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2레벨 던전>
세컨더리 던전 숍. 한적한 곳에 있어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인터넷에서는 제법 반짝했던 곳이었다. 지금도 찾는 사람은 있지만 오프라인의 행위일 뿐이라 빛이 바랬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산박도 그중에 하나였지만 의외로 내부에서 물건을 보고 있는 던전 사용자들이 제법 보였다. 이런 구석진 곳에 손님이 몇 명 있다는 것만 해도 마이너 중에서는 순위권이라고 할 만했다.
‘거기에 던전 사용자들은 일상이 엉망진창이지.’
던전에 갔다 오면 전투 피로도 때문에 보통은 3일을 쉰다. 불규칙한 생활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모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오는 시간대가 달랐다. 고로, 이 던전 숍은 제법이었다.
“영혼 원소 장비를 구한다고? 직업이 뭡니까?”
늙은이가 몸을 일으켰다. 키가 매우 작았다. 158cm에 불과했다. 북방 민족의 피도 제법 섞인 한국인의 풍채가 이토록 왜소한 것도 신기했다.
“드루이드요.”
“드루이드가 영혼 쪽 기술이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깨가 굽은 늙은 주인은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얇은 문으로 되어 있었고, 자물쇠도 많이 녹슬었다.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잠깐 내려오시오.”
딸칵.
옛날 스위치를 켜자 주황색의 누리끼리한 불빛이 켜졌다. 전구가 아주 옛날 것이었다. 산박의 시선이 계단을 방해하는 상자와 의자로 향했다.
‘엉망이네.’
상자 안에는 전구가 그득했다. 이걸 다 쓰려면 평생 켜놔도 부족해 보였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아래로 향했다. 바로 보이는 건 기와였다. 기와집 지붕에 올려놓는 게 가득 쌓여 있었다.
‘잡동사니가 왜 이렇게 많아?’
노인은 그 속에서 뭔가를 덮어둔 천을 걷어냈다. 상하의로 이루어진 천 옷 세트였다.
“재질은 말할 것도 없이 옛날 것이지만 그렇게 두꺼운 편은 아닙니다.”
큰 것일수록 그릇이 크다. ‘힘’은 더 큰 것에 더 많이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목걸이나 반지는 썩 효율이 높은 건 아니었다. 그게 산박에게 영혼 원소 장비가 필요한 이유였다.
산박은 옷의 재질을 확인했다. 그래도 고급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지거나 변색된 부분은 없었다.
“상체는 영혼 불꽃 상체, 하체는 영혼 대지 하체라는 상품명으로 개발된 겁니다. 지금은 단종되어 있고요.”
“이유는 뭐죠?”
“찾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영혼과 관련된 기술은 매우 드물었다.
“만든 것 자체가 던전 사용자 소울 스트림을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요.”
가장 높은 곳. 그곳에 오르기 위한 대한민국의 노력 중 하나였다.
지금은 던전이 경제, 산업 분야의 한 축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숭고한 신념을 지닌 자들에 의해 등한시되었다. 수많은 강대국이 앞다투어 던전에 뛰어드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 강대국 속에 대한민국 또한 있었다. 판타지 쇼크로 인해서 폐허가 된 서울.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념을 논하였고, 미래를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배는 고파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면 젊은 피는 땀을 흘리기 마련이었다.
그 속에 전 세계에서 소울 스트림이라 불렸던 존재가 있었다. 그를 키우기 위해서 많은 시도가 있었고, ‘영혼 장비’ 또한 그런 계통이었다. 이제는 죽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지만 그는 던전 공략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 덕에 상업화, 산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능력은요?”
“영혼 관련 기술을 증폭시켜 주고 동시에 화염 원소 마법 중 하나인 ‘갈래 불꽃’을 힘을 투자하는 만큼 사용 가능하게 해줍니다.”
불! 언제나 옳은 공격 마법의 속성 중 하나였다. 특히 마법 불꽃은 물로 꺼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번지지 않는 단점도 있었지만, 생명체 상대로든 무엇을 상대로든 나쁘지 않았다.
‘영혼 자극 기술은 주문 위력을 증가시키고 0레벨 원소 마법을 제어할 수 있게 해주지.’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오는 만큼 영혼이 흘러넘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장비에 쏟아붓는 힘과 영혼만큼 큰 효능을 토해낼 수 있었다.
“갈래 불꽃은 어떤 겁니까?”
늙은 가게 주인이 스마트폰을 한참 뒤지다가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그곳에서 갈래 불꽃을 시연하고 있었다. 3분짜리 반복 영상이었다.
‘나쁘지 않아.’
갈래 불꽃은 불똥을 사방으로 튀기며 적에게 날려 보내는 주문이었다. 불똥 유도 주문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
“대지는요?”
“‘작은 대지 골렘 소환 주문’입니다. 던전은 인원수 증가로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2레벨에서는 더 그렇죠. 한 번 사용하는 데 1레벨 주문 다섯 번꼴이 소모되고 30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영혼 관련 기술이 있으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충전식이라서 한 번 사용하고 난 뒤에는 다시 힘을, 여기 허리띠를 매는 곳에 굵은 선이 안쪽에 있죠?”
산박이 이를 만져봤다. 딱딱한 줄이 넣어져 있었다.
“여기에 부여해 주시면 됩니다.”
‘나쁘지 않다.’
혈석을 통해서 몰래 충전할 수 있었다.
“골렘의 스펙은요?”
“영혼 기술의 수준에 따라서 150~200cm 사이입니다. 2m를 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주문 자체가 작은 대지 골렘이라서…….”
산박은 곧바로 가격을 물었다.
“얼마죠? 중고에 오래되었으니 싸게 해주시죠.”
“상하체 모두 합쳐서 750만 원입니다.”
“100에 해주시죠. 어차피 계속 기다려 봤자 사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미친, 그렇게까지 깎는다고요? 흥정이라지만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제가 너무 손해입니다.”
죽어도 손해는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붐이었기에 꽤 높았던 구매 가격에 보관하면서 유지 보수에 든 비용을 모두 치면 750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떼였다. 자기 손해를 남에게 전가하는 가장 허접스러운 고집이었다.
“알겠습니다.”
산박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안달이 났다.
물건은 결국 현금은 아니다. 현금 자산이 아닌 걸 처분하면 현금이 생긴다. 그리고 그는 늙은 사람답게 현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잘 알았다. 자기 집이 아무리 커도 현금이 한 푼도 없으면 팔아야 한다. 그 진리는 여기서도 통했다. 팔지 않으면 결국 계속 남아있을 뿐이고 이제 더는 안 찾을지도 몰랐다. 과거의 손해는 잊고 지금의 이득을 봐야 했다.
‘3년?’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 장비를 찾는 사람은 더는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눈앞의 남자는 아무도 사지 않는 걸 사러 왔다.
“알겠습니다. 150!”
“오케이, 땡큐!”
50을 더 불렀지만 산박은 냉큼 오케이를 날렸다. 오래되었지만 150만 원이면 거저였다. 고집스러운 양반이라서 150이나 가져갈 수 있었다. 양심적이었다면 50을 불렀을 것이 산박이었다. 착하고 끈기 없는 이들이 손해 보는 게 이 바닥이었다. 보통 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이상을 들이기 때문이었다. 부위당 200~500만 원 하는 게 2레벨 장비였다. 그중에서도 비싼 것이 방어구였다. 그걸 두 개, 크게 싸게 샀다.
단번에 구매하고, 산박은 다른 것도 척척 해냈다.
‘2레벨 콘셉트는 후방 직업다운 면모다.’
반지 두 개, 목걸이 하나. 모두 화염 계열 ‘주문’을 증폭시키는 걸 구매했다. 불쏘시개 반지 두 개! 불의 입김 목걸이 하나! 모두 화염 관련 주문의 피해를 상승시키는 던전 장비였고 모두 2레벨 장비였다. 오직 2레벨 던전에서만 쓸 수 있었다.
‘가격이 싸지.’
요즘에 대세인 ‘오대 원소(Full elements)’와는 확연하게 달라서였다. 원소 마법 중 하나만 도와줬다.
특히 저레벨 던전은 후방 직업이 대우를 잘 못 받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자연히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스펙 경쟁은 특히나 던전 기업들을 웃게 하였다. 조직적으로 그런 풍토를 만들도록 뒷돈을 주기도 했다. 언론과 기자들에게 두둑하게 흰 봉투를 내미는 건 기본 옵션이었다. 펜으로 사람도 죽이는데 산업 하나 방향 바꾸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세 개의 아티팩트가 고작 300만 원. 거품과 담합 때문에 비싸기는 여전히 비쌌지만 세일을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산박은 심호흡을 하며 거대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값싼 방어구 전문 기업이 군산 던전 산업이라면 후방 직업을 위한 ‘지팡이 산업’에는 ‘안동 지팡이 국업 회사’가 있었다. 그들의 본점은 안동에 있지만 최대 크기의 오프라인 매장은 당진 국제도시에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혹, 찾으시는 것이 있습니까?”
“2레벨 지팡이를 보려고요. 300만 원부터 보고 싶은데요.”
“예. 2층으로 올라가시면 그쪽 직원이 봐드릴 겁니다. 좋은 쇼핑 되십시오.”
점원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철저한 서비스였다. 산박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위풍당당한 가게의 모습에서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던전 사용자들에게서 착취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가격은 오르면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간사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면 세상을 모두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2층에 올라선 산박은 수많은 가격대의 지팡이들을 볼 수 있었다.
‘1레벨 지팡이는 사치지.’
돈 있는 것들이나 쓴다. 하지만 2레벨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자신의 이점을 더욱 강화할 수 있어야 했다. 산박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불 혹은 영혼, 그것도 아니라면 별과 관련된 지팡이.’
가장 먼저 눈독을 들였던 불의 지팡이로 향했다. 가격은 5백5십만 원.
‘제기랄, 어떻게 된 게 내려갈 생각을 안 하지?’
미친 가격이었다. 평균가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이아몬드 플레임 스태프.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올 만했다. 2레벨 던전 장비로 취급되면서도 오버 스펙인 스태프로 유명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태프였다. 미국, 독일의 공기업 합작 군수 산업의 결과물이었다. 정부가 하는 것답게 돈지랄이 참으로 개지랄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놈이 나온 게 더 황당하지.’
2레벨 화염 계열 지팡이 중에서도 톱급이다. 굵직한 인공 다이아몬드에는 이글거리는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으며 금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뜨거운 건 아니었지만,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부터 남달랐다.
나무의 안쪽에는 강철 심이 박혀 있으며 지팡이의 아랫부분에는 뭉툭한 메이스처럼 십자 형태의 둔기 꼭지가 달려 있었다. 유사시에는 거꾸로 잡아서 둔기로 쓰는 게 가능했다.
길이는 150cm로 양손으로 써야 하며 들고 다니는 게 조금 불편했다. 최대한 목재를 썼기에 무게는 그래도 가벼운 축에 속했다.
‘아쉽지만 포기해야겠지.’
산박이 다이아몬드 플레임 스태프를 만지작거리자 직원이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산박은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돈은 중요했다. 그리고 던전보다 현실이 먼저였다.
‘그다음.’
블루 오션 페어리 스타라이트 스태프. 바다색을 지닌 요정의 별빛 지팡이. 가격은 280만 원. 고가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집중성탄을 더 자주 쓰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색이 변질되긴 해도 한 방을 만들어 내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깔끔하게 털어버릴 수 있지.’
바다색으로 변하면서 요정이 모든 것에 보정치를 부여한다. 초고도의 집중력으로 만들어 내는 집중성탄. 그거 한 방의 관통력도 대단한데 스태프의 보정을 받는다면? 당연히 압도적이었다.
‘추가 주문도 얻을 수 있다.’
‘워터 샷’이 가능했다. 강력한 수압의 소화수처럼 소형 몬스터는 맞는 순간 그냥 뒤로 넘어지고 주르륵 밀려나기 바쁘다. 피멍 드는 건 예사에 살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고 가죽이 크게 상할 수도 있는 강력한 물의 공격 주문이었다.
‘대장삵도 2레벨 던전에 가면 사용할 수 있지.’
더블 배럴 워터 샷인 셈이었다. 나쁘지 않은 콤비네이션일 터였다.
“지금 세일하는 상품입니다.”
“세일요? 몇 %죠?”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 시 항상 5%의 세일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서비스로 붉은 회복 약을 드리고 있습니다.”
붉은 회복 약. 유명한 회복 아이템이었다. 복용하면 활력도 조금 증가하기 때문에 도망치면서 먹기도 좋았다.
“이거랑, 붉은 회복 약도 14만 원치 주세요.”
“넵!”
산박은 법인 카드로 스윽 긁었다. 할인 가격을 붉은 회복 약으로 대신했다. 팀 지급 물품으로 붉은 회복 약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대장삵이 만드는 치료수와 용도가 겹치지만 붉은 회복 약은 알약의 형태로 급할 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