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정보꾼 하나 잘 뒀군. 대단해.”
장 노인의 칭찬에 지건이 동요했다. 사람 하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장 노인이 저렇게 칭찬하는 건 처음이었다. 성과가 뒤따라왔기에 가능했다.
그 동요를 힐끗 본 장 노인이 혀를 찼다. 지건은 트럭을 운전하며 세상을 둘러보고 사람을 최대한 많이 겪어 봤다. 가장 낮은 노동 계급이었기에 갑질도 많이 당했으며 사람들의 날것도 많이 봤을 터였다. 그런데도 저러니, 결국 과수원 운영하다 끝날 그릇이었다.
“흠, 흠…….”
장 노인은 제법 고민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줬다. 이미 모든 판단이 끝났지만 더욱 뜸을 들였다. 그 시간에 조바심을 느낀 건 둔국이었다. 그는 마지막 카드마저 꺼냈다.
“서천군 쪽에서도 산박 던전 사용자가 활동하고 있는데, 거기서 발이라도 걸려 넘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 지금 해볼까요? 사람 하나 안 보이는 동네지만 사람이 아예 안 사는 건 아닙니다.”
둔국이 침을 튀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민원 제기부터 시작해서 약주 한 병 비우고 와서 매일같이 깽판이라도 치면 될 것도 안 되는 거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저와 경쟁하면 많이 힘들어지실 겁니다. 서천 쪽에는 마을 회비부터 시작해서 건더기가 많습니다.”
어느 동네건 폐쇄적일수록 더욱 개같다. 통장 통일하라는 건 예사고 찬조비부터 회의를 위한 대실까지 돈을 받기 일쑤였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왕따는 흔했다. 당해 보지 않아서 없는 줄 알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똑똑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건 농경 사회의 낡은 관습에 세뇌당한 생각일 뿐이며 세상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자들의 가벼운 생각일 뿐이었다.
‘요는 결국 산박에게 선택하라는 것인데, 조금 약하군.’
둔국은 승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태 사장을 알면 그 사람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할 텐데, 많이 모르는 것 아닙니까?”
지건이 툭 내뱉었다. 이에 둔국은 즉답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차용증 말입니까? 개인 부채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결국에는 돈 아닙니까. 유통업자가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많이 모으기 바쁘죠.”
“흥.”
장 노인이 그 모습에 소리를 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길 생각이 없구만……. 애초에 승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왔군.”
“예?”
지건이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배 사장은 고개를 확 숙였다.
“앞서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개인이 어찌 가문과 싸우겠습니까? 항의 전화 하루 백 통씩만 넣어도 거래처에서 저랑 거래를 끊으려는 자들이 가득할 텐데, 싸우러 여기에 오겠습니까?”
“허허허. 날 그렇게 몰상식한 자로 봤는가?”
“돈이 얽히면 자식이 어미 집도 부수고 난리를 치는데… 누가 돈 앞에서 고상함을 논하겠습니까?”
“그렇지. 고상하려면 돈이 있어야지.”
장 노인이 다시 담배를 입에 올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창문을 열어야겠다. 담배 연기가 건강에 그렇게 안 좋다며?”
“예.”
대답은 지건이 했지만 서둘러 아주 큰 창문을 연 것은 가까이 있는 칙갑이었다.
“아무래도 한배를 타야겠구먼. 오랫동안 세종시 사과 유통을 한 사람이니 다른 도시에도 댈 수 있겠지? 노하우가 있을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드루이드가 생산하는 사과의 품질은 그 어떤 곳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햇빛에 놔둬도 한 달을 버티는 것이 드루이드의 생산품이었다. 그러나 이를 상품으로 쓰기는 힘들었는데, 드루이드의 특성에 지배된 던전 사용자들이 죄다 오지로 사라져서 자연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장 노인이나 배둔국이나 그 본질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꿀을 빨기 위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하는데 싸우게 된다면 모르는 이가 없어진다. 꿀은 다른 이들이 모르기에 개꿀인 것이다. 끝물 때나 인심 쓰듯이 알려줘서 바짝 당겨 벌고 빠진다. 그게 개꿀 빠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돈 버는 걸 다른 이들도 안다면 투자하면 안 된다. 그게 세상 사는 이치였다. 게으름을 피우고 지식 없는 자들도 그것만 깨닫는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장 노인도, 배둔국도, 장지건도 그 누구도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배둔국 또한 싸우러 온 것이 아님을 어필했다. 그걸 캐치해낸 장 노인도 평범한 양반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나 여기 지건이나 선택권이 없는 게 아쉽군. 자네는 잘못 찾아왔어.”
“예?”
배둔국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연기 장가(家)를 찾아온 게 잘못된 선택이라니. 어리둥절했다.
“태 사장을 찾아가서 해결을 봐야지 왜 우리한테 왔나?”
“네? 하지만… 그도 어르신 밑에 계신 분이 아닙니까?”
그 말에 장 노인이 실소했다. 지건도 웃음을 지었다. 배둔국은 태산박이 어떠한 인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나 보면 알겠지.”
“어르신, 그래도 이렇게 끝내는 건 아니지요.”
“누가 여기서 끝낸다고 했나? 왜 이렇게 급해. 자네 활쏘기는 할 줄 아나?”
“전혀…….”
“말 타기는?”
“…….”
“허어, 양궁은 그렇다 쳐도 승마를 모르는 건 놀랍군. 태권도만큼이나 많은 곳에서 영업하고 있지 않나.”
대한민국에는 영토 대비 승마 학원이 많았다. 만주족이 흥했을 때부터 시작된 흐름인데 아직도 그 영향이 많이 남아 있었다. 소의 고기 부위가 가장 세세한 것이 대한민국인 만큼 말고기도 훌륭한 가축이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소에게 크게 당한 게 있어서 머리가 큰 동물은 싫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간단히 술이나 즐기세나.”
술자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장 노인은 지건을 통해서 태산박을 소개해 주겠다고 배둔국에게 확답을 내어줬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잘 좀 숨겨주게.”
“저만 믿으십시오.”
꿀 같은 사업이 하나 있으면 그걸 혼자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기 전까지 아는 사람들끼리 협력하여 알차게 손가락 집어넣어 빨아먹는 게 먼저였다. 어차피 독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명.’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 파리를 죽인다고 소란을 쳐서는 안 됐다.
술을 마시면서 장 노인은 서천군을 생각했다. 거기서 산박은 또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다. 질투는 느끼지 않았다.
‘과수원 하나만 잘 가꿔도 충분하다.’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건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었다. 만족할 줄 알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면 또 하나가 자신의 앞에 떨어질 것이었다.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장 노인도 쉽게 산박을 윽박지를 수 없었다. 모두 돈 때문이었다.
“허허허!”
“하하하!”
배둔국이 장 노인에게 술을 따라주며 뭐가 그렇게 재미난지 웃었다. 자신도 이제 이 사업의 당당한 일꾼이 되어서 기쁠 수밖에 없었다.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이런 꿀 사업을 혼자 하려고 하다니, 욕심도 많다.’
‘발품 판 정보꾼 때문에 이놈에게 한 주걱 퍼줘야 한다는 게 쓰라린데, 산박이 내칠 리는 없지. 쓰레기 창고에서 옥 같은 인덕 하나 나오다니, 세상 참!’
해 처먹는 놈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웃으며 그걸 나눠 먹는 게 더 이득이었다. 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기에 서로 비밀을 약조하는 말을 언급하기도 했다.
“확실하게 해주게.”
“제가 입 하나는 자물쇱니다. 대신 3할 정도만이라도… 과수원 사과를…….”
“아무렴. 잘만 해준다면 유통 전부를 맡기게 될지 누가 아는가? 물론 산박 사장에게 잘 보여야 가능하지만…….”
희망을 던져 놓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 적어도 그게 개소리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혓바닥 헥헥거리며 쫓아간다. 그건 훌륭한 장치였다.
‘배둔국의 행동력은 위험해.’
치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밤이 깊어졌다.
* * *
모든 계획을 짜고, 옥시모론 분할 팀은 어둠을 헤쳐 나갈 준비를 했다. 운신은 가능했지만 주궤의 정신력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짐을 챙기면서도 흐느끼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 대었다.
그건 아주 좋은 반응이었다. 찌질이 새끼라고 욕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워낙 정신이 박살 나 은퇴하는 던전 사용자들이 많아서 다른 던전 사용자들도 정신적인 것들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었다. 눈물은 감정의 배출. 좋은 신호였다. 그렇기에 누구도 주궤를 방해하지 않았다.
사실상 전력 외다. 세 명이서 거사를 치러야 했지만 두려움 하나 없었다. 산박의 계획은 그 정도로 안전해 보였다. 사람들의 심리를 휘어잡는 작전이었다. 동시에 검은늑대와의 조우를 통해서 얻어낸 모든 정보를 쥐어짠 계획이었다.
횃불이 일렁이며 그들을 비췄다. 모든 걸 확인한 산박은 다시 한번 작전을 설명했다.
“검은늑대부터 노립니다. 놈의 인내심을 역이용할 겁니다. 실패하면 뼈 제단이 부서지니 저희들은 어차피 던전을 클리어하고, 놈이 인내심을 버리고 덤비면 놈은 죽습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가 높은 산박이 내는 작전은 매우 그럴듯했으며 목적성도 뚜렷하여 굉장한 강점이 있어 보였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
몇몇 전략을 짜면서 산박은 사실 특별해 보이는 작전은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건 하찮은 것, 특이하고 특별한 건 대단한 것이라는 사고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었다.
‘실패하면 다 죽는다.’
그러면 엎어 버리면 된다. 모든 힘을 가해서 뼈 제단을 부수면 장땡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검은늑대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산박도 거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자유롭지 못했다.
‘주궤를 회복시키고 진행하면 검은늑대는 딴생각할 수 있어.’
어차피 끝장을 봐야만 했다. 다른 걸 택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산박은 카리스마에 상처를 입었고 검은늑대는 한 명을 성공적으로 조져 놓았기에 자신감이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이미 서로 칼부림이 일어났는데 도망치는 꼴이었다. 뒤를 잡혀 머리채가 뜯겨 나가고 땅에 고꾸라져 칼이 그 몸에 쑤셔 박힐 것이었다.
‘놈이 자신감을 느끼고 있을 때를 노리는 게 상책이다.’
그러기 위한 계략이었다. 제법 음흉했다.
“그럼 서 팀장, 잘 부탁합니다.”
“예.”
산박의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영혼 자극’ 기술이었다. 일시적으로 주문의 위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동시에 뿔이 솟아났다. 소나무 향기 외뿔 주문이었다. 2레벨 주문이지만 1레벨 던전에서 사용할 때는 1레벨 수준으로 하향되었다.
뿔이 돋아나고 단번에 산박의 모습이 비틀렸다. 입고 있는 옷과 무기들이 뒤섞이며 짐승 가죽으로 변하고 털이 쏟아져 나왔다. 칠흑과도 같은 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늑대……. 아!’
변신하자마자 산박은 자신이 지닌 ‘힘’이 빠르게 소진되는 걸 느꼈다. 검은늑대의 ‘형태’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동물 변신 주문에는 그런 기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산박의 지혜가 높아서 생긴 일이었다.
산박은 보이는 세상, 맡아지는 세상, 들리는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무언가가 달라졌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변했다. 그건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변화였다.
완전히 힘이 다 빨리며 온전해진 검은늑대가 된 산박은 낭패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저 당황했다. 동시에 이해했다. 지능과는 다르게 지혜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꿰뚫을 수 있는 송곳과도 같았다.
“크릉.”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치트 키나 다름없다.’
놈이 어째서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매주궤는 ‘나약한 냄새’를 내는 놈이었다. 어처구니없지만 검은늑대는 후각을 통해서 ‘사냥꾼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다. 그 기괴함은 이놈이 왜 보스 몬스터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뒤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진행했다. 대장삵이 충호와 은섭의 뒤를 봐주었고, 매주궤가 천천히 따라갔다.
이내 충호가 몸을 숙이자 다른 이들도 속도를 줄여 나갔다. 산박은 이미 앞서 나가서 뼈의 제단을 보고 있었다. 그를 지키고 있는 수호병들도 훑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숫자만 해도 열여덟 마리에 달하는 언데드가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무기와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미 공략된 기믹.’
놈들은 쥐 죽은 듯이 고꾸라져 있거나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었다. 자극하는 정도에 따라서 깨어나는 숫자도 달랐다. 그래서 조금씩 소란을 피워서 조금씩 유인하여 때려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덫으로 삼기 충분하지.’
막차. 막차의 막차. 진짜 막차.
어디서든 잘 이용되는 인간의 본성이었다. 몇 개 안 남았다고 하면 귀신같이 손에 잡고 본다. 그 심리는 여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검은늑대에게 이런 기회는 오기가 힘들었다.
‘놈은 못 버티겠지.’
아무리 사냥꾼이라고 해도 짐승이다. 거기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냥의 냄새’가 이 장소에 물씬 풍겼다. 어디에 있는지는 검은늑대가 된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놈 또한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와라. 물어라.’
언데드를 사냥하는 옥시모론 분할 팀을 사냥하는 놈을 사냥하는 건 산박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