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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145/270)

145화

“잘 처신해 보게. 그냥 가라는 대로 가지 말고. 그때는 정말 끝이니까.”

방침두에게 최종 통보가 도달했다. 그건 방침두과 양귀문에게 전달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죽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게 잔혹한 민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활동에 제약이 걸릴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을 하도 등쳐 먹어서 가능했다. 경험은 그들에게 큰 재산이었다.

‘뭉쳐야 한다.’

‘놈이 방법을 알 것이야.’

그 둘은 서로 뭉쳐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외압 속에서 살아날 구멍이 상대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이 자리 잡혔다. 장 노인에게 찾아가기 전에 그 둘은 서로 만났다.

“일을 이따위로 해? 날 물먹이려고 작정했지? 누가 시키드나?”

“제대로 알아보고 하셔야지요. 그쪽 족보에만 못해도 천 명이 넘는데 미쳤습니까? 그것도 안 알아보고, 예? 그냥 쑥 내미셨습니까?”

“이, 이 새끼가? 너 같은 짐승이 물어 온 걸 왜 나한테 따져?”

그때 이모가 다가와서 척척 불판에 고기를 얹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래 봤자 변하는 건 없습니다. 방도가 있어야 해요. 얼마 있습니까?”

“미친 새끼. 한 푼도 못 줘. 난 해외로 갈 거야. 어차피 망한 거 그냥 도망칠 거라고.”

그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뒤를 쫓아서까지 죽이려 들지는 않을 터였다. 보이지 않으면 그것뿐. 유배를 보내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방침두는 자기가 모은 돈을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돈’에서 뻗어 나간 사고의 한 줄기가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중재해줄 가문이 있으면 되는 거잖아.”

“어디, 있습니까?”

“Z.O.P 무역 회사와 연이 깊은 곳이 있다. 거기가 부산이지 않냐?”

“예! 예!”

양귀문 부장이 크게 두 번을 외치며 대답할 때마다 고개를 거북이처럼 쑥, 쑥! 숙여댔다. 그리고 서둘러 소주를 방침두의 잔에 따라줬다. 방침두는 잔을 받아 마셨다.

“어, 어어, 어딥니까?”

양귀문은 말까지 더듬었다. 돌파구가 보인 것이었다. 이에 방침두는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 대충 옷을 찾기 시작하자 양귀문이 우당탕거리며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에헤이! 에헤이! 사, 사장님! 예? 저, 저 양귀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업을 도와드렸지 않습니까?”

“개새끼가 말도 하네. 아까 뭐라고 그랬냐?”

“잊어 주십시오! 제발……! 저 아직도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일 끝나고 누가 돈을 꽂아 넣어 드립니까?”

양귀문처럼 수완 있는 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그의 자리가 유지된다면’. 물론 불가능한 소리였다. 하지만 방침두는 답을 가르쳐 주기는 했다. 자신은 살았다는 생각 때문에 자비를 베풀 줄 알았다.

“부산 은행(釜山銀行).”

사실 부산 은행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거쳐 가는 다리 하나에 불과했다. 방침두는 해양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실세라고 할 만했다. 양귀문이 개지랄을 해도 윗선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는 달랐다.

“꺼져, 이 새끼야!”

방침두는 자신의 옷을 잡는 양귀문을 거칠게 밀쳐내고 서둘러 고깃집에서 나와서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양귀문이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억센 손이 그를 잡았다.

“뭐요!”

“계산은 하고 가야지, 이 상놈의 새끼야!”

이모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니 주방을 보며 외쳤다.

“형근아! 형근아! 이 망할 놈의 동태 눈깔 녀석! 도망친다!”

“예? 어이!”

방침두는 서둘러 부산으로 KTX를 타고 내달렸다. 온라인으로 예약하려니 매진이라 오프라인으로 매표소에 가서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봤다. 다행히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타고 바로 부산으로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좌석에서 빠져나와서 전화를 걸었다.

―네. 부산 은행 차장 준달독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

“예. 잘 지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좀, 가문 하나를 건드렸는데 중재를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단번에 곤란한 대답이 들려왔다.

“차장님… 정말 한 번이면 됩니다. 동래 송가, 양산 대가, 진해 부가, 김해 소가. 아무 곳이나 상관없습니다. 한 곳만, 제발 한 곳만 좀 부탁하겠습니다…….”

그가 사정, 사정했다. 전화 너머라서 보이지도 않는데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제가, 예? 얼마나 많이 투자하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동산 쳐다도 안 보는 대한민국 사람, 잘 없는 거 아시잖습니까. 고위 공직자들도 집을 세 채씩 가지고 있는데… 제가 얼마나 차장님을, 예?”

―…일단 알겠습니다.

준달독 차장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쉽게 부탁을 받아줬다. 사실 방침두가 거의 30억에 달하는 자금을 은행 펀드에 투자해서 준달독의 영업 이익을 배가시켜 차장을 달게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행은 철 밥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발품을 팔아야지만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었다. 돈 파는 영업 사원인 셈이었다.

‘됐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방침두는 다시 객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단 10분 만에 벌떡 일어나야 했다. 황당하게도 준달독 차장의 전화가 벌써 와서였다.

‘제기랄, 제기랄!’

그는 속으로 욕을 했다. 실패한 게 틀림없었다. 부탁도 한 번 하고 끝냈을 터였다.

“여보세요? 차장님?”

―저희 지점장님께서 운 좋게도 그쪽 가문 분이십니다. 하늘이 살린 것이지만, 그냥은 안 받아주실 겁니다. 저한테는 많은 걸 주셨지만 그분과는 첫 만남 아닙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로서로 좋게 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신신당부를 했다. 전화를 마무리하고 내려가는 동안 방침두는 숙면할 수 있었다.

부산 은행. 부산 금융(釜山金融)에 소속되어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지는 곳이었다. 두 곳 모두 네 개의 가문이 각각 17.5%의 지분을 공통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총 70%의 지분을 독점하고 운영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서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방침두는 서둘러 장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방침두라고 합니다.”

―전화를 잘못 건 듯한데?

‘어?’

“저… 오식 선박 사장이라고…….”

―아……. 그 이름이 방침두였어? 허허.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했어?

장 노인은 방침두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것처럼 굴었다. 방침두는 굴욕적인 표정을 짓거나 자존심이 상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 노인을 대단하게 여겼다. 버러지 같은 지렁이 따위가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어찌 감히 화를 내겠는가?

“혹시 부산 은행을 아십니까?”

―음?

“조금만 더 저한테 시간을 주십시오.”

―양귀문도 그쪽 도움을 받게 할 생각인가?

그 말에 방침두가 펄쩍 뛰었다.

“아이고! 어찌 감히 건방지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저 저 하나만 살고 싶어서 이렇게 버둥거리고 있는 겁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기대하지.

방침두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부산 은행 지점 중 한 곳을 맡아 운영하는 지점장과 만날 수 있었다.

“후우! 여기, 물 좀 다시 좀 갖다 줘.”

“네, 고객님.”

호텔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방침두는 벌써 물 잔만 세 번을 시켰다. 땀도 제법 흘렸다. 혹시나 이번 만남이 틀어진다면 방침두는 고래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우잡이 배부터 시작한 방침두는 전형적인 벼락부자였고, 가문이랄 것도 없었다. 조상을 모시는 사원도 없는 주제에 무슨. 그나마 선산 하나는 가졌다. 늙을 때 더더욱 중요해지는 게 자기가 묻힐 곳이고, 자신이 모셔지는 사원이었다. 젊을 때는 강제로 가지만 나이가 제법 차면 자발적으로 가게 된다.

또각. 또각.

검은색의 여성 정장을 입고 옆에는 경호원을 하나 달고 걸어오고 있는 여성이 방침두의 눈에 들어왔다. 방침두는 몸을 일으켰다. 딱 봐도 뒤에 가문이 있는 여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행한 경호원은 떡대가 장난이 아니었고, 정장의 재킷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품 안에 있는 던전 장비를 단번에 뽑아 쓰기 위함이었다. 재킷 안쪽에는 택티컬한 검은색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경호원이 호텔 매니저에게 말을 하더니 방침두를 쳐다봤다. 이미 일어서고 있던 방침두가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여성을 훑어봤다.

여성의 눈썹은 얇고 길었다. 눈은 적당히 동그랗고, 속눈썹에 추가적으로 눈썹을 달지는 않았다. 코가 높아서 눈썹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화려했다. 입술은 균형 잡혀 있었고, 연분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는 피부과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긴 생머리는 그대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동양 미인의 표본이나 다름없었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식 선박의 사장, 방침두라고 합니다!”

그가 벌벌 떨었다. 아주 황송해하는 태도였다.

“송서아 지점장입니다. 앉으세요.”

“예. 먼저… 앉으십시오. 헤헤.”

방침두가 간신배같이 웃었다. 그걸 본 송서아가 인상을 썼다.

“그렇게 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걸로는 절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되레 불쾌하게 만들 뿐이죠.”

“아! 예!”

방침두는 냉큼 자세를 고쳤다.

“준달독 차장님이 칭찬이 대단하셨습니다.”

“경고하기 바쁘셨겠죠.”

송서아가 눈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준달독은 자식 하나 유학 좀 보낸다고 남의 퇴직금으로 고위험 펀드에 공격적 투자를 했는데 대부분 손실이 났다. 그 덕에 송서아의 질책을 받고 난 뒤로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영업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체재가 없는 셈이었다.

피해자? 법적 책임이 없었다. 그들이 사인을 잘못한 것뿐이었다. 개성에서 이 짓을 했다면 개경 이씨가 보상을 해줬겠지만 여기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다만, 송서아가 자비를 베풀어 줬다.

그렇기에 준달독 차장은 송서아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명분이 없는 행동을 가장 싫어하는 게 그녀였다.

“사정을 이야기해 보세요.”

“네? 머, 먼저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방침두를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그는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말했다. 모든 것이 미수로 끝났다. 그 덕에 송서아는 방침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앞으로도 부산 은행과 부산 금융을 잘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

방침두는 부산 금융에의 자산 투자에 대한 계약서에 거침없이 사인했다. 그걸 끝으로 송서아는 바로 일어섰다.

“어! 그, 식사는… 하셨습니까?”

“전 이런 가게에서 식사 안 해요. 보통 집에서 먹고, 그게 안 되면 도시락으로 챙겨 먹어요.”

“아, 예! 조심히 가십시오!”

방침두가 허리를 꺾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송서아가 물만 마시고 바로 일어서자 경호원이 주변을 살피며 따라나섰다. 동시에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에게 연락해 차량의 시동을 켜게 했다. 계속 시동을 켜두고 공회전 하는 걸 송서아가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겨울에는 핫 팩을 몇 개나 갖추고 있어야 했다.

* * *

“비, 빌어먹을! 빌어먹을!”

양귀문 부장은 서둘러 짐을 쌌다. 도시 속에 있으면서도 100평짜리 단독 주택은 마당도 넓고 나무도 몇 그루나 되었다. 그곳에서 챙길 것만 챙겼다.

끼릭, 끼릭.

아날로그식 금고를 열어서 골드바를 쉰 개 서류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1kg짜리니 총 50kg의 금괴였다. 묵직한 무게에 양 부장이 웃었다.

푹.

“꺽?”

그가 벌떡 일어났지만 바로 목뒤를 잡아당겨져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머리가 찍혔다.

“큽. 끄륵!”

푹! 푹! 푹푹푹! 푹푹푹푹푹!

단검이 닥치는 대로 가슴을 찔렀다. 양 부장은 버둥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장굉려는 피 묻은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밖에 대문에 놔둔 랜터카에 휘발유 세 통과 락스 다섯 통을 가져갔다. 한적한 오후 세 시. 일하는 사람이 빠져나간 주택가는 조용했다.

그는 휘발유를 차량 내부에 쏟아붓고 락스도 한 통 썼다. 혹시 몰라서였다. 자신이 왔던 길에도 락스를 뿌리고 집 또한 불태웠다.

CCTV의 데이터도 제거한 다음에 굉려는 유유히 옷을 갈아입고 담을 넘어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량을 열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차 키가 꽂혀 있었다. 그는 구식 차량을 타고 유유히 주택가를 벗어났다. 그 구식 차는 저수지에 처박아 넣었다.

저녁 늦게서야 장 노인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처리했어?

“예. 한데, 방침두는 살려두실 생각이십니까?”

―양귀문이랑 방침두를 어찌 비교해. 한 놈은 뭣도 없는 놈이고, 다른 놈은 그래도 사회생활을 잘해 놓았잖아. 사람이 혈혈단신이면 그렇게라도 해놔야지. 세력 없고 힘없으면 그냥 죽는 거야.

“예.”

배경 하나 없으면 아무리 장군에 올라도 통일 이후에는 목 따이는 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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