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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152/270)

152화

썩은 가스가 자욱하게 일어난 곳에서는 입을 가리고 있는 천도 자주 갈아줘야 했다. 무슨 이물질 같은 것이 자꾸 끼여서 누렇게 올라오고 악취가 심해서였다.

‘제기랄.’

준서를 비롯해서 모든 이들이 욕지거리를 날렸다. 몸에 나쁠 것이 분명한 이런 환경은 그들에게 끔찍했다. 너무 기분 나빴다. 대놓고 방사능으로 가득한 지역에 걸어가서 심호흡하며 체조 한 판 하는 기분이었다.

“이거 조금 고름 같지 않아요?”

“으웩…….”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은 걸 굳이 말하는 짓을 하기도 했다. 모두 역겨워했다. 사람 몸에서 나는 고름이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하니 더더욱 짜증이 피어올라 왔다.

“우웩!”

실제로 그런 상상을 한 김준서는 안에 것을 게워내야 했다.

“이런 곳에서는 취식도 못 하겠는데요.”

“으윽……. 빌어먹을, 진짜!”

먹고 자는 것조차도 괴로운 곳이었다. 여기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준서는 싸우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반대편 산으로 서둘러 갑시다.”

“가스층이 없는 곳에서 괴물을 사냥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힌트를 얻어서 괴물을 유인해 사냥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순식간에 팀의 지침, 방향성이 휙휙 뒤바뀌었다.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고 이끌어 가는 리더가 제대로 된 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소수를 사냥해서 준서의 마음을 돌리자고 했으나 이제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되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문제가 생겼다.

“앞에 적이 있다. 저기, 저기, 저 나무. 척 봐도 흔들거리는 게 정상이 아니잖아. 안 보여?”

“앞에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법 돌아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장삵의 말에 모두 멈춰 섰다. 조금 눈치를 보던 용갑균이 총대를 메고 말했다. 분명 준서가 싫어할 것이라 여겼기에 걸섭이 말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좋은 건 걸섭, 나쁜 건 갑균이 가져가는 게 형제의 사회생활이었다.

“아니,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 직선로로 가야지 돌아서 가다가 또 적을 만나면? 그때도 돌아갈 겁니까?”

김준서가 대번에 퇴짜를 놓았다. 그는 아예 천을 새로이 바꾼 상태였다. 어찌나 위생을 극진히 챙기는지 가장 많이 치료수를 요구하는 자였다.

‘네크로맨서가 무슨 컨디션이 중요하다고.’

산박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밉상이었다.

“적의 숫자는 넷 정도. 하지만 주변에 있는 놈들이 도중에 합류할 수 있어. 여긴 시야가 제한되어 있으니까.”

대장삵이 위험 요소를 말했다.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밀어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여기 숫자가 몇입니까. 아이템도 몇 개고요.”

준서가 거듭 직선로를 요구했다. 싸우더라도 걸어가는 길을 반듯하게 하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여기에는 산박도 동의하는 바였다. 시야의 차단 때문이었다.

‘대장삵은 훌륭한 대장이지.’

왜 대장삵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장을 보는 눈이 제법이었다.

‘척후를 운용해야 제대로 된 지름길을 찾는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회피’만 해서는 답이 없었다. 근데 그게 현재는 불가능했다.

‘미리 그걸 했다면 모르겠지만…….’

왔다 갔다 해서 최적의 길을 찾은 다음에 하산했다면 모르겠지만 성급하게 썩은 가스 지역에 들어섰다. 애초에 전투 회피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산박은 아주 잔인한 전투를 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 후방 직업으로 단단히 준비해서 왔기에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없다. 부상을 입을 것 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 같다.’

대지 골렘을 일으켜 세워서 돌진을 막을 수 있고, 대장삵을 통해서 이중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게다가 시은은 그녀의 곁에 무장한 서리 해골을 두고 있었다. 산박은 자신을 따르는 이를 지켜줌과 동시에 자신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전투를 원했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

이런 기회는 잘 없었다. 첫 2레벨 던전 공략이었다. 그렇기에 그 또한 가능한 범위에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

서로 눈치를 보고 쉽게 나서지 않자 이번에도 산박이 나섰다. 서로 세력이 다르고 위치가 달랐기에 누구도 준서와 갑균의 미묘한 갈등에 쉽게 끼어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전 준서 씨의 의견이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봅니다.”

“핵심… 말씀이십니까?”

준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뭔가 갈림길이 나왔으니 으레 대장 노릇을 하려고 의견을 휙 날린 것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없는 영향력을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일단 한마디 툭 던지는 사람이 있었고 준서가 그런 자였다.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안 내면서 뭔 일이 있을 때마다 툭툭 내뱉고 이래서 안 된다느니 쯧쯧거리는 속이 텅텅 빈 양반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데, 산박이 그런 준서를 추켜올려 줬다.

“주변을 보십시오. 시야 거리가 5m도 안 됩니다. 여기서 적을 파악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건 운에 맡기는 일입니다. 오히려 직선로가 더 리스크가 적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니면 여기 추적이나 수색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분이 있습니까?”

없다. 없다는 걸 알고 말한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논파하려면 그런 놈을 데려오라는 식이었다. 고레벨에서나 기용하는 고급 인력인 길잡이를 2레벨 던전에서 요구하는 건 웃긴 일이었다.

“그럼… 싸우도록 하죠? 준서 씨의 말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시은이 동의했다. 그 말에 너도나도 찬성표를 던지면서 준서를 칭찬했다. 이에 준서의 콧대가 발기탱천했다. 하늘을 향해서 꼿꼿이 섰다. 서버렸다.

“어려운 길로 간다고 해서 다 통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갔겠죠. 하지만 이 현실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케헴!”

준서가 굳이 달지 않아도 될 사족을 달았다.

전투가 결정되자 포지션을 정하고 작전을 세웠다.

“언데드들은 본인들 곁에 두세요. 그래야 후방 분들도 안전하게 앞을 볼 겁니다.”

“그건 네크로맨서가 알아서 합니다.”

산박의 조언에 준서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산박이 월권행위라도 한 것처럼 날을 세웠다. 산박이 대응하기도 전에 걸섭이 웃었다.

“하하하, 그렇죠. 그게 네크로맨서의 가장 큰 강점 아닙니까? 후방에서 대장처럼 지켜보시다가 위험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시면 됩니다. 유동적으로 전황을 살피는 직업이 바로 네크로맨서 아닙니까? 가히 만능의 후방 직업이죠.”

준서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죠. 유동적으로 확실하게 전황을 살필 줄 아는 게 네크로맨서입니다. 왜 걸섭 씨가 포스코 타워로부터 오퍼를 받았는지 알겠어요. 아주 잘 아시네요.”

“예. 하하하.”

“하하하!”

서로 웃으면서 끝을 냈다. 좋은 마무리였다.

‘아무래도 네크로맨서에 대한 조언은 못 하겠네.’

산박은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언데드 3기에 네크로맨서 세 명. 합하면 여섯 명이다. 거기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건 솔직히 뼈아팠다. 전력의 40% 이상이 통제를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태 사장님, 혹시 생각해 두고 계신 게 있습니까?”

갑균이 물었다.산박이 시작부터 열정적으로 네크로맨서에게 훈수를 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박은 여기서 물러섰다. 그가 언급을 꺼리자 준서가 냉큼 치고 들어왔다.

“당연히 전방은 두 분이 맡으시고, 좌를 저 주술 검사분이랑 마검사분이 맡으시고 우에는 성기사 하나 두면 되잖습니까?”

준서는 어처구니없는 패배적 전술을 자기 입으로 논했다. 오른손잡이가 많아서 우측 대응력이 높기에 좌측을 소극적으로 한 명으로 막고 우측에 두 명을 배치해야 했다.

그걸 반대로 하고 자빠진 모습이었지만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이곳에 군사적 지식이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냉병기의 싸움은 좌와 우의 싸움이었지만 이에 능통한 현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그런 냉병기 싸움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자일 터였다.

어찌 되었든 포지션이 정해졌다. 놈들을 유인하는 역할은 장궁을 운용 가능한 남명겸이 맡았다. 그는 발 춤을 추면서 자신에게 이로운 주술을 걸었다.

‘나뭇잎 발걸음.’

나뭇잎이 그의 몸에서 툭툭 튀어나와서 하체 주변을 훌훌 날아다니며 두세 바퀴 돌다가 스며들어 갔다. 그는 내친김에 검에도 주술을 부여했다.

‘손잡이 화염 토템!’

검 손잡이에 화염이 휘몰아치다가 쑤우욱 들어갔다. 원할 때마다 불꽃이 튀어나오는 주술이었다. 미리 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지 시간이 고작 한 시간밖에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던전에서는 가치가 없는 주술이었다.

다만 이렇게 먼저 기습을 할 수 있고 적을 인지했을 때는 쓸 수 있었다. 발 춤을 춰서 주술을 걸어야만 하는 게 ‘주술 검사’였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타다닥!

그가 내달렸다. 실로 가벼운 모습이었다. 얻은 직업이 제약이 많고 대단한 곳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그는 다채로움을 가져야 했다. 주술, 검술, 장궁. 남들은 얻지 않아도 될 것을 노력해서 얻어야 했다.

끼긱.

친환경으로 만들어진 장궁이 당겨지며 소리가 났다. 마치 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활을 당긴 남명겸이 시위를 놓았다.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흐물흐물 움직이고 있는 썩은 과육 괴물의 몸에 부딪혔다.

콰가각!

흉악한 소리를 내며 화살이 깊게 박혔다.

“그으으으응.”

앓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내부가 썩어 문드러져 있는 게 ‘썩은 과육 괴물’이었다. 여물지 않은 과육 괴물이 거칠게 고함을 내지른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근처에 있는 네 마리의 과육 괴물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화살이 쏘아진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다!’

괴물은 괴물. 놈들은 몸 곳곳의 빈틈에서 썩은 수액을 콸콸콸 쏟아 내면서 달려왔다. 그 수액은 피부에 닿으면 따가웠다. 남명겸의 발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아, 제기랄!’

뒤를 힐끔 본 명겸은 유독 호리호리한 썩은 과육 괴물이 자신을 조금씩 따라잡는 걸 느꼈다.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기를 쓰고 달렸지만 수액을 쏟아내며 철퍽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놈의 발소리가 들려서였다. 그런 명겸의 눈에 시은이 주문을 사용하는 게 들어왔다.

‘마녀의 손길.’

2레벨 주문에 속하는 ‘트위스트 스네이크’보다는 저렴한 1레벨 주문 마녀의 손길을 사용했다. 달리는 과육 괴물은 이를 회피했지만 마녀의 주문은 ‘신체’와 ‘저주’에 가까웠기에 단번에 위로 솟구쳐 오르며 그 나무뿌리를 하나 잡아챘다.

전력으로 달리는데 누가 발목을 움켜잡으면 끔찍한 사고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썩은 과육 괴물이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케엑!”

철퍽 소리가 나며 썩은 수액이 쏟아져 나왔다. 나무 피부가 돌에 구멍이 뻥 뚫려서였다. 또한 나뭇가지에 있는 썩은 과육이 후드드득 떨어져 내렸는데, 충격파가 한꺼번에 터졌다.

퍼버버벙!

그 폭음에 넘어진 썩은 과육 괴물은 그대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곤죽이 되어서 널브러졌다.

“…….”

“끔찍한데요.”

산박이 눈을 찌푸리는 걸 보고 시은이 한마디 던졌다. 그 말에 산박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네 마리에 불과했던 과육 괴물들이 순식간에 여덟 마리로 불어났다. 남명겸은 장궁마저 그냥 던져버린 채 달려오고 있었다.

“저, 저 미친 새끼! 야, 이 개새끼야! 너 혼자 죽어! 다른 곳으로 가!”

갑자기 두 배로 불어난 숫자에 준서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외침에 다른 이들이 기겁했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저 미친 개새끼가 다 죽이려고 다 몰고 오고 있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그 외침에 좌측에서 갑자기 썩은 과육 괴물이 나무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가 네 마리였다. 다행스러운 일은 좌측에는 두 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좌측 네 마리부터 빨리 처리합니다!”

산박이 외치자 걸섭과 갑균을 제외한 나머지가 몸을 틀었다. 성기사 김각두도 서둘러 좌측으로 왔다.

후드드득!

썩은 과육 괴물이 몸을 뒤로 크게 기울였다가 앞으로 훅 움직이며 나뭇가지에 달린 썩은 과육을 던졌다. 하나하나가 하나의 주문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위험한 순간 속에서 산박이 냉큼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블루 오션 페어리 스타라이트 스태프! 모든 주문에 보정을 선사해 주고, 특히 별빛 주문에 증폭률이 높다. 또한 추가적으로 2레벨 물의 주문 중 강력한 주문인 워터 샷도 사용할 수 있었다.

사아아아…….

스태프가 바다색으로 물들며 빛을 뿜어냈다. 요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레벨 스태프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산박은 하나의 존재를 지팡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갈래 불꽃.’

수십 갈래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허공으로 쏟아졌고 썩은 과육과 부딪치자마자 충격파가 발생하며 귀를 때렸다.

‘빌어먹을. 하나같이 똑같이 충격 과육이라니?!’

산박은 섬뜩함을 느꼈다. 과육마다 모두 제각각 특성을 보여야 하는데 하나같이 충격 과육이라서였다. 그건 너무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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