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270)
  • 150화

    * * *

    “던전 보스도 잡고 나무의 비싼 재료도 얻고,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던전 공략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지금 여기 있는 인원수만 해도 이미 보통이 아니지 않습니까.”

    본래는 여덟 명. 하지만 하청이라는 수법을 통해서 손쉽게 열 명을 채웠다. 그중 세 명이 네크로맨서였고, 3기의 언데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산박은 대장삵까지 데리고 있다. 즉, 운용 가능한 개체 수만 열네 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물량이었다.

    준서는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반면 다른 이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 용걸섭이 이번에도 속으로 한숨을 쉬며 산박에게 물었다.

    “그 보스라는 놈은 어느 정도로 강합니까?”

    “2레벨 던전인데 강하지는 않습니다. 중형급 크기고, 공격하기보다는 과육 괴물을 몸에서 토해 냅니다.”

    “그러면 더 쉽겠네.”

    준서가 웃었다.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산박도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자신은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피해자가 생겨도 준서가 얻어맞을 터였다. 그에게는 시은이 있었기에 네크로맨서들끼리 밀약할 수 없었다. 세 명 중 시은의 보고서만 달라도 포스코 타워는 시은의 손을 들어줄 것이었다.

    ‘미래가 유망한 네크로맨서니까.’

    솔직히 말해서 포스코 타워의 행보는 산박에게는 신선함을 줬다. 연차도 낮은 네크로맨서를 성과가 있다면서 바로 적패로 올렸으며 이런 지원 프로젝트에 꽂아 주기도 했다.

    포스코 타워의 존재 때문에 대한민국 내의 네크로맨서 숫자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걸 고려했을 때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네크로맨서가 많을수록 내부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높다고 무조건 대우해 주는 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포스코 내부에서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그나마 맑은 곳이라고 말할 만했고, 산박에게는 신선했다. 보통 그 정도로 덩치가 크면 파벌 싸움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었다.

    ‘요주의 회사로 여겨야겠어.’

    도시 하나를 지배한다는 특징만으로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거기에 ‘그나마 굴러간다는’ 특징도 추가됐다. 포스코 타워에는 의외로 산박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을지도 몰랐다.

    네크로맨서와 산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김준서의 판단으로 보스 몬스터와 싸우게 될지도 몰랐다.

    ‘고정된 의뢰금을 받으니까 어쩔 수 없지.’

    1레벨 던전 공략은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는 반면 2레벨은 사람에 비해서 공략 시도 횟수가 적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2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던전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천대를 받았다. 외부 업체나 외부 인사들을 통해서 2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게 가능해졌고 자연스레 지배받는 2레벨 던전 사용자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었다.

    ‘3레벨이 되고 싶으니까.’

    언론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고레벨 던전 사용자들의 이슈. 1%의 삶. 그것에 매료된 불나방들은 오늘도 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시다. 뭘 멍하게 있습니까?”

    준서가 성기사 김각두를 툭 치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저거, 돈 되는 거 아닙니까? 왜 배낭에 안 담으시죠? 혹시 고정 금액 받는다고 그러는 겁니까?”

    “아닙니다. 어이! 명겸이! 어서 달려가!”

    “예!”

    주술 검사가 서둘러 달려서 그럴듯해 보이는 꽃을 잔뜩 꺾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 작업 뒤에는 은근슬쩍 법성 사제 김연정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성기사 김각두가 남명겸의 앞을 막아섰다.

    “잘합시다. 예?”

    남명겸의 말에 김각두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보이는 게 있으면 채집하겠습니다.”

    “말은 잘하네. 두고 보겠습니다.”

    김각두는 실제로 이를 실천했다. 하지만 그걸 본 준서가 혀를 찼다.

    “뭘 달려가고 있습니까! 그런 걸 채집해서 돈이 되겠어요? 던전 공략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뭐 하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이렇게 해도 욕, 저렇게 해도 욕이었다. 이는 산에서 내려가는 내내 이루어졌다. 피해를 받는 이들은 하청하는 자들이었다. 김준서는 평화로울 때 확실하게 그들을 잡아 두었다. 그렇게 자신과 그들의 위치를 곱씹어 주는 게 자신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한다고 여겼다.

    동시에 큰 우월감을 느꼈다. 자신을 대우해 주지 않는 이 버러지 같은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세상.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과 칭찬을 주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에게 자신을 송곳처럼 세우는 길이었다.

    그 송곳에 피와 증오, 분노가 깃들어 있다는 것부터가 모순되어 있음을 준서는 몰랐다. 그는 그런 종류의 가르침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조심!”

    갑자기 대장삵이 소리쳤다.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지만 대장삵은 느낄 수 있었다. 털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바람도 없는데 그건 이상했다. 뒤늦게 땅에서 울림이 퍼져 나갔다.

    “뭉치세요!”

    산박이 고함을 내지르자 다른 이들이 서둘러 달라붙었다. 땅이 쩌저적 갈라졌다. 곳곳에서 푸르딩딩한 여물지 않은 과육을 가지고 있는 나무들이 일어났다. 그들의 크기는 인간만 했다.

    “썩지 않았는데요!!”

    김준서가 산박을 나무랐다. 하지만 산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됐다. 거기에는 대화가 필요 없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여물지 않은 놈들입니다! 과육에 ‘힘’이 담겨있지 않지만 돌처럼 딱딱합니다!”

    산박은 전투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몸을 놀렸다.

    ‘영혼 자극.’

    두 눈에서 광채가 터져 나갔다. 다른 이들도 확연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이 그릇에서 삐져나와서 줄줄 흘러넘쳤다. 주문의 위력이 증가하며 동시에 0레벨 수준의 원소 마법을 다루는 게 가능해졌다. 그 말은 수준이 아주 낮지만 원소 마법에 대한 지배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영혼 불꽃 상체와 영혼 대지 하체를 통해서 증폭되었다. ‘영혼’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장비답게 영혼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미미했지만 그 덕에 산박의 영혼 자극 기술은 더더욱 강력하게 빛을 토해냈다. 흰색의 증기가 몸 전체에서 흘러나와서 아래로 가라앉았다.

    “갈래 불꽃.”

    상체에서 불똥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적을 향해 마구잡이로 난사되었다. 세 개를 맞은 놈이 있는가 하면 한 개를 맞은 놈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무질서한 공격 주문이었다.

    화르르르!

    마력 불꽃이 피어오르며 ‘여물지 않은 과육 괴물’들이 화려하게 타올랐다. 동시에 나무가 머금고 있는 수분 때문에 마력 불꽃에서 검은 연기가 미친 듯이 피어올라 왔다.

    “그어어어어!!”

    나무 전체에서 소리가 울려 펴지며 거대한 소리가 메아리치면서 뻗어 나갔다. 과육 괴물들이 불붙은 채로 덤벼들었다. 타들어 간 나무는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그 덕에 그들의 공격 수단은 몇 없었다.

    과육 괴물들은 나뭇가지를 휘둘러서 딱딱한 과육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보며 마검사 박쇠패가 검에 스피릿을 부여했다. 스피릿은 마검사의 근본이 되는 초월 체계였다. 다섯 종류의 원소 중 하나가 무작위로 부여됐다.

    ‘제발! 벼락! 혹은 화염!’

    검에 벼락이 깃들자 박쇠패가 고함을 내질렀다. 기합은 마검사의 힘 증폭 방식이었다.

    “으오오오오!”

    ‘더스트 라이트닝(Dust Lightning)!’

    벼락이 먼지처럼 작은 꼭짓점 수십 개를 찍으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투척된 여러 개의 과육이 그걸 맞고 후드득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사이에 법성 사제 김연정의 다양한 버프도 전방 직업에게 집중되었다.

    ‘선명한 활력!’

    용걸섭과 용갑균에게 집중된 신성 주문은 강력한 활력을 그들에게 부여했다. 동시에 다가올 돌격을 막아야 하는 게 그들이었다.

    ‘충격 감쇄의 신성 방패!’

    그들이 쥐고 있는 사각 방패에 황금색 빛이 한 번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네크로맨서들은 트위스트 스네이크 로브에 깃들어 있는 공격 주문을 사용했다. 거무튀튀한 뱀의 형태를 지닌 주문이 날아가서 달리는 나무들의 다리를 부여잡고 조였다.

    퍼버벅!

    단번에 나무들이 고꾸라졌다. 달리는데 누가 다리 하나를 잡으면 손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나무들은 단번에 일어나서 뱀을 움켜잡았지만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쿵!

    그사이에 격돌이 시작되었다. 전사 두 명, 주술 검사와 마검사에 성기사까지 앞에 서있었고, 그들을 맞이했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A급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방패로 과육 괴물의 돌진을 막아냈다.

    ‘쉽다!’

    나무의 체중은 제법 무거웠지만 신성 주문 덕에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감당하기 쉬웠다. 그래서 용걸섭은 단번에 순무를 사용했다.

    ‘순무, 좌우즉추(左右卽推)!’

    방패에 부딪히자마자 나무가 우측으로 쑥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체격도 다르고 몸의 구성 요소조차도 다른 나무를 상대로는 순무를 통해서만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룰 수 있었다.

    “죽여! 이 개새끼! 이 간나 새끼!”

    넘어진 과육 괴물에게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김각두는 양손으로 쥔 거대한 망치로 단번에 나무를 깊게 박살 내놓았고, 주문을 사용해서 투척된 과육을 떨어뜨린 박쇠패 또한 환도로 휘적거리는 나뭇가지를 쳐내며 발로 걷어찼다. 그사이에 용갑균 또한 나무 하나를 좌측으로 쳐냈다. 이를 주술 검사 남명겸이 홀로 상대해야 했다.

    ‘빌어먹을!’

    그가 기겁했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최대한 수비 태세를 취하며 뒷걸음질을 쳐 괴물과 드잡이질을 했다. 주술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마검사와는 다르게 주문에 ‘발 춤’이 꼭 필요한 게 주술 검사였다. 스텝이 꼬여서 황당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상황에 주술을 써서는 안 됐다.

    쨍!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전방에 달려드는 놈들에게 산박이 던진 화염 물약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 화력에 과육 괴물들이 너도나도 기겁했다.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 덕에 처음으로 부딪침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그 스노볼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적의 돌진을 쉽게 막았다는 게 베스트 중 베스트였다.

    싸움은 손쉽게 끝났다. 세 마리의 과육 괴물은 트위스트 스네이크 주문에 사로잡혔고, 증폭된 갈래 불꽃으로 곳곳이 타버려서 불구처럼 된 놈들과 전사들이 부딪쳤다. 사제로부터 버프를 받았기에 더더욱 격차가 벌어졌다.

    대장삵은 만일을 대비해서 대기하며 산박과 시은을 지켰다. 미리 산박에게 명령받은 대로 움직였다.

    “끄윽.”

    그렇게 완벽한 싸움처럼 보였지만 부상자가 많이 나왔다. 과육이 덜렁거리는 나뭇가지에 맞은 이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피멍이 들었다. 재수 없게 혼자 괴물 하나를 감당하게 된 주술 검사 남명겸은 어깨뼈에 금이 갔다.

    “아그그그극!”

    방어구를 떼어낼 때 그는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김준서가 한 소리 했다.

    “썩은 놈들도 아닌데 여기서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하면 어쩌자는 건지.”

    그 말 때문에 분노에 휩싸여서 치료는 더 쉬웠다. 대장삵의 치료수는 쓰지 않았다. 치료수는 나중에 썩은 가스가 가득 찬 곳에서 꾸준히 식수를 대신해서 마셔야 했다. 그 준비를 위해서 대장삵은 힘을 보존해야 했다.

    ‘굳이 대장삵이 전투에서도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이유가 없지.’

    특히 2레벨부터 사용 가능한 물의 주문인 ‘워터 샷’은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1레벨 주문인 파도 송곳니보다 집중된 화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산박의 시선이 하청의 하청의 하청 팀에게로 향했다. 2인 혼성팀에 성기사에 법성 사제다. 법성 사제는 공격 주문이 없어서 매우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성기사는 나쁘지 않지만 저레벨 구간에서는 천민이었다.

    ‘이도 저도 아니기 때문.’

    그들이 활약할 수 있을 때를 산박은 양보했다. 김준서의 갑질이 해도 해도 너무해서였다. 김준서는 전투가 끝나고 부상자가 나온 상태에서도 빈정거리기 바빴다. 진짜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뭣이 중헌지 모르는 쓰레기는 태워도 공해만 일어날 뿐이지.’

    그런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었다. 고쳐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최소한 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잠시만 참으세요. 피부 접촉을 해야 해서요.”

    법성 사제 김연정의 손이 남명겸의 어깨에 닿았다.

    ‘조용한 치유.’

    그 어떤 황금빛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어떤 변화도 강렬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상태는 호전되어 갔다.

    “후우우…….”

    남명겸의 안색이 좋아졌다. 그가 온몸에서 힘을 쑥 뺐다. 고통에서 해방되어서 안락함이 찾아오면 바라보는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행복감을 느낄 만했다. 이를 본 산박이 말했다.

    “점검하고 휴식 후에 내려갑시다. 그리고 과육 괴물의 ‘나무 심장’과 하체에 있는 ‘나무 힘줄’을 챙기세요. 절대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완벽하게 적출하세요.”

    나무 힘줄은 모든 몸에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굵은 허벅지 부분의 힘줄만 뽑아내면 그만이었다.

    “예!”

    네크로맨서를 제외한 이들이 냉큼 대답했다. 그 모습을 김준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내가 해야 할 말을 왜 빼앗아 가?’

    물론 그는 나무 심장이니 나무 힘줄이니 그런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대장 짓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시은이 쪼르르 산박에게 다가와서 팔짱을 꼈다.

    “저도 가르쳐 주세요!”

    “직접 해보면 됩니다.”

    김준서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풍만한 이시은의 가슴이 산박의 팔에 확실하게 짓눌리고 있는 걸 봐서였다. 스물여섯 살 김준서. 그는 혈기 왕성한 인간 수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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