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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134/270)

134화

* * *

모든 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완벽한 기습이었다. 후각이 좋은 보스 몬스터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동굴 안에 미리 와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 검은늑대는 눈 전체가 검은색이었다. 흰자위가 없었다. ‘그림자’와 가장 잘 어울리는 늑대였다.

또한 괜히 1레벨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놈은 짐승이지만, 사냥꾼이기도 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걸 감내하고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 발을 옮길 인내심이 있었다.

검은늑대는 소리 없이 도약해서 횃불을 들고 지나간 산박 일행의 뒤를 쳤다. 검 늑대는 누린내조차도 없었고, 털이 워낙 잘 빠져서 뽀송뽀송하고 윤기가 났다.

검은늑대가 적의를 드러내자 대장삵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가 뭐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검은늑대는 산박의 앞에 있는 매주궤를 노렸다. 아까 피떡고라니를 사냥할 때 가장 약한 존재가 바로 매주궤였다. 가장 후방에 있는 산박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장삵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튀어 오르자 산박은 먼저 회피 기동을 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이었지만 검은늑대의 목표물은 매주궤였다.

훅!

대장삵이 놈의 날렵한 공중 도약을 방해하려고 껑충 뛰었지만 앞발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콱!

“크윽?!”

흉악한 이빨이 매주궤의 어깨를 물었다. 목뒤를 노렸지만 대장삵 때문에 변수가 만들어졌다. 단번에 강한 턱 힘이 어깨뼈를 으스러뜨렸다. 고개를 털며 상처를 벌리고 이빨을 수월하게 빼냈다.

거대한 고통, 뼈와 신경계가 찢기는 괴로움 때문에 매주궤는 끔찍한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태아처럼 웅크려야 했다. 단 한 번에 전투 불능에 빠졌다.

다른 이들이 뒤를 돌아봤는데, 앞에 있던 충호와 은섭은 하나같이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검은늑대는 그 움직임만으로도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내달렸다. 귀신같이 사각을 통해서 통로를 그대로 질주해 빠져나갔다. 산박이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네발 달린 짐승의 기민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빌어먹을!”

산박이 화를 내며 분통을 터트리고 서둘러 매주궤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면 트라우마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커컥…….”

엄청난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산박은 서둘러 가진 치료수를 모두 소모하고 대장삵을 통해서 치료를 했다. 겨우 출혈은 잡을 수 있었지만 매주궤는 꼼짝도 못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거대한 고통이 밀려왔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상태에서 산박이 매주궤의 눈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공포만이 가득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고, 그 여파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괜찮습니까?”

“예. 예.”

그가 대답했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이어폰 꽂고 길을 가다가 한순간에 어깨가 통째로 으스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무덤덤한 자들은 살았으면 된 거지, 라면서 그 이후에도 이어폰을 꽂고 다니겠지만 평범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은 평생 밖으로 나갈 때 이어폰을 귀에 꽂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래도 주궤는 극복할 수 있어 보인다.’

위기 속에서도 은근히 끈기를 보여주는 자였다. 강합과는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 희망을 안고 산박은 그를 최대한 다독여 줬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움직이는 것도 안 되는데.”

“검은늑대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 만합니다.”

“저희 팀의 가장 약한 사람을 노렸습니다. 다음은 은섭 씨인데,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할 게 뻔합니다. 저희도 몰랐지 않습니까.”

충호가 한숨을 토해 내듯이 말했다. 그도 대단히 놀란 상태였다. 솔직히 그와 은섭은 검은늑대를 보지 못했다. 그게 장난 아니게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놈은 주궤의 어깨를 곤죽으로 만들었는데 두 사람은 전혀 보지도 못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수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벌써 패배한 것처럼 굴었다. A급 전사로 부족함이 없는 충호조차도 그런데 은섭은 오죽할까. 그는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놈부터 노리는 효율적인 공격 방법이 다음은 네 차례라고 말하고 있었다. 중갑옷을 입고 있어도 트랜지셔널 아머라서 빈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대장삵, 괜찮냐?”

“조금 긁힌 것뿐이다.”

대장삵 또한 무리해서 놈을 막으려다가 화를 당했다. 발톱에 살짝 긁혀서 살점이 조금 떨어져 나갔다. 간단히 물의 마법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산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지나칠 정도로 횃불을 피워 놓았다. 울퉁불퉁하고 넓은 통로에는 어디든 어둠이 존재했다.

“아무래도 검은늑대는 저희를 표적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보통은 만나지도 못하고 클리어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은섭의 말에 산박이 짧게 대답했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세상에 옳다는 생각이 언제까지 통용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산박은 턱을 매만졌다. 그 누구도 뭘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검은늑대의 보이지 않는 공포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한 명의 어깨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 성과는 불가시의 움직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일행은 감히 다른 곳으로 갈 줄을 몰랐다. 늪에 빠진 것처럼 멈췄다.

‘이 또한 검은늑대가 노린 것이겠지.’

보통 이 상황에서는 주궤를 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함께 갈 수가 없었다. 넓은 통로의 어둠을 생각하면 검은늑대는 언제든지 다시 뒤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확보하고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하나같이 불리했다. 반면 검은늑대는 다양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상대와 마주한 것 같다.’

검은늑대가 흉측하게 짓밟고 간 이후 상황의 모습이었다. 그 누구도 해결책을 내지 못했다. 그건 산박도 똑같았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해.’

헛웃음이 나왔다. 놈은 능숙하게 기습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서 사라져 버렸다. 앞에 있던 두 명의 전사는 허무할 정도로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건 산박도 마찬가지였다. 후방에 있었지만 되레 앞에 있는 주궤가 크게 다쳤다. 이건 그의 명예도 짓밟는 행위였다.

늑대 한 마리, 보스 몬스터 한 마리가 만들어낸 영향은 거대했다. 실력 있는 산박이 뒤를 내어줬을 뿐만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사람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다.

‘빌어먹을.’

욕이 나오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공들인 탑이 무너졌다. 팀 옥시모론 내에서 산박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막으려면 검은늑대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무엇보다 상책은 놈을 최대한 몰고 겁주고 물러나게 해서 썩은 뼈 동굴에 있는 제단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주궤 때문에 검은늑대가 우리와 싸울 생각을 했다.’

이 또한 중요했는데, 주궤만 포기하면 된다는 생각을 다른 이들이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충호 또한 ‘약한 이’로 주궤를 언급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전사다운 본능으로 맥을 확실하게 짚고 있다.’

그를 포기하면 이후의 길은 수월해진다는 뜻이었다. 그걸 노리고 말한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전황을 훑는 전사의 본능적인 판단력이었다. 급박한 순간에는 생각해서 판단하는 산박보다 오히려 판단력이 더 뛰어났다.

‘하지만 주궤는 포기 못 해.’

그는 그릇이 작다. 그래서 이용 가치가 높았다. 무조건 뛰어난 자가 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일에는 그에 맞는 자가 있었고 무조건 뛰어나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었다. 큰일에는 큰사람이 필요하다. 반대로 작은 일에는 작은 사람이 필요했다.

‘이미 30년 장기 계약까지 맺었는데, 여기서 그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지.’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됐다.

“천천히 나아갑시다. 저희들의 목표는 검은늑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충분히 협력한다면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예.”

모두 대답했지만 두루뭉술한 해답이었기에 모두들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산박은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주변을 밝혔다.

‘횃불로는 한계가 있다. 별의 수련자 기술!’

작은 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이 기술은 산박의 몸 주위를 밝게 만들었고, 이내 서서히 퍼져 나가서 그를 따라다녔다. 이걸로 집중성탄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주변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였다.

‘애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보스 몬스터로 여겨졌다. 한 방을 당했는데 그게 너무 컸다.

“대장삵, 네가 왼쪽 벽 가까이에 붙어서 움직여라.”

“알았다.”

동시에 계속 나오는 이슈인데, 인간의 dominant eye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장삵은 왼쪽 벽에 밀착시켰다. 이 작은 차이가 많은 걸 바꾸게 했다. 더는 검은늑대가 수작질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뒤를 점하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겁주고 위협해서 물러나게 하고 싶었지만 놈은 이미 피 맛을 봤고 재미를 얻었다. 한 번 고꾸라뜨린 상대를 여러 번 고꾸라뜨리는 건 쉬웠다. 그만큼 상대가 넘어지면서 피해를 봤고 약해져서였다. 기습해서 한 놈을 조진 것부터 놈은 끝장을 보려는 듯했다.

‘그 기습의 타이밍은 당연히 언데드와 싸울 때. 뼈의 제단을 지키는 수호병과 싸움이 시작되면.’

검은늑대는 이미 그곳으로 향해서 조용히 어둠 속에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에휴.”

미래를 추측한 산박이 한숨을 내뱉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잠시만요. 멈추세요.”

“예.”

선두가 멈췄다. 산박은 다시 그들을 불러 모았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야 했다.

모두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주궤 때문에 모든 게 힘들어져서 잡담조차 나누지 않았다. 탕만이나 강합이 있었다면 분위기를 풀려고 했겠지만 은섭은 조용한 편이고, 주궤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깊은 생각을 마친 산박이 이내 결정을 내렸다. 최대한 고려해야 할 것을 고려했다.

“검은늑대를 잡겠습니까? 뼈 제단을 부수고 클리어하겠습니까? 만약 뼈 제단을 부순다면 검은늑대가 옆이나 뒤를 칠 겁니다. 전투 상황에서요. 또 뼈 제단을 부수지 않는다고 해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유인 같은 건 어떻습니까?”

충호의 말에 산박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걸려들지 의문입니다. 솔직히, 상상 이상으로 지능적인 놈입니다.”

썩은 내가 진동하니 자신이 오지 않을 걸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간파해 냈다. 그것만으로도 놈의 지능은 우월했다. 간단한 유인책은 통하지 않을 터였다.

거기에 놈은 은신, 기습을 좋아하는 놈이었다. 적을 추적하는 것까지 좋아한다고 확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그건 평범한 맹수의 특성이었다. 뒤통수만 보이면 달려들어 공격성을 보이는 맹수 특성을 그놈이 그대로 닮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간파도 힘들다.’

고민, 고민 또 고민해도 남은 건 정면 돌파뿐이었다. 산박은 그냥 뼈 제단만 박살 내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도 다른 선택지를 준 것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었다. 한 번 실패한 리더가 검은늑대를 쳐다보지도 않는 건 졸렬하기 짝이 없어 보일 수 있었다. 대범하게 그놈 죽일래, 다른 거 할래라고 묻는 게 형세가 좋았다.

“전 검은늑대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놈부터 처리하고, 그다음이 뼈 제단 파괴입니다.”

충호가 검은늑대에 표를 던졌다. 전사다웠다. 놈이 자신의 뒤를 훅 지나서 간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은섭은 충호에게 들러붙어 있었기에 검은늑대에 표를 던졌다. 주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결론이 났다. 산박의 팀은 검은늑대부터 죽이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뼈 제단을 지키는 수호병과도 싸워야 했다.

* * *

배둔국은 최대한 많은 영향력을 투입해서 그럴듯한 두 명의 경호원을 고용했다. 한 명은 자신의 사촌의 아내의 동생의 친구였고 다른 하나는 그 친구의 부탁으로 오게 되었다.

“봉평두(鳳萍兜)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

“반갑다, 아우! 이번 일을 도와준다고 해서 정말 고맙다!”

둔국은 바로 흰 봉투부터 그에게 건넸다. 제법 두툼했다.

“평두의 친구 초칙갑(肖飭甲)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래! 좋은 친구가 이렇게 와줘서 기쁘다! 자네도 이거 받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에헤이, 에헤이!”

팔딱팔딱 뛰면서 거부해도 둔국이 냉큼 칙갑의 품속에 흰 봉투를 쑤욱 집어넣었다. 세 사람 모두 웃음으로 가득했다. 첫 만남부터 단추를 잘 꿰었다.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제법 위험할 수 있어.”

“걱정 마십시오. 저희 모두 경호과를 나온 엘리트들입니다. 보통 던전 사용자보다 더 정련된 자들입죠.”

칙갑이 가슴을 탕탕 쳤다.

“혹시 모른다니까. 조심하고, 너무 나대지 말고. 응? 자극하면 안 돼.”

“예.”

둔국이 진지하게 말하자 칙갑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곧장 장지건의 집으로 향했다. 사업자 주소이기도 했다. 평범한 단독 주택이었다. 조금 노후화가 된 집이었고, 빨랫줄에는 속옷까지 널어져 있었다. 생활 냄새가 물씬 풍겼다.

“계십니까!”

둔국이 소리를 지르자 곧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십니까?”

장지건이 나왔다. 작업복 차림에 피부는 새까맸다. 단순 일꾼으로 보였다. 그에게 둔국이 말했다.

“장.지.건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사과 사업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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