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70)
  • 139화

    * * *

    300m짜리 빌딩. 포스코 타워 65층. 인천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이곳은 네크로맨서들의 총본산으로 백제 귀족 출신인 각복모의 후예가 처음으로 자본을 투입해서 만든 곳이었다. 이제는 수많은 이들이 백패, 황패, 적패, 흑패로 나뉘어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되었다.

    돈은 돈을 부르고,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대한민국의 네크로맨서 중 포스코 타워에 적을 두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시은은 ‘서리 해골’의 지식을 제출하여 단번에 백패에서 적패로 올라섰다. 그렇기에 그녀는 에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정치에는 상관하지 않고 성공에 무덤덤한 네크로맨서나 모를 뿐이었다. 수많은 적패 네크로맨서가 이시은만 보면 달려와서는 인사하기 바빴다.

    “헤헤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거 하나하나가 모두 이시은의 ‘방아쇠’를 당기며 스트레스를 제공했다. 결국 그녀는 애꿎은 택시 기사를 하나 죽여야 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이러고 싶지 않아. 그저 세상이 날 괴롭힐 뿐이야.’

    시은은 산박이 자신이 결정한 목표에 최대한 빨리 도달했으면 했다. 그는 위대해질 자였고, 그런 자를 죽이는 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야 했다.

    그건 이시은을 파멸로 이끄는 길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점점 드러날수록 그녀는 수많은 사회적 족쇄가 자신을 묶는 것을 느꼈다.

    황패 빙췌몽과 경왜는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다양한 제안을 했지만 그녀는 사내 정치는 무섭다며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기 바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라인’을 타는 것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망하면 퇴출되어야 해.’

    동아줄이 썩으면 떨어지는 게 이치였다. 이걸 모르고 성공 가도만 생각한다면 뒤늦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시은은 확실하게 노선이 정해져 있었다.

    ‘인천 네크로맨서는 그 발판에 지나지 않아.’

    오만하게도 그녀는 포스코 타워는 자신을 담을 그릇이 아니라 여기고 있었다. 그녀의 판단 기준은 현재 모든 것이 ‘산박을 죽일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모든 것에 대한 행동이 다 달랐다.

    시은은 이토록 자신을 사회에 내보인 적이 없었다. 산박이 뭉툭하게 튀어 오르면서 산박을 좇고 있는 그녀 또한 자연히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숙이며 겸손해지기 바빴다.

    그 덕에 인천 네크로맨서의 내부에서 그녀를 포섭하는 걸 잠깐 멈추게 되었지만 그건 정말 잠시뿐이었다. 무엇보다 시은 또한 매력적인 제안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욕망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게 동아줄 타기였다. 평범한 사람도 악마로 만들 수 있는 게 탐욕이고, 시은이 고개를 끄덕일 제안을 하면 그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시은에게 인천 네크로맨서 집단은 제안을 걸어왔다. 자연스러운 제안이었다.

    “레벨 2 팀요?”

    “그래. 본래는 백패부터 조금씩 함께하고 서로 맞는 사람들끼리 올라가야 하는데 시은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이미 공략 팀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하지만 이제 적패 네크로맨서이니 포스코 타워에서 영향력을 조금 더 키워야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2레벨 던전 공략을 생각해 보라고요?”

    “그래. 2레벨에 올라서면 그들을 정리하고 이쪽으로 완전히 몸을 옮겨야지.”

    황패 경왜는 거듭 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 말을 시은은 썩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1레벨부터 함께해온 사람들이라서요…….”

    그녀는 정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모두 거짓부렁이었다. 인간을 현혹하는 야수의 혀 놀림이었다.

    경왜는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시은에게 힘을 실어 주고자 했다. 자신의 라인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 하지만 그런 정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있지. 그걸 조심하라는 거라네. 물론! 그렇게 매정하게 할 수는 없겠지. 내가 시은이를 잘 알잖아?”

    경왜가 시은의 다리를 훑었다. 하이힐까지 신어서 얇게 보이는 다리는 짙은 검은색 스타킹과 함께 섹시미를 돋보이고 있었다. 침이 그냥 삼켜졌다. 아무리 늙어도 벌떡 설 정도로 성적 매력이 강한 게 이시은이었다.

    ‘이런 여자가 던전 사용자라니 세상도 말세다, 말세. 외모로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태평하고 평온하게 여성적인 삶을 추구하면 될 것을…….’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30년만 젊었어도……!’

    “팀원 중에 좋은 사람 하나를 대동하고 2레벨을 공략하는 건 괜찮겠지. 안 그런가?”

    “정말요?!”

    시은은 크게 좋아했다. 그 말에 경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은은 금방 그 수락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2레벨이 되면 바로 진행하기로 약조까지 했다.

    보기 드물게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시은은 사람들의 시선을 확 받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혹시? 지금이 기회인가?’

    돈을 버는 족족 피부과에 가져다 바치면서 잡티 하나 없는 얼굴을 자랑하는 미남이 남친룩으로 무장하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녕하세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미소년 같은 부드러움을 지닌 남자를 본 이시은은 냉랭했다. 입꼬리를 쑥 내렸다.

    “네. 그런데 제가 많이 바빠서요.”

    시은이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파마한 초콜릿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하며 시은의 옆에서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를 가시길래 그렇게 바쁘세요?”

    “도서관요.”

    “기분이 좋은데 왜 도서관을 가요? 하하하.”

    작은 농담+미남=폭풍 웃음이었지만 그런 공식은 이시은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시은은 맹수를 원했다. 강한 남자를 죽이고 싶은 게 그녀의 바뀐 취향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너무 젠틀했다. ‘강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백마 탄 왕자가 아니었다. 사냥감이었다. 약자는 질리도록 죽였기 때문에 무덤덤했다.

    결국 미소년스러운 미남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절로 짜증이 올라왔다. 그의 스마트폰에 오늘 심심하다고 난리를 치는 여자들이 보였다. 남자는 그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 * *

    “결혼요.”

    “예?”

    밑도 끝도 없는 충호의 발언에 산박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충호가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결혼을 입에 꺼내서였다.

    “얘 이름이 결혼이에요.”

    “왜 그렇게 오해할 만한 이름을 지은 거죠?”

    “제가 또 너튜브를 통해서 자기 계발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결혼하려면 결혼할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침대 두 개, 칫솔 두 개… 그런 거 말입니다. 소파도 두 명이서 쓰기 좋은 길쭉한 거…….”

    “…….”

    어디서 또 헛소리를 듣고 온 듯했다.

    “그거랑 고양이 이름을 결혼이로 한 거랑 뭔 상관입니까?”

    “결혼이를 부를 때마다 결혼하고 싶다는 제 마음을 다시 확인받는 거죠. 활활 타오르는……?”

    “고양이 이름을 그렇게 짓는 게 어딨어요.”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불편한 걸 불편해하는 것을 다시 불편하게 여기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으면 그만이죠. 제가 고양이를 안락사를 시키나요, 뭘 하나요?”

    아무래도 인터넷에 올렸다가 된통 두들겨 맞은 듯했다. 물론 뚝심 있는 충호라서 엿이나 쏴 좝서를 외쳤을 공산이 컸다.

    “그래서 얘는 몇 살입니까?”

    “웬 미친년이 월세를 미루다가 도망쳤는데 거기에 살던 놈이라서 나이는 모른답니다. 대충 세 살은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중성화도 안 해서 밤중에 그렇게 울어 대었는데 바닥이 피바다였다니까요. 진짜 개식겁을 해서 제가…….”

    그가 한참을 떠들어 댔다. 사진도 많이 보여 줬는데, 아끼는 게 절로 보였다.

    “캔? 사료가 아니라요?”

    “어허. 우리 결혼이는 그렇게 딱딱한 거 안 먹습니다. 이 고양이라는 것이 물을 잘 안 먹는다고 해서 강제로 주사기로 쑥쑥 넣어줘서 자주 마시게 했는데 토를 하더라고요.”

    ‘미친놈인가? 진짜 미친 새끼인가?’

    “그래서 캔으로 바꿨죠. 물 주사도 조금조금 먹입니다.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잘 마십니다. 아마 고양이 중에서 그나마 물을 많이 먹는 놈일 겁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물을 먹입니다.”

    “아하.”

    결과적으로 오래 살게 될 테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게 산박이었다.

    “아니, 아니아니.”

    산박이 정신을 차렸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나만 고양이가 없다 보니 고양이 이슈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대장삵? 말하는 삵은 고양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냥 짜증 나는 살쾡이였다. 가끔 패 죽이고 싶을 만큼 까부는 정도가 심했다.

    “으음.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다.”

    충호의 이야기를 듣던 대장삵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호의 고양이에 대한 마음은 실로 기특했다. 대장삵은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고양이는 그런 대우를 받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석이 생기기 쉽지. 물을 너무 안 마셔.”

    “아, 그렇죠? 역시…….”

    충호와 대장삵은 죽이 잘 맞았다. 고양이 하나 키우니 척척 공감하기 바빴다.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네, 사장님.”

    탁탁.

    산박이 서류를 손으로 두들겼다.

    산박에게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충호는 빨리 그걸 갚고 싶어 했다. 반대로 산박은 충호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었다. A급 마인드를 지니고 A급 육체를 지닌 것이 충호였다. 그 결과 이런 서류가 탄생했다.

    “어려운 거 아닙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 인삼 파는 거야 어렵지는 않죠. 요즘에는 즙보다 진짜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요.”

    3년 근 5년 근 이러니저러니 말도 많은 게 인삼이었다. 고려 인삼은 곳곳으로 팔려 나가기도 좋았다. 분열된 중국이 최대 소비 시장이었다.

    “반년이면 3년 근 하나 나옵니다.”

    물의 묘목 근처에 심은 삼! 산박은 이를 충호에게 줄 생각을 가졌다. 빠르게 생장하는 상품이었기에 수익률도 제법 됐다.

    그 비밀을 산박은 충호에게 귀띔해 줬다. 그는 그럴 가치가 있는 자였다. 충호와 시은 둘 다 중요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후방 직업인 산박에게는 상대적으로 서충호 다음이 이시은이었다.

    “하겠습니다.”

    반년에 한 번 수확하면 끝이었다. 부수입도 올릴 수 있었다. 욕심을 부리려면 물의 묘목을 훔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산박과의 인연도 끝난다.

    ‘한탕 해 먹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산박은 열쇠를 하나 건넸다. 개인 낚시터의 철장 문을 여는 열쇠였다. 충호는 이를 공손히 받았다.

    “진짜 끝까지 가겠습니다, 사장님.”

    “하하, 앞으로도 회사는 계속 성장할 텐데, 지금 이렇게 하면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때는 목숨을 내드려야죠.”

    “농담으로도 그런 말 마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일절 언급하지 마세요.”

    강합도 경리도 점심을 먹으라고 내보낸 상태였다.

    “예. 최대한 조용히 팔겠습니다.”

    “여러 가지 부딪치겠지만 익숙해지면 부업거리 하나 나오는 거니까요.”

    “예, 예.”

    수확량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반년마다 산박에게 남들과 다른 수익을 준다는 것이 중요했다.

    ‘잔잔벼락은 맡길 수 없지.’

    부업에 어울리는 것을 줘야지, 던전 공략에서 마음을 떠나보내면 안 됐다. 그렇게 되면 진짜 말짱 꽝이었다.

    산박은 그렇게 또 하나를 자신의 손에서 내려놓았다. 서충호는 던전 공략의 중요 인력이고 이제 곧 2레벨이 된다. 그걸 위한 선물이었다. 2레벨이 되고 나서 주면 안 된다. 그래서야 효력이 약했다. 1레벨 때 줘야지 더 임팩트가 있었다.

    ‘이시은에게도 뭔갈 해줘야 하는데…….’

    만만찮았다. 뭘 해줘야 할지 몰랐다.

    ‘네크로맨서 쪽으로는 인천에 기대고 있고……. 마녀 쪽인가?’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 마녀들이었다. 산박이 거기에 접촉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돈?’

    여기서는 산박이 궁핍했다. 하고 있는 일이 많았고 앞으로 추진할 일도 많았다. 조금 더, 더 많은 돈이 그에게 필요했다. 그래서 시은에게는 줄 수 없었다.

    ‘팀장보다 더 좋은 직책을 주기에는 회사의 크기도 작고.’

    은행처럼 가장 말단이 계장인 것과 비슷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결국 산박은 이를 포기했다. 그냥 이시은이 2레벨이 된다면 선물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뭔갈 해주기가 어려웠다.

    ‘시계가 가장 무난하겠지.’

    이시은은 의외로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고 있었다. 산박은 이를 잘 이용할 생각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몇몇 브랜드를 찾아다녔다.

    ‘20대 여자 시계. 시계 덕후의 선택……. 20대 최고 시계 브랜드.’

    곳곳을 돌아다녔다. 킹스타그램이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남들과 공유하는 데 있어서 경쟁까지 붙은 곳이라서 알짜배기 패션 정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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