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270)
  • 146화

    * * *

    영암군.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다. 그곳은 인구가 적었지만 그래도 활기가 존재했다. 어란의 최대 생산지 중 하나였고, 특히나 선물용 어란은 이곳에서 하기 마련이었다. 너튜브에서 해풍의 속력, 기간 등을 실시간으로 조회해볼 수 있는 스마트 시스템이 마련되어서 신용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두 명의 수행원 중 운전사를 맡은 대유준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송서아는 목 베개를 벗고 옷을 조금 정돈한 뒤에 차에서 내렸다. 그 전에 소준석이 내려서 주변을 파악했다.

    조촐하게 수행원이 두 명뿐이지만 그래도 출혈은 매우 크다.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게 어려운데 그걸 하는 것 자체가 송서아가 지닌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미리 약속되었는지 송서아는 간판 없는 기와집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차를 한잔하며 상품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오미자차와 어란을 썬 것이 나왔다.

    “이거는 숭어알이고, 이거는 민어알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송서아가 상을 가져다주는 여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그녀가 입은 한복은 정석 중의 정석, 지나칠 정도로 전통을 중요시해서 생활한복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확인해 보시지요.”

    곧 목함이 하나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 한국적 문양이 그려진 목함이고 공을 많이 들인 모습이었다. 이를 열어보자 척 봐도 굵직한 어란이 눈에 들어왔다. 시중에는 유통되지 않는 실한 어란이었다. 민간에 유통되는 건 150~200g 정도인 데 비해 이건 그 배는 되어 보이는 굵직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아는 어란에 얼굴을 가까이 하여 손으로 바람을 내 향을 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숭어 어란, 민어 어란 각각 세 마리씩 여섯 개로 총 열두 개가 들어 있습니다.”

    “상태가 좋네요. 아까 먹어본 것이 혹시…….”

    “네. 같이 작업한 겁니다. 피와 핏줄 제거에 공을 들였기에 비린내를 많이 잡은 겁니다.”

    “좋네요.”

    한 달 이상 해풍을 맞으며 만든 것이라 척 봐도 일등품에다가 모습도 가지런하다. 원래는 이리 비틀리고 저리 비틀리고 같은 것이라도 굵기가 제각각이지만 이건 달랐다. 안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데 정말 제대로 인력을 쏟아부어서 만든 것이었다.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요?”

    “예.”

    서아가 봉투를 꺼냈다. 흰 봉투는 아니었고, 동래 송가가 사용하는 봉투였다. 금으로 화려하게 문양을 가득 채웠고 앞면에는 동래 송가를 한자로 써놨다.

    한글이 남용되고 한자는 묻히는 판국에 쓰여 있는 글자였는데 황당하게도 중국인도 잘 읽을 수가 없었다. 거기는 한자를 간편히 쓰고 있어서 한자가 변형되어 간단화되어 쓰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봉투를 받아 든 영감은 액수를 보지도 않고 챙겼다. 하나에 500g이 넘는 특등급 어란이었다. 거기에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숭어알 어란을 찾는 이들은 결코 모르는 민어알 어란도 있었다.

    ‘4월에는 숭어, 7월에는 민어지.’

    그걸 반반 섞어서 주는 영암 어란은 진짜 ‘아는 사람’만 구할 수 있었다. 바다가 닿아있고 강도 있었기에 둘 모두를 취급할 수 있는 게 영암군이었다.

    졸부는 결코 이곳에 닿을 수 없었다. 영국이 화법으로 천민과 귀족을 구분한다면 한국은 정말 수많은 전통으로 뭣 하는 놈인지를 파악했다. 아무리 30~50만 원을 호가하는 어란을 가져와도 민어알로 만든 어란이 없으면 맹탕이었다.

    목함을 챙겨서 서아는 장 노인에게로 향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딱 봐도 부동 지구는 세종시에서도 멀고, 군이나 면 단위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왜 지구라고 불리겠어.”

    그 말에 소준석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부동 지구’라는 말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나름대로 관직에 몸담은 사람이 많은 가문이야. 금융이나 은행을 관리하는 우리로서도 건들기가 좀 애매하지.”

    서로 분야가 다르기에 쉽게 싸움을 걸지 못했다. 같은 분야에서 강약 차가 있다면 그냥 짓누르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지는 않겠지만……. 항상 말단, 중간 관직에 몸담고 있는 게 그들이었다.

    ‘정부 이기는 가문 없다.’

    살아있는 권력이 죽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게 보편적이었다. 거기에 의외로 공무원들의 입김은 상당했다. 워낙 폐쇄된 곳이라 모를 뿐이었다.

    “그래도 힘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습니까?”

    “가족 중에 누가 돌아가실 때가 다 되면 자기 본관을 찾아가기 마련이지. 사원을 가지고 있으면 농사만 짓고 있어도 무시는 못 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이상은 잘 관리되고 제사도 예법에 어긋남 없이 치러주는 사원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공을 들이시는 건 맞지 않습니까?”

    꿋꿋하게 질문하는 소준석을 보며 송서아가 웃었다.

    “제법인데. 맞아, 던전 경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서 이렇게 공을 들일 수 있는 거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더 말하기 귀찮은 듯했다.

    ‘졸부인 던전 사용자는 항상 뒷배를 원한다.’

    동시에 뒷배가 간섭하는 걸 싫어한다. 그리고 거기에 의존된 경제 구도를 가지는 것도 꺼린다. 모순적이고, 배부른 소리였다. 투자받았으면 간섭은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태산박’이라는 던전 사용자는 송서아를 홀대할 수 없었다.

    ‘장 노인과 타협하고, 태산박에게 손을 댄다.’

    송곳처럼 툭 튀어나온 것이 현재 태산박이었다. 검은 슬라임의 대량 매입만으로도 능히 추론할 수 있었다. 태산박이라는 던전 사용자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돈줄을 쥐고 있다는 것을!

    탁.

    송서아가 목함을 단상에 올렸다. 이를 장 노인이 열어서 확인했다.

    “…동래 송가……. 그래…….”

    그는 말을 아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배 계층이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다. 영국 귀족과 다를 바 없었다. 장 노인은 수염을 만졌다.

    “허허. 이거 참…….”

    말을 탁 내뱉기가 어려웠다. 부산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지역 유지 중 한 곳이 바로 동래 송가였다.

    “방침두 사장이 힘이 있는 건지, 아니면 부산 은행이 여기에 관심을 두는 것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예. 방침두 사장은 그저 VIP 중 한 명입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알 것이었다. 태산박이라는 ‘돈 욕심 있는 드루이드’를 두고 한번 해보자는 소리였다.

    ‘군산 쪽 사업이 폭풍이 되어서 돌아와 버렸군.’

    혀에서 쓴맛이 났다. 태산박이 이 정도로 무식한 놈일 줄은 몰랐다. 냉철함 속에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이 있었고, 거기서 토해지는 마그마는 거대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놈…….’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졌는지 장 노인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는 금세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본으로는 게임이 안 된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언더독’ 행세를 하는 게 태산박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새로 굴러온 돌이 너무 큰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장 노인은 쉽게 굴복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잘 받겠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송서아가 청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나이도 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참으로 대견하구먼.”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이제 스물여섯입니다.”

    “젊군!”

    동래 송가에 큰 재능이 있는 아이가 태어났음을 장 노인은 몇 번이고 더 칭찬해 줬다. 실로 간신배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이었다.

    강자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서아는 장 노인을 낮게 잡아 보지 않았다. 이미 그의 경력이 그가 대단한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대 최고.’

    조사한 바로는 그가 사원을 관리하고부터 장씨 가문의 본관 방문율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고 했다. 그만큼 바쁘게 지내면서도 안팎으로 자기 혈족들이 앉을 자리를 높였다. 먹고살기 바빠서 본관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이들도 돌아오게 된 것이다. 사원 관리의 귀감이 되는 것으로 늙은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그럼 일이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시게.”

    “예. 바람이 차갑습니다. 배웅은 안 오셔도 됩니다.”

    “배려 고맙네.”

    순식간에 일이 끝났다. 한 명이 죽었고, 한 명은 큰돈을 탈탈 털어야 했다. 그런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말 몇 마디로 끝이 났다.

    “이대로 태산박을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내가 왜? 그건 준달독 차장에게 과장이나 계장에게 시키라고 했어.”

    신흥 회사다. 아직은 그녀가 직접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사업이 있다고 해도 그건 밑에 있는 직급의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부산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아니. 오랜만에 인천에 들러야 해. 이런 기회에 가문 사람들 만나고 다녀야지.”

    먼 혈족은 그만큼 찾아가는 게 힘들다. 그리고 서아는 막내나 다름없으면서도 지위는 높다. 떠오르는 태양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혈족을 방문한다면 그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딱딱 떨어지니 안 시킬 이유가 없었다. 송서아는 피곤한 눈을 몇 번 크게 깜빡였다.

    “또 눈이 안 좋으십니까?”

    “응. 스팀을 좀 해야겠어.”

    건조증에는 인공 눈물이 좋지만 한번 사용하면 계속 사용해야 했다. 종국에는 눈물샘이 마를 수 있다고 주치의가 말했기에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이나 손수건으로 최대한 자주 눈 찜질을 해야 했다.

    그르르르륵.

    물 끓는 소리가 차량 내에서 들려왔다. 수건을 준비하는 건 당연히 경호원 소준석의 몫이었다.

    * * *

    당진 국제 시장. 산박은 오늘도 그곳에서 발품을 팔았다. 그의 상황에 맞는 2레벨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1레벨에서는 주문 강화와 증강의 장비를 썼었지.’

    주문을 더 많이, 더 강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재 산박의 상황은 상당히 변했다.

    ‘가장 먼저 팔라딘을 손절했다.’

    추가 주문과 빛의 제단. 그걸 빼앗겼다. 줬다가 뺏는 걸 보니 빛의 신과 야만신의 관계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었긴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

    ‘야만의 오른팔, 문명의 왼팔’, ‘거미줄로 연결된 야만신의 석상’. 야만적인 척추와 야만신의 석상은 피로 이어진 거미줄로 서로 뒤섞여 있었다.

    ‘신체의 강화. 주문력 상승.’

    피로 이루어진 거미줄로 연결되어서 ‘연결 강화’가 일어나며 더더욱 강해졌다. 동시에 마력 충전의 혈석이 손에 들어왔다.

    ‘나 혼자만 써야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줄 수 없었다.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 혈석이었다. 혈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포가 떠질 터였다. 혼자서는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인지 구매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야만신 덕분에 기본 스펙이 높아졌다.’

    근력, 민첩, 체력이 1씩 증가했고, 1레벨 주문 4회 or 2레벨 주문 2회에 달하는 여분의 힘을 획득했다.

    ‘여기서 굳이 비싼 2레벨 풀 장비를 가지는 건 어리석지.’

    이미 확보했는데 거기서 더 확보하는 건 좋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비싼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 돈을 투입해서 얻을 만한 여분의 힘을 야만신 동아줄을 통해서 얻었다.

    ‘무기는 잔잔벼락의 환도.’

    슬링은 여전히 부무장이고, 산박의 원거리 수단이었다. 2레벨은 1레벨과 수준이 비슷하지만 물량이 더욱 많아지므로 슬링이 필요했다.

    ‘2레벨은 물량과의 싸움.’

    이시은이 트위스트 스네이크 로브를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자신의 힘과 주문 사용과 관계없이 공격 주문을 다섯 번 사용할 수 있는 로브는 물량 싸움에 특화된다.

    ‘A급 전사 두 명을 외부 인사로 들여오고, 시은과 나를 집어넣는다.’

    2레벨 던전의 적정 공략 인원수는 여덟 명에서 열 명. 나머지는 네크로맨서와 다른 외부 용병을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들여올 생각일 것이었다.

    ‘거기서 내 장점을 보여주면 안 된다.’

    동물 변신 주문! 산박이 가장 강력한 모습일 때다. 하지만 그것만 강한 게 아니었다. 산박은 집중성탄의 진리 또한 보유하고 있었다.

    ‘후방 직업으로 1인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량을 상대하기 위한 장비를 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 산박이 이를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 교집합에 있는 걸 찾아야 했다.

    ‘그 답을 오늘에서야 찾게 되는군.’

    산박이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세컨더리 던전 숍’. 이름부터 2레벨 전용 던전 숍이었다. 한적한 골목길 안에 있는 음습한 가게였다.

    문을 열자마자 책이 가득했다. 헌책방처럼 보였지만 던전 장비를 파는 곳이었다. 먼지는 없었고 잘 정돈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위로 향하는 계단은 나선형이었는데 거기에도 계단 하나하나마다 책이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만화인지 애들이 계단에 세 명이 모여서 쭈그려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산박은 무심하게 1층에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여기 영혼 관련 원소 장비를 중고로 팔고 있다고 들었는데,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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