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270)
  • 137화

    <미꾸라지>

    과거, 십팔반무인(十八般武人)이라 불린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죽음이 차원을 침공하자 저항한 왕국 저항군의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인류 수호라는 이름 아래 열여덟 개의 깃발을 추켜올렸으며 그 부름에 답하는 자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고 한다.

    찌르는 무예가 대단하다 여기는 자들이 다섯 있었다. 그들은 삼지창, 장창, 쌍단창, 미늘창, 할버드를 으뜸으로 삼았다.

    베는 무예야말로 일품이라 여기는 자들이 다섯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이 대검, 나머지는 검과 방패, 쌍검, 롱 소드를 으뜸으로 삼았다.

    치는 무예가 무의 끝이라 여기는 자들이 셋 있었다. 그들은 편곤, 철퇴와 방패, 강철을 두르고 하는 권투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죽음의 군세에 대패하였다. 그 이후로는 썩어 문드러진 이들의 주둥아리에 의해서 하나의 정보가 되어 차원을 부유했고, 많은 이들이 이들을 레플리카로 만들어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수준은 만드는 자들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고, 제대로 해석하여 내뱉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뼈 제단을 지키는 열여덟 마리의 언데드들 또한 마구잡이식으로 생산한 결과였다. 무분별한 던전이 만들어낸 황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작업을 치겠습니다. 돌을 던져서 최대한 저자극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돌 소리를 내자 한 마리가 반응했다. 쌍도를 쥔 언데드였다. 복장은 천 옷에 불과했고 누더기에 너덜너덜했다. 뼈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열여덟 마리가 한곳에 몰려 있으니 ‘1레벨 던전’으로서는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투둑, 툭!

    반면 대검의 검 면을 어깨에 척 하니 걸친 채 죽은 것처럼 쭈그려 있는 좀비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자극으로는 깨울 수가 없었다.

    쌍도를 쥔 해골은 그사이에 덤벼 오고 있었다. 그 빠르기가 평범하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뼈 무게는 9~13kg 사이. 무지막지하게 날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최대한, 천천히 뒤로 물러납시다.”

    충호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너도나도 뒷걸음질 쳤지만 쌍도 언데드가 더 빨랐다.

    후웅!

    단번에 접근하자 은섭이 할버드를 휘둘렀다. 바람 정령의 도움을 받는 은섭은 부모님 덕분에 장비도 빠르게 살 수 있었고 신속의 중갑옷과 쾌속의 할버드를 주 무구로 삼고 있었다. 그 파공성은 대단했지만 놈은 이미 뒤로 스텝을 밟았다. 애초에 간잽이였던 것. 할버드가 내는 바람만 뼈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순식간에 대각선으로 완벽하게 뒤로 물러난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 덕에 은섭의 발이 묶였다. 놈과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충호가 은섭의 목뒤를 잡고 그대로 당겼다. 은섭이 뒤로 넘어갔다. 그는 발작하듯이 놀랐는데, 상대가 쌍도를 무식할 정도로 소름 돋게 잘 놀려서였다.

    휘익!

    놈의 쌍도는 정확하게 은섭의 안쪽 허벅지 아래에 있는 관절 부위를 베려고 했지만 충호가 은섭을 잡아당겼기에 허공을 갈랐다. 나머지 하나의 도는 상단을 찔렀는데, 애초에 어림도 없는 간극이었다.

    허나 그렇게 한 것은 실로 고수다웠다. 인간의 머리는 위에 있고, 눈도 위에 달렸다. 상단 공격은 언제나 완벽한 견제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하체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고 하단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것이었다.

    반면 충호의 대응은 실로 요행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은섭을 도왔다.

    동시에 곰 같은 충호의 자유로운 왼손에 들린 방패가 쌍도의 해골을 그대로 후려쳐 밀었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이 해골에게 멋대로 샤인을 사용했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불어와서 뼈다귀의 관절을 노렸다. 마치 바람의 창처럼 차가운 바람이 매우 좁게 쏘아져서 관절만 쏙 얼려 버렸다.

    와장창!

    단번에 뼈다귀가 박살이 났다. 관절에 힘을 너무 줬다가 관절이 똑 부러졌고, 넘어지는 놈에게 방패가 그대로 직격했다.

    ‘이렇게 쉽게?’

    뼈다귀가 보여준 한 수에는 보이고 나서야 충호의 전신을 서늘케 한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었음에도 뼈다귀의 내구도는 형편없었다.

    그 작은 소란에 몇몇 이들이 깨어났다. 쌍단창의 언데드와 쇼트 소드와 방패를 든 언데드 그리고 중갑옷을 입고 강철 글러브를 낀 권투 좀비였다.

    연속되는 싸움 속에서도 충호는 의외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전부 다 깨우면 진짜 대깽판이 되겠지만, 소수와의 싸움은 스펙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나쁘지 않다.’

    그들은 더더욱 물러섰다. 아예 화살로 한 놈씩 맞춰서 깨우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일어난 세 마리의 언데드를 조져야 했다.

    그 싸움을 지켜보던 검은늑대가 코로 냄새를 맡았다. ‘사냥의 냄새’. 지금 사냥하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성공률도 높았다. 난전 속에서 목뒤를 물어뜯는 건 늑대의 본능과 같았다. 목을 물어뜯기면 상대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 매력적인 제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미를 돋웠다.

    싸움은 싸움을 불렀고, 세 마리를 잡자 건들지도 않았는데 다섯이 일어났다.

    그제야 검은늑대도 움직였다. 가장 약한 주궤는 무시했다. 놈은 병 걸린 것처럼 골골거리며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

    검은늑대는 가장 짙은 사냥의 냄새를 풍기는 은섭을 노렸다. 충호는 선두에 있었음에도 냄새가 상대적으로 옅었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검은늑대는 은섭의 뒤를 잡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소리 하나 삐져나오지 않았다. 토동토동한 늑대의 발바닥! 그게 소음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여주고 있었다.

    대장삵? 저번처럼 앞발로 쳐내면 그만이었다. 검은늑대는 다른 늑대와는 다르게 고양이처럼 발로 후려갈길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대장삵은 검은늑대의 관심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장삵은 검은늑대가 당도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쩍.

    이빨이 자연스럽게 쩍 열리며 은섭의 목뒤를 물려고 할 때, 검은늑대는 검은늑대에 의해서 그대로 목이 물어뜯겼다.

    “케헹!”

    검은늑대는 단번에 옆으로 쓰러졌다.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산박이 늑대의 몸을 단단히 짓누르고 있었다. 고개가 땅에 처박힌 채로 일어나려고 아무리 발악해도 일어나지 못했다.

    촤악! 버둥버둥!

    발톱으로 베었지만 걸리는 건 털뿐이었다. 피가 조금 묻어 나왔으나 산박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사이에 주궤가 횃불을 들고 다가왔다. 그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가 쥔 환도가 그대로 검은늑대의 대가리를 쳤다.

    퍽! 퍽! 퍽! 퍽! 퍽!

    내리 다섯 번을 후려갈기자 그제야 가죽이 뚫리며 피가 튀어 주궤의 이마에 턱 묻었다. 그 뒤로 열 번을 넘게 환도를 양손으로 쥐고 내려쳐서 겨우 두개골을 부수어 죽일 수 있었다.

    “헉! 헉! 헉!”

    전심전력을 다한 열다섯 번의 환도 내려치기. 그것만으로도 매주궤는 식은땀을 토해냈다. 어깨가 아직 성하지 않은데 분노에 몸을 맡겨서였다.

    뿌득!

    그사이에 산박도 놈의 목뼈에 송곳니가 걸리자 지렛대의 원리처럼 목을 틀어서 단번에 부러뜨렸다. 그리고 이빨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틈을 만들어 손쉽게 빼냈다.

    어둠 속을 질주한 산박은 곤히 자는 해골과 좀비들을 죽였다. 모든 상황이 끝이 났다.

    “우웩!”

    인간으로 변신한 산박은 안에 것을 게워냈다. 검은늑대와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달라서 오는 괴리감이 지독할 정도로 심각했다.

    ‘자주 쓰면 안 된다.’

    자신의 자아가 붕괴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너무나도 달랐다. 그렇기에 검은늑대는 늑대임에도 1레벨 던전의 보스였다. 천재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일반인이 미쳐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동물 변신 주문을 빌려서 동물이 되는 건데 이 정도 위화감이라니……!’

    끔찍할 정도로 ‘체계’가 다르다는 걸 산박은 직관적인 이해력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체감했다. 인간과 검은늑대의 차이는 단순한 종의 차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인간이 된 산박이 무너진 모습을 처음 본 이들은 깜짝 놀랐다. 서둘러 다가왔지만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부, 부산물 챙기세……. 우웁…….”

    “예, 예!”

    본래는 동물 변신 주문으로도 변신할 수 없는 게 ‘검은늑대’였다. 깨달음을 순식간에 얻어내 ‘레벨 업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산박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이미 요주의 인물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서둘러 부산물을 챙겼다. 검은늑대를 꽁꽁 밧줄로 싸맸다. 이제 던전이 무너져도 검은늑대의 시체는 현실 세계로 같이 운반될 터였다.

    그걸로 그들은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했다.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카르마를 얻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1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1레벨의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산박은 그 무엇도 택하지 않고 레벨 업을 위해서 카르마를 남겨 놓았다. 강력한 이점을 주는 레벨 업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원하는 게 그였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산박은 배낭을 옮겼다. 가장 마지막으로 검은늑대를 옮겨서 놈을 지키듯이 섰다.

    한 명씩 지하철 입구를 올라왔다. 검은늑대의 골통을 부순 매주궤는 혈색이 좋았다.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깨부쉈다. 인간은 단순했기에 단번에 털어낸 모습을 보였다.

    ‘이거지.’

    모든 게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산박이 웃었다. 그는 박조조를 호출해서 최대한의 이득을 팀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매주궤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정신적 충격이 나대기에는 처음으로 쥐어본 많은 돈이었다.

    “병원부터 가세요.”

    산박은 돈을 받다가 아야야거리는 주궤를 서둘러 택시에 태워서 보냈다. 택시비 또한 추가로 쥐여줬다. 뒤풀이에 가기에는 어깨에 고통이 남아 있었다.

    뒤풀이는 오랜만에 곱창을 먹으러 갔다. 충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모! 돼지껍데기도 좀 주세요!”

    “예!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제법 얌전한 이모님이셨다. 진탕 마시지는 않았다. 고소하고 바싹하게 씹히면서도 안쪽은 탱글탱글한 돼지껍데기의 식감을 즐겼다. 껍데기가 입에 들러붙었지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 맛에 먹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잠깐 나온 산박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있었다.

    ‘만주 쪽은 잘되고 있구나.’

    가장 걱정스러웠는데, 토착 세력과 알아서 잘 해내고 있는 듯했다. 그들도 거위의 배를 가를 배짱은 없어 보였다. 그 상품이 제작되는 곳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이었다.

    * * *

    정보꾼 왕보겁(王堡怯). 박조조가 산박에게 소개해준 정보꾼이었으며 그를 통해서 산박은 송유나를 비롯한 이들과 인연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이 죽어서 오는 큰 빈자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박조조를 호출했다. 그가 이토록 늦게 연락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나부터 살아야지.’

    제법 조용히 지내다가 아무 일도 없으니 스리슬쩍 나타나서 놓았던 인연을 다시 찾았다.

    물론 박조조로서는 그냥 일상 속에서 연락을 자주 안 하던 지인과 만나는 일에 불과했다. 트럭 상인 노릇에 이제는 제법 남는 고정 유통 라인까지 얻은 그였기에 인물이 훤했다. 걱정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씨? 지가 뭔 일에 엮였는지도 모르나 보네.’

    그게 배알이 꼴려서 입을 털어 봤지만 박조조는 태평했다.

    “길 가다가 그냥 꼬라박는 자동차에도 사람이 죽는다. 뭔 쓸데없는 걱정이여? 시끄럽고 잔이나 받아!”

    산박이 돌아왔기에 돈도 다시 굴러들어 온다. 기분이 좋은 박조조가 외쳤고 왕보겁도 술잔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한마디 하는 건 술도 막을 수 없었다.

    “조심해.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나니까. 내 생각에는 아무리 관련 없다고 여겨져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조금이라도 뭔가 켕기는 짓을 하겠지.”

    그 말에 박조조가 날카로운 눈을 했다.

    “너도 불법으로 돈 벌잖아. 근데 뭔 상관이야?”

    “뭐? 술맛 떨어지게 뭔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그럼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염병할 새끼가, 유통 마진으로 벌레처럼 푼돈 받아서 입에 쑤셔 박는 놈이……. 너 생각해서 말해줘도 지랄이야!”

    “대가리에 구멍 난 소리 하네. 막말로 그냥 질투가 나서 그런 거 아냐?”

    “왜들 싸우고 그래! 그럴 거면 나가서 싸워! 내 아들이 경찰인 거 몰라? 모르냐고!”

    김치찌개를 서비스로 내온 이모가 역정을 냈다.

    “커흠…….”

    “음…….”

    경찰이면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박살이 났기에 박조조는 계산하고 가버렸고 홀로 남은 왕보겁은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식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젠장할…….’

    열이 뻗쳤지만, 곧 후회밖에 남지 않았다. 실제로도 질투와 열등감이 없잖아 있었다. 정보꾼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놈은 대어를 낚았고, 연줄을 놓았다. 하지만 자신은 한 게 없었다.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나도 기회만 오면…….’

    그는 박조조의 뒤를 캐기로 마음먹었다. 놈을 협박해서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소리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

    137화

    <미꾸라지>

    과거, 십팔반무인(十八般武人)이라 불린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죽음이 차원을 침공하자 저항한 왕국 저항군의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인류 수호라는 이름 아래 열여덟 개의 깃발을 추켜올렸으며 그 부름에 답하는 자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고 한다.

    찌르는 무예가 대단하다 여기는 자들이 다섯 있었다. 그들은 삼지창, 장창, 쌍단창, 미늘창, 할버드를 으뜸으로 삼았다.

    베는 무예야말로 일품이라 여기는 자들이 다섯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이 대검, 나머지는 검과 방패, 쌍검, 롱 소드를 으뜸으로 삼았다.

    치는 무예가 무의 끝이라 여기는 자들이 셋 있었다. 그들은 편곤, 철퇴와 방패, 강철을 두르고 하는 권투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죽음의 군세에 대패하였다. 그 이후로는 썩어 문드러진 이들의 주둥아리에 의해서 하나의 정보가 되어 차원을 부유했고, 많은 이들이 이들을 레플리카로 만들어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수준은 만드는 자들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고, 제대로 해석하여 내뱉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뼈 제단을 지키는 열여덟 마리의 언데드들 또한 마구잡이식으로 생산한 결과였다. 무분별한 던전이 만들어낸 황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작업을 치겠습니다. 돌을 던져서 최대한 저자극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돌 소리를 내자 한 마리가 반응했다. 쌍도를 쥔 언데드였다. 복장은 천 옷에 불과했고 누더기에 너덜너덜했다. 뼈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열여덟 마리가 한곳에 몰려 있으니 ‘1레벨 던전’으로서는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투둑, 툭!

    반면 대검의 검 면을 어깨에 척 하니 걸친 채 죽은 것처럼 쭈그려 있는 좀비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자극으로는 깨울 수가 없었다.

    쌍도를 쥔 해골은 그사이에 덤벼 오고 있었다. 그 빠르기가 평범하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뼈 무게는 9~13kg 사이. 무지막지하게 날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최대한, 천천히 뒤로 물러납시다.”

    충호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너도나도 뒷걸음질 쳤지만 쌍도 언데드가 더 빨랐다.

    후웅!

    단번에 접근하자 은섭이 할버드를 휘둘렀다. 바람 정령의 도움을 받는 은섭은 부모님 덕분에 장비도 빠르게 살 수 있었고 신속의 중갑옷과 쾌속의 할버드를 주 무구로 삼고 있었다. 그 파공성은 대단했지만 놈은 이미 뒤로 스텝을 밟았다. 애초에 간잽이였던 것. 할버드가 내는 바람만 뼈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순식간에 대각선으로 완벽하게 뒤로 물러난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 덕에 은섭의 발이 묶였다. 놈과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충호가 은섭의 목뒤를 잡고 그대로 당겼다. 은섭이 뒤로 넘어갔다. 그는 발작하듯이 놀랐는데, 상대가 쌍도를 무식할 정도로 소름 돋게 잘 놀려서였다.

    휘익!

    놈의 쌍도는 정확하게 은섭의 안쪽 허벅지 아래에 있는 관절 부위를 베려고 했지만 충호가 은섭을 잡아당겼기에 허공을 갈랐다. 나머지 하나의 도는 상단을 찔렀는데, 애초에 어림도 없는 간극이었다.

    허나 그렇게 한 것은 실로 고수다웠다. 인간의 머리는 위에 있고, 눈도 위에 달렸다. 상단 공격은 언제나 완벽한 견제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하체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고 하단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것이었다.

    반면 충호의 대응은 실로 요행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은섭을 도왔다.

    동시에 곰 같은 충호의 자유로운 왼손에 들린 방패가 쌍도의 해골을 그대로 후려쳐 밀었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이 해골에게 멋대로 샤인을 사용했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불어와서 뼈다귀의 관절을 노렸다. 마치 바람의 창처럼 차가운 바람이 매우 좁게 쏘아져서 관절만 쏙 얼려 버렸다.

    와장창!

    단번에 뼈다귀가 박살이 났다. 관절에 힘을 너무 줬다가 관절이 똑 부러졌고, 넘어지는 놈에게 방패가 그대로 직격했다.

    ‘이렇게 쉽게?’

    뼈다귀가 보여준 한 수에는 보이고 나서야 충호의 전신을 서늘케 한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었음에도 뼈다귀의 내구도는 형편없었다.

    그 작은 소란에 몇몇 이들이 깨어났다. 쌍단창의 언데드와 쇼트 소드와 방패를 든 언데드 그리고 중갑옷을 입고 강철 글러브를 낀 권투 좀비였다.

    연속되는 싸움 속에서도 충호는 의외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전부 다 깨우면 진짜 대깽판이 되겠지만, 소수와의 싸움은 스펙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나쁘지 않다.’

    그들은 더더욱 물러섰다. 아예 화살로 한 놈씩 맞춰서 깨우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일어난 세 마리의 언데드를 조져야 했다.

    그 싸움을 지켜보던 검은늑대가 코로 냄새를 맡았다. ‘사냥의 냄새’. 지금 사냥하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성공률도 높았다. 난전 속에서 목뒤를 물어뜯는 건 늑대의 본능과 같았다. 목을 물어뜯기면 상대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 매력적인 제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미를 돋웠다.

    싸움은 싸움을 불렀고, 세 마리를 잡자 건들지도 않았는데 다섯이 일어났다.

    그제야 검은늑대도 움직였다. 가장 약한 주궤는 무시했다. 놈은 병 걸린 것처럼 골골거리며 싸우지도 않고 있었다.

    검은늑대는 가장 짙은 사냥의 냄새를 풍기는 은섭을 노렸다. 충호는 선두에 있었음에도 냄새가 상대적으로 옅었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검은늑대는 은섭의 뒤를 잡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소리 하나 삐져나오지 않았다. 토동토동한 늑대의 발바닥! 그게 소음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여주고 있었다.

    대장삵? 저번처럼 앞발로 쳐내면 그만이었다. 검은늑대는 다른 늑대와는 다르게 고양이처럼 발로 후려갈길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대장삵은 검은늑대의 관심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장삵은 검은늑대가 당도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쩍.

    이빨이 자연스럽게 쩍 열리며 은섭의 목뒤를 물려고 할 때, 검은늑대는 검은늑대에 의해서 그대로 목이 물어뜯겼다.

    “케헹!”

    검은늑대는 단번에 옆으로 쓰러졌다.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산박이 늑대의 몸을 단단히 짓누르고 있었다. 고개가 땅에 처박힌 채로 일어나려고 아무리 발악해도 일어나지 못했다.

    촤악! 버둥버둥!

    발톱으로 베었지만 걸리는 건 털뿐이었다. 피가 조금 묻어 나왔으나 산박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사이에 주궤가 횃불을 들고 다가왔다. 그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가 쥔 환도가 그대로 검은늑대의 대가리를 쳤다.

    퍽! 퍽! 퍽! 퍽! 퍽!

    내리 다섯 번을 후려갈기자 그제야 가죽이 뚫리며 피가 튀어 주궤의 이마에 턱 묻었다. 그 뒤로 열 번을 넘게 환도를 양손으로 쥐고 내려쳐서 겨우 두개골을 부수어 죽일 수 있었다.

    “헉! 헉! 헉!”

    전심전력을 다한 열다섯 번의 환도 내려치기. 그것만으로도 매주궤는 식은땀을 토해냈다. 어깨가 아직 성하지 않은데 분노에 몸을 맡겨서였다.

    뿌득!

    그사이에 산박도 놈의 목뼈에 송곳니가 걸리자 지렛대의 원리처럼 목을 틀어서 단번에 부러뜨렸다. 그리고 이빨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틈을 만들어 손쉽게 빼냈다.

    어둠 속을 질주한 산박은 곤히 자는 해골과 좀비들을 죽였다. 모든 상황이 끝이 났다.

    “우웩!”

    인간으로 변신한 산박은 안에 것을 게워냈다. 검은늑대와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달라서 오는 괴리감이 지독할 정도로 심각했다.

    ‘자주 쓰면 안 된다.’

    자신의 자아가 붕괴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너무나도 달랐다. 그렇기에 검은늑대는 늑대임에도 1레벨 던전의 보스였다. 천재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일반인이 미쳐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동물 변신 주문을 빌려서 동물이 되는 건데 이 정도 위화감이라니……!’

    끔찍할 정도로 ‘체계’가 다르다는 걸 산박은 직관적인 이해력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체감했다. 인간과 검은늑대의 차이는 단순한 종의 차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인간이 된 산박이 무너진 모습을 처음 본 이들은 깜짝 놀랐다. 서둘러 다가왔지만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부, 부산물 챙기세……. 우웁…….”

    “예, 예!”

    본래는 동물 변신 주문으로도 변신할 수 없는 게 ‘검은늑대’였다. 깨달음을 순식간에 얻어내 ‘레벨 업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산박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이미 요주의 인물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서둘러 부산물을 챙겼다. 검은늑대를 꽁꽁 밧줄로 싸맸다. 이제 던전이 무너져도 검은늑대의 시체는 현실 세계로 같이 운반될 터였다.

    그걸로 그들은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했다.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카르마를 얻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1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1레벨의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산박은 그 무엇도 택하지 않고 레벨 업을 위해서 카르마를 남겨 놓았다. 강력한 이점을 주는 레벨 업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원하는 게 그였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산박은 배낭을 옮겼다. 가장 마지막으로 검은늑대를 옮겨서 놈을 지키듯이 섰다.

    한 명씩 지하철 입구를 올라왔다. 검은늑대의 골통을 부순 매주궤는 혈색이 좋았다.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깨부쉈다. 인간은 단순했기에 단번에 털어낸 모습을 보였다.

    ‘이거지.’

    모든 게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산박이 웃었다. 그는 박조조를 호출해서 최대한의 이득을 팀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매주궤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정신적 충격이 나대기에는 처음으로 쥐어본 많은 돈이었다.

    “병원부터 가세요.”

    산박은 돈을 받다가 아야야거리는 주궤를 서둘러 택시에 태워서 보냈다. 택시비 또한 추가로 쥐여줬다. 뒤풀이에 가기에는 어깨에 고통이 남아 있었다.

    뒤풀이는 오랜만에 곱창을 먹으러 갔다. 충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모! 돼지껍데기도 좀 주세요!”

    “예!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제법 얌전한 이모님이셨다. 진탕 마시지는 않았다. 고소하고 바싹하게 씹히면서도 안쪽은 탱글탱글한 돼지껍데기의 식감을 즐겼다. 껍데기가 입에 들러붙었지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 맛에 먹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잠깐 나온 산박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있었다.

    ‘만주 쪽은 잘되고 있구나.’

    가장 걱정스러웠는데, 토착 세력과 알아서 잘 해내고 있는 듯했다. 그들도 거위의 배를 가를 배짱은 없어 보였다. 그 상품이 제작되는 곳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이었다.

    * * *

    정보꾼 왕보겁(王堡怯). 박조조가 산박에게 소개해준 정보꾼이었으며 그를 통해서 산박은 송유나를 비롯한 이들과 인연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이 죽어서 오는 큰 빈자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박조조를 호출했다. 그가 이토록 늦게 연락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나부터 살아야지.’

    제법 조용히 지내다가 아무 일도 없으니 스리슬쩍 나타나서 놓았던 인연을 다시 찾았다.

    물론 박조조로서는 그냥 일상 속에서 연락을 자주 안 하던 지인과 만나는 일에 불과했다. 트럭 상인 노릇에 이제는 제법 남는 고정 유통 라인까지 얻은 그였기에 인물이 훤했다. 걱정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씨? 지가 뭔 일에 엮였는지도 모르나 보네.’

    그게 배알이 꼴려서 입을 털어 봤지만 박조조는 태평했다.

    “길 가다가 그냥 꼬라박는 자동차에도 사람이 죽는다. 뭔 쓸데없는 걱정이여? 시끄럽고 잔이나 받아!”

    산박이 돌아왔기에 돈도 다시 굴러들어 온다. 기분이 좋은 박조조가 외쳤고 왕보겁도 술잔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한마디 하는 건 술도 막을 수 없었다.

    “조심해.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나니까. 내 생각에는 아무리 관련 없다고 여겨져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조금이라도 뭔가 켕기는 짓을 하겠지.”

    그 말에 박조조가 날카로운 눈을 했다.

    “너도 불법으로 돈 벌잖아. 근데 뭔 상관이야?”

    “뭐? 술맛 떨어지게 뭔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그럼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염병할 새끼가, 유통 마진으로 벌레처럼 푼돈 받아서 입에 쑤셔 박는 놈이……. 너 생각해서 말해줘도 지랄이야!”

    “대가리에 구멍 난 소리 하네. 막말로 그냥 질투가 나서 그런 거 아냐?”

    “왜들 싸우고 그래! 그럴 거면 나가서 싸워! 내 아들이 경찰인 거 몰라? 모르냐고!”

    김치찌개를 서비스로 내온 이모가 역정을 냈다.

    “커흠…….”

    “음…….”

    경찰이면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박살이 났기에 박조조는 계산하고 가버렸고 홀로 남은 왕보겁은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식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젠장할…….’

    열이 뻗쳤지만, 곧 후회밖에 남지 않았다. 실제로도 질투와 열등감이 없잖아 있었다. 정보꾼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놈은 대어를 낚았고, 연줄을 놓았다. 하지만 자신은 한 게 없었다.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나도 기회만 오면…….’

    그는 박조조의 뒤를 캐기로 마음먹었다. 놈을 협박해서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소리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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