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270)
  • 142화

    * * *

    시은은 강단에 서게 될 기회를 얻었다. 인천 네크로맨서들이 주도하는 강의였다.

    모든 힘은 스킬이 없어도 배울 수 있고 연마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최근에 1레벨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 가장 핫 이슈는 ‘서리 해골’이었다. 슬라임이나 온도에 따른 활동력의 변화가 지나칠 정도로 큰 괴물을 상대로 서리 해골은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해골학을 공부하지 않는 네크로맨서는 없기에 자연 수요가 많았다.

    이시은이 이를 위해서 강의를 부탁받은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최근에서야 이를 받아들였다. 미치광이 살인마에게 있어서 ‘반복되는 일상’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던전 사용자가 되었고, 동시에 시간제 교사가 되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에 불과한 시간을 투자하면 그만이었다. 사실상 거의 구색 맞추기였다.

    그녀가 그렇게 한 또 다른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2레벨 풀 장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빌어먹게도,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반갑습니다. 이시은이라고 합니다.”

    시은의 머리카락은 짙은 검은색에 가지런한 생머리였다. 절로 눈이 갔다.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몰리게 해서 세련미까지 있었다. 거기에 원래 가지고 있던 관능미까지 더해서 더더욱 남성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첫사랑 이야기 되나요!”

    “안 돼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강의인데, 서리 해골에 대해서 수업을 해야겠죠?”

    시은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슥슥 빠르게 지우고 해골학이라고 썼다. 그리고 칠판에 줄을 쓱 긋고 서리, 얼음, 차가움을 차곡차곡 써 내려갔다.

    “이것만 알면 서리 해골은 끝입니다. 간단하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패 네크로맨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해골학이었다. 사실 적패를 받은 네크로맨서도 해골학에 정통하지 못하다. 충격적이게도 황패 네크로맨서도 그러했다.

    해골학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위 언데드, 중위 언데드, 고위 언데드까지 스켈레톤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계속 공부를 해도 해골학에 정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도 ‘힘’을 다루기 때문에 형태가 이루어지지 않는 주술, 마법, 저주 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로는 얻지 못하더라도요. 보통은 관련 마법 아이템으로 연습하며 이를 익히고 터득하여 그 감각을 해골학에 접목해야 합니다.”

    “지식보다는 감각이 중요하죠. 또 개개인 차이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실 강의를 하는 건 무의미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론은 중요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제가 ‘서리 해골’을 만들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겁니다.”

    “저는 싸늘한 증오라는 것부터…….”

    모두 그녀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시간당 각기 만 원이나 내야 하는 강의였다. 자연 그 돈은 오롯이 시은에게로 들어왔고, 거기에 더해서 인천 네크로맨서가 주는 기본 강의료도 있었다. 단 두 시간짜리라고 해도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동시에 이시은이 생각보다 물욕을 지닌 네크로맨서라는 것이 파악됐다. 이것은 네크로맨서 사회에도 좋은 일이었다. 애먼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돈을 좋아한다면 그녀의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마친 시은은 점심을 사내 식당에서 해결했다. 패만 보여주면 간단하게 이용 가능했다. 값도 다른 곳보다 50%는 쌌다. 인천 네크로맨서에서 부담하고 있어서였다.

    식사하는 시은에게 남자가 다가왔다. 척 봐도 핏이 살아있고 명품티가 나는 작은 체크 패턴의 네이비색 정장을 입고 키도 훤칠했다. 손에는 서브마리너 시계를 끼고 있었다. 룰럭스가 스타트를 끊었고 많은 브랜드들이 비슷한 걸 내놓고 있었다. 비싸기도 비싸서 짝퉁으로 구해도 그 맛이 잘 안 나는 디자인이었다. 근데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혼자 드시나 봐요?”

    “무슨 일이신지…….”

    “친구 만나러 왔다가 대단히 아름다우시길래 로비에서부터 따라서 내려왔는데, 혹시 남자 친구 계신가요?”

    “아뇨. 근데 제가 아직은…….”

    그는 거침없이 합석하며 뒷주머니에 있던 지갑과 차 키를 테이블에 올렸다. 시은이 눈살을 찌푸리자 웃으며 손에 깍지를 끼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걸쳤다. 자연스럽게 옷깃이 내려가며 시계가 돋보였다.

    “왜요? 눈이 높으세요?”

    “꿈을 찾는 게 먼저라서요. 지금은 남자 생각 없어요.”

    “같이 꾸면 되잖아요? 뭐, 심심하실 때, 술 한잔 하고 싶으실 때 연락해 주세요. 이건 제 명함요.”

    그가 명함을 턱 주고 떠났다. 시은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명함을 두 쪽으로 찢어발겼다. 강한 지배자의 냄새와 동시에 냉철한 살인자의 모습을 지닌 산박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사내였다.

    시은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몰래 설치한 CCTV 해킹 영상이 그녀의 눈에 담겼다. 산박의 전날 일정 파악은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중에 그를 죽이는 데 그의 행동 원리를 각인시켜 줄 수 있었다.

    B22

    * * *

    달빛이 떠오르는 걸 보며 데운 전통주를 마시던 장 노인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연락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린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제 회식이 끝난 게냐?”

    ―예! 죄송합니다.

    “판익아, 어떻더냐? 회사는 괜찮고?”

    ―던전 대전 상인 공회야 요즘 호황인 던전 경제 관련 기업인데 괜찮습니다.

    “그래, 양귀문 부장이 있는 곳에는 들어갔어?”

    ―예. 최대한 개처럼 일하니 금방 그의 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법 실세인지 단번에 절 빼 오더군요.

    장 노인이 웃었다. 양 부장은 개새끼라고 욕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악인이지만 실력만큼은 월등했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어도 들키지 않는 것부터 수완이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에 여러 사장들이랑도 두루두루 친하다.’

    대전과 군산! 특히 그 두 곳을 자신의 넓은 발로 나다니고 있었다. 이런 자가 고작 ‘부장’이라는 게 신기했다. 던전 상인 공회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가 자신의 상관을 속이고 회사에 암버섯을 퍼뜨리고 있다는 걸 몰랐다.

    ‘기가 막힌 놈이지.’

    한번 고꾸라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는 대단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데다 사람도 그럴듯하면 그냥 품으로 들였다. 통수를 당하지 않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가 지닌 강점을 몰랐다.

    ‘악인은 건들기 어렵지.’

    나쁜 놈은 사실 생각하는 것보다 통수를 잘 맞지 않는다. 물리면 자신도 물기 때문이다. 야수와 야수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슬슬 물러나는 것과 비슷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물어야지 왜 힘 있는 자를 물겠는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양귀문은 지금까지 멀쩡히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난 놈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미친놈처럼 이놈 저놈 알바로 쓰는 또라이였다. 그 덕에 일 머리가 좋은 장판익을 놈의 수하로 넣을 수 있었다.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산박의 돈줄 중 하나이기 때문에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산박은 부동 지구에 땅 욕심이 있다.’

    그리고 이런 촌구석을 최대한 처리하고 싶은 게 장 노인이었다. 사원만 남기고 자기 저택 하나면 족했다.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요즘 트렌드였다. 그런데 그걸 역행하며 땅 욕심을 드러내는 산박은 희귀종이었다. 고로 장 노인에게는 산박의 자산 규모를 파악하고 적절한 땅값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잘 파악해라. 태 사장이 딴짓할 땐 양귀문 부장을 통해서 하니까.”

    ―예. 그래서 내일 좀 찾아뵙겠습니다. 자료는 오늘 집에 돌아가서 팩스로 먼저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

    ‘하나 찾았구나.’

    “어느 정도냐?”

    ―상당합니다. 따로 사업 하나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 내재당숙의 아드님 중에 북쪽의 걸 내려보내시는… 분이…….

    “장개돈이. 트럭 운송업 사장이지. 요즘에는 병원 하나 운영한다더라.”

    ―대단히 성공하셨군요.

    “공부 못하는 놈이 사업 머리가 뛰어나서 그래. 하지만 이번에 내재종조모를 사원에 모셨는데 거기에 사업을 줄 수는 없다.”

    ―예. 그럼… 다른 분이 계실까요? 던전 상품을 유통하는…….

    “네놈이 있지 않으냐.”

    ―예?

    “지금 회사에 있는 것보다는 돈이 더 벌리지 않겠느냐. 친척 애들 중에 장치금이라고 있는데… 62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구 쪽에 적을 두고 있다.”

    장 노인이 족보를 꺼내서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부산도 있어서 물류를 옮기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말씀이라서…….

    “네가 견적 보고 결정해라. 네가 싫으면 부산이나 대구에 있는 친척한테 줄 테니까.”

    ―예.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 노인은 술을 한 병 비워내고 차를 마시면서 팩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팩스의 내용은 모두 양귀문 부장의 밀수품에 대한 것이었다. 군산 항구와 굵직한 연관이 있었다.

    ‘해외의 것을 세금 없이 국내로 들여와서 현금을 주고 판다.’

    사는 사람도 이득이었다.

    이는 열두 명에 의해서 공동으로 운영되는 ‘던전 대전 상인 공회’라는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가능했다. 내부가 워낙 혼잡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머리가 열두 개 달린 회사였다.

    ‘검은 슬라임이라…….’

    그중에서 산박이 양귀문의 덕을 보고 있는 건 당연히 검은 슬라임의 대량 매입에 있었다. 잔잔벼락에 사용되는 재료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 수량이 절로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검은 슬라임만 산박에게 팔아도 소규모 유통 회사 하나를 차릴 수 있다.’

    잔잔벼락의 무기 생산이 안정화되고 있었기에 매출액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 덕에 레시피의 절반을 제작해서 서천 창고로 보내는 강합은 돈맛을 알아 버렸다. 누구보다 땀을 흘리며 잔잔벼락의 무기를 제작하기 바빴다.

    그만큼 현재 잔잔벼락의 무기에는 거품이 끼어 있었다. 이제 그 거품이 사라지면 회사를 차리든지 다른 기업에 주고 로열티를 받아먹어야 했다.

    물론 장 노인은 거기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 확실한 건 산박이 지금 주제도 모르고 너무 알짜배기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해외에 팔고 있겠어.’

    사람도 여럿 관여되어 있어서 언제 들킬지 모를 터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돈이 급한 놈들로 일구어 냈다는 소리였다. 장 노인은 손을 비비적거렸다.

    서류의 마지막 장. 양귀문 부장의 메신저 기록이 캡처되어 있었다. 제법이었다.

    ‘…….’

    장 노인이 웃었다. 역시 혈족은 많아야 했다. 학연, 지연을 뛰어넘는 게 혈연이었다. 사장, 부사장부터 임원급이 죄다 가족이면 그만큼 안전한 게 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난 장 노인은 슬그머니 산박에게 밑밥을 던졌다. 노쇠했음에도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다만, 왼손으로는 검지만 쓰고 오른 손가락만 여러 개를 폭풍처럼 놀렸다. 실로 비효율적인 터치 방법이었다. 약간 돌연변이처럼 독수리 타법이 섞인 혼종 터치법과 비슷했다.

    [일어났나? 다름이 아니라 요즘 양 부장이 뭐라고 하지 않던가?]

    답장은 바로 왔다. 산박이 이런 걸 뜸 들일 이유가 없었다. 무엇이 급한지 잘 아는 모습에 장 노인이 웃었다.

    [무슨 들은 거 있습니까?]

    ‘그렇지.’

    대화할 맛이 났다.

    [하이고. 아직 거기까지는 정보가 닿지 않았나 보네. 이거 참, 서두르지 말고 일 다 보고 천천히 오게.]

    [지금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누가 보면 산박이 장 노인의 밑에 있는 줄 알 대화였다. 그만큼 잔잔벼락 사업은 산박에게 있어 민감한 사안이었다. 벌써 장 노인의 차용증을 탈탈 털어내고 목돈을 준비한 상태일 정도로 알짜배기 사업이었다.

    서둘러 외투를 입고 몸을 정갈히 한 산박이 장 노인의 집을 찾았다.

    “역시, 역시. 사람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지 인생을 잘 사는 것 같지.”

    “빨리 말해 보세요.”

    산박이 재촉했다. 장 노인은 이미 모든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그는 가장 먼저 던전 대전 상인 공회에 침투시킨 혈연에 대해서 언급했다.

    “장판익이라고, 던전 대전 상인 공회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서 양귀문 부장 밑에서 일하는 놈이 있어. 일 머리가 있는 놈인데, 이번에 내가 도박을 좀 했지.”

    “그게 큰 걸 물어 왔나 봅니다.”

    “그래. 하지만 그렇기에 확답부터 들어야겠다.”

    “뭘 원하십니까?”

    “검은 슬라임. 그거 우리 쪽에서 가져다가 써라. 그 외의 건 건드릴 생각 없다.”

    그 말에 산박이 눈을 찌푸렸다.

    “드루이드 사과에 검은 슬라임까지 유통해 주시는 건 너무 가져가시는 겁니다.”

    “불안하면 어쩔 수 없지.”

    장 노인이 눈을 딱 감았다.

    “하다못해 들어보고 결정을 내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허, 자기 앞가림도 못 해서 여기에 달려와 놓고는 나한테 공짜 밥을 달라고 말하면 내가 해줄 말이 뭐가 있는가?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내 핏줄들 이곳저곳으로 이직하게 하고,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 결과가 있으니까, 자기들한테도 도움이 되니까 내 말을 듣는 거야!”

    공짜 밥을 먹으려는 산박에게 장 노인이 거세게 호통을 치며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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