛에는 술 향도 난다.”

    “두 가지 모두를 챙겼지. 맛도 그저 쓰지만은 않아.”

    “처음에는 강한 독주의 풍미가 강하지만 목 넘김은 오히려 약하다. 그래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겠어.”

    “비싼 술 같은데…….”

    “무얼. 보급용 술이다. 그만큼 너희 세상에 도둑놈이 많다는 뜻이다.”

    불꽃두더지 파수병 카누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리병 하나를 전부 비웠다. 대범하게 산박과 대장삵에게도 베풀어 줬다. 그에겐 정말 큰 가치가 없는 것이라서였다.

    “음! 이 요리는 정말 맛있군.”

    대단히 기름져서 평범하게는 도저히 못 먹는 삼겹살이지만 김치와 곁들이니 천상의 요리나 다름없었다.

    술이 들어가니 카누토는 소주도 잘 마셨다. 특히 소주는 안주와 함께 먹으면 진짜 마성의 술이라 할 수 있었다.

    “하하하, 형제는 어디의 대장인가!”

    “하하하! 나는 언덕과 산 그리고 계곡과 강을 하나 주름잡고 있지! 전에는 웬 늑대들을…….”

    둘은 단번에 친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분야가 다르다는 걸 확인해서였다. 당장만 해도 삵은 무기 하나 없다. 반면 그보다 덩치가 세 배나 큰 카누토의 신장은 165cm에 달했다. 대장삵은 마법사였고, 카누토는 전사였다. 둘이 부딪칠 일이 없었다. 둘은 협력해야 할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는 술과 함께 단번에 발전되어 갔다.

    “끄억!”

    배를 두드리며 카누토가 입에서 트림을 했다. 대장삵은 이미 뒤집혀서 코를 골고 있었다. 삵치고는 체격이 커도 결국에는 삵이었다. 쉽게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역소환을 하면 되나?”

    “아니. 태산박, 야만신을 믿어라. 그게 너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길이다.”

    생뚱맞게도 카누토, 소환물에 불과한 존재가 신을 논했다. 산박의 경계가 단박에 올라갔다.

    “뭐?”

    갑자기 공기가 싸늘해졌다. 아침부터 술로 달아오른 몸이 빠르게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오한이 등골을 서늘케 했다.

    * * *

    [태산박 취미 생활 탐구]

    보고서 이름을 본 이새롬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렇게 장난식이에요?”

    “뭔 소리예요? 그럼 뭐라고 지어야 하는데요?”

    “그, 뭐, 알잖아요?”

    “해결 방법도 없이 무조건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예요. 가장 골치 아픈 스타일이에요. 아셨어요?”

    흥신소에서 온 남자의 말에 이새롬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다만 남자는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했다. 사실 이런 미녀와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였다. 어쩔 수 없는 게 남자였다.

    “그래서, 나온 게 있어요?”

    “네. 일단 운동을 매일같이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헬스장도 등록해 놓고, 할 거 다 합니다만, 장소가 좀…….”

    “어딘데요?”

    “그냥 공원에 비치해둔 벤치 프레스 근처에 자기가 아령도 가져다 놓고 개인 헬스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변 아저씨들도 이용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사장이라는 게 구질구질하게……. 무슨 공원에서 헬스를 해요?”

    “오히려 접근하기는 좋은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이새롬이 학을 뗐다.

    “월 백만 원은 받는 헬스장에서 운동해야지, 무슨 공원에서 운동하는 남자랑 내가 만나요? 급이 있지. 아, 진짜 해외여행 갔다 온 것만 아니라도 이번 일에 손 안 대는 건데.”

    ‘지랄 났네.’

    흥신소 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었다. 그러다가 이새롬이 갑자기 딴소리를 했다.

    “김 기사랑 김다은은요?”

    “벌써 왔다 갔죠. 똑같이 보고를 드렸습니다.”

    “뭔 말 했어요?”

    “나쁘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이새롬은 한숨을 내쉬었다. 3억도 조금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장 돈 있는 사람 한 명만 잡아도 5억은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돈은 돈을 부르기 마련이고, 억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취미는요?”

    “운동 외에는 훈련이나 사업에 대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새롬 씨가 그나마 접촉할 수 있는 것이 공원 운동뿐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조천 체육공원에는 운동하는 사람이 많고, 부동 지구와 비교해서는 시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나.”

    한숨을 푹푹 쉬던 이새롬은 결국 서류를 들고 나가 버렸다. 어찌 되었든 하기는 해야 했다.

    그녀는 근처 오피스텔에 거주를 시작했다. 아무리 돈을 펑펑 쓴다고 해도 남자들과 살을 섞으면서 강탈한 돈은 많았고 수억 원이 남아 있었다. 돈 있는 남자들은 미녀에게 돈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운동복도 새로 사고.’

    분홍색 트레이닝 상의, 한 치수 정도 오버핏을 살 생각이었다. 운동하려면 스포츠 브라는 필수였다. 가슴이 C컵으로 커서 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서였다. 그리고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면 가슴은 작아지는 게 당연했고, 이를 대놓고 보여주는 건 싫었다. 그래서 밝은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오버핏으로 입고 대신 다리의 각선미를 확 보여줘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생각을 가졌다.

    ‘레이어드 레깅스가 요즘 싸네?’

    섹시함은 역시 삼 줄 레이어드 레깅스가 최고였다. 검은색으로 아이다스 오프라인 매장에서 바로 구매했다.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큰 원동력이 되어줬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침 사업을 끝내고 운동하러 온 산박의 주위를 주기적으로 조깅하며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척 봐도 뒤로 머리를 묶고 새하얀 헤어밴드를 착용한 그녀는 남자의 눈길을 끌어 당겼다. 점점 조천 체육공원에 남자들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박은 그대로 자리를 옮겨서 조천 연꽃 공원에 새롭게 둥지를 텄다. 너무 남자가 몰리다 보니까 자신의 불법 개인 트레이닝 장소가 더는 유지될 수 없어서였다.

    ‘이런 X발?’

    미녀답지 않게 이새롬이 욕지거리를 날렸다. 자연스럽게 장소를 옮길 수는 없었다. 실패였다.

    그 소식을 들은 김 기사가 김다은과 함께 그녀와 마주했다.

    “실패했다며?”

    “아직 실패는 아닌데요.”

    “운동 외에 자연스럽게 접근을 어떻게 해?”

    “그래도 잘생겼으니까, 고백해서 혼내 줘야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난다고?”

    “김 기사님, 생각 외로 예쁘면 장땡이에요. 그리고 상대도 저랑 너무 차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신생 기업 사장에 얼굴도 그 정도면 매력 있고. 절 내치지는 않을걸요.”

    그 말에 김 기사는 고민했다. 김다은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3주 만에 박살이 나놓고는 무슨. 선수금은 그대로 가져. 다음에도 봐야 하니까.”

    “진짜 이대로 끝낸다고요? 말도 안 돼요.”

    그 말에도 김 기사는 확고했다.

    “굳이 무리할 필요 없다고 내가 말했잖아.”

    “진짜 한 번만 믿어 주세요.”

    “……? 왜 그래? 3억, 너한테 별거 아니잖아. 선수금을 뺏는다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몸이 좋아서 그래요.”

    김 기사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쳤다.

    “미치겠구만. 너 알아서 해, 그럼.”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로 태산박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새롬이었다. 던전 사용자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산박의 개인 관리는 철저하다 못해 지독할 지경이었고 그런 남자와 잠을 자는 건 이새롬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 이시은이라는 년이랑 헤어지면 3억도 주셔야 해요.”

    물론 상업적인 이득도 보고, 몸 좋은 남자랑도 자고.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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