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270)
  • 154화

    ‘2레벨 던전 수준이 이 정도라고?’

    산박이 그 너스레에 인상을 찡그렸다. 다만 그 모습을 보고 갑균이 그에게 다가가서 조금 더 입을 털어댔다. 산박은 사장이었다. 사람을 고용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2레벨 던전 공략은 이번이 처음. 부차적으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포스코 타워는 A급 전사 두 명에 네크로맨서 세 명 이상을 묶어서 보낼 뿐입니다. 나머지는 오퍼를 받은 전사 두 명이 해결해야 하죠. 사장님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비용을 싸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청이라는 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자본주의와 인간이 들어가면 안 좋게 변질하기 쉬웠다. 1억짜리 살인 청부 건이 하청에 하청을 거치다가 결국 시도도 못 해보고 떼거리로 잡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단가가 계속 내려가게 되면 결국 별 볼 일 없는 이들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가장 위쪽에 있는 ‘김준서’가 문제였다.

    ‘실수 하나.’

    그 실수 하나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인간성이 그를 죽게 하였다. 운 좋게 여기까지 왔지만, 그 끝은 허망했다.

    ‘사람 둘, 참 쉽게 죽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라지만 해도 너무했다. 다만 그 말을 힌트로 산박은 이 구조에 대해서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팀이 다르다.’

    공략은 하나인데 팀이 달랐다. 그렇기에 사망자가 나와도 ‘팀 내’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다른 팀’이 죽었을 뿐이었다. 하청의 함정은 사망자가 나와도 포스코 타워에는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2레벨 던전은 생각보다 사망자가 많다.’

    유명 2레벨 던전 공략 기업은 낮은 사망률을 가지고 있지만, 가려져 있을 뿐, 그 이면에는 하청 기업 던전 사용자의 죽음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한 번 실수하면 한 명이 죽는다.

    ‘인간미 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이기에 인적 오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과정과 결과에 인적 오류가 생기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2레벨 던전에서는 이런 구조가 성행한다.’

    아마 3레벨도 비슷할 터였다. 끔찍한 어둠이 산박의 눈앞에 있었다. 바로 한 걸음만 걸어가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둠이었다. 산박은 그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 검은 늪과도 같은 컴컴한 곳으로 향했다.

    “세상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요? 하청만 죽어 나가는 거죠.”

    “사람 장사 불황 없다, 아니겠습니까?”

    산박의 의미심장한 말에 갑균 또한 짧게 대답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 갈아 처넣는 사업만큼 실패하기 힘든 것이 없었다.

    그걸로 두 명의 죽음은 마무리되었다. 박쇠패는 살아남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열망도 없었다.

    “어떻게 할래요? 저 사람,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조용히 있던 적패 네크로맨서 중 한 명인 김다은이 박쇠패를 보며 공론화를 유도했다. 다만 그 누구도 대책을 말하지 못했다. 구심점이 없었다. 이에 시은이 산박을 쳐다봤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사장님?”

    “전 포스코 타워 덕분에 여기 온 사람인데, 제가 입을 함부로 놀려도 되겠습니까?”

    시은의 눈이 다은에게로 향했다. 다은이 입을 우물거렸다.

    “다은 씨는요? 할 말 없어요?”

    “저, 저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시은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저도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가지고 계시죠?”

    “무례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분이 허락을 해주셔야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뭡니까?”

    산박은 모든 이들에게 크게 나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고, 행실도 평범했다. 그를 적대시하는 자는 준서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 허망하게 죽었다.

    ‘1레벨과는 다르지.’

    1레벨에서는 대부분이 같은 팀이고 동료다. 서로를 잘 알기에 밟지 않을 선을 알고 위계 서열도 잘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던전 공략에서는 그 선과 서열이 붕괴하기 쉬웠다.

    김준서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가는 길에 한 명을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통사고처럼, 한 명의 실수가 여러 명을 줄줄이 죽여댈 수 있는 게 던전이었다.

    ‘나 혼자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고 싶습니다. 아마 네크로맨서분들과 걸섭 씨, 갑균 씨가 노력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박쇠패 씨는 전력에서 제외하고 여기서 내쳐야 합니다.”

    그 말에 그 누구도 입 하나 뻥끗하지 않았다. 가볍게 대답하기에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고 사전에 말했다. 그는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좋아요. 지금처럼 침묵하면 됩니다.”

    400조 엔을 찍어내도 디플레이션이 안 오기에 침묵하는 일본과 같았다. 파멸로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면 일단 입을 다물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공통적인 속성이었다.

    “제가 말씀드릴 건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하고 싶습니다. 남명겸은 위험에 처했었고, 김준서는 이를 구하려다가 죽었다고 말씀하십시오. 손쓸 도리 없이 용맹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십시오.”

    “마아아알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아아아!!”

    탈진해 있던 박쇠패가 무슨 힘이 그렇게 샘솟는지 고함을 내질렀다. 그가 악다구니를 썼다. 지친 짐승처럼 걸쭉한 침이 턱에서 덜렁거렸다. 광인이 된 것처럼 광분했다.

    그 모습에 산박은 혀를 찼다. 그저 표면밖에 못 보는 저 불쌍한 개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뇌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한번 양보하면 적당선에서 멈춰야지. 여기가 던전이라고 이렇게 막 나가는 겁니까?”

    산박의 협박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무기를 뽑았다. 하지만 놈을 유심히 지켜보는 A급 전사가 두 명이었다. 칼이 옆으로 팍 쳐지고,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분노에 몸을 맡겼기에 박쇠패는 검술의 기본도 실천하지 못했다.

    콱!

    환도가 땅에 박혔다. 자연스럽게 박쇠패가 우악스럽게 결박당했다. 갑균이 짓누르고 걸섭이 목에 환도를 겨누었다. 피가 새어 나왔다. 그만큼 강하게 압박을 해야 했다. 박쇠패는 마검사였기에 마법을 쓸 수 있어서였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목을 베어야 했다.

    강한 충격이 박쇠패를 두들겼다. 거친 숨결이 서서히 적어지자 그가 눈물을 쏟아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정말 괴롭게도, 박쇠패는 산박의 제안을 강하게 거부했다. 한 번 거부하면 끝. 그는 대단한 자가 아니었고, 두 번, 세 번의 권유는 있을 수 없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잊으세요. 본인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제가 뭘 하겠습니까? 모두 솔직하게 보고하세요. 저도 그럴 겁니다.”

    “그럼 박쇠패는 죽을 겁니다.”

    가만히 있던 성기사 김각두가 산박에게 반항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이에 걸섭이 거칠게 그를 밀어냈다. 그가 한두 걸음 물러섰다.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이 녀석은 적패 네크로맨서를 죽였어. 그런데 우리가 감싸야 한다고? 그렇게 살리고 싶으면 던전에서 나가서 포스코 타워로 함께 가봐. 어떻게 되는지 죽어서 나한테 SNS로 연락 하나 남겨주고.”

    “그건…….”

    그 말에 김각두가 입을 다물었다. 인천의 지배자. 그들과 대면하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그 모습을 산박은 가만히 지켜봤다.

    ‘저런 자가 2레벨까지 오다니, 실력이 상당한가 보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어디에서 객사하기 딱 좋았다. 너무 평범한 인성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실제로 사람은 사람을 구하는 데 거대한 용기를 지니게 된다. 고속 도로에서 불타고 있는 흰색 모닝 차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고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전율감을 느낀다. 모닝은 국민차고 보통 여자들이 타고 다닌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모닝 차량의 뒤 유리에 붙은 아이가 타고 있어요를 보면 불타는 모닝의 뒤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머리를 박고 기절한 아줌마와 울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면? 구겨진 문을 열려다 손가락이 골절되어도 아픔조차 못 느끼고 피부가 화염에 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거대한 아드레날린이 그 몸을 헤집는다.

    그렇기에 불의를 보면 참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김각두처럼 나서다간 뒈지기 쉬웠다. 권력자가 가지는 힘은 본능을 억눌러야 할 정도로 크고 무시무시하며, 잔혹했다.

    ‘입만 다물면 쓰고 싶네.’

    산박의 시선이 김각두에게 제법 오래 머물렀다. 저런 놈들은 밑에 두면 편하기 때문이었다. 정치 못하는 충신이 보통 저랬다. 실력도 있기에 2레벨까지 왔다. 나쁘지 않았다.

    “박쇠패 씨한테 5일 치 식량을 주세요. 어디서든 숨어 계시죠. 그럼 던전이 공략될 테니까.”

    “저, 저는!”

    벼랑 끝을 내려다보게 되는 상황까지 오자 아찔함을 느낀 박쇠패가 소리를 냈지만 산박이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렸다. 그에 박쇠패는 입을 뚝 다물었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버스가 그 뒤에도 올 거라고 기대하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없죠. 기회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아요. 그저 다른 기회가 오는 것뿐이죠.”

    산박은 그 말을 하면서 ‘신부님’이 생각났다. 나이가 제법 있으셨던 분이셨다. 그분은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다.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산박은 자신에게 온 피 냄새 나는 기회를 잡았다. 그런 것도 ‘기회’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잡기 싫은 기회도 잡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걸 모르는 거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세상 어느 착한 사람이 남에게 두 번, 세 번 권하겠는가? 유비나 할 짓이었다.

    그들은 부산물을 취득하고 이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나무 심장과 나무 힘줄이었다. 썩은 과육 괴물의 심장과 힘줄은 훨씬 취득하기 쉬웠는데, 내부가 썩어 있어서 물렀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는 휴식을 취했다. 사람 둘이 죽어서 정신적 피로감이 대단한 이들이 많았다. 피로도가 한계치까지 올라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박쇠패를 위한 마지막 배려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혼자서 이 던전에서 지내야 했다. 그 전에 하루 정도 체력을 추스르게 도와주고 싶었다.

    썩은 가스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은 취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움직이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었다. 지친 정신으로는 주변을 훑어보는 일이 아주 어려웠다. 당장 자기도 힘든데 사주 경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쉰다고 해도 쪽잠을 자거나 깨어있는 채로 눈만 감고 몸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인간은 잠을 자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산박은 잠을 잤다가 다시 일어났다. 썩은 가스 때문에 오래 잘 수가 없었다. 밀봉해 뒀던 치료수를 마시고, 간단한 육포를 입에 쑤셔 넣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오물오물 씹었다. 잠이 제법 달아났다.

    산박은 모닥불을 피운 곳에 장작을 더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체되어 있는 대기가 썩은 가스 때문에 확연하게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단순히 멈췄기 때문에? 그럴 리가.’

    산박은 거대한 비밀을 느꼈다. 높은 지혜로부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의혹의 덩어리가 뛰어난 직관력으로 해독되어 산박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산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정체되어 있는 썩은 가스층의 기류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박은 눈을 감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건 없었다. 눈은 감았기에 보이지 않았다. 천으로 덮은 코로는 그저 썩은 냄새밖에 맡아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뜬 산박은 이런 곳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생생하게 서있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거대한 생명.’

    썩고 썩은 곳에서도 생명은 잉태되어 난다. 그렇기에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생명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정체되어 있다. 쥐 죽은 것처럼 고요했다.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대한 움직임이 있다.’

    산박은 그 작은 단서만으로도 진리에 도달했다. 대자연이 그에게 숨결을 불어넣었다. 사지를 부들부들 떠는 웅장한 태산이 발바닥으로부터 튀어나와 거세게 그의 혈맥에서 날뛰며 뇌로 때려 꽂혔다.

    이 썩은 땅에서도 생명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 생명은 그야말로 질주하는 거인과도 같았다.

    ‘동시에 사방으로 움직이기에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

    산박의 눈이 방금 태어난 신성(新星)처럼 번쩍였다.

    ‘아!’

    압도적인 힘이 산박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저 가지고 있는 ‘힘’을 초고속으로 동시에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증폭되었다. 그 증폭률은 1을 고작 1.1로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진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박이 지닌 힘은 1이 아니었다. 그는 2레벨 던전 사용자였다. 10%의 힘이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큰 발전을 이룩해 냈다. 동시에 레벨 업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체 대류(停滯對流)의 진리를 봉인합니다. 해금을 위해서는 레벨을 높일 필요성이 있습니다. 불합리한 결정으로 인하여 카르마의 보상이 내려질 것입니다.]

    탈력감이 산박을 엄습했다.

    “콜록.”

    그가 기침을 내뱉었다. 힘이 증가했다가 원상태로 줄어들면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그를 가벼운 탈진 상태에 빠지게 했다. 힘이 쑥 빠졌기에 산박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화산을 맨발로 걷는 방랑자의 뒷모습이 산박의 눈에 새겨졌다. 그가 지팡이를 내려찍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거대한 활화산이 진정하는 모습을 봤으며, 그 활화산이 지닌 활력은 꽃과 나무와 빛이 되었다.

    ‘정체 대류의 진리는 자연재해를 막아내는 진리구나.’

    하지만 산박은 이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저 무의식이 만들어낸 단편적인 꿈에 불과했다. 혹은 아직 드루이드로서의 수준이 낮아서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카르마가 개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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