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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153/270)

153화

‘특수 던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 보상과 수익성도 짜다. 던전 사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던전이었다. 심하게는 지형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고, 보스 몬스터가 다른 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던전 사용자’를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게 특수 던전이었다. 물론 그만큼 클리어하면 받는 카르마도 많겠지만 죽고 나면 의미가 없었다.

“모든 과육이 충격 과육입니다! 받아칠 생각 하지 마세요!”

산박이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것이 충격 과육이었다. 얼마나 위험하냐면 그걸 매달고 다니는 썩은 과육 괴물은 얼마든지 반자이를 외치며 자폭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 말에 크게 동의했다. 썩은 과육과 갈래 불꽃이 만나면서 생긴 충격파가 공기를 터트리며 이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 피부에 닿았다. 수류탄이 물속에서 터지면서 물의 떨림이 몸으로 전해져 왔을 때 느끼는 거대한 공포와 비슷했다. 그만큼 충격 과육이 한꺼번에 수십 개가 터지면 무시무시한 충격을 동반했다. 고막도 조금 먹먹해졌다. 침을 삼켜서 똑바로 할 수 있었다.

언데드 3기가 주술 검사 남명겸, 마검사 박쇠패, 성기사 김각두와 함께 섰다. 그것만으로도 여섯 명이 좌측에 배치되었다. 좌측에서 나타난 적의 숫자는 넷. 숫자로 압도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산박은 오히려 전방으로 눈을 돌렸다. 좌측은 충분히 쉽게 막을 수 있었기에 중앙 쪽에서 시간을 버는 게 더 나을 성싶었다. 좌측의 썩은 과육 투척을 갈래 불꽃으로 손쉽게 막아 냈기에 1인분은 했다고 생각했다.

“우오오오오!!”

김각두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 함성은 ‘힘’이었으며 곧 ‘신성력’으로 변환되어서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이를 듣는 이들 모두 ‘전율감’을 느꼈다. 용맹함이 울려 퍼지고, 몸이 회복되었다. 활력이 샘솟았다.

‘신성력의 함성’과 동시에 김각두의 가슴에 있는 청철 문장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와서 그의 몸을 둘렀다. ‘빛의 갑주’는 김각두를 완전히 두르며 보호했다.

네크로맨서 세 명은 일제히 트위스트 스네이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서로 합이 맞지 않아서 한 마리에 모조리 쏘아졌다. 로브에서 토해지는 것이라서 제어력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퍼버버벙!

트위스트 스네이크 주문에 제대로 점사를 당한 썩은 과육 괴물은 그대로 넘어졌고, 남아있는 과육이 곳곳으로 떨어지며 자폭을 일으켰다. 과육들이 떨어져 나갔기에 괴물 자체가 자폭하지는 않았다.

콰드득!

대신 트위스트 스네이크 주문 세 개에 의해서 말 그대로 사지가 박살이 나버렸다. 그사이에 좌측 세 마리가 근접했다.

‘스피릿!’

마검사 박쇠패는 스피릿을 사용했다. 무작위 오대 원소 중 하나가 아무렇게나 걸렸다. 이번에는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흙의 스피릿이 깃들었다. 텁텁한 감을 먹은 것처럼 떫은맛이 혀를 가득 메우면서 오감이 이상하게 무뎌졌다.

“랜드 스파이크(Land Spike)!”

주문을 사용하는 데는 강한 염(念)이 필요했다. 보통의 주문 사용자와 하이브리드 직업을 지닌 이들은 마음속으로 외치는 게 끝이었지만 땅 주문을 싫어하는 박쇠패는 땅 주문을 쓸 때는 크게 외쳐야 했다. 다른 주문은 전혀 이상이 없었지만 땅 주문만 그랬다.

달려오는 놈의 앞에 날카롭게 땅이 솟아났다. 자연스럽게 썩은 과육 괴물들은 옆으로 피했다. 주문을 너무 일찍 쓴 탓이었다.

썩은 과육 괴물들은 좌우로 퍼져 나갔는데, 그중에 두 마리가 좌측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까이 있던 김준서는 위협을 느꼈다.

‘어?’

그는 본능적으로 언데드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전열에 있던 언데드 하나가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대한 변수가 만들어졌다.

썩은 과육 괴물 두 마리가 그대로 남명겸을 향해서 움직였다. 다른 이들도 많았지만 언데드 하나가 빠진 것만으로도 어그로가 뒤틀렸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그저 0이지만, 있던 것이 없어졌다. 그건 큰 차이를 발생시켰다.

“헉?!”

남명겸은 이도 저도 하지 못했다. 뒤로 빠지기에는 진형이 이미 잡혀 있었고, 그는 어깨 부상을 한 번 입어서 팀에 대한 부채감도 가지고 있었다. 감성적인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또 그런 판단을 썩은 과육 괴물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한순간이었다. 몇 개는 막아내고 몇 개는 회피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남명겸은 그대로 얻어맞아 고꾸라졌고, 넘어지는 순간 짓밟혔다. 두개골이 강한 압력에 짓이겨지며 뇌가 큰 상처를 입었다.

“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당황했다. 하지만 이를 정리해줄 사람이 없었다. 아홉 명이나 되는 아군이 적 네 마리를 상대하고 있는데 굳이 자신까지 거기에 집중하고 싶지 않아서 중앙으로 향해 버려서였다.

“뭐 해요! 밀어내요!”

시은이 서리 해골을 돌진시켰지만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제야 너도나도 언데드를 돌진시켰다. 가장 뒤에 있던 준서의 해골이 투입되고 나서야 겨우 피떡이 된 남명겸을 끌고 올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처참한 몰골이었다.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썩은 수액이 나오고 있었기에 그는 온몸이 썩은 수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상처에도 들어가 있었고, 몸에서 빠져나오는 피 색깔이 이상하게 검초록색이었다. 이미 변질이 되어도 한참 변질이 되어 버렸다.

또한 머리 한쪽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무의미했다. 상대는 괴물. 강철 투구는 찌그러져 있었다. 이를 벗기는 건 무의미했다. 이미 죽어 버려서였다. 심폐 소생술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나머지가 서둘러 좌측에 나타난 썩은 과육 괴물을 죽이고 전방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은 아홉 명이 네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욱 수월하게 상황을 끝내고 있었다.

쿵! 쾅!

쿵쾅쿵쿵쾅!

180cm에 불과하지만 옆으로 떡 벌어진 대지 골렘이 거침없이 질주하며 썩은 과육 괴물 다섯 마리와 마구 뒤엉킨 채로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대지 골렘의 머리는 이미 떨어져 나가 있었으며 충격파에 의해서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그곳에서 흙이 계속 쏟아져 내렸다. 무릎은 반파되어서 반쪽이 되었음에도 대지 골렘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나무뿌리와 나뭇가지를 후려치기 바빴다.

퍼벙!

썩은 과육은 대지 골렘이 거칠게 움직이면서 종종 떨어져 나가는 작은 돌 따위에 의해서 터져 나가기도 했다. 그 악다구니는 무생물인 대지 골렘이기에 가능했다.

산박이 소환하여 달리게 한 대지 골렘의 활약으로 용걸섭과 용갑균은 고작 세 마리의 썩은 과육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쏴아아아!

이를 돕는 대장삵까지 있었다. 2레벨 주문 워터 샷은 쏟아지는 썩은 과육을 소화수와도 같은 물줄기로 노리고 허공에서 터트렸다. 나뭇가지는 위로 솟아 있었기에 용걸섭과 용갑균에게 떨어지기 전에 능히 대처할 수 있었다. 캡틴 레오파드 캣이라 불리는 대장삵에게는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소환수였기에 제약을 받고 있었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는 강력한 물의 마법사였다.

휘익!

물에 젖은 썩은 나뭇가지가 휘둘러졌다. 충격 과육이 하나라도 달려 있었다면 전사든 나발이든 다 중경상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대장삵에 의해서 쓸려 나간 물에 젖은 나뭇가지에 불과했다.

콰득!

갑균의 머리 위로 걸섭의 환도가 대각선으로 내려쳐지면서 휘둘러지는 나뭇가지를 빗겨 쳐냈다. 뚝 떨어진 나뭇가지는 바닥에 떨어졌다.

휘익!

서로 등을 타고 넘어 위치를 바꾸며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뭇가지는 허공을 갈랐다. 합격술이 대단했다. 거기에 대장삵이라는 물의 마법사에 대지 골렘의 돌진이 더해졌으니 버티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죽여!”

준서가 용감하게 나섰다. 남명겸이 죽은 게 자신 탓이라고 여겼기에 여기서라도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는 소비 아이템까지 써 가면서 전투를 단번에 끝냈다. 화려한 피날레였다.

‘낭비가 심한 짓.’

산박은 버둥거리며 사라진 대지 골렘의 제어에서 손을 뗐다. 대지 골렘은 움직임을 멈추고 흙으로 돌아갔다.

산박은 고개를 돌렸다. 남명겸의 시체가 눈에 보였다.

‘쯧.’

혀가 절로 차졌다. 남명겸은 사실 영입할 사람도 아니었다. 주술 검사는 하찮은 직업이었다. 발 춤을 춰야 하고, 주문을 발동하는 데 제약이 심했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자는 아니었다.

‘특수 던전의 보스를 앞두고 이렇게 인명 피해가 생기다니.’

그는 서둘러 남명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썩은 수액 때문에 보이는 피가 괴이한 색을 띠고 있었다. 결국 산박도 손을 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싸움은 손쉽게 끝났다. 낭비가 심한 마지막 전투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김준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공격 소비 아이템을 다 써버렸다. 그건 가루이기도 했고 물약의 형태를 지닌 것도 있었으며 고체 형태의 투척물이기도 했다.

상당한 이권을 보유하고 있는 포스코 타워는 적패 네크로맨서들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고로 김준서가 다양한 공격적 소비 아이템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놈.’

산박은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았다. 전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은 ‘특수 던전’의 보스와 싸워야 했다. 이미 던전은 변형되었다. 클리어 방식도 다를 수 있었다. 이를 모두 감안한다면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자원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했다. 그런 권한은 당연히 산박에게 없었다.

“으흐흐흐. 명겸아…….”

마검사 박쇠패가 그를 끌어안았다. 전투를 끝내고 그는 가장 먼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대류 현상마저도 없는 이 특수한 던전에 남자가 오열하는 낮은 저음의 울음소리가 으스스하게 퍼져 나갔다.

거기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는 거대한 고통이 들어간 인내가 있었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마저도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자기 책임이 아님에도 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죽음에 큰 역할을 해버린 김준서는 그 답답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기분을 줬기 때문에 준서는 오열하는 박쇠패에게 다가갔다. 일로 만난 사이라서 사실 대화도 많이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는 조용한 편이었고, 소통은 대부분 남명겸에게 맡기고 있었다.

‘스피릿’이라는 독특한 힘의 체계를 지닌 마검사는 그래도 바닥은 아니었다. 박쇠패는 삼류 인생 속에서 작디작은, 아주 작은 무력을 남명겸에게 제공했고 남명겸은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사회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는 반쪽이 났다. 남명겸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봐, 사람이라는 게, 응?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안 그래? 죽은 사람을 이렇게 붙잡았다가는 산 사람까지 죽겠어. 어엉?”

준서가 상투적인 말을 했다. 적어도 박쇠패를 위로하면 자신이 지닌 이 끔찍하게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방아쇠가 되었다. 박쇠패가 위를 올려다봤다. 준서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 흐흐.”

박쇠패가 짧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웃어…….”

박쇠패가 그를 단번에 넘어뜨리더니 그대로 단검을 뽑아 들어 사정없이 내찔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헉! 헉! 허억! 헉!”

준서가 헛바람 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서둘러 둘을 떼어냈다.

“그으으으! 그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짐승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 셋이 달려들어도 박쇠패를 막지 못했다.

피는 뒤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2레벨로 올라서고, 일이 끝나면 빨리 3레벨로 올라가자고 항상 같이 소주잔을 부딪치던 사이였다. 박쇠패는 가족 하나 없이 남명겸과 함께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게 무너져 버렸다.

박쇠패는 그 가해자로 김준서를 찍었다. 남명겸을 껴안아서 손에 묻은 피가 김준서에게 묻었다.

콸콸콸!

대장삵이 김준서에게 치료수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내상, 외상 모두 고쳐졌지만 뇌가 자신이 죽었다고 판단했다. 모든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이 죽었다.

뇌사한 김준서를 보며 모두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두 명의 피가 묻은 박쇠패는 탈진해서 널브러진 상태였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2레벨 던전, 원래 이런 겁니까? 오퍼도 자주 하신다면서요?”

산박이 걸섭에게 물었다. 그건 매우 부정적인 답변이라 걸섭 대신에 동생인 갑균이 대답했다.

“그게, 던전 들어와서 이렇게까지 하는 놈은 처음이라서…….”

갑균이 준서를 놈이라 말하자 산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산박은 갑균과 함께 큰 미소를 지었다.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존심 세웠다가 까닥하면 죽는 게 던전이었다.

던전 사용자는 레벨이 오를수록 대우도 받고 돈도 많이 번다. 무엇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강하다. 던전 경제의 규모 때문이다. 사람이 죽든 말든 집어 처넣어야 할 정도로 경제 규모가 커져 버렸다. 이제는 던전 경제가 망하면 세계가 다시 한번 대혼란에 들어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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