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270)
  • 135화

    “제가 장지건입니다.”

    “아! 사장님이셨군요!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둔국이 서둘러 고개를 숙이자 같이 온 평두와 칙갑도 냉큼 고개를 숙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몸 쓰는 직업에 몸을 담고 있는 두 사람이고 기업에 속해서 활동하는 보안 업체의 노동자들이었기에 아주 알짜배기들이었다.

    잠가지지도 않은 대문을 통과해서 둔국과 지건이 서로 굳세게 악수를 했다. 새하얀 피부의 둔국과 새까맣게 탄 지건, 양복을 입은 둔국과 작업복에 흙도 제법 묻은 지건은 아주 크게 차이가 나고 있었다. 키는 비슷했지만 많은 게 달랐기에 더욱 눈으로 표시가 났다.

    “들어오십시오.”

    지건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온돌이 달곰하게 바닥을 달구고 있었다. 곧 아내인 윤다연이 작은 상을 내왔다. 닳고 닳은 것이 전에 쓰던 살림거리를 그냥 그대로 가져온 듯했다. 알뜰함은 곧 천박함으로도 보였다.

    ‘쯧, 거래처 두 개를 가져가 놓고는 이렇게 팍팍하게 살고 있다니.’

    둔국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하면서 위아래를 가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 하찮은 걸로 갑을을 나눌 수 있다고 여기는 건 그냥 병신 꼰대에 불과했다.

    “이번에 대박 마트랑 친절 마트에 사과를 대주기로 하셨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유통하던 사과를 안 받겠다고 하더군요. 그 두 곳의 한 달 거래량만 해도 천 개가 넘는데…….”

    천 개 팔아서 생기는 마진만 해도 30만 원이었다. 상업을 등한시하는 것들을 등쳐 먹기 좋은 것이 유통이었다. 월급이 오르면 같이 올라가는 게 물가였다. 공급과 수요? 공급이 많으면 땅에 묻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걸 불평하러 오신 겁니까?”

    그 말에 둔국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아닙니다. 달마다 사과를 내보내고 계시니 저랑 사업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세종시 사과 유통의 일인잡니다.”

    “생각 없습니다. 저도 트럭 몰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유통도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기에 거래처 두 곳을 뚫은 겁니다.”

    완고한 모습에 둔국이 어휴유! 거리며 엄살을 피웠다.

    “왜 이렇게 가시를 추켜세우셨습니까? 하하하. 과수원 일에 유통까지 하면 몸살 나고 골병듭니다. 자본주의라는 게 뭡니까? 공장이 왜 있겠습니까? 분업하면 그만큼 굉장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

    지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둔국만 입을 나불거렸다.

    “본인은 과수원에 집중해서 좋고, 저는 기존 거래처와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가니까 좋고. 그게 상부상조 아닙니까? 생각을 해보쇼, 장 사장. 장 사장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이 바닥이라는 게 사람을 적으로 만들면 어렵습니다. 그, 과수원 은행과는 연이 있으신가? 보험 하나라도 그쪽에 통장 하나 없으면 씨알도 안 먹히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그 말에 장지건이 웃었다.

    “세종 은행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아~ 지방 은행 이용하시는구나.”

    “제1금융권을 이용해야지, 과수원 은행 같은 제2금융권을 왜 이용합니까?”

    “이자율이 높지 않소. 그리고 동종 업계도 많고.”

    “괜찮습니다. 작게 작게 사업하는 겁니다.”

    “그 작은 사업이 점점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가면 더 몸값이 뛰어올라 있을 텐데, 저랑 함께합시다.”

    “지금으로도 만족합니다.”

    지건이 그렇게 거부만 하자 결국 둔국은 정보꾼이 준 서류의 복사본 중 하나를 건네줬다. 그건 사진이었다. 제법 확대를 한 사진임에도 해상도가 좋았다. ‘전문가’의 솜씨였다.

    “사장님네 사과가 어떻게 한 달에 한 번씩 출하되겠소? 물량을 푸는 거라고 보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기에는 난방비도 크게 들지 않고……. 허허, 이거 세상 사람들이 보면 놀라겠습니다.”

    “…….”

    “들어 보십시오. 자자, 들어 보십시오. 아니, 사과 농사꾼이 난방비도 많이 안 쓰고 사계절 내내 사과를 생산하고 유통까지 본인이 직접 하는데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거 값 안 내리고 독식한다 하겠지요.”

    “지금 절 협박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저 일어날 일을 말씀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선비 국가 아닙니까? 겉으로는 점잖은 척해도 꼬일 대로 꼬인 게 한민족입니다. 남~ 잘되는 꼴은 못 본다, 이 말입니다. 쪽바리들은 그놈을 칼로 베어 죽이고 짱깨 놈들은 사업장 빼앗고 가족까지 죽이겠지만 저희는 아니잖습니까? 그냥 배알 꼴려 할 뿐이죠. 그게 무슨 협박입니까? 하하하.”

    그가 웃음소리를 크게 터트렸다. 끝장 싸움 하기 전에 서로 타협하자는 소리였다. 결국 지건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방송 하나 나오면 너도나도 물어뜯기 시작하는 게 이 바닥이었다. 그 끝에는 태산박을 곤란케 하는 일까지 생길지도 몰랐다.

    “따라오십시오.”

    장지건이 그들을 밖으로 내몰고 옷을 갈아입은 채 나왔다. 척 봐도 오랜만에 입는 양복이었다. 그 모습에 둔국은 태연했다. 장 가문에 대한 걸 이미 십년지기 정보꾼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카드 하나 들추니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건 나한테 좋은 일이다.’

    준비한 카드는 세 장. 그중에서 한 장으로 뒷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문의 어르신이고, 촌 동네의 씨족 가문이지만 그래도 조상을 모시는 ‘사원’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씨족들이 매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늙으면 늙을수록 자신이 묻힐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찾는 게 사람 심리였다. 범죄자가 주님을 모시려고 아득바득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르신, 지건이입니다. 양복 입고 찾아뵙습니다.”

    한옥 저택에 들어서서 지건이 말했다. 제법 기다리고 난 뒤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건 다음으로 들어간 둔국은 장 노인을 볼 수 있었다. 꼬장꼬장한 늙은이로 보였고, 다 늙어 빠졌음에도 기가 살아 있었다. 언제까지고 정정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건들기 힘든 양반이다.’

    “다 누구인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구먼.”

    “예, 이번에 제가 과수원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래? 어디서 뭐 하는 자인가?”

    그 말에 둔국이 들어오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음에도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저는 배둔국이라고 합니다.”

    “본관은?”

    “달성 배씨입니다.”

    그는 줄줄이 자신의 씨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바빴다. 달성 배씨는 있는 집안 중에서도 드높은 집안이었다. 제는 씨족이 원체 많아져서 진짜배기를 보는 건 힘들어도 대구에 사원도 있었다.

    “고려 후기 때 별장으로 활약하신 시조가 계십니다.”

    “아아, 그래.”

    한동안 가문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장 노인과 배둔국은 하품 하나 하지 않았다. 집안을 서로 알아야지 이놈이랑 적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둔국은 가문의 뒷배는 약했다.

    “부모님께서 힘든 시기를 보내셔서 대구에 있는 사원에는 발길을 끊으셔서…….”

    “저런……. 그래도 이렇게 찾아올 정도면 자네라도 일 년에 한 번은 가야지.”

    여기서는 배둔국이 미리 솔직하게 말을 올렸는데, 진짜 잘못되면 엉뚱한 놈 때문에 달성 배씨의 진짜배기들이 욕을 처먹을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되면 양쪽에서 머리채 잡혀서 망하는 건 자신이었다. 상업을 하기에 돈은 제법 번다고 해도 사회적 지위는 허접한 것이 배둔국이었다.

    “예, 예. 그래서 다음 새해에는 발걸음을 옮겨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그래야 가문이 살아. 요즘은 가족도 못 믿는다고 하지만 타인보다는 낫지. 요즘에는 1년에 한 번도 보지 않아도 그냥 사원에 한 번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씨족 대우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사업하기 참 좋은 구조였다. 실제로 하나 할 만하면 죄다 인척으로 사용해서 나오는 모든 매출을 씨족이 먹는 것도 가능했다.

    그 이후에 지건이 본론을 이야기해 나갔다. 가장 먼저 둔국이 말한 카드를 한 장 언급했다.

    “사업하는 사람답게 제대로 조사한 티가 났습니다. 저희가 드루이드 나무를 매달 수확하는 걸 사진으로 딱 남겨 두었더군요.”

    “허, 이 양반, 장사 제대로 할 줄 아는구먼. 사람도 두 명이나 데려오고, 기본이 되어 있어.”

    그 말에 둔국이 사람 좋게 웃었다.

    “사과 유통 하나는 제가 빠삭합니다. 물량만 대주시면 차질 없이 운반하여 팔겠습니다.”

    이제 마진을 물을 터였다. 그때가 금방이라도 다가올 것 같아서 둔국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최대한 가져갈 생각은 접은 지 오래였다. 장 노인의 카리스마는 둔국의 욕심을 공손히 접게 만들었다.

    ‘생각했던 것의 반만 가져가자. 그러고 나서 유통 가격으로 조져서 내 마진을 천천히 찾아 가면 된다.’

    사과를 생산하는 자 마음대로 소비자 가격을 생각하는 건 괘씸하다. 어디서 흙 만지는 손으로 사과 가격을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그걸 정하는 건 유통업자 마음이었다. 양복 입고 사람 먹는 것 하나하나 따져서 가격 올리는 것이 유통업자였고, 선비였다. 이 선비라는 말은 어디든지 붙이기 좋았다. 붙여놓고 보면 있어 보였다.

    싸게 한다고 했다가 천천히 가격을 올리다 보면 10년이면 마진만 3천 원, 5천 원이었다.

    “허허, 그래, 자네 술은 하는가?”

    “예! 영업하는 사람이 술 못해서 어찌합니까?”

    간 버리고 돈 버는 사람이다. 이건 합격이었다. 내 몸 버리기는 싫고 제 몸 버리겠다고 하는 사람이라야 영업으로 성과를 낸다. 술대접으로 돈 벌었다고 생각하는 천치들을 상대하게 하기 좋았다.

    “호, 그럼 노름은 혹시 좋아하는가?”

    “돈 벌기도 바쁜 게 노름을 어찌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장 노인이 웃음소리를 한 번 딱 냈다.

    ‘이놈, 이거 제법이구먼.’

    교육을 받았든 한번 당해 봐서 알든, 어찌 되었든 이 질문을 안다는 게 합격이었다. 사업하는 놈 중에서 가장 피해야 할 놈이 노름하는 놈이었다. 자기 사업도 말아먹고 함께하는 사업도 말아먹는 놈이었다.

    “여자는? 여자는 있고?”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면 대접하는 곳은 많이 압니다.”

    순정파라고 떵떵거리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더러운 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 소리다. 또 그런 더러운 놈들 있으면 자기한테 맡겨 달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그는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 그래. 더러운 것 가리지 않는다는 건 좋구먼.”

    “더러운 놈이 돈도 많은 법인데, 그런 놈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제대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 같이 진탕 어울릴 수도 있습죠.”

    “허허허.”

    장 노인이 껄껄 웃었다.

    ‘쓰다 버리기 좋다.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잔뜩 챙겨 갈 수는 있다.’

    어중이떠중이 청렴이라고 말하는 것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자식은 있고?”

    “이제 세 살 아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 아내는 임신 중이고요. 딸입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운도 좋구먼.”

    “감사합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장씨 가문의 사람, 돈 벌고 싶어 하는 사람만 해도 수두룩했다. 경찰 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야간 순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져서 다른 일 하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놈들도 많았다.

    “미안하지만 그런 거로는 부족하네.”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시골에 적을 뒀고 역사에 이름 석 자 올리지 못했지만 말단이라도 관직에 몸을 담지 않은 적이 없었네. 지금은 중간 관리직으로 공직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작은 사업도 자잘하게 하고 있는데 사람이 부족할 리가 없지 않나.”

    “허……. 이거 참 섭섭합니다.”

    냉큼 사진을 꺼내 봤지만 장 노인은 그걸 보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도시에 사과 하나 유통 줄을 잡고 있다고 해서 무서워할 것 같은가? 달성 배씨라도 본적이 대구고 힘 싸움 하기에는 자네는 이번 연도부터 사원에 겨우 참석하는 자 아닌가.”

    “솔직하게 말씀을 드린 겁니다. 점점 거기에서도 영향력을 얻어 갈 생각입니다.”

    “장사치가 어찌 씨족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헐헐헐.”

    그 말에 둔국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장 노인이 담배를 피웠다.

    “돈으로 모든 게 되는 게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대한민국은 달라. 돈 많아도 청렴하지 않으면 국민이 등 돌리는 민족이야. 무슨 협박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런 사진 한 장으로는 미미한 효과밖에 없고 그것도 일 년을 채 안 가겠지.”

    결국, 싸면 장땡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값까지 내렸으니 한 수만 보는 협박거리인 셈이었다. 이에 배둔국은 준비했던 것을 더욱 내비쳤다.

    “그렇게 논쟁거리가 되면 태산박 사장이 좋아하겠습니까?”

    그 말에 장 노인이 대단히 감탄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볼 수 있었나? 이거 놀랄 놀 자로군.”

    그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으며 리액션을 했는데 지금까지 중에 가장 반응이 컸다.

    “10년 동안 함께한 정보꾼이 하나 있습니다. 발품까지 팔아서 저한테 정보를 넘겨줬습니다.”

    그 말에 장 노인이 단번에 담배를 꺼트렸다.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인덕을 가지고 있었다. 장 노인조차도 솔직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인품이 있어도 인덕이 없으면 사람이 주위에 모이지 않는다. 범인은 사람 한 명도 제대로 가져가기 힘들었다.

    ‘제법이로다.’

    사원을 통해서 혈연조차도 제대로 관계를 유지 못 하는 놈이 운이 좋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연기 장씨 가문이 현재 가장 숨겨야 할 것이 바로 태산박이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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