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270)
  • 151화

    나무를 벌목하는 일은 짐승을 도축하기보다 쉽다. 하지만 과육 괴물을 손질하는 일은 어려웠다. 가장 먼저 수액이 너무 많았다.

    코카콜콸콸콸!

    “제기랄.”

    조금만 칼집을 내도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액을 보며 너도나도 혀를 차고 욕하기 바빴다. 그만큼 수액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수액 자체가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 피부에 닿으면 따가웠다.

    따가운 것 외에는 크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인간은 통증에 매우 민감한 존재였다. 장갑을 낀다고 해도 물은 땅에 쏟아지며 튀기 마련이었다. 그 덕에 여물지 않은 과육 괴물의 적출 과정은 공을 들여야 했다.

    “이거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동맥 자르듯이 해야지.”

    김준서는 훈수를 두기 바빴다. 그 자신이 단검을 들고 나무 심장과 나무 힘줄을 적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 헛된 훈수를 보며 산박은 시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A급 듀얼 클래스 인재가 이시은이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지도 않고, 산박의 팀에서 문제 한번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대우해 주지 못한다면 산박은 사장 직함을 떼어내야 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아앙! 쏟아져 나와욧!”

    수액이 콸콸 쏟아지는 모습을 본 시은이 간드러진 소리를 냈다. 절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산박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장난치지 마세요.”

    “네!”

    그 과정을 끝내고 팀 내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바뀌었다. 대부분 이들이 준서보다는 산박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됐다. 특히 용걸섭과 용갑균의 눈이 빛났다.

    “동생아, 이야기 좀 나눠봐. 난 김준서랑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

    “엉.”

    우애가 썩 나쁘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협력을 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탓에 그들은 진짜 ‘혈연’다웠다.

    “첫 전투는 어떠셨습니까?”

    용걸섭이 능숙하게 김준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김준서는 산박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걸섭을 웃음으로 환대해 줬다.

    “제대로 된 놈도 있고 아닌 놈도 있어서 이거 참 걱정입니다.”

    “하하, 그러니까 실력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뭉쳐야 하고 대화도 잘 나눠야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적패 네크로맨서라면 포스코 타워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핵심 인력이지 않습니까!”

    “커흠! 떠오르는 태양이긴 합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지원도 해주는 거고.”

    “예, 예. 그리고 던전에서 나가면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그는 능숙하게 준서에게 던전 뒤풀이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절로 사타구니가 불룩해지는 이야기였다. 남자는 허리 놀리는 걸 본능적으로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 의원조차도 없애지 못하는 게 창녀촌이고, 여성의 위대함을 부르짖는 그 어떤 시민 단체도 죽이지 못하는 게 창녀촌이었다.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까 그 불꽃, 대단했습니다.”

    용갑균은 대장삵의 뱃살을 만지작거리려고 그의 빈틈을 찾고 있는 산박에게 다가가서 칭찬부터 했다.

    “앞을 든든하게 막아 주시는 것이 더 멋지죠.”

    산박의 옆에 갑균이 쭈그려 앉았다. 시은은 근처에서 발견된 유골을 해골로 일으키고 있는 중이라 산박의 근처에 없었다.

    “던전 기업을 하나 만드셨다고 하시던데.”

    “이제 1년 반쯤 되어 갑니다. 2레벨 던전 공략은 사장인 저와 이 팀장이 처음이죠.”

    “이시은 씨가 팀장입니까?”

    “예. 아직 열 명도 안 되는 소규모 기업이라서 사장 다음이 팀장입니다.”

    “아하. 헌데 거기는 전사가 좀 많습니까? 적습니까?”

    “항상 부족하죠. 두 명이 있긴 한데 순수 전사는 한 명뿐입니다. 그것도 방패 전사지만요.”

    “방패 전사는 보스전에서 좀 약한 면모를 가지고 있죠. 다른 전사분은요?”

    “그림자 기사요.”

    그 말에 갑균은 썩 달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암살과 용맹이 뒤섞인 것이 그림자 기사였다. 고레벨 던전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기도 했는데, 척후로 쓰기 좋으면서 전방에 두기도 좋다. 비전투, 전투 상황 모두 쓸 수 있었다. 전술적으로 전사를 압박하는 직업이었다.

    “관심 있습니까?”

    산박이 눈을 빛냈다. 순수 전사는 언제나 필요했다. 특히 저레벨 던전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불태워도 괴물들은 잘 죽지 않고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의외인데. 이렇게까지 절박한 모습을 보이다니.’

    갑균은 일단 한 걸음 물러섰다. 산박이 너무 적극적인 모습을 ‘선뜻’ 보여 줘서였다. 함정일 수 있었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태도를 보이면 물러나는 게 투자의 기본이었다.

    “관심이야 있죠. 근데, 그 이야긴 던전 나가서 따로 자리를 잡아서 하고 싶습니다.”

    “예. 그러시죠.”

    산박 또한 쉽게 물러나 줬다. 제법 경계심을 드러내는 게 회사에 한번 속했다가 피를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이런 상대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놔둬야 했다.

    ‘실력이 있으니까 이런 게 가능하지.’

    사회는 정글이다. 뭣도 없으면 대우도 못 받는다. 심지어는 외모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어른들 싸움은 그 누구도 못 말리기에 더더욱 가혹하고 잔인하게 끝났다. 그 과정 또한 구질구질하기 그지없었다.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출발합시다!”

    준서가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일어났다. 가장 밑바닥 계급에 있는 김연정은 여자임에도 정말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그 누구도 그걸 케어해 주지 않았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도와줘 봤자 그 삶은 전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꼴값을 떠는 짓밖에 안 된다. 5일 도와주고 끝나는 선행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30년을 더 그 짓거리를 하며 살게 될 것이었다.

    동시에 여기에는 준서가 있었다.

    ‘어쭙잖게 도와줬다가는 더 개지랄 나겠지.’

    남 괴롭히는 게 행복인 놈이었다. 그런 놈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갑질 하는 데 보내겠는가? 그걸 하나하나 도와주고 막아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시작조차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던전에서 여자라고 봐주는 것은 없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남녀의 구분이 있을 리 없었다. 못 버티면 그냥 던전 사용자를 그만두면 그만이었다. 그 누구도 그걸 강제하지 않았다.

    ‘사람이 자기 업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지.’

    적자가 나도 가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깊은 늪은 주관적으로 봤을 때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보이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가능성을 작게 보는 이들은 굉장히 많았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걱정을 하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었기에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당장 산박만 해도 무리하게 투자를 받지 않고 계단식 성장을 원했다. 실패 이후의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실패를 해야 했다.

    “다들 겁쟁이뿐이군.”

    대장삵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다만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알고 있어서 굳이 이곳에서 대장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진짜로 여길 지나야 합니까?”

    산의 아래로 내려오기 직전. 그들은 밑을 보며 핼쑥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가스층이 만들어져 있었고, 주변은 썩은 것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썩은 것들 사이에 생명이 싹트고 있었다.

    “반대편 산의 정상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힘냅시다.”

    산박이 격려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주변에 있는 인간의 유골을 볼 수 있었다. 언데드를 일으키기 좋은 자원이었기에 그곳에 다가갔다.

    산박은 능숙하게 시체를 뒤져서 필요한 걸 꺼냈다. 약초 주머니, 약간의 금화 그리고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쓸데없이 잘 그려져 있었는데, 가족 그림이었다. 자식을 셋을 두고 있었다. 감상은 없었다. 무덤덤했다.

    “여기서 전투를 벌이고 박살이 났나 본데요.”

    이미 해골을 일으킨 시은이 그걸 구경하면서 산박에게 말했다. 산박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팀으로 왔겠죠.”

    “그나마 산 위에 있던 해골보다는 낫겠네요. 썩은 과육을 맞아서 그런지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현지에서 조달하는 게 변수가 좀 있는 편이죠.”

    그렇다고 시체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시체 장사는 돈이 된다. 자연스럽게 시체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고, 상당히 고가일 수밖에 없었다. 또 사람 정서상 자신의 가족 유골이 비싸게 팔리는 걸 선호했다.

    “됐습니다. 갑시다.”

    해골 2기가 일으켜 세워졌다. 살점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그 속에 있는 사령 마력은 뼈로 스며들었다. 모두 적패 네크로맨서라서 그런지 해골학의 기본이 되어 있었다.

    “키흥!”

    대장삵이 기침을 했다. 산박은 물 묻힌 천을 조금 더 강하게 조여 줬다. 이들 모두가 역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나아갔다. 종종 컨디션이 나빠지면 대장삵이 주는 치료수를 받아 마셨다. 그때마다 상태는 호전되었다.

    “이거, 전투하면 안 되겠습니다.”

    용걸섭이 선두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당연히 그 시선은 김준서에게 향해 있었다.

    “던전 와서 전투를 안 한다고요? 그게 말입니까?”

    준서는 당연히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제안을 하다니, 건방졌다. 다만 걸섭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덤비지는 못하지만, 대신 방파제를 세우려고 했다.

    “시은 네크로맨서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리스크가 있으면 보상도 있는 법이죠. 저희는 열 마리의 과육 괴물을 잡았지만 부족하긴 하잖아요?”

    제법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공격적인 판단이었다. 걸섭의 눈이 산박에게로 향했다. 산박은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여긴 듯했다. 나중에 같은 회사에서 행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대화를 그의 동생을 통해서 산박에게 전했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

    그런 건 뒤풀이를 통해서 풀어갈 수 있었다. 또 던전은 몬스터는 죽이는 만큼 카르마를 준다. 던전을 빨리 클리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행동’과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산박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고민되네요. 어느 것도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한 번은 싸워보고 견적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박은 되레 준서를 밀어줄 근거를 제시했다. 자신이 아니라 준서가 미쳐 날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다.

    “산박 씨가 잘 아네. 한 번은 싸워보고 판단해야지. 안 그래? 벌써부터 징징거리는 건 사회인으로서 좀 됨됨이가 부족하다고 보는데.”

    “죄송합니다.”

    걸섭은 바로 사과했다.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산박이 스리슬쩍 걸섭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최대한 숫자 적은 괴물들을 찾으세요. 그래야 준서 씨가 납득을 하죠.”

    “네.”

    소곤거림은 짧았다. 오래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산박은 다시 뒤로 향했다. 이를 준서가 주도면밀하게 쳐다봤다. 그러다가 눈을 비볐다. 조금 따가웠다.

    “저 눈이 따갑습니다. 치료수 좀.”

    “대장삵.”

    “이리 와서 받아 마셔라.”

    아쉬울 게 없는 대장삵이 머리를 꼿꼿이 세웠다. 건방진 삵이었지만 준서는 다가와서 양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곳에 대장삵이 물을 졸졸졸 흘려줬다. 최대한 아껴야 했다. 이 모든 게 ‘힘’의 소비를 불러일으켰다.

    “조금 더 세게 좀 부어라, 쫌! 손도 좀 씻어야 하는데…….”

    준서의 말에 대장삵이 물을 뚝 끊어 버렸다.

    “꼬우면 다른 치료 아이템을 먹어. 건방진 인간이 어디서 반말이냐?”

    준서가 답하기도 전에 산박이 냉큼 삵을 다그쳤다.

    “삵아! 말투가 그게 뭐니?”

    “난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참 나……. 준서 씨,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별난 소환수라서요.”

    산박이 너스레를 떨며 준서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원래 이런 소환수라서, 지성을 지닌 사람답게 그냥 받아들이세요.”

    “미안하다는 소리를 할 때까지 물은 없다! 난 대장삵이다! 위대한 삵이다!”

    대장삵이 그 말에 더욱 분노했다. 그 사이에 낀 준서는 눈을 비비면서 어쩔 수 없이 대장삵을 살살 달랬다.

    “미안하다, 미안해.”

    “요를 붙일 때까지 안 준다.”

    “…요.”

    그제야 대장삵이 물을 쪼르르 따라줬다. 치료의 효능이 깃든 물의 마법으로 생성시킨 마법의 물은 아주 상쾌했다.

    “그래, 그래. 인간, 너는 만들 수 없는 대단한 마법의 물이다. 남김없이 마시며 감사해야 한다.”

    “…….”

    ‘뭐 이딴 소환수가 다 있어?’

    준서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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