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 *
어둠 속에 집어삼켜졌다. 그리고 다시 뱉어졌다. 산박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1레벨 던전과는 다르게 더 어지럽네.’
산박에게 있어서 2레벨 던전 공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운 좋게 인천 네크로맨서의 프로젝트에 낄 수 있었다. 시은 덕분이었다.
‘역시 그녀는… 성공하는 여자다.’
좋은 파트너였다. 실제로 이렇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산박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주변을 파악했다.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1레벨에서는 여러 던전을 봤었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빈도로 등장한 것이 ‘개방형 던전’이었다. 그리고 2레벨 던전은 대부분이 물량이 많은 던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늘이 보였다. 개방형 던전의 전형적인 특성이었다. 광활한 대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바람 한 점 없는 산 정상에 있었다. 대류 현상이 전무한 것은 솔직히 무서웠다.
‘오직 던전 공략을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적인 환경이라는 걸 보여 주니까.’
산박은 생각했다.
‘이런 곳을 만든 존재들은 왜 지구인에게 ‘던전’이라는 것을 줬을까.’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무서워졌다. 그렇기에 그는 적정선에서 이 사고를 끊어냈다.
“장비 점검하겠습니다.”
적패 네크로맨서 김준서가 대장 노릇을 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며 가진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상 없음을 외친 후 모여서 떠들어 댔다.
“어떤 던전인지 아시는 분?”
준서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하청하는 놈들이나 하청의 하청하는 놈들이나 하청의 하청의 하청하는 놈들이나 모두 돈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값비싼 던전 정보를 구매하여 파악했을 리가 없었다.
던전의 개수는 많았다. 요구하는 정보료는 높은 편이고 꾸준히 돈을 투자해야 했으며 그걸 또 숙지해야 했다. 그렇기에 아는 이들이 적었다.
던전 공략을 ‘커리어’로 삼는 자는 보통 기업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의 오퍼를 받아서 용병처럼 2레벨 던전을 전전하는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자들이었다. 하나같이 사정이 있어 보였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놈이 있지.’
바로 A급 전사 두 명으로 이루어진 형제였다. 그들은 당장 기업에서 활동해도 괜찮은데 손해를 감수하고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맨땅에 박치기인가, 또.”
준서는 그렇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렇게까지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열이면 아홉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던전 정보였다. 운 좋게 전에 갔던 곳에 걸리면 재수가 좋은 거였다. 그 방대한 던전 정보를 숙지하려면 웬만큼 똑똑해서는 안 됐다. 여기는 스마트폰으로 뚝딱 정보를 토해낼 수 없는 던전 내부였다.
여기서 산박이 입을 열었다.
“과육 괴물 던전입니다.”
“과육 괴물 던전요? 어떻게 그걸 알았습니까?”
준서가 믿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산 정상에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느끼지를 못했다.
준서는 체감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불어오는 바람, 불어오지 않는 바람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늘을 내일처럼 살고, 미래가 오든 말든 무덤덤한 인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한량이다. 둔재를 의미하기도 했다. 노력할 줄을 모르고 외부 자극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해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행동하는 둔한 자들이었다. 그게 준서였다.
물론 다른 대부분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걸 아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산박의 사람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가혹했다. 그도 감정적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열등감이 깊게 박혀서 비틀려 버렸군.’
준서는 기괴한 변형 성격이 되어 버렸다. 사회가 이렇게 무섭다. 그도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 터였다. 사회의 풍파에 변한 것이지만, 그게 놈의 면죄부는 되지 못했다.
산박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모두를 향해 물었다.
“산 정상인데 지금 바람이 붑니까?”
“아!”
몇몇 이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제야 손을 이리 휘적, 저리 휘적거리면서 높은 해발임에도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
준서의 입이 삐쭉 나왔다. 젊은 나이였기에 표정을 숨길 줄 몰랐다. 산박은 손가락으로 이들의 눈을 모두 집중시켰다.
그가 움직이면 그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영향을 받았다.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거대한 카리스마가 한순간, 이 짜깁기된 누더기 팀을 규합시켰다. 하나로 만들었으며 뭉치게 하였다. 단 한곳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 압도적인 리더십은 오로지 지식, 아는 것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아래를 보세요. 안개같이 보이는 게 있나요?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숲이 아니라 연기가 잔뜩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잖습니까.”
“네, 네. 정말 그러네요.”
“과육 괴물이 풍기는 고약한 가스가 아래에 잔뜩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더 말해 봤자 입 아플 테니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돈이 많으신가 봅니다?”
준서의 말에 산박이 순박하게 웃어 보였다.
“남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게 많아서 그저 공부를 많이 하는 것뿐입니다. 아는 정보꾼이 계셔서 돈이랑은 상관이 없죠.”
물론 돈에 대한 건 거짓부렁이었다.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오히려 숨겨야 할 일이었다.
대신 산박은 노력을 드높였다. 한국에서 근면은 가장 강력한 자랑거리였다. 가장 근면 성실한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었다. 오죽하면 여행지에 가서도 새벽 네 시 삼십 분에 일어나는 민족이다. 쉬러 가는 게 아닌 셈이다. 누가 보면 협박당해서 여행하는 줄 알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산박의 말은 실로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기 좋았다.
“비가 자주 내리고, 모든 게 썩어 있지만 생명력이 가득한 곳입니다. 또 아까 말했다시피 썩은 가스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몸 상태가 계속 나빠지기에 치료수를 주기적으로 소모해야 합니다.”
과육 괴물 던전의 환경은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1레벨 던전보다 더 악독했다.
가장 먼저 비가 자주 내린다. 괴이하게도 ‘나무’에서 비가 내리기에 ‘나무 비’라고 불리는 비였다. 대류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개방형 던전이기에 납득 가능했다. 하늘의 움직임이 없다면 나무에서 비를 내리면 간단한 일이었다. 미친 소리지만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이 던전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비에 매우 취약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생명체가 비가 내리면 오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체온을 빼앗는 비는 매우 위험했다. 저체온증에 걸리기 쉬웠다.
거기에 습기가 높은 곳에서 인간의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상처를 입기 쉬웠다. 상처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자연스럽게 ‘썩은 가스’가 몸 안에 스며들어서 생명력을 더 갉아먹게 될 터였다.
그 기믹을 말해주자 모두 안색이 나빠졌다.
“비 자체만 해도 골치 아픈데…….”
여러 가지가 다중적으로 섞여 있어서 피해 요소도 제대로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부딪쳐 봐야지 그 피해 정도를 알 수 있었다.
“과육 괴물은 뭔지 들을 수 있습니까?”
A급 전사 용걸섭이 고개를 스윽 숙여 산박을 상전 대접 하며 물었다. 아주 공손했고 목소리에 절박감이 묻어나 있었다.
‘그럴 수밖에.’
게임과는 다르게 죽으면 끝이었다. 그런데도 선두에 서야 하는 게 전사들이었다. 물론 하청의 하청에 속하는 오퍼에 오퍼를 받은 주술 검사 남명겸과 마검사 박쇠패가 진짜 선두에 서겠지만 그래도였다.
“기본적으로 원거리 투척이 위협적인 놈들입니다. 과육마다 다양한 공격적 효과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마법사인 셈이죠. 나무라서 화염 마법에 취약합니다.”
썩은 과육을 던지는 미친 나무 괴물이었다.
산박의 말에 모두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습기가 높은 곳에서는 솔직히 마법 불꽃이라고 해도 위력이 반감되기 때문이었다. 반면 산박은 태평했다.
‘내 풀 장비의 콘셉트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다.’
인천 네크로맨서 내에 자신의 명성을 조금 퍼뜨릴 수도 있었다. ‘오퍼’를 넣기에 나쁘지 않은 사장이라는 인식을 세울 수 있었다. 동시에 시은도 조금 오래 쥐고 있을 수 있었다.
‘분명 인천 쪽에서는 나한테서 독립하라고 하고 있겠지.’
시은이 마음만 돌리면 위약금이라도 줘서 산박에게서 자유를 주려고 하고 있을 터였다. 그건 시은이 하기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오랫동안 계속 권유가 이루어질 터였다. 산박이 포스코 타워의 적패 네크로맨서들에게 이름이 알려진다면 시은을 조금 더 오래 기업에 잡아둘 수 있었다.
‘나갈 생각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작업은 필요하다.’
힘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지금 시대는 자기 PR의 시대였다. 괜히 실력을 숨기면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빠른 현대의 시간에 파묻히기 쉬웠다. 결국 때를 놓쳐서 구질구질하게 몇만 원 쥐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자신을 팔아야만 하는 시대였다.
“클리어를 위해서는 저 반대편에 있는 큰 봉우리의 꼭대기에 존재하는 거대 나무를 태워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거대 과육 괴물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거나 10일 생존하는 걸 택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김준서는 마치 산박의 상사처럼 한 가지를 턱 질문했다.
“뭐가 가장 편한 길입니까?”
“거대 나무 파괴입니다. 거대 나무에 있는 붉은 돌기는 큰돈이 되기도 합니다. 돌기 하나에 8만 원은 합니다.”
다른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산박의 말에 시무룩해졌다.
“문제는 그 돌기를 뽑는 순간 보스 몬스터가 다가온다는 겁니다. 점점 빠르게요.”
채집을 하는 순간 보스 몬스터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많이 뽑을수록 점점 빨리 다가온다. 이에 시은이 물었다.
“사장님, 바람도 안 부는데 어떻게 찾아오는 거죠?”
“거대 나무의 뿌리가 던전 땅 밑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거기서 독특한 향이 피어오릅니다.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 향은 붉은 돌기를 뽑을수록 강해진다.
“채집을 길게 하면 보스 몬스터와 전투를 피할 수 없고, 나무를 빨리 파괴하면 수익이 줄어든다. 맞습니까?”
준서가 정리하는 척을 했다. 누구나 아는 걸 입에 거론한 것뿐이었다.
“보스의 수준은 상당합니다. 정공법은 불가능합니다.”
적당히 취하고 나무를 파괴한 뒤 도망치며 던전이 붕괴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다만 준서는 탐욕에 물든 표정을 지었다.
* * *
송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앞에는 준달독 차장이 있었다.
“이게 계획서입니까?”
“네. 투자를 조건으로 지분을 가져오는 겁니다. 지배 구도를 바꾸는 거죠. 기업이니 당연히 수익을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으며 서아는 그대로 서류를 파쇄기에 집어넣었다.
드드드득!
파쇄기가 소리를 내며 종이를 갈아 버렸다. 그 모습에 준달독 차장이 침을 삼켰다.
“영업이랑 계획서랑 좀 다르죠? 안 그래요?”
“죄송합니다.”
“요즘 은행이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아니거든요. 결국 돈을 굴려야지 돈을 벌어요. 아니에요?”
“맞습니다.”
“엘리트들 모아놓고 이런 계획서밖에 못 냅니까? 무슨 시장 바닥 건달들이 하는 짓을 합니까? 뭐가 다르죠?”
“죄송합니다.”
“던전 기업은 던전 경제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유하고 있는 던전 팀원의 숫자와 수준에 따라서 그 수익이 달라집니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게 불가능하죠. 그런 욕심도 안 내고요.”
한 달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돈으로 던전 사용자를 영입해도 결국 수익이 중요했다. 다른 기업에 던전 사용자를 소개해 주면 떼돈을 벌겠지만 누가 그런 걸 모르나? 다 아니까 돈이 안 됐다.
“투자를 받아서 어디에 쓰겠어요? 말해 보세요. 본인이 태산박이라면, 10억 20억 투자 냉큼 받아서 뭐 하겠어요? 계단식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장이 어디에 10억을 쓰겠어요?”
“그거야…….”
차장이 우물쭈물했다. 다른 사람 돈을 은행에 처박게 하고 고위험 펀드로 은행 이익부터 처먹은 뒤에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는 건 하기 쉬웠지만 이건 어려웠다. 던전 기업의 사장이 할 법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무래도 인재 영입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1레벨 전담 팀 하나 생긴 기업에서요?”
“네. 1레벨 전담 팀을 탄탄하게…….”
“나가 보세요.”
“네?”
“나가서 계획서 새로 만들어 오세요. 마지막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다음 계획서에서 안 되면 부산 금융 쪽에 던지겠습니다.”
“예!”
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돈쟁이들에게 이 건이 넘어가면 결코 안 됐다. 송서아는 황금 동아줄이었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