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70)
  • 160화

    <囊中之錐>

    이미 결정은 마음속으로 내려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다시 한번 의식 밖으로 끄집어내서 판단을 고쳐 잡았다. 혹시나 싶어서였다. 모든 것에 돌다리를 한 번씩 두드리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김연정은 김각두의 족쇄다.’

    그녀가 없었다면 김각두는 지금쯤 용걸섭, 용갑균 형제처럼 A급으로 취급받으며 다양한 기업으로부터 오퍼를 받아서 2레벨 공략을 수월하게 했을 터였다.

    ‘반대로 김각두는 김연정이 있기에 나에게 올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존재했다. 만약, 김연정을 지키지 못하고 끝난다면? 김각두를 붙잡는 것은 없다. 그리고 김각두는 곳곳을 떠돌이처럼 돌아다녔다. 그에게 미리 눈도장을 찍은 자가 하나쯤은 있을 법했다. 적당히 몇만 원씩 지급해 주거나 밥 한 끼 사 먹이면서 인연을 끌고 가는 이들도 있을 수 있었다.

    ‘전투를 겪고 던전의 끝마무리가 되면 김각두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지.’

    특히나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2레벨 던전을 전전하며 3레벨을 꿈꾸는 김각두가 경상으로 던전을 마무리할 때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실력에 따봉이 척 걸린다. 다만, 김연정 때문에 영입을 포기했을 공산이 컸다.

    ‘자유롭게 날아오르려는 새를 내가 잡을 수 있는 상황인가?’

    그 집이 되어줄 수 있나? 회의적이다. 산박은 겨우 1레벨 전담 팀을 매주궤 팀장을 통해서 굴리고 있었고, 2레벨은 초행길을 방금 끝마쳤다. 그런 곳에 김각두가 들어온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김연정 때문일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지.’

    데이터로는 볼 수 없는 게 있다. 야구 스카우터들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굶주림’과 ‘배고픔’에 대한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을 때다.

    ‘절박함이 있는 사람.’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놈. 그런 놈이 남들보다 배는 노력하고 고통 속에서도 글러브를 손에 끼운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부상에 대해 무디지만, 이런 놈들은 불구덩이를 앞에 두고도 한 번 더 던진다. 1년 뒤의 커리어보다는 지금 당장의 승부에 집착한다. 돈이 없어서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절박함’이 되어주는 김연정은 김각두의 동기 부여를 위한 부품이었다.

    ‘그녀가 사라지면 김각두는 예전처럼은 안 되겠지.’

    그 불확실성. 인적 자원이 가지는 오류.

    그렇기에 산박은 곧 죽어갈 것 같은 김연정을 방치할 수 없었다. 으레 그렇듯이 대부분 사람이 현상 유지를 원한다. 이번에는 산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김각두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몰랐다. 마지막 디펜스에서야 그의 실력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용걸섭과 용갑균 형제에게 눈을 계속 주고 있었다. 주시했다.

    “후우! 훕!”

    산박이 단번에 지친 몸에 호흡을 강하게 내뱉으며 이빨을 악다물었다. 가볍게 김연정을 들어 올려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트럭 상인에게 손짓했다.

    “치료 물약 빨리 가져와요!”

    “예!”

    손님을 맞이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던 트럭 기사 몇몇이 서둘러 달려왔다. 산박은 김연정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호흡이 불규칙해지면서 어느새 정신을 잃었던 연정이 숨을 한 번 크게 뱉으면서 눈을 떴다.

    “회복 물약입니다. 마시세요.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물약이 체내로 들어갔다. 상처는 없었지만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라 그녀는 800ml나 되는 양을 그대로 삼켰다. 물약이 세 병 동났다.

    값을 치르고, 산박은 그녀를 응급실로 보냈다. 보호자 연락처로는 산박의 연락처가 저장되었다. 연정과 각두의 인연이 되기 위함이었다.

    애용애용!

    구급차가 소리를 크게 내며 질주했다. 산박은 그다음에서야 몸을 돌려서 짐을 하나씩 꺼내 올렸다. 그사이에 각두도 도착했는데, 그는 매우 다급한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산박의 말에 그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청철 문장 때문에…….”

    워낙 갑질을 당하면서 살아오다 보니 그냥 묻는 말에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산박은 단번에 잡아챘다.

    ‘약자인 김연정을 데리고 다니니까 빛의 신이 좋아할 만하지.’

    “연정 씨는 회복 물약 세 병을 먹이고 응급실로 보냈습니다. 제가 각두 씨 연락처를 몰라서 저한테 연락이 오기로 했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지금 그 병원 연락처를…….”

    “저야 모르죠. 저쪽에서 연락이 와야죠.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지는 못했네요.”

    산박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들었지만 숨겼다. 그걸 알려줄 구급 대원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명의 구급 대원이 하루에 상대하는 응급 환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 그 모든 일을 기억하기는 힘들었다.

    “아……. 예.”

    “나중에 연락이 오면 같이 가죠.”

    “네. 알겠습니다.”

    산박은 각두와 함께 짐을 옮겼다. 배낭의 표면은 썩은 수액으로 가득했다. 배낭에서 삐쭉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나무 심장과 나무 힘줄만 챙겼음에도 수십 배낭이 나왔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한몫 두둑이 챙기겠어.’

    물론 하청 팀은 고정 금액만 받고 짜이찌엔이다. 꼬우면 빨리 3레벨로 올라가든가 밑의 던전이나 가면 된다. 3레벨 풀 장비 금액 때문에 2레벨에 잔류하고 있는 던전 사용자들이 많았다. 자연히 그 가치는 떨어지고, 경쟁은 심화되었다.

    ‘개같은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박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그저 작은 소기업의 사장일 뿐이었다.

    산박은 시은의 추천으로 왔기에 수익을 나눠서 받을 수 있었다. 다만, 포스코 타워에 줘야 하는 금액이 15%에 달했다. 판을 깔아준 돈인 셈이었다.

    ‘던전은 던전 사용자가 클리어하고 돈은 포스코 타워가 가져가네.’

    그런데도 이 짓을 해야 하는 이유는 A급 전사 두 명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산박의 회사에 A급 전사라고 하면 충호뿐이었다. 탕만은 B~C 수준이었다.

    수익금은 640만 원에 달했다.

    ‘평범한 팀이었다면 열 명이서 공략했으니까 1인당 64만 원씩 가져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포스코 타워가 15%를 가져간다. 무려 96만 원이다. 아마 다른 ‘2레벨 던전 공략을 위한 판을 깔아주는 회사’들 모두 15%로 동결되어 있을 것이었다. 담합은 흔했다.

    하청한 이들에게는 고정금이 들어간다. 일차적으로 오퍼를 받은 용걸섭과 용갑균은 40만 원을 가져갔고, 그들의 오퍼를 받은 하청의 하청 남명겸과 박쇠패는 20만 원, 그들로부터 하청 받은 김연정과 김각두는 10만 원씩이었다.

    ‘오히려 1레벨 수익금이 많지.’

    140만 원이 하청 팀에 들어간다. 여섯 명을 고용했는데 140만 원이다. 미쳐버린 구조였지만 자본주의였기에 가능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치는 떨어진다. 당연한 일이었다.

    ‘끔찍한 구조.’

    하청이 지닌 악독함이 절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시은, 김준서, 김다은, 태산박에게는 101만 원이 돌아갔다. 죽은 이들에게 연고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들어갈 것이었다.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해야 했다. 산박은 돈을 더 받고 그런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곧바로 거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시은이 통화를 끝내고 결과를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래요. 포스코 타워 쪽에서 적패 네크로맨서 몇 명이 와서 보고서 작성하고 간대요. 경찰도 올 거고요.”

    평범한 던전 사용자가 죽었으면 경찰은 오지도 않는다. 그냥 사망 처리 하고 보험사에서 처리한다. 보험도 넣지 않았다? 그걸로 종결이었다.

    ‘던전 사망’이라는 사유가 법에 등록된 지 오래였다. 최소한의 경찰 인력으로 사망 처리 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람 목숨을 너무 쉽게 여겼는데, 그게 던전 사용자의 현주소였다. 국회 의원에 줄 하나 놓지 않는 던전 사용자들이 뭘 하겠는가? 결국 권력자들의 법이었다.

    던전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던전 사용자는 역설적으로 던전에서 죽이는 게 가장 편했다. 던전 경제에서 활동하는 던전 사용자의 끝은 결국 성공이었고, 그렇게 성공하면 헛물 들이켜기 쉽다. 자연스럽게 암살당하기 마련이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손을 싹싹 비비는 연습을 잘해야 했다.

    ‘그건 나중의 일이지만.’

    대(代)에서 대(代)로 대물림되는 영향력과 자본을 이기는 방법은 잘 없었다. 그나마 현대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기회는 제공해 주는 편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금화는커녕 은화도 상대 봐 가면서 주고, 괘씸하면 그냥 강탈하는 게 기본이었다. 저작권 그런 것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적패 네크로맨서가 한 명만 죽었다는 점이었고, 박쇠패는 돈이고 나발이고 도망친 지 오래였다. 산박이 그를 굳이 잡지 않은 건 자신의 손에 쓸데없는 피를 묻히기 싫어서였다. 또한 포스코 타워와의 연줄을 강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직은 조용히 지내는 게 좋지.’

    산박은 그렇게 생각하며 장 노인을 떠올렸다. 부동 지구. 세종시의 위쪽으로 산을 넘어야지 보이는 작은 동네다. 병원은 당연히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사원이 하나 있고 혈족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군산 쪽 문제를 해결했다.

    건방진 양귀문 부장은 죽임당했다. 산박의 손에는 피 하나 묻지 않았다. 완벽한 일 처리였다. 그만큼 산박의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 사업은 상당했다. 머슴처럼 고개를 넙죽 숙이고 일하는 놈이라면 한 번쯤 살려줄 만하지만, 그 외는 어림없었다.

    ‘연기 장가(家)를 이용해서 날 숨긴다.’

    대외적으로는 장 노인이 커버를 쳐줄 것이었다. 그는 계속 산박이 주는 사업을 함께해야 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와 마주하고 싶지 않을 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산박은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시은과 다은이 포스코 타워에 목소리를 높이고, 일을 덮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은 박쇠패에게로 향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상관없다.’

    관심조차 없었다. 박쇠패는 그런 존재였다.

    “끝난 겁니까?”

    “예. 귀가하시면 됩니다.”

    산박은 진술서 하나 쓰는 게 끝이었다. 다른 이들도 쉽게 끝났다. 시은과 다은 덕분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두 사람의 증언이 곧 증거였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수사가 이루어졌다. 경찰서로 가지도 않았다는 게 인천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법 위에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종이 한 장과 몇몇 이들의 증언으로 두 명의 죽음이 덮어졌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 한 명도 그 뒤를 이을 것이었다.

    “연락하겠습니다.”

    용걸섭이 다가와서 산박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날 한번 잡겠습니다.”

    산박도 웃음기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하지만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방패가 장물.’

    도금을 통해서 ‘진품’을 가리고 전혀 다른 방패가 되었다. 아마 쉽게 찌그러지거나 뜯겨 나간 건 추가 용접을 해서 형태를 바꾼 곳일 터였다.

    ‘하자가 있다.’

    A급 전사이지만 하자가 존재했다. 어두컴컴한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파트너로서 좋은 점이 아니었다.

    인간 백정으로 살았던 살인자, 태산박? 신부가 죽으면서 그 죄를 다 가지고 갔다. 산박이 고아원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신부가 산박의 죄를 가져갔고 희생했기에 산박은 고아원이 계속 눈에 밟혔다.

    ‘조사해 보고 판단한다.’

    하자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를 알아야 했다. 물론 그 생각은 바로 뒤집혔다.

    ‘병신이 아니고서야 바위틈을 열어볼 리가 없지.’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범죄를 저지르는 놈은 무조건 건들면 안 됐다. 쉽게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안 건드리는 게 상책.’

    상대도 자신이 이시은의 연줄인 걸 알기에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툭.

    “경찰이 뭐라고 안 했어요?”

    “진실대로 쓴 게 전부였죠.”

    “다른 사람은 다 끼리끼리 갔어요. 저희도 둘이서 뒤풀이로 곱창 먹으러 가요.”

    “아뇨. 병원에 가봐야 해요. 김연정 씨 때문에요. 김각두 씨랑 같이 가볼 생각인데…….”

    “그럼 저도 가요.”

    “시은 씨가 왜요?”

    “눈독 들이시는 거 아니에요? 그럼 회사 팀장인 저도 가서 도와줘야 하고요. 아니에요?”

    시은은 먼저 사무적인 이유를 툭 내던졌다.

    “맞긴 맞지만… 너무 부담이 될까 봐 그러죠. 시은 씨도 쉬어야죠. 던전 뒤풀이랑은 많이 다르잖아요.”

    산박은 능숙하게 시은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그녀를 가볍게 밀어냈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대신! 거기 볼일 끝나면 밥 한 끼 사주세요.”

    “제가 왜 밥을 삽니까.”

    산박은 마지못해 따라오는 건 허락하는 대신에 식비 지출을 꼬집었다.

    “사장이 부하 직원한테 밥 한 끼도 못 사줘요?”

    “…법카 쓰세요.”

    “태.산.박. 사.장.님.이…….”

    “알았어요. 그만.”

    김각두가 자신과 시은을 보고 있자 산박이 말을 잘랐다. 다른 이들이 보면 썸을 타는 것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사내 연애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생각하면 연애는 사치였다.

    “왜요? 삼귀는 사이로 보여서 부끄러워요?”

    “삼귀다가 무슨 말입니까?”

    “…정말 몰라요?”

    “네.”

    “이건 좀 심각한데.”

    “국어 파괴 하지 말고 갑시다. 병원 쪽에서 문자로 연락 온 지 제법 되었어요. 중환자실로 가면 된다네요.”

    “네.”

    택시를 탔다. 김각두는 자연스럽게 산박에게 뒷좌석 문을 열어주고 자신은 택시 기사의 옆자리에 탔다.

    부릉부릉!

    택시가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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