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지금!”
산박이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2기의 언데드가 달려 나갔다. 언데드에는 ‘중량 코팅 물약’이 스며들어 가서 뼈 색이 달랐지만 로브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게 보이지 않았다. 스켈레톤은 모두 ‘서리 해골’이었고,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2기의 스켈레톤은 단번에 돌진하여 썩은 과육 괴물들과 부딪쳤다. 아무리 중량 코팅 물약을 통해서 체중을 늘렸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으며, ‘썩은 수액’이 가득 들어찬 괴물을 막아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쿠당탕탕!
하지만 함께 나뒹구는 건 가능했다. 부딪쳐서 쓰러지는 상태 속에서도 롱 소드를 나무에 박아 넣고 떨어지지 않았다. 강하게 움켜쥐었기에 썩은 과육 괴물 두 마리가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네 마리의 과육 괴물이 다가오기 전에 엎어지고 다수의 과육 괴물이 자신들의 과육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 덕에 쉼 없이 달려오며 방해도 받지 않은 썩은 과육 괴물 중 두 마리가 갑자기 옆으로 픽 하고 쓰러졌다.
“그윽! 그윽.”
몸 내부에 피로가 누적되면서 내달리던 나무뿌리가 더는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그런데도 썩은 과육 괴물은 다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트위스트 스네이크 주문에 두 마리, 서리 해골에 의해서 두 마리 그리고 꾸준한 피해로 두 마리. 총 여섯 마리가 다가오기 전에 무력화되었다.
“가즈아아아아!!”
용걸섭과 용갑균이 방패를 앞세우며 앞으로 내달렸다. 적의 남은 숫자는 고작 세 마리뿐이었다. 형제는 용감하게 돌진했다. 버티는 것보다는 격파를 택했다.
쾅!
방패와 썩은 과육 괴물이 충돌했다. 갑균은 버텨내며 바짝 붙은 썩은 과육 괴물의 윗부분을 무기로 후려쳤다. 반면 걸섭은 비틀거리며 다음 행동을 이어 가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그르르르릅!”
물줄기가 소화수처럼 뻗어 나가 걸섭과 부딪친 썩은 과육 괴물의 썩은 나무 부분부터 안쪽까지 단번에 뜯어 버리며 거덜 냈다. 2레벨 물의 공격 주문, 워터 샷이었다. 대장삵의 지원이었다. 그 덕에 걸섭은 단번에 내려치기로 썩은 과육 괴물을 사정없이 뚜까 팰 수 있었다.
“우오오오오!”
황소처럼 김각두가 덤벼들었다. 양손 망치로 그대로 썩은 과육 괴물을 후려쳤다. 동시에 길쭉한 나뭇가지가 김각두를 후려쳤지만 ‘청철 문장’에 깃든 주문 ‘빛의 갑주’ 덕분에 상처가 크지는 않았다. 피가 주룩 이마에서 흐르긴 했지만 무력화시킬 수는 없었다.
퍽!
썩은 과육 괴물이 양손 망치에 그대로 짓이겨지며 수액이 쏟아져 나왔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하체를 지탱하던 나무뿌리가 꺾여서 기어 오는 놈을 옆으로 후려쳐서 죽인 다음에 나머지도 확인 사살 했다.
촤아악!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수액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도 하체에 있는 힘줄을 빼내고 심장을 적출해 냈다. 그 도축 과정은 매우 기민했다.
“어푸! 어푸! 어푸푸!”
대장삵이 뿌리는 물줄기에 몸을 맞기며 몸을 씻은 뒤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벗어나 5분을 움직였다. 그다음에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산박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산박은 조금 쉬다가 돌아다니면서 전투에 대한 복기를 진행했다.
“어떠셨어요? 싸울 만했죠?”
“예. 아홉 마리인데 붙은 건 고작 세 마리니까요.”
“해골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런 건 사령 마력으로 언제든지 수복할 수 있어요.”
힘의 소모를 피할 수 없단 단점이 있었지만, 사람이 다치는 것보단 언데드가 다치는 게 나았다. 만약 언데드를 돌진시켜서 뒤엉켜 넘어지게 하지 않았다면 5:5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걸 3:3으로 만든 건 변수를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장삵님, 역시는 역시입니다!”
갑균은 특히나 대장삵에 큰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공격 주문을 적재적소에 사용한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았다.
“싸우는 법을 알고 있는 마법사는 보기 어렵지. 전사가 필요할 때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가 몇이나 되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단순히 부딪쳤을 때 마법을 사용하라고 해도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장삵은 충돌 이후 반 호흡을 기다린 다음에 마법을 발사했다. 돌진한 다음에 갑균이 바로 공격할 수 없어서였다.
그와 합격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갑균이 얼추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을 때 마법을 발사하여 마법이 썩은 과육 괴물을 타격한 순간 갑균이 무기를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반 호흡 뒤 공격 마법 사용’에 담긴 힘이었다.
보통은 부딪치자마자 썼을 터였다. 갑균이 비틀거렸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썩은 과육 괴물의 나뭇가지는 길다. 갑균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를 알고 모르고는 크지.”
“예. 그럼요. 근데, 혹시 다음 전투에서도 저를 좀 서포트 가능하신지…….”
“커흠. 그건 내 집사인 드루이드에게 물어보도록.”
“아! 예! 근데 밖에서도 소환된 상태로 지내십니까?”
“어허,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삵인데 필요할 때만 찔끔찔끔 소환하나? 난 현실에서도 딱 계속 소환된 상태로 살아간다고. 매번 아침때마다 삼겹살은 필수지. 그것도 바싹 구워야 해.”
“바싹.”
“바싹 굽지 않은 삼겹살을 먹어봤자 뭐 해? 차라리 탄 고기를 먹고 말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수육이야. 고기를 왜 삶아? 기름 잔뜩 두르고 튀겨도 모자랄 판국에!”
대장삵은 갑자기 삼겹살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싼 부위로 유명한 돼지 앞다리 살을 자주 사 오는 산박은 수육을 즐겨 먹었는데 그게 참 맛이 없어서 불만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 네…….”
갑균은 그걸 들으면서 생각보다 산박이 자기 사람에게 잘 대해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혹은 대우받을 사람이면 그만큼 대우해 준다고 볼 수도 있었다.
“대장삵! 빨리 와봐.”
“그럼, 내가 바쁜 몸이라서.”
“예. 살펴 들어가십시오.”
“오냐.”
대장삵이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조금 처진 뱃살이 출렁거렸다. 얼마나 잘 먹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왜 불러?”
“괜히 사람들한테 갑질 하고 다니지 말라고.”
“알았다.”
대장삵은 대충 대답했다. 으레 있는 잔소리였다.
그들은 전투 이후 휴식을 한 다음에 다시 움직였다. 이제는 제법 루틴을 깨우친 상태였다.
‘최소 다섯 시간마다 전투를 하지 않으면 검은 까마귀가 온다.’
‘놈의 목소리가 퍼지면 열 마리 이상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자주자주 싸우는 게 오히려 더 이득이다.’
견적도 다 내놓았다. 잘하면 두 마리와 교전도 가능했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고 판단할 수 있었다.
팀의 공략 방식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했다. 명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까마귀가 울 때까지 전투를 피해서 열 마리 이상과 전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차라리 아홉 마리 이하와 자주 싸우는 게 이득이었다. 쪽잠을 자고 계속 나아가야 해서 피로는 계속 쌓이겠지만 ‘죽을 수 있는’ 전투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매우 컸다.
그렇게 3일을 진행했다.
“우웩!”
법성 사제 김연정이 헛구역질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결국에는 안에 것을 게워냈다. 김각두가 서둘러 그녀를 살폈다.
“괜찮아?”
“응…….”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입술이 새파랬다. 다른 이들도 하나둘 멈춰서 그녀에게 모였다.
“치료수를…….”
그 말에 대장삵은 칼같이 잘라 말했다.
“치료수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냐.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휴식만이 살길이야.”
“체력 수치가 몇입니까?”
산박의 직설적인 질문에 김연정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각두 또한 당황한 듯했다.
“왜 말을 못 하십니까?”
“3입니다.”
그녀 대신 김각두가 대답했다.
‘끔찍한 수치로군.’
“레벨 업 했을 때 추가 능력치 받지 않았습니까? 그걸로 올려서 평균치로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추가 능력치 하나에 특성도 체력을 올려주는 걸 해서 3입니다. 원래는 1이었습니다.”
“…….”
김각두의 변명이 끝나고 작은 침묵이 일어났다. 모두 할 말을 잃어서였다. 다만 그 침묵 속에서 김연정이 대답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혈액암을 앓았어요. 육상부를 해서 체력이 있는 편이라 항암 치료 때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체력 자체가 바닥이 나버렸죠.”
뭘 해도 조금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던전 사용자가 되고 나서는 일반인 수준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썩은 가스층’ 내부에서는 그마저도 부족했던 것.
‘레벨 업 시스템 덕분에 범인보다는 체력이 좋아졌지만 결국 태생적 한계에 부딪혔구나.’
산박이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말을 하면서도 숨이 차서 끊으면서 말하는 김연정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미치겠네.”
용갑균이 신경질을 냈다. 네 시간씩밖에 휴식을 못 하고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조용히 해.”
걸섭이 한마디 쏘아붙이자 그제야 갑균이 몸을 홱 돌렸다. 그만의 회피 방법이었다. 산박은 걸섭과 눈이 맞았다.
“산박 씨는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휴식하면 계속 까마귀가 울어댈 테고, 더 많은 적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눈치를 보던 김각두가 발언했다.
“짐을 조금 버린다면…….”
그걸 놓치지 않고 이시은이 툭 내뱉었다.
“짐을 포기하기에는 앞으로 며칠을 썩은 가스층에서 보낼지 모르잖아요? 여긴 평범한 ‘썩은 과육 던전’이 아니에요. 특수 던전이죠.”
“그 변형률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저 다양한 능력을 지닌 과육이 모두 충격 과육으로 바뀌었을 뿐이잖습니까.”
“진작에 도착했어야 할 반대편 산은 며칠을 걸어도 나오지 않고 있죠.”
김각두의 객관적이지 못한 변명에 시은이 착실하게 반박했다. 그제야 성기사 각두가 입을 다물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살면서 반장, 리더, 관리자, 그런 게 되어본 적이 없었다. 추대된 적도 없었고, 선택도 받지 못했다.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 재능이 없었고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관련 사회 기술을 터득하려고 비싼 돈 주고 지도력 강의를 듣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산박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라는 미친 시스템이 ‘2레벨 던전 공략’에 깊게 들어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
A급 전사 두 명을 필두로 나머지는 대충 하청으로 구해서 던전을 공략하는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는 실로 ‘이득’이 된다.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2레벨 던전에 묶여 있는지 산박은 감히 체감조차 하지 못했다.
3레벨 던전 풀 장비의 가격대는 2레벨 풀 장비보다 무려 다섯 배나 증가한 1억이었다. 기업들이 대놓고 담합하며, 심지어는 할인율까지 서로 담합하는 형편이었다.
‘9천만 원 밑으로는 죽어도 안 팔지.’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판타지 쇼크로 인해서 폐허가 된 서울 때문에 더더욱 정부의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 정부 이기는 기업은 없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했다.
‘앞으로 언제 회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울 수복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모두의 염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국력 회복이 엄청난 수준이었다. 다른 나라의 몇 배에 달했다. 좁은 국토 득을 크게 본 것도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회복률이 높았다.
‘2레벨 던전 공략은 늦어도 내가 직접 팀을 꾸려서 해야겠어. 개판이네, 개판.’
하청한 팀이 죽으면 그 팀만 레드 등급을 받을 뿐이었다. 잔혹한 편법이었고, 피비린내가 풀풀 풍겼다. 던전에서는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기에 그 사망자를 같이 공략하는 하청에 떠넘기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만들어낸 황금 카펫이나 다름없다.’
산박은 직접 2레벨 던전을 공략해야 했기에 다른 기업처럼 하청 하청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피해를 자신이 입기 때문이다.
‘정보꾼이 아쉽다.’
동시에 유나가 생각났다. ‘선’을 수없이도 넘어서 객사하기 좋은 여자였지만 그 덕에 중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남명겸이 죽었습니다.”
산박이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박쇠패는 걷어찼죠. 사람 죽인 놈을 어찌 같은 팀으로 들이겠습니까? 던전에서는 유용해도 밖에 나가면 공범이죠.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했습니다.”
“…….”
모두 숨을 죽였다. 산박은 남명겸이 죽고 박쇠패가 쫓겨난 이후 3일 동안 계획적인 전투와 행동으로 팀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던전 사용자는 일곱 명입니다. 이 정도면 ‘평범한’ 던전이라면 클리어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특수 던전입니다. 실제로 3일 넘게 걸었는데도 산에 도착하지도 않고 있죠.”
산박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보급 하루치 버리겠습니다. 대신 김연정 씨를 업어서라도 데려갑니다. 죽어도 보스 몬스터 죽이는 데 도움을 주고 죽으세요. 그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
김연정을 버리면 그녀가 가진 힘만큼 다른 이가 피를 바닥에 뿌리게 될 것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특수 던전의 보스가 어떤 놈인지 모르기에 그 불안감을 이용한 화법이었다.
“없습니다.”
용걸섭이 단언했다. 다른 이들은 그 모습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