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70)
  • 158화

    까악! 까악! 까아악!

    썩은 까마귀들이 거세게 울어댔다. 목청이 울리다 못해 부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너무 힘차게 울어대서 안 그래도 썩은 몸, 뭉개져서 움푹 들어간 가슴 때문에 심장이 툭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까마귀는 단번에 아래로 떨어져서 머리를 땅에 처박고 죽었다.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되었다. 울고 죽기를 반복하며 까마귀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거기서 나오는 썩은 피가 흙을 적시며 진창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썩은 가스층 때문에 습기가 찬 곳이었다.

    수백 혹은 수천 마리가 넘는 ‘썩은 까마귀’들의 소란과 죽음이 기이한 전쟁터를 만들었다. 시체로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의 경계는 모호했지만,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명확했다.

    땅이 검게 변질됐다. 축 늘어진 까마귀 시체를 밟아서 터트리고 짓이기며 ‘썩은 과육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그어, 그억.”

    소리를 냈지만 제대로 된 소리는 아니었다. 내부도 썩어 있어서였다. 그저 나뭇가지에 걸린 충격 과육만이 멀쩡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썩은 과육 괴물의 무리는 그 숫자만 해도 서른을 헤아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한곳에 뭉쳐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산박이 눈을 부릅떴다.

    ‘영혼 자극.’

    산박의 눈에서 광채가 터져서 흘러나왔다. 이는 몸에서도 조금 피어올라 왔는데, ‘영혼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기술로 증폭되는 주문의 위력이 더욱 배가되었다. 진리는 봉인되었지만 ‘의문의 존재’가 작은 편법을 그에게 제공해 줬고, 그 덕에 산박은 레서 컨벡션이라는 수법을 사용해서 모든 기술과 주문을 강화할 수 있었다.

    ‘아쉬운 건 힘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지.’

    그래도 만족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다.

    ‘소나무 향기 외뿔.’

    전과 다르게 외뿔이 돋아났다. 소나무 향기가 잔뜩 퍼져 나갔고, 산박의 코를 간질였다. 26cm에 달하는 뿔이었다. 동물 상태에서는 그 뿔의 길이가 무려 56cm에 달했다. 인간 상태에서는 주문력이 지혜 수치 2만큼 강화되는 효력을 주는 주문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산박은 별빛의 힘을 담은 ‘별빛 물약’을 들이켰다. 물약으로 만들지 않은 별빛은 집중성탄 주문을 완성하고 응축하는 데 사용되지만 체내에 들어가는 물약에 스며든 별빛의 힘은 산박의 주문에 흘러들어 가 주문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

    별빛의 힘은 기술로 부여받은 ‘제어력’이라서 레벨 업을 해도 그대로였다. 그렇기에 아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현실에 있을 때만 만드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팔지도 않고 쟁여두는 편이었다. 생산 한계성이 뚜렷하기에 적재적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사용할 때였다.

    산박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블루 오션 페어리 스타라이트 스태프는 산박의 체내에 복용된 별빛 물약에도 영향을 받았는지 전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갈래 불꽃.’

    불똥이 쏟아졌다. 단번에 모여서 나타난 서른 마리에 달하는 ‘썩은 과육 괴물’을 덮쳤다. 그들은 불이 붙었음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충격 과육의 표면이 마력 불꽃에 의해서 타들어 가자마자 굉음이 터져 나갔다.

    퍼버버버벙!

    충격파는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고, 단번에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서른 마리에 달하는 썩은 과육 괴물 중 그 피해에서 경상으로 살아남은 과육 괴물은 단 하나였다.

    대부분 중상을 입고 엎어지거나 윗부분이 완전히 날아가서 걸어가다가 썩은 액을 몸에서 쏟아내며 앞으로 고꾸라져 부들부들거렸다. 또 다른 하나는 충격에 앞으로 튕기며 아랫부분만 깔끔하게 날아가서 윗부분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는데 까마귀 시체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진창이 뒤섞이며 진흙이 되어서 그 진행을 멈췄다.

    이 괴물을 밟고 지나가려던 썩은 과육 괴물이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충격 과육에 그대로 폭사했다. 순식간에 서른 마리가 거덜이 났다. 부들거리는 숫자는 일곱 마리에 불과했다.

    전사들이 나서려고 했는데, 이를 산박이 말렸다.

    “놔두세요! 장애물로 쓸 수 있으니까요.”

    “예!”

    전사들이 냉큼 대답했다. 생각조차도 안 하고 산박의 명령을 들었다. 그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다음에 생각을 통해서 저대로 놔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썩은 수액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죽어가는 까마귀들은 말 그대로 계속해서 쌓여 나가고 있었다. 부들거리며 간헐적으로 움직여도 다 죽어가는 것들이었다. 굳이 건들 필요가 없었다.

    서른 마리를 단 하나의 주문으로 단번에 파괴한 산박의 모습에 모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마법사’라면 가능은 하지만 지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는 지친 표정도 없었다.

    위력 대부분이 ‘충격 과육’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산박은 그저 조금, 그 파괴에 도달하도록 살짝 민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과는 별개로 결과가 더욱 중요한 법이었다.

    처음 서른 마리와는 다르게 간헐적으로 두세 마리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대장삵의 워터 샷이 썩은 과육 괴물의 몸 중간 부분을 뻥 뚫어 버리자 놈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부러져서는 넘어졌다. 하체만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썩은 수액마저도 텅텅 비게 되자 움직임을 멈췄다.

    물의 수압에 의해서 나무껍질이 뜯겨 나갈 정도로 강력한 2레벨 주문 워터 샷은 물의 마법사들의 주력 공격 주문 중 하나였고, 재수가 없으면 3레벨 던전에서까지 사용할 정도였다. 그만큼 저지력이 높고, 몸이 일정 수준 이상 단단하지 않으면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텅텅텅!

    “여기다! 멍청이들아!”

    용걸섭과 용갑균은 방패를 무기로 치면서 소란을 일으키기 바빴다. 방향 유도를 위해서였다. 적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었기에 방어하기 편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구심점 하나 없는 썩은 과육 괴물들은 흩어졌다가도 두 전사의 시끄러운 소리에 확 이목이 이끌려서 모여들었다.

    “후아아아악!”

    그들 외에도 김각두 또한 이를 따라 했다. 다만 말재간이 없어서 고함만 내질렀다. 그래도 효과는 충분했다.

    시은과 다은은 적이 제법 모이면 트위스트 스네이크 주문을 통해 한 놈을 넘어뜨려서 폭사하게 만들었다. 이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에 딱 좋았다. 또 언데드들을 통해서 유사시에 대비했으며, 그중 시은은 마녀 주문을 이용해 특히나 활약했다.

    ‘마녀의 손길.’

    일단 2레벨로 올라가려고 1레벨 던전의 카르마를 모두 다음 레벨 업을 위해 축적한 그녀의 공격 주문은 마녀의 손길이 그나마 괜찮았다. 충격 과육 덕분이었다. 나뭇가지 하나를 움켜쥔 마녀의 손이 이리저리 흔들리자 과육이 후드득 떨어지며 충격을 토해냈다. 그 덕에 1레벨 주문으로도 능히 썩은 과육 괴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건 잠시뿐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씩 근접전에 돌입하기 시작하면서 판단을 빨리해야 했다. 피부에 와닿는 격전의 서늘함이 서서히 사람들을 잠식해 나갔다.

    쿵!

    나무와 방패가 부딪쳤다. 잘 버텨냈고, 썩은 과육 괴물이 기우뚱거렸다. 앞에 있던 까마귀 시체가 부서지면서 오른쪽 뿌리가 움푹 깊게 들어가서였다. 이를 알아차린 용걸섭이 단번에 순무를 사용했다.

    순무, 균형 붕괴(Balance Breakup).

    눈 깜짝할 사이에 방패가 회까닥 돌아갔다. 서로 단단히 부딪쳐서 균형이 맞았는데 그게 사라지니 썩은 과육 괴물이 허망하게 엎어졌다. 그걸 환도로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서 또 한 놈이 덤볐기 때문이었다.

    용걸섭은 대신 방패로 냅다 땅을 찍었다. 그리고 무릎을 굽혔다. 방패가 땅을 찍으면서 내려갔기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노출되었고, 뒤에 있던 놈이 나뭇가지를 휘둘러서였다.

    부웅! 차라락!

    나뭇가지의 잔가지와 나뭇잎이 용걸섭을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타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짜 무서운 굵은 나뭇가지는 피할 수 있었다.

    전사들의 손이 점점 빨라지고, 피해도 입었다.

    ‘큭!’

    나뭇가지가 그냥 거칠게 팔뚝을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뼈가 비명을 내질렀다. 신경계가 크게 놀랐고 팔 한쪽이 시큰했다. 점점 뒤로 밀려날 듯했다. 후방 직업들이 가장 겁을 먹었고, 언데드를 투입했다.

    그때 산박이 다시 한번 갈래 불꽃을 사용해서 나무 괴물들을 잔뜩 태웠다. 언데드가 먼저 돌격하고 걸섭, 갑균, 각두가 정신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다가 갑균이 튕겨지듯이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것뿐인데도 발목이 반쯤 돌아가 버렸다. 끔찍한 사고였다.

    “끄, 끄아아아악!”

    “갑균아!”

    걸섭이 그의 앞으로 달려왔지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산박이 소리를 내질렀다.

    “뒤로 물러나세요!”

    대답은 없었다. 걸섭이 방패로 썩은 과육 괴물의 공격을 최대한 막았고, 환도를 사방으로 휘둘렀다. 나뭇가지가 환도에 부딪혔다. 동시에 다른 나뭇가지가 걸섭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가죽이 찢기며 팔에서 피가 튀었다. 단 한 번 만에 살이 터져 나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걸섭은 고통스럽게 울부짖기보다는 악다구니를 썼다. 오른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고 왼손에 쥔 방패를 앞뒤로 휘적거리며 놈들을 저지했다. 방패에 내리 세 번을 얻어맞은 과육 괴물이 발라당 뒤집혔다. 썩은 수액으로 넘쳐흐르는 바닥은 미끄러지기 쉬웠다.

    “하아! 학! 하악!”

    언제 달려간 것인지 후방에 있던 김연정이 달려가다가 대차게 넘어졌다. 그녀는 엉금엉금 기어서 쓰러진 갑균에게 다가갔다.

    “어디예요? 어디를 다쳤어요!”

    “왼쪽 다리요. 다리!”

    연정이 그의 다리를 살폈다. 어디를 다친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발목에 손이 닿았는데 갑균이 온몸에 힘을 줬다.

    “끄으으으으으!!”

    이를 악다물고 비명을 내질렀다. 죽는소리를 냈다. 연정은 그의 신발 속에 손을 넣어 발목에 손가락이 닿자마자 주문을 읊었다.

    ‘조용한 치유.’

    무조건 접촉을 해야 하는 불편한 주문이었지만 그런 제한 때문에 치유력은 상당했다. 또한 그녀는 품에서 치료수를 꺼내 갑균의 발목에 들이부었다. 발목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어났지만 절뚝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치유 주문은 아니었다.

    산박은 단번에 상황을 제어했다.

    “시은 씨! 다은 씨! 언데드 끌고 뭉치세요! 각두 씨 챙겨서 다가가세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산박이 다시 한번 갈래 불꽃을 사용했다. ‘동물 변신 주문’을 사용할 힘만 남겨두고 곧바로 영혼 대지 하체에서 ‘작은 대지 골렘’을 소환해 돌진시켰다.

    껑충!

    산박은 단번에 발을 구르며 뛰어올랐다. 인간의 몸이 짐승으로 변했다. ‘검은늑대’는 될 수 없었는데, 그러기에는 잔여 힘이 부족했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빨아 당기는 게 검은늑대였다. 그 대신 곰으로 변했다.

    ‘지금 필요한 건 호랑이가 아니지.’

    무식한 곰이었다. 짐승 탱크가 필요했다. 소나무 향기 외뿔을 이미 사용한 상태였기에 굳이 또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주문 지속력’이 상당한 게 외뿔 주문이었다.

    ‘동물 변신 시 체중 10% 증가. 가죽 1cm 증가. 뿔 길이도 30cm 증가한다.’

    뿔이 56cm까지 늘어났지만 곰 상태에서 이런 뿔을 돌격에 사용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재수 없으면 나무에 박혀서 아무것도 못 할 수 있었다.

    200kg이 넘는 갈색곰이 된 산박은 그대로 돌진했다. 이미 대지 골렘이 한 번 돌진하며 지나간 곳을 다시 한번 덮쳤다. 리스크도 적고, 산박이 쉽게 적을 공격하기 좋았다. 대지 골렘이 지나가면서 대부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서였다.

    “크어어어엉!”

    달리면서 살짝 상체를 들어 올려 그 상태로 앞발을 휘둘렀다.

    퍼걱!

    썩은 과육 괴물의 나무가 수수깡처럼 부서지며 썩은 수액이 쏟아졌다.

    쿵!

    썩은 과육 괴물과 외뿔 갈색곰의 어깨가 부딪쳤다. 썩은 과육 괴물이 그대로 엎어졌다. 이족 보행 하듯이 위아래가 사람처럼 길쭉한 나무였기에 수평 공격에 더더욱 취약했다. 미리 앞발로 하체 부분인 뿌리를 일부 박살 낸 것이 주효했다.

    콰직!

    넘어지면서 위로 솟아난 뿌리를 산박이 입으로 뜯어 버리고 지나갔다. 산박은 결코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다. 대지 골렘이 헤집은 곳을 지나가며 아직 균형을 고쳐 잡지 않은 놈을 골라 옆 치기나 뒤 치기를 해서 상처를 주고, 그게 아니라면 팀과 상대하고 있는 놈들을 후려치고 아가리로 물어서 나무뿌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그렇게 했음에도 팀원의 상처는 늘어났고, 결국 모든 힘을 소비한 물의 마법사 대장삵이 김각두 대신 썩은 과육 괴물과 드잡이질을 하다가 곤죽이 되어서 역소환되었다.

    그게 방아쇠가 되어서 언데드 두 기도 차례차례 무너졌다. 다은이 네크로맨서 스킬을 사용해 최대한 아껴둔 힘으로 수복했지만 그게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손을 들어 올려서 ‘뼈 보충(Bone Supplement)’ 주문을 사용하려던 김다은이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울컥.

    “콜록! 커헉!”

    기침 소리가 크게 퍼져 나갔다. 시은은 마녀의 손길에 가진 힘을 모두 소모해 버렸기에 그녀를 도와서 언데드를 수복할 수 없었다. 대신 환도를 뽑아서 전투에 참가했다.

    반면 다은은 침을 꼴깍 삼키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전의를 상실했고 겁을 먹어서 피가 튀는 곳에 덤비지 못했다. 인천 네크로맨서, 포스코 타워에 들어간 뒤로 근접전을 안 하고 관련 훈련도 오래 하지 않은 티가 확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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