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270)
  • 162화

    * * *

    “오빠앙! 앙! 앙! 헤헤.”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는 미녀가 미소를 지은 채 카페에 앉았다. 171cm의 늘씬함은 하이힐에 검은 스타킹까지 더해져서 다리의 매력을 극한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붉은색의 타이트한 원피스도 남자라면 결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수술을 통해서 C컵까지 올린 가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돋았다. 무엇보다 피부과에 매년 천만 원까지 가져다 바치며 관리를 받고 있었기에 우윳빛 피부는 덤이었다.

    “이번에도 해외여행 갔다 왔더라?”

    “필리핀 바다가 진짜 아름답긴 아름답더라. 몇 번을 가도 안 질려.”

    “김 사장이랑 갔더만.”

    “김 사장도 알아? 역시 같은 김씨라서…….”

    김 기사는 그 말에 툭 내던졌다.

    “그냥 찔러본 거야.”

    “아~! 뭐야아앙~”

    어깨가 드러나 있었기에 움직일 때마다 깊은 쇄골이 보였다.

    “그 사람은 너무 집착이 심했어. 스쿠버 다이빙은 좋은 취미긴 한데, 한 달에 몇 번을 가는 건지……. 지겨워서 헤어졌어.”

    “좋은 거 하나 배웠네.”

    “남친 한 명에 취미 하나 배우는 거지, 뭐.”

    “해외여행도 갔다 왔으니 작업 하나 치자.”

    “결국 그럴려고 나 부른 거야?”

    “네 몸 때문에 내가 너 부르는 거지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 아니면, 다 늙은 사람이 네 취향이야?”

    “히히히, 한 번쯤 겪고 싶기도 하다.”

    김 기사는 속으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저급함에 어울려 줬다.

    “주말 밤에 연락해.”

    “아! 미친, 더러워!”

    김 기사가 웃었다.

    “어떤 사람인데? 잘생겼어?”

    “조금 날카롭게 생겼지. 딱 보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지.”

    김 기사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서 건네줬다. 하지만 그녀는 서류를 덮은 상태에서 말했다.

    “날 뭐라고 소개할까? 내 이름은?”

    “이새롬이 좋겠다.”

    “새로우니까?”

    “여자관계가 너무 깔끔한 놈이야. 순정 있는 놈을 좀 더럽게 만들어봐.”

    “순진한 남자네. 그런 남자는 여자 맛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이번 일은 쉽게 끝낼 수 있겠는데.”

    이새롬(가명)이 된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입술도 시원시원하게 크고 얇아서 더욱 매력적인 미소였다.

    달칵.

    그녀가 서류철의 단추를 열고, 펼쳤다. 그곳에는 태산박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던전 기업 사장? 돈은 많이 없어 보이는데.”

    “하는 일은 많아. 다만, 거기까지는 건드리면 안 돼.”

    “왜?”

    “사원을 가진 가문이 뒷배야.”

    산불은 내면 안 되는데 산에서 적당히 방화를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황당한 요구 조건일 수 있었지만 김 기사는 명확하게 목표를 입에 담았다.

    “이 남자는 이시은이라고, 적패 네크로맨서 유망주와 연인 관계야. 그 관계를 무너뜨리기만 해줘.”

    “그럼 끝?”

    “마무리도 자연스럽게 잘하고.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흥. 보통내기가 아니긴…….”

    이새롬이 산박을 가볍게 봤다. 이에 김 기사가 서류에 손바닥을 펼쳐 놓으며 읽지 못하게 했다.

    “이번 놈은 평범한 놈이 아니야. 근본도, 가문도, 곁에 기반 하나 없이 여기까지 올라와서는 포스코 타워와, 촌 동네라고는 해도 수천 혈족이 사원에 방문하는 세종시 부동 지구와도 연줄을 놓았다.”

    “…….”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새롬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김 기사라는 인간이 이토록 경계하는 모습을 통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김 기사는 천천히 손을 뺐다.

    “조심해. 들키면 잘라낼 수밖에 없으니까.”

    “…알았다고……!”

    작은 신경질이 스며들어 있었다. 떵떵거리는 남자들과 살을 섞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근본 없는 자존감이 들어차 있는 게 이새롬이었다.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본명 하나 꺼내지 못하는 버러지 같은 인간임에도 그 자존심만은 대단했다.

    당장에라도 SNS에서 돈 있는 남자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온갖 선물을 줄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새롬의 자신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래서 김 기사에게 조금 압도된 것만으로도 신경질을 부렸다.

    “선수금은?”

    “신경 좀 많이 써줬으면 해서 1억. 끝내면 3억.”

    “너무 세게 부르는 거 아냐? 이 남자가 그렇게 대단해?”

    “깊게 알 필요 없어. 그냥 포스코 타워와 오래된 가문 사이에 낀 놈이라서 부드럽게 처리해 주기만 하면 돼.”

    “접촉 방법은?”

    “네가 딜을 받아들이면 일주일 내로 알려줄게.”

    “좋아.”

    이새롬이 바로 일어났다. 앞에 놓인 커피는 반도 마시지 않았지만 거침없었다. 그녀는 정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김 기사는 일어나서 그녀의 잔까지 챙겨 뒷정리를 말끔히 하고 카페를 나섰다.

    ‘건방진 년. 벌리고 다녀서 재미를 보는 주제에 자존심은…….’

    저런 여자는 꽃이 지면 바짝 말라비틀어진다. 지금은 저렇게 잘나가도 스물아홉 살에서 서른 살이 되는 순간 수많은 이들이 그녀에게서 몸을 돌릴 터였다. 피부과에 돈을 투자하고 있었기에 서른네 살까지는 연명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는 모르쇠다.

    미래가 어두운 여자였지만 김 기사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자주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차량의 조수석에 나열된 스마트폰 중에서 검은색을 잡아서 경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해.

    스피커폰으로 바뀌고 경왜의 목소리 외에도 여성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의뢰 넣었습니다. 세 달 내로 해결해 보이겠습니다.”

    ―반년이 걸려도 상관없어. 확실하게만 해.

    “예…….”

    통화는 바로 끊겼다. 곧바로 산박에게 사람이 붙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이새롬과의 접촉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만한 시나리오를 위한 소재를 파악해 나갔다.

    거기에는 김 기사와 김다은이 책임자로 움직였다. 다은은 어디서든 김 기사를 대신해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해야 했다. 그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정보가 토해지고, 선별되기 시작했다.

    “봐보세요. 다은 씨가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SNS 안 하는 남자요? 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같죠.”

    “찐따 같다는 말이죠.”

    “요즘 세상에 SNS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거기에 태 사장은 아직 20대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못생긴 것도 아니라서, SNS 하면 나름 많은 인연을 쌓을 수 있을 텐데……. 얼굴이 아깝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그런 것 같아요.”

    “하하하.”

    김 기사가 웃었다.

    “신생 던전 기업이면 더더욱 회사 홍보를 위해서라도 SNS를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공짜로 노출도를 높이는 건데, 회사 경영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죠.”

    좋든 나쁘든 언급이 되어야 하는 게 이 바닥이다. 그런데 그게 전혀 없는 게 던전 기업 ‘옥시모론’이었다.

    사장이 예쁘면 홍보가 된다. 홍보하면 돈이 들어온다. 그건 수많은 크고 작은 기업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기업 또한 예쁘게 생긴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고, PC방 알바만 봐도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를 뽑고 싶어 한다. 다만, 태산박은 그런 기미가 없었다.

    “삭막한 기업 경영이네요.”

    “성장을 스스로 둔화시키고 있죠. 성장하는 방법을 강제적으로 쳐낸 것 같지 않습니까? 가지처럼.”

    김 기사에게는 더 높이 자라라고 나무의 가지를 쳐주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SNS로 접근하나 봐요?”

    “취미 보고 쪽지 보내면 게임 끝이죠.”

    “취미가 없는 사람은요?”

    김다은의 말에 김 기사가 눈웃음 지었다.

    “요즘 취미가 없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냥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취미로 취급해 주는데. 산책하는 것도 취미죠. 어디서 먹었냐, 산책 어디서 했냐. 그것도 미인이 그렇게 보내면 열이면 열 답장해 주기 시작하죠.”

    “그러다가 물리게 되는 거예요?”

    “물린다는 표현이지만, 사실 고통스럽지는 않죠. 코드가 잘 맞는다고 여자가 한번 만나자고 하면 남자도 땡큐죠.”

    “근데 태산박은 SNS를 안 하죠.”

    “요즘 젊은 사람이 이렇게 하기는 힘든데. 아무튼, 조금 더 두고 봅시다.”

    김 기사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가진 게 있으면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숨기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 * *

    똑똑.

    “들어오세요.”

    송서아가 말하자 준달독(俊達牘) 차장이 다시 한번 들어왔다. 그는 냉큼 서류를 전달했다. 송서아는 메일을 통한 보고를 좋아하지만 ‘음습한’ 계획은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보고받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

    사락, 사락.

    서류가 넘어갔다. 벌써 스물한 번이나 퇴짜당했기에 준달독 차장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이제야 좀 엘리트 같네.”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듣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송서아가 서류를 놓았다.

    “영업으로 뚫는다. 정공법이긴 하지만, 은행이니까 자연스럽죠.”

    “예. 요즘 은행원들이 승진하려면 다 성과제 아닙니까.”

    준 차장이 은행원의 현실을 논했다. 그들은 금융업계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승진하려면 실적이 필요했다. 공무원처럼 따박따박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경쟁을 통해서 과장 직함을 달고, 차장 직함을 단다.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실적이었다. 대출 상담 받으러 오는 사람을 등쳐 먹고 예금하러 온 사람을 등쳐 먹고 적금하러 온 사람을 등쳐 먹는 것 외에도 기업이 대출하도록 만들게 발품 파는 것 등. 모든 것이 성과로 결정된다. 부유한 곳의 은행에 있는 사람은 가만히 은행에 앉아서도 단번에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발품을 팔아야 했다. 고로 은행원들이 기업을 돌아다니며 영업하는 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받으세요.”

    송서아가 다시 서류를 그에게 건네줬다. 준달독 차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받았지만 어림도 없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영업 사원을 과장으로 설정하셨는데, 너무 상상력 부족하신 거 아닌가요? 과장이 무슨 억대 매출도 올리지 않는 기업에 영업하러 들어가요?”

    “아, 그게……. 죄송합니다. 그럼 계장으로 할까요?”

    “네. 그리고 세종시 지점 쪽 사람들을 쓸 거니까, 출장 좀 오래 다녀오세요.”

    “제가요?”

    “그럼 누가 가요?”

    “제가 가겠습니다.”

    “가서 그쪽 계장 중에 영업 잘하는 사람 뽑아서 접촉하세요. 세종시 지점에서 캠페인도 열 생각이에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냥 영업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 자연스럽지 못해요.”

    “어떤 캠페인을 할까요?”

    “중소기업 3년 무이자 최대 몇 억. 지금 옥시모론 회사가 1레벨 전담 팀 만들어져 있고, 2레벨 공략 준비 중이잖아요?”

    제법 자세한 정보를 송서아가 입에 담았다. 그만큼 디테일 있는 계획이 잡히고 있었다.

    “네.”

    “여덟 명에서 최대 열 명이 가니까 그거 2레벨 풀 장비 끼려면 돈 들잖아요. 그 비용을 3년 무이자로 대출해 주고 우리 고객으로 만들겠다. 이런 거죠.”

    “2레벨 풀 장비가 2천에서 3천만 원 정도입니다. 1억 6천에서 3억입니다.”

    “그럼 최대 1억 무이자. 그 이상은 이자율 8%, 아니, 11%로 잡아서 최대 3억까지.”

    “예? 1억이면 모두 풀 장비로 못 할 텐데요. 그럼 받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송서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얇고 새하얀 목에 핏대가 섰다. 딱 봐도 화를 참는 모습이었다. 이에 준달독이 냉큼 대답했다.

    “1억이라도 감지덕지하죠. 3년 무이자인데요…….”

    “우리 지점 영업 1위인 준 차장님은 진짜 영업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시네요.”

    송서아의 날이 선 말에도 준달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덕에 송서아는 가지치기를 감행했다.

    “그냥 세종시 지점에 가지 마세요. 이 계획서에 가장 많이 지분 있는 사람 데려오고 나가서 일이나 보세요.”

    “아, 예!”

    준달독 차장은 그게 자신이라고 거짓 보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머리는 있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들킨 상태였다. 거기에 이렇게까지 실망을 안겨줬다. 여기서는 빠지는 게 좋았다.

    곧 수달군(水澾裙) 과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송서아는 그 인사를 일어서서 받았다. 그리고 악수를 하였다. 수달군 과장은 절로 어깨를 수그린 채 소심하게 양손으로 공손히 악수했다. 송서아의 손은 따뜻했고 피부가 너무 부드럽고 말랑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편하게 앉으세요.”

    “예.”

    “이 계획서 가장 많이 참여하셨다고.”

    “네. 그렇습니다. 차장님께서 해보라고 하셔서…….”

    “세종시에 있는 지점 쪽 사람을 쓸 생각이에요.”

    송서아가 말을 하자마자 수달군 과장이 메모하기 시작했다. 이를 송서아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웃었다.

    “제가 빈틈이 많아서 이렇게 써야 합니다.”

    “아, 네. 아무튼 캠페인을 진행할 생각이에요. 시기도 적절하고요.”

    “그럼 설문 조사부터 해야 할 겁니다.”

    “어떤 설문 조사요?”

    “대출받을 의향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까지 원하는지. 그런 걸 하고 다니는 은행 인턴들을 한번 마주하는 거죠.”

    “나쁘지 않네요. 전단지도 나눠주고.”

    “작은 오프라인 이벤트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우리 부산 은행은 세종시에 지점만 하나 있고 그 외의 활동은 크게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계속 말해 보세요.”

    송서아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니까…….”

    달군 과장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송서아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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