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270)
  • 161화

    * * *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의사가 타박했다.

    “던전에 갔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썩은 가스층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김각두가 횡설수설했다. 의사한테 말해도 딱히 의미가 없었다. 그런 건 회복 물약을 먹여서 이미 치료가 완료된 상태였다. 그저 생명력이 부족한 상태일 뿐.

    “일단 병실이 날 때까지는 응급실에서 며칠 지내셔야 합니다. 요즘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가 많아요.”

    거짓이었다. 그저 정부가 책정한 수가가 외과의 업무에 비해서 낮을 뿐이었다. 그래서 외과 의사 숫자는 꾸준히 줄어들었고, 병실이 놀아도 관리할 의사가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서 박 터지는 건 후배만 득실거리는 응급실이었다.

    호흡기를 끼고 있는 연정의 앞에 각두가 앉았다. 다른 두 명은 서서 이를 지켜봤다. 병실의 벽에 붙어있는 작은 병에서 산소가 보글거렸는데, 간호사가 와서는 이를 최대한으로 조정했다.

    “이렇게 산소를 높여도 됩니까?”

    산박의 말에 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사라졌다. 그만큼 호흡이 불규칙해서 최대한의 산소를 집어넣어 줘야 했다.

    “사장님, 잠깐 밖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각두의 말에 산박이 시은에게 말했다.

    “연정 씨를 지켜봐 주세요.”

    “네. 갔다 오세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시은이 김각두가 앉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각두와 산박은 응급실에서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각두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산박은 거절했다.

    “던전에서 영향이 있어서…….”

    “아…….”

    각두가 입에 댄 담배를 이내 손가락으로 부러뜨려서 바닥에 버렸다. 산박의 생각을 지나칠 정도로 따라가려는 행동이었다.

    “피우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각두가 심호흡을 했다.

    “저, 돈 좀 빌려주십시오.”

    “응급실 비용 때문이죠?”

    “그것도 그렇고, 저대로 오래 놔둘수록 재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생명력 회복과 관련된 던전 아이템을 사야 하겠는데, 최소 3백만 원은 든답니다.”

    산박은 능히 건네줄 수 있는 돈이었다. 드루이드 과수원 로열티, 잔잔벼락의 서만주 사업. 거기에 이제는 물의 나무 근처에서 삼까지 크고 있었다.

    ‘거기에 1레벨 전담 팀으로 회사 자체에도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고 있지.’

    매주궤를 억지로 성장시킨 대가. 그것도 이제 안정화된 상태였다. 그는 훌륭한 함정 주술사가 되었고, 1레벨 던전에서는 보스전을 아이템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는 괜찮은 견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덕에 싼값에 임시 팀원까지 한 명 끼워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었다.

    고로, 산박은 그 제안을 너무나도 쉽게 들어줄 수 있었다.

    “3백만 원, 김각두 씨에게는 큰돈 아닙니까? 그걸 너무 쉽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이라면 충분히 해결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답이었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왜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가. 처음에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자기 본론만 꺼냈어.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정치력이 낮다고 해야 할지, 형편없었다. 모함당해서 죽기 딱 좋은 인상을 줬다.

    “차용증을 쓰시겠어요? 물론 무이자입니다.”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 욕심도 없어 보였다. 한 여자를 위해서 사는 남자 같았다. 그건 마이너스였다.

    ‘욕망이 없으면 동기도 시들기 마련이지.’

    고레벨 던전에 들어서며 김연정이 더는 레벨 업을 안 해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때 은퇴하거나 낮은 레벨의 던전을 공략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즉, 고점을 찍었을 때 추락하는 상품이었다.

    ‘단타 상품에 큰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고레벨까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치가 있다.’

    A급 성기사였다. 험난한 던전에서도 경상으로 그치는 용맹한 던전 사용자였다. 전사들과의 호흡도 좋아질 게 분명했다. 이런 인재는 최고점을 찍고 바로 은퇴하거나 저레벨 던전으로 되돌아가도 산박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적어도 고레벨 던전을 처음 공략할 때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서였다.

    “대신,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하셔야 합니다.”

    “예. 근데, 연정이도 고용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10년 장기 계약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단물만 쏙 빨아먹고 회사 나가면 저만 손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산박은 딱 준비를 했다. 이건 채찍이었다. 선뜻 선택하기 힘든 결정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당근이 필요했다. 몇 가지 당근이 생각나기도 전에 김각두가 우직하게 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무 쉽게 결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던전에서 보여주신 모습 때문에 신뢰합니다.”

    “대우는 다른 사람과 똑같고, 계약서 내용도 하는 것만큼 수정, 갱신해 드리겠습니다. 열심히만 해주시면 됩니다.”

    “열심히 안 하면 내치실 겁니까?”

    “내쳐야죠. 요즘 사람, 사람으로 보기는 합니까?”

    산박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 질문이 ‘김연정’을 위한 질문임을 알아서였다. 그는 김각두에게는 따뜻한 사장이었지만 그에게 딸려 오는 김연정은 쓰레기였다. A급 성기사의 사랑을 얻어서 빌빌거리는 거지에 불과했다. 그런 거지 밥벌레도 포용하는 이유는 그녀가 있기에 김각두가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이유도 없었다.

    “연정이도 내쳐질 수 있습니까?”

    “각두 씨가 나가면 나가야겠죠. 혹은 각두 씨가 제대로 못 하든가.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던전에서 보여준 실력의 반만 해도 전 각두 씨를 끝까지 데려갈 생각입니다.”

    “좋습니다.”

    그 이후에 바로 약식 계약서를 수기로 두 부 작성해서 서로 나누어 가졌다.

    * * *

    김다은은 택시에서 내렸다. 인적이 드물었지만, 도로는 골목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넓었다. 부유한 동네였다. 부유한 만큼 담벼락도 몇 미터나 되었다. 평범한 잡도둑은 그냥 보고 지나치고 싶어 할 정도로 높은 담벼락이었다.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도 있었고, 자연적인 돌을 박아놓은 길이 느긋하게 꼬불거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좀비가 다은 앞에서 입을 움직였다.

    “보고해라.”

    “예. 경왜 님.”

    다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패 네크로맨서 경왜. 그가 다은의 후원자였다. 현대인의 시체를 사들여서 언데드에게 집 안의 경비를 맡기는 건 돈 많은 네크로맨서가 으레 하는 짓이었다.

    “이시은과 태산박은 연인 관계입니다. 서로 꽁냥거리는 것이 최근에 사귄 듯합니다. 이는 시기적으로도 맞아떨어집니다.”

    “1레벨 던전부터 함께했다지. 그나저나 그런 엘리트가 하찮은 남자한테 꼬이다니.”

    해골학은 네크로맨서의 근간이었다. 스켈레톤은 하위, 중위, 상위 언데드 작성에 반드시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따졌을 때, 이시은은 네크로맨서 전체의 전력을 상승시키는 게 가능했다.

    특히 서리 해골은 던전보다는 현실에서 더 효과적인 존재였다. 인간은 생명체고, 한기를 느끼면 온몸의 반응이 늦어진다. 엄동설한의 강에 빠진 사람이 단 2분 내에 저체온으로 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는 것만 해도 저온의 냉기를 뿜는 해골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그 덕에 하위 서리 해골을 모티프로 삼아서 중위, 상위 서리 해골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네크로맨서 연구자 팀들이 많이 생겼다. 성공만 하면 포스코 타워에서 큰돈을 받을 수 있었다.

    ‘큰 흐름이 만들어졌지.’

    한기(寒氣)에 대한 연구! 트렌드를 창조하는 힘. 그게 이시은에게 있었다.

    “다은아.”

    경왜의 목소리가 좀비로부터 흘러나왔다. 김다은 적패 네크로맨서는 절로 고개를 숙였다.

    “태산박. 놈에게 여자 하나 붙여 줘야겠다. 쌔끈한 년으로 붙여줘. 적어도 비주얼로는 이시은보다 더 대단한 여자로 붙여놔. 어려운 거 아니잖아?”

    “네.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기는……. 김 기사가 알아서 할 테니 김 기사랑 같이 다니면서 일도 배워라. 앞으로 넌 내 라인이다.”

    “예.”

    김다은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모를 것이었다. 그녀가 멍청하기 때문에 경왜의 밑에 들어왔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버림 패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지.’

    버림 패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하면 권력자라고 할 수 없었다.

    다은은 그다음 날 김 기사를 만났다. 본명은 몰랐다. 그저 김 기사였다. 그는 반백의 신사였는데, 말끔했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염색을 안 한 반백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궁금함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 필요 없어요. 피부과 가세요. 화장품이나 쓸데없는 것에 엉뚱한 돈 쓰지 말고 그냥 피부과 가세요. 라고, 제가 항상 제 피부 관리법 묻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아하…….”

    다은은 그냥 그렇게 넘겼다. 그럴 돈이 어딨는가. 화장품에 연간 수백만 원을 써도 피부과에 돈 쓴다고 말하는 건 왠지 사치스러웠다. 그런 느낌 아닌 느낌이 드는 게 피부과였다.

    “근데, 미녀를 어떻게 섭외하죠?”

    다은이 순진한 소리를 했다. 언제든지 대가리로 지명해서 마녀사냥당하게 한 다음에 징역 10년 크리 맞고 감옥에서 살게 만들 수 있는 인재였다. 바지 사장의 표본! 그게 바로 김다은이었다.

    ‘여자이기에 사장으로 삼기 좋지.’

    법 집행에 있어서 여자는 우대받기 때문에, 특히나 요즘 바지 사장으로 핫한 것이 여성이었다.

    또한 여자이면서도 예쁘거나 귀여울수록 더욱 좋았다. 세계에 잔뜩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냥 국제적인 공통 사항이 바로 외모 지상주의였다. 그리고 외모는 징역형이냐 집행 유예냐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였다.

    “예쁘다고 다 부자겠어요? 아니죠?”

    “네.”

    “일단은 전적이 있는 여자들을 추려낼 겁니다. 그런 라인이 있어요. 작은 기업인데, 조폭들이 운영하는 곳이죠.”

    “조폭들은 무슨 사업을 하는데요?”

    “뭐, 여러 가지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댓글 알바들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술장사나 도박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승부 조작 브로커들 경쟁이 많죠.”

    “승부 조작 브로커요?”

    “선수들한테 여자 공급하고, 그 여자가 브로커가 되어서 중간에서 해 먹는 겁니다.”

    “와, 그게 돼요? 막, 선수들은 스포츠맨이잖아요.”

    그 말에 김 기사가 웃음이 빵 터졌다.

    “후하핫! 아, 죄송합니다. 크흐하하하!”

    웃음을 참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크흠, 죄송합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이야 그렇죠. 돈도 많이 받으니까 이제 명예욕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스포츠맨십을 으뜸으로 삼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있지만 결국 비슷하게 갑니다. 근데, 연봉 낮은 선수들은 어떻습니까. 돈을 만지긴 해도 불안하긴 매한가지죠.”

    “은퇴 나이도 있고요.”

    다은의 말에 김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어쩌겠어요? 안 하고 배겨요? 못 배기죠. 거기에 여자가 미녀에 살까지 섞으면 정이 생기거든요. 그럼 거기서 게임 끝입니다. 남은 건 나락이죠.”

    꽃향기에 이끌려 자신의 커리어가 사라지고,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을 못 보게 된다. 남자의 본능이었다. 그 누구도 미녀를 조심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하해 주기 바쁘다. 남자란 생물은 그렇다. 기업은 그저 그걸 잘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조폭들은 그런 여자들한테 큰돈을 줍니다. 한 건당 5천만 원, 제대로 이득을 내면 추가금으로 억도 가져가요.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다은이 침을 삼켰다. ‘억’이라니. 억 소리가 났다.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면 월급이랑은 좀 다릅니다. 너무 쉽게 들어온 돈이고, 당장 큰돈이니 이것저것 안 해본 거 하기 시작하죠. 그러다가 돈이 뚝 떨어지면 어찌합니까? 일하겠습니까?”

    “일을… 해야겠죠?”

    김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미인계를 쓰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 되죠. 한 달 고생해서 월급으로 백만 원 벌기도 힘든 세상이에요. 최저 시급 맞춰주는 곳이 몇 곳이나 있겠습니까? 전에 한 탕으로 3천만 원, 5천만 원, 1억! 그것만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죠.”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꼬리 치고 다니고, 벌릴 거 다 벌려주고, 못 하는 게 없습니다. 스포츠에 오가는 돈 보세요. 사람 돌아 버리게 하기 충분합니다.”

    “여자만 불쌍하네요.”

    다은이 그녀들을 불쌍히 여겼다. 마치 돈에 지배된 것처럼 여겨졌다.

    “쯧쯧, 요즘 핫한 스포츠가 뭔지 아십니까?”

    “네? 전 그런 거 잘 몰라서요. 드라마는 몰라도…….”

    “여자 배굽니다. 작년부터 야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러 갑니다.”

    “예? 여자 배구가 그렇게 인기가 좋아요?”

    “장난 아니죠?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도박 사이트에서 여자 배구로 향하겠죠?”

    “서, 설마…….”

    “요즘엔 잘생긴 남자 찾으려고 조폭들이 난립니다. 서로서로 연예계 연습생 회사 차려서 애먼 젊은이들 꼬시고 있죠.”

    다은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런 반응조차도 우스웠다. ‘진짜 체감’을 하고 있지 못해서였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예요. 선수들 여자 친구 노릇 하면서 등쳐 먹는 여자 중에서도 비싼 애들 골라서 태산박과 연관 지을 겁니다. 그런 여자 보면 사타구니 안 서고는 못 배길 겁니다.”

    “그리고 이시은과 헤어지게 만든다…….”

    “자연스럽죠.”

    “그 여자는요?”

    “시은에게 이별 통보 한 후 일주일 뒤에 산박과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한 달에 해외여행을 두 번 가는 여자인데, 평범한 사장이 손에 쥐고 있겠습니까?”

    김 기사가 일어섰다. 다은도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갑시다. 면접도 바로 잡혀 있습니다. 말했다시피 한 건 하고 나면 일을 안 하는 게 그년들이라서요.”

    여자 앞에서 거침없이 ‘년’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김다은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년과 그녀는 거대한 장막을 두고 서로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려서였다. 그 어떤 동정심도 일어나지 않았다. 1억 정도는 손쉽게 버는 여자가 있어서였다. 그것도 미인계로.

    ‘말도 안 되는 세상이야.’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더더욱 아무렇지도 않았다.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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