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270)

141화

술잔이 돌았다.

‘죽일까, 말까.’

서로 잔을 주고받으면서, 웃으며 돈 얘기부터 시작해 왕보겁 자신이 어떻게 박조조를 견제할 건지에 대해서 떠드는 동안에도 산박은 놈을 죽일지 안 죽일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신중한 성격은 아니다.’

그렇기에 쓸모가 없었다. 검은 걸 손에 묻히기에 부족한 자였다. 쓰다 버리기 좋지만 산박에게 ‘버림 패’를 쓸 사업 수단은 없었다. 그런 건 보통 불법적인 일이었다. 성급한 데다 정보를 모으는 재미를 알고 이를 써먹기 좋아해서 바지 사장으로 쓰기 좋지만 그런 것이 없는 게 현재였다.

“박조조 그놈에게 돈 들어가는 것의 절반만 저에게 주셔도 제가 다 하겠습니다. 사실 그놈이 왜 필요합니까?”

‘흠…….’

인연, 같이 사업한 기간 등 서로가 어느 정도 친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은 거침없이 자신의 손으로 새롭게 빚어내어 유지하겠다고 떵떵거리기도 했다.

그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사회가 법칙대로 움직인다면 예측할 수 있고 그렇기에 인간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며 자연히 법칙과는 다른 움직임이 일어난다. 돌고 돌아서 결국 혼란이 만들어진다.

대박 아이템을 만들어도 홍보가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고, 모두가 만족하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이처럼 똑같은 사업도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실패할 수 있었다.

왜인지는 그도 모르지만, 산박은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리고 보통 그렇게 한번 삐끗했을 때 하이에나들이 달려든다. 작은 헛디딤이 파멸을 만든다. 그런 변수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박조조를 견제하는 게 아니라 파멸시키는 게 목적이네.’

결국, 감정적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가장 먼저 던전 대전 상인 공회 쪽에 물건을 대신 납품하세요. 그 돈은 박조조가 아닌, 당신에게 쥐여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서류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예.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나는 산박의 사람이다.’

자신 또한 박조조처럼 날개를 펼칠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흐흐.’

산박이 왼손을 뻗어서 서류의 밑으로 가져갔고, 보겁의 손을 움켜잡아서 바로 당겼다.

“엇?”

쿠당! 콸콸콸…….

음식과 접시, 술병이 떨어졌다. 완전히 엎어진 보겁은 그 순간에도 웃음소리를 냈다. 장난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신고식일지도 몰랐다.

“헤…….”

푹. 푹. 푹푹푹푹!

목을 깊게 두 번, 그다음에는 내리 네 번을 난잡하게 쑤셔 박았다. 단검에 피가 묻었다. 보겁이 눈을 부릅떴다.

“커컥.”

보겁이 피거품을 물었다. 공기 소리가 났지만 고함 소리는 나지 않았다. 울부짖고 싶었으나 콜록거리는 기침만 나왔다.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산소가 부족해지자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어디서 한 마리 미꾸라지가 물을 어지럽히겠는가. 그렇게 어지럽히면 그저 사람에게 잡혀서 죽을 뿐이지.”

보겁은 벌벌 기었다. 팔다리가 저려 왔다. 그래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그는 왜 자신이 죽는지 영문을 몰랐다.

“약해서다.”

세력도 뭣도 없는 놈이 야밤에 혼자서 이곳에 들어왔다. 죽는 게 당연했다. CCTV가 있어도 화질이 나쁘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도 없었다. CCTV 강대국이라는 말도 판타지 쇼크 이후에 유지 보수가 사라져서 엉망이 된 지 오래였다.

산박은 죽은 보겁을 둘러업어서 오두막 지하로 향했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이곳에 와 남의 이득을 독식하려고 했던 보겁은 배가 터져서 죽었다. 그런 최후를 맞이했다. 뭣보다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는 자였다.

‘정보꾼이기에 무덤덤했겠지.’

수많은 자극적인 사건들을 봤기에 되레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기 일이 아니고, 그런 일에 휘말려본 적도 없어서였다. 온갖 자극적인 기사를 써 내려가는 기자도 당장 본인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멍청하게 목 내놓기 바쁘다.

콸콸콸콸!

산박은 욕조에 보겁의 몸을 넣고 지하수를 흘려보내 피부터 빼냈다. 최대한 뺄 수 있을 만큼 빼고, 몸을 토막 쳐서 염산에 녹기 좋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끝냈을 때는 해가 뜨고 있었다. 방독면을 벗고 입었던 옷을 벗는 산박의 등 뒤로 마력 충전의 혈석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지하실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마땅히 팔 곳을 찾지 못한 혈석은 계속해서 방치된 채로 생산되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쓸 수 있어서 팔 수가 없다.’

힘을 회복하는 마력 충전의 혈석은 던전이 아니라 현실에서 너무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부작용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점이었다.

‘야만신.’

생각보다 훨씬 호구였다. 그래서 산박은 마력 충전의 혈석을 계속 생산하면서 팔 곳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나마 팔 만한 곳은 해외였다.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팔다가는 다 알려지고 말 것이었다.

만주는 이미 잔잔벼락 사업을 하고 있기에 혈석 사업까지 투입할 수 없었다. 반면, 분열된 중국 또한 좁은 건 매한가지였다. 쉰여섯 개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대한민국보다 더 좁은 판이었다.

‘동남아시아는 너무 질서가 없고.’

신호등이 무색한 게 그곳이었다. 남은 건 동일본과 서일본이었지만, 그곳은 야쿠자들이 잡고 있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동서일본이라 부르지 않고 니쥬니구치구미(二十二口組)라고 부르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기업에 맡기는 게 좋은데.’

어디에 맡길지는 아직도 고민 중에 있었다. 산박이 직접 사업할 것이 아니었다.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되었을 때 내 회사를 차리면 괜찮지만…….’

그 품목만으로도 떳떳하게 당진 국제도시에서 이름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만큼 과다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는 ‘힘’ 회복 아이템은 압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1레벨 수준에 불과해도 농축시키는 기술을 접목시키면 응당 더 발전이 가능했다. 던전보다는 현실에서 더 유용했다.

‘무서운 힘이지.’

그렇기에 산박은 생산만 해놓고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만약 이게 유통된다면 과자 까먹듯이 챙겨서 다닐 자들도 제법 있을 터였다. 그리고 농축 기술을 들고 기술 협력을 하고 싶다는 자들도 넘쳐날 것이었다.

‘야만신…….’

보면 볼수록 호구였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뭔가를 원하는 듯한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게 뭔지는 아직도 의문이며 도저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단순히 빛의 신 팔라딘을 엿 먹이기 위해서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모든 걸 처리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산박은 카페인 알약을 입에 털어 넣고 오늘도 일상을 시작했다. 박조조가 곧 들이닥칠 터였다. 납품할 것을 준비해야 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였다.

한 명이 죽은 장소에서 벗어나 산박은 창고로 향했다. 일상은 여전히 굴러갔다.

* * *

꼬리를 잡았다. 양귀문이 웃었다. 동시에 방침두도 웃었다. 그들은 산박 일당이 지나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많은 검은 슬라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작당하여 이를 조사했다.

여기서 방침두는 많은 영향력을 소모해야 했다. 최대한 은퇴를 앞둔 이들을 움직였다. 그들은 늦은 나이, 마지막으로 한탕 하기 위해서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을 뒤졌다.

허나 군산 내에서는 이동한 경로만 있었고, 그마저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인천 쪽을 뒤졌지만 배는 찾을 수 없었다. 만주를 오가는 배였다.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등록 번호도 국내선이 아니었다.

매허망은 그렇게 철두철미한 사내는 아니었지만 뱃일하면서 배운 것을 실천할 정도는 되었다. 특히 순중가가 명의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중가 또한 한국에서 잔잔벼락 무기를 들여오는 것이라 허망의 선박 명의 변경을 대단히 환영했다.

서로 주고받아야지 관계가 돈독해지는 법이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만큼 사업하면 안 되는 사람이 없었다. 한 명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두 명, 세 명으로는 능히 쉽게 가능한데 그걸 안 하는 사람이라서였다.

독한 상인은 직원들 명의까지 아낌없이 사업에 쓴다. 잔혹하다.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이다.

그런데 기어코 꼬리를 잡았다.

“역시 돈이면 다 된다니까.”

양귀문 부장은 방침두 사장을 끌어들인 것이 정답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박업 하는 사장 중에서 현금 없는 사장은 잘 없었다. 해양 상업은 양심만 좀 버리면 온갖 돈벌이가 많았다.

특히 대한민국은 마약을 대단히 금기시하지만 사실 마약을 원하는 부유층이 많아서 마약값도 높기로 유명했다. 수많은 마약 카르텔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 그저 박봉에도 열일하는 선한 이들이 의외로 많아서 힘들었다. 오죽하면 부유층 자제가 총대 메고 마약 수십 그램을 초대량으로 가져오겠는가.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빨고 싶은 게 마약이었다. 최고의 쾌락이 약속되어 있어서였다. 그리고 방침두 사장 또한 마약 유통에 제법 손을 대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이렇게 돈을 뿌릴 수가 없었다.

‘위험한 사람이지만 남을 팰 때 이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다.’

그가 건드리지 못하는 건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사원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 가문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정부에 몸을 담고 있어서 매우 까다로운 자들이었다. 돈은 좀 없을 수 있었지만, 건드리면 X 될 수 있었다.

“육로라니,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둘러 그를 만나러 간 양 부장은 방 사장과 함께 한옥 룸에서 고기를 집어 먹으며 서둘러 물어봤다.

“절박한 사람에게 도움을 줬을 뿐이지요. 허허허, 대리 기사 하면서 술 냄새 나는 잡놈들한테 욕 처먹으면서 돈 버는 것보다는 차라리 CCTV 하나하나 뒤져 나가는 게 좋은 돈벌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 말에 양 부장이 서둘러 리액션을 취했다. 방 사장의 표정이 한결 더 즐거워졌다. 자신이 만들어낸 영향력의 결과물을 칭찬하는 것은 그를 크게 기쁘게 만드는 일이었다.

“역시 돈이 많으면 시간조차도 살 수 있다더니,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금칠은 그만하십시오.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으쌰으쌰 하다가 이제 본론으로 슬슬 들어갔다. 방침두가 미리 본 서류를 양귀문에게 전했다.

“보시오.”

“예.”

양귀문은 서류를 공손히 양손으로 받아서 고개까지 숙였다. 포기할까 싶었을 때 독이 바짝 올라서 찾아낸 방침두가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뭘 꾸미고 어떻게 돈을 벌길래.’

그는 서류를 펼쳤다. 그곳에는 가장 먼저 트럭 사진이 눈에 띄게 많았다. 양귀문은 사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인지 글씨로 여백에 쓰여 있었기에 이해하기도 좋았다.

“육로를 썼고, 못 찾아내니 안심했겠지. 던전 레시피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지. 그렇게까지 꼭꼭 숨겼다는 건 공장을 지으면 돈을 더 버는 상품이라는 뜻이니까.”

숨긴 만큼 의욕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군침이 돌았다. 괜히 ‘당진 국제도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던전 상품의 개발, 개량, 발명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기업이라면 누구나 당진에서 던전 물품을 사고팔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중간 마진을 노리고 유통과 영업만 하는 회사도 수두룩했다.

‘난 거기에 들어갈 덩치는 된다.’

팔 물건이 없을 뿐이었다. 덩치가 있기에 쉽게 끼워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경쟁자를 원하지 않기도 했다.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던전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건 기업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소비자한테나 좋은 일이었다. 기를 쓰고 막아야 했고, 실제로 막혔다.

방침두는 군산의 선박 사장 중 하나였지만 돈만 썩어 넘치고 다른 사업은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무역은 호황이지만,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로서는 결국 그 본질, 경제 호황의 핵심인 던전과 관련된 장사를 해야 했다.

사진을 살피던 양 부장이 손을 멈췄다.

“잔잔벼락의 환도.”

“그래. 후방 직업에 잘 어울리는 무기지. 직접 무기로 타격을 주지 않아도 벼락이 상대를 마비시키니까.”

“1레벨에서는 확실하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고 적혀 있군요.”

“어때?”

“사업성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1레벨 던전 사용자가 가장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는 서류를 손에서 놓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바로 머리를 치면 놀라지 않겠나? 차근차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놈인지를 보여 줘야지. 손해를 좀 봐야 거기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하지 않겠나?”

“그러다가 도망칠까 봐 무섭습니다.”

두 사람 모두 웃음을 빵 터트렸다. 양귀문은 던전 대전 상인 공회의 숨은 강자였고, 군산의 선박 기업의 사장인 방침두 또한 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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