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270)
  • 140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일상은 평온했으며, 돈은 차곡차곡 쌓였다. 산박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물의 묘목이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물의 묘목과 물의 마법사 대장삵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물의 묘목이 성장했다는 건 대장삵이 더 많은 주문을 산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전력의 강화를 가져왔다.

    개인 낚시터에서 살며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물의 연어 소환 주문’을 통해 갱신이 이루어지는 물의 연어 또한 몸집이 커졌다. 그 덕에 더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전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도 했다.

    또, 서만주는 완전히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언제 다시 불안해질지는 몰랐지만, 생각보다 순중가는 욕심쟁이가 아니었고 현지 카르텔과 잘 화합한 듯했다.

    ‘절반 이상을 그들에게 주고 있겠지.’

    큰 결단이었다. 문제를 일시적으로 미루기 위해서 큰 손해를 봤다. 그리고 그 손해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고 순중가 혼자서 감내했다. 되놈 주제에 제법이라 생각했다.

    잔잔벼락은 여전히 불안했다. ‘오식 선박’의 사장 방침두라는 자 때문이었다. 서천시에 본거지가 있어서 한 번 피했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듯했다.

    ‘걸릴 건 뻔한데,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미 교차했기에 죽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제법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고 특히 군산 쪽의 경찰과 법조계에 들인 돈이 많았다. 벌집을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 특별한 회식 일정이 잡혔다. 드디어 굉려까지 2레벨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던전 분할 팀도 여기서 끝이었다.

    “개릉역에 가는 것도 더는 없겠네요.”

    “꾸준히 가야죠. 2레벨 장빗값이 얼만데요. 2레벨에 올라도 2레벨 공략은 아주 나중이 될 수밖에 없어요.”

    “아, 그렇죠, 참! 하여간 기업 놈들.”

    팀원들은 돈독이 오른 기업을 욕하기 바빴다. 그만큼 던전 사용자가 성실히 던전 공략을 해서 풀 장비를 구매하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몇 년을 소비해야 했다. 그렇기에 산박이 ‘사업’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매주궤의 경우에는 1레벨 던전을 자주 가야 하는 전담 팀장을 맡을 것이기에 2레벨에 올라서면 안 됐다. 축균과 예흠은 자연스럽게 분할 팀에서 주궤의 팀으로 옮겨 갔다. 둘 다 많은 기술과 주문을 획득한 상태라 2레벨로 올라갈지 1레벨에 남아 전담 팀원으로 살아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우를 뜯겠습니다.”

    산박이 선언했고, 그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동시에 2레벨이 된 팀원들을 위해서 산박이 선물을 건넸다. 모든 이들에게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내어줬다. 소비를 주도하는 여성들의 물건은 모두 남자들의 물건보다 시세가 높았기 때문에 시은의 것이 가장 비싼 거였다.

    “오오오옷!”

    20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시계였다.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감탄하기 바빴다. 산박이니까 그나마 감당 가능한 물건이었다.

    한우 가격만 30만 원이 나오고 술값도 10만 원이 나왔다. 전통주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전통주의 종류만 해도 100종이 넘었다. 공짜기도 한 터라 팀원들은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것 위주로 맛을 보기 바빴다.

    불판이 식고 나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는 던전 공략이 좀 더 사업적으로 변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레벨로 갈 수가 없어요.”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게 2레벨 풀 장비 최소 가격이었다. 이를 갖추려면 회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했다.

    “2레벨이 되셔도 1레벨 던전을 한 달에 두 번은 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돈을 받고 팀원을 받아들여 사람 장사를 시작할 겁니다.”

    던전 기업을 만든 이유. 1레벨 베테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돈을 더 벌 생각을 가졌다.

    그건 던전 수익보다 뛰어난 수익을 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초월’적인 힘을 부여해 주는 던전의 레벨 업 시스템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 경향은 심했다. 젊은이들의 소비는 매우 적극적이고 자극적이기에 그 돈은 오롯이 회사 옥시모론의 지갑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를 통해서 2레벨 장비를 팀장과 사원들에게 베풀 수 있었다.

    ‘평범한 기업이 아니니까, 월급도 아니고.’

    던전 수입은 팀원들에게 돌아가기 바빴다. 결국 회사가 팀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회사의 경력을 통해서 사람을 끌어모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분할 팀의 방식도 여기서 사용될 수 있었다.

    “사장님도 하시는 거죠?”

    “예. 저는 혼자서 할 생각입니다. 세 명 정도는 이제 감당할 수 있죠.”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의 연어’와 ‘대장삵’을 데리고 있는 산박의 전력은 이제 1레벨 던전에서는 가히 대적자가 없을 정도였다. 값이 나가는 것이 많이 나오는 던전에서는 최대 보름 동안 쓸어 담는 것 또한 가능했다. 보급에 식수가 아예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식은 그렇게 끝났다. 모두 생각할 거리를 얻었다. 축균과 예흠은 갈림길에 섰다. 그들은 아직 2레벨이 아니었고, 던전 사용자가 언론에서 떠받드는 만큼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괴물을 사냥하고 도축하는 백정이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조금 강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고레벨이 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군대를 상대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1레벨 전담 팀에 남는 주궤는 그들이 갈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두 사람은 아직 결정할 수 없었다.

    그 외에 2레벨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꿈을 얻었다. 회사에 돈을 바치면 그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2레벨 풀 장비를 맞추는 데 사용된다. 1레벨 던전을 안전하게 클리어하고 싶은 돈 있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돈은 회사로 가지만 다시 그들에게로 향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자연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투명성 있는 회사. 선비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투명성을 유지하는 회사는 수요와 비교하면 공급이 적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모든 게 숫자로 보이고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최대한 많은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를 제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1억을 가져도 3억을 더 가질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돈맛을 보면 더 그랬다. 고양이 손에 츄르를 맡기는 격이었다.

    근데 그게 가능한 곳이 있었다. 태산박이 운영하는 던전 회사였다. 그는 돈보다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어린애한테 칼 쥐여주는 세상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서든 수요가 있고 끝없는 이득이 있는 던전 경제가 필요했다. 그 먼 곳을 산박은 바라보고 있었다.

    ‘차근차근, 하지만 빠르게.’

    하나씩 사업을 이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회사가 만들어질 것이었다. 그 회사는 마을을 집어삼키고, 도시를 발아래 둘 터였다.

    * * *

    정보꾼 왕보겁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주르륵 스크롤을 내렸다. 그의 입은 약간 벌려져 있었다.

    ‘이게… 대체…….’

    박조조의 명의로 된 계좌 추적. 공공 기관의 조회.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조사. 그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소득이 박조조의 손에 들어간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개새끼가……. 이러고 돈 없다고 만나는 것도 힘들다고 하고,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자고 한 거야?’

    팍팍한 세상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대동소이하게 차이가 나면 모르겠는데, 박조조는 왕보겁의 몇 배에 달하는 소득을 챙기고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질투를 느꼈으며, 그 장작은 활활 타오르는 열등감으로 번져서 곧 극단적으로 변해 갔다.

    ‘모든 게 태산박과 연관되어 있다.’

    왕보겁은 그에게 주목했다. 송유나의 죽음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돈 때문에 죽였겠지. 그리고 난 그녀의 죽음이 태산박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증거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협박하기에 딱 좋았다. 아니. 아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스마트하게.’

    섹시하고 쿨하게.

    ‘협박은 너무 야만적이지. 타협이지, 타협.’

    나쁘지 않았다. 그도 분명 자신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다고 할 것이었다. 입 다물게 만들기에는 돈만큼 간단한 것도 없었다.

    그는 몸이 달아올랐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챙겼다. 불필요한 자료도 챙기고 인쇄하기 바빴다. 그리고 곧바로 산박이 거주하는 창고로 향했다.

    “아무도 없습니까?”

    쿵쿵쿵.

    창고 대문을 걷어찼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불도 꺼져 있었고, 내부로 들어서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결국 그는 개인 낚시터로 향했다. 그곳은 철장으로 철저하게 둘러싸인 곳이었다. 자물쇠도 위아래로 있어서 견고했다. 사유지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었고, 전선에 연결된 CCTV도 제법 보였다.

    ‘뭔 보물이 있길래 이 정도야?’

    다만 그런 의심도 개인 낚시터의 압도적인 비주얼에 가로막혔다. 정자에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주변에 뭘 또 텃밭처럼 꾸며놓고, 섬처럼 되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원목 재질을 썼다.

    ‘천국이 따로 없구만.’

    은퇴해서 지내기 딱 좋은 곳이었다.

    조잡한 벨을 누르자 곧 안에서 반응이 나왔다. 오두막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산박이 밖으로 나왔다.

    “누구십니까?”

    작은 가로등에 왕보겁의 모습이 담겼지만 산박은 휴대용 라이트를 하나 켜고 다가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연락을 드리고 오려고 했는데, 하하, 저도 모르게 그만.”

    “예. 헌데, 누구신지…….”

    “저 모르시겠습니까? 송유나 정보꾼을 소개해 줬던 왕보겁이라는 사람입니다.”

    “아아……. 근데 왜 무슨 일로……?”

    그가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산박은 제법 굳은 표정을 짓고 그를 받아들였다.

    “술은 좀 하십니까?”

    ‘좋다.’

    그 말에 보겁은 옳다구나 싶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전통주를 늘어놓았다.

    “술은 역시 전라도 전통주죠. 거기에서 쓰이는 효모가 있는데 아직도 천 년 전 걸 그대로 쓴답니다.”

    “천년주막주 말씀하시는 거죠? 딱 한 병 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운이 좋네요. 제가 막차 타는 건가요?”

    다분히 의도적인 농담에 산박 또한 웃었다.

    “마지막 병을 가져가셨으니 막차 탄 것이지요.”

    “그 술자리, 결코 빠져서는 안 되겠는데요?”

    철컹!

    철장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쇳소리에 잠깐 맥이 끊겼다. 따라오는 산박을 보며 보겁이 말했다.

    “어떻게, 여기는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저기 저 나무. 물의 나무라고 하는 겁니다. 잠깐 와보시죠.”

    “예.”

    그렇게 다리로 향했다.

    “서류는 무슨 내용입니까?”

    “그냥 박조조 씨와 태 사장님의 관계가 어떤 건지 정황을 보여주는 거죠. 증거는 없지만요.”

    “호, 그렇군요. 뭐, 찾아보면 모를 수는 없죠.”

    “예. 세금도 또박또박 내시고, 대부분의 거래가 전자상으로 이루어져서 기록도 남고요.”

    “정보꾼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죠. 송유나 씨가 웬 살인마한테 죽어서, 참……. 저도 정보꾼이 절실히 필요했던 참입니다. 믿고 맡길 만한 정보꾼 말입니다.”

    “바로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 하십니까?”

    텃밭에 있는 작물을 하나 파내는 산박을 보며 보겁이 묻자 그가 흙 묻은 인삼을 보여줬다.

    “실하죠? 이 물의 나무에서 키우면 삼도 잘 자랍니다. 이게 이제 수확을 앞두고 있는 겁니다.”

    “5년 근 같은데…….”

    “볼 줄 아시네요.”

    “대한민국 사람이 삼도 볼 줄 모르면 가정 교육 못 받은 게지요. 세상에 고려 인삼이라고 알려진 것인데요.”

    보겁은 대한민국의 인삼에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한 입 하기 좋은 안주죠. 써서 많이 먹을 수는 없어도 풍미가 있습니다.”

    “예.”

    “상을 내올 테니 잠깐 정자에 계십시오. 조명도 챙겨야 하고.”

    “저도 돕겠습니다.”

    그 말에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손님인데 제가 대접을 해드려야지요.”

    “커허흠. 그럼 감사히 잘 대접받겠습니다.”

    보겁이 산박의 양손을 꽉 쥐었다.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신호였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고, 을이 되려고 왔다. 그 밑에서 일하기 위해서 왔음을 보여줬다. 고개도 숙였다. 이에 산박이 그 어깨를 툭툭 가볍게 치며 웃어 보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 정보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보니까 박조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 같던데, 맞습니까?”

    “네? 아, 아뇨…….”

    보겁이 당황했다. 정곡을 찔려서였다. 하지만 산박은 되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뜻에서 말한 게 아닙니다. 실은 박 사장이 요즘 자꾸 선을 넘고 탐욕적으로 굴어서요. 이를 견제해줄 사람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은혜도 모르고, 우정도 모르는 놈입니다.”

    잠깐 물꼬를 터주자 대번에 욕부터 날아왔다. 한 놈을 조져 놓으니 분위기도 절로 좋아졌다. 험담하는 사람이 괜히 사람을 콕 집어서 욕하겠는가? 재밌으니까 하는 것이었다.

    산박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곧 조명과 상을 척척 가져왔다. 안줏거리도 제법 있었다. 나쁘지 않은 한 상이 앞에 놓였다.

    “변변찮지만…….”

    “아닙니다! 이렇게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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