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70)

133화

* * *

배둔국 유통업자는 세종시로부터 북쪽, 그것도 산을 하나 넘어야지 있는 부동 지구에 도착했다. 도로가 산의 옆으로 이어져 있어서 어렵지 않게 올 수 있었으나 그래도 지리적으로 아주 불편한 곳이 부동 지구였다. 서울과 세종시 사이에 끼인 지역이라 이도 저도 못 하고 그냥 버려진 곳이었다. 산박이 세상의 이목을 피해서 성장할 곳으로 정한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쓸데없는 곳이었다.

허나 지주란 것은 그냥 땅을 손에 쥔 채 10년이고 20년이고 가만히 오르길 기다리는 것이라 이곳의 주인은 언제고 장씨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배둔국은 정보 쪼가리가 아니라 더미를 받아 들었다. 자주 왕래를 하며 돈도 제법 준 정보꾼이 이렇게 나오자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추려서 줘야지.”

“흐흐, 그건 요놈의 조동아리가 하는 일이지.”

그 말에 정보꾼이 자신의 입을 탁탁 쳤다. 이 정보 더미는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이렇게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과수원에 대한 자세한 건 몰라.”

“모른다고? 이런 X부랄!”

배둔국이 광분했다. 그토록 찬조금을 낸 제2금융권 버러지 거지새끼들도 자신을 개같이 대했는데 정보꾼까지 이렇다. 10년 비즈니스 파트너가 일을 병신처럼 해대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진정해, 이 친구야. 이렇게 조사를 했는데도 모른다는 건 진짜 미치도록 위험하다는 거니까.”

“…후우! 제기랄, 진짜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배둔국이 손으로 얼굴을 세수하듯이 거칠게 만졌다.

“부동, 여기는 장씨 가문이 있는 곳인데 그것도 800년이 넘었어. 자잘하게 말단이지만 관직에 몸을 담아 두면서 차근차근 성장한 곳이지. 너도나도 세금 피하겠다고 사원 지을 때 주제넘게도 사원 하나 지었는데 그게 지금도 있고.”

“쯧. 텃세가 대단하겠는데.”

“입김 안 닿는 곳이 없다고 봐야겠지.”

촌 동네일수록 텃세가 심하다. 그건 카메라를 들이밀면 인심으로 변하고 카메라가 없으면 강도로 변한다. 말단 관직이라도 기득권이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내려온 뿌리는 부동 지구에서 빠져나가는 정보를 차단하기에는 충분했다. 외지인은 튀어나온 송곳니나 다름없어서 관리도 편했다.

“그나마 고아원이 있는데, 여기는 말이 좀 통할지도 모르겠는데 가보지는 않았어.”

“왜?”

정보꾼이 목을 슥 그었다. 배둔국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진짜 조용한 동네라서 뒈져도 모른다, 이 말이야.”

“경찰은 사라졌냐? 있잖아?”

“지방 가기 싫어하는 게 경찰인데 여기 있다는 건 다 연고가 있는 경찰이란 뜻이지. 그게 공권력이야? 10년, 20년 부동 지구에서만 근무한 경찰이 수두룩하다.”

“그게 가능해?”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두는 거지. 오고 싶은 사람도 나가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교체할 수가 없어. 괜히 긁어 부스럼이야. 누가 촌 동네 치안을 생각하겠어?”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긴, 섬 같은 곳에서 누가 공직 생활을 하고 싶겠는가. 연고가 있는 사람이 하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야 땡큐였다.

그런 걸 괜히 건드렸다가는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었다. 단단한 철 밥통 같은 공직 세계에서 그건 금기 행위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였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안 가는 게 상책이지. 거래처도 고작 두 개만 털렸다며? 세종시에 사과 유통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신경 써?”

“넌 유통을 안 해봐서 몰라.”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 마진으로 재미를 보는 게 유통이었다. 100원 이득을 보는 것이라도 1만 개를 팔면 100만 원짜리 사업이었다. 만 원짜리 마진을 보는 건 3백 개 팔면 300만 원 순수익을 올린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추구해야만 할 때가 있었다. 특히 밥 빌어먹는 걸 걱정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경제를 공부해야 했다. 조그마한 돈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해서 수십만 원씩 잃다가 한 번에 팍 뜬 배둔국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경쟁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갈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걸 파헤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모은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였는데, 정보꾼이 이렇게 초를 칠 줄은 몰랐다. 정보꾼은 도망치는 게 상책이라 하지만 그건 곧 거래처를 모두 포기하고 다른 마진을 노리라는 소리와 같았다.

“사과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어.”

“정보꾼 앞에서 구라를 치네. 전 세계 파프리카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파프리카여. 사과는 그 정도로 점유율이 높지 않잖아?”

“8할? 참말이야?”

“진짜고말고. 일본 쪽은 거의 90%라던데.”

“파프리카 경쟁국이 그렇게 없나?”

“품종 로열티가 빡시잖아. 우리나라는 똑똑한 것들이 돈 욕심이 잘 없지. 선비 정신이자너.”

“선비는 얼어 죽을 선비.”

“사무라이라면서 칼 차고 다니는 것들보다는 낫지. 걔들은 죽이고 다니잖아.”

“거도 백제 물 좀 들이고 형편 나아졌잖아.”

“서일본이야 그렇고, 동일본은 야만인들이야, 야만인들. 예의를 몰라. 모든 걸 너무 무인(武人)의 시각에서 보고 있어.”

배둔국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잡담은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난 가야 해. 진짜 없어?”

“에효.”

정보꾼이 작은 서류철을 건네줬다.

“꼭 두 명은 더 데리고 가. 세 명 정도 되면 죽이지는 않겠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게나 하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는 게 장 가문이야. 알게 모르게 중간 관리직에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 조용한 사건은 묻기도 수월해.”

큰 사람 알기 전에 싹 입 닫기 좋았다.

배둔국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서류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그나마 정보꾼이 긁어모은 정보들이 있었다. 아무리 부동 지구라고 해도 외부에서 사업하고 있었기에 여러 가지 지표가 존재했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적은 돈을 주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거…….”

그렇기에 그는 새삼 정보꾼을 다시 쳐다봤다. 전부 다 발품으로 얻은 정보였다. 정보꾼이 코를 쓱쓱 비볐다.

“10년 동안 철 밥통처럼 돈 받았는데 이런 위기를 그냥 보내면 내가 짐승이지. 안 그려?”

“고맙다.”

배둔국은 제법 감격했다. 그간 돈을 주고 인연을 쌓았던 이들로부터 냉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과수원 은행에 줬던 찬조금 자동 이체도 취소하고 돈도 다 다른 은행으로 옮긴 상태였다. 그 배신감 속에서 속이 꽉 찬 인연을 재확인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 * *

멀리서도 잘 보이는 큰 산을 목적으로 삼은 옥시모론 분할 팀은 스포일 크놀 굴에서 재미를 보고 하루를 충분히 휴식한 뒤에 다시 움직였다. 스포일 크놀 수십 마리를 도축하면서 멘탈이 위태로워진 이들이 두 명이나 있어서였다.

그만큼 산박, 충호의 조합은 무시무시했다. 망가진 크놀이 자신들의 종족 특성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검은늑대 때문에 희생자를 잘 내는 식으로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서였다. 그걸 잘 파고들어 간 것이었다.

“끄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대부분이 화들짝 놀랐다. 이내 그 소리를 낸 것이 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괴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거… 사슴인가요?”

“피떡고라니입니다. 사슴과는 다르죠.”

울음소리가 진짜 공포스러운 것이 고라니였다. 사람의 비명 소리와 닮았다.

피떡고라니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처럼 굴었지만 산박은 태평했다. 저렇게 많아 봤자 ‘피떡’이 되는 게 피떡고라니였다. 물론 평범한 고라니와는 다르게 진짜 흡혈을 하는 놈들이었고, 송곳니가 대단히 발달하여 있었다.

“저놈들도 돈이 되는 게 있습니까?”

김은섭의 질문에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피떡고라니가 아니었다. 반드시 잡아야 할 가치가 있는 고라니였다.

“감기의 치료제로 쓰이는 게 피떡고라니의 뼛가루입니다. 한 마리당 나오는 뼈가 대략 10kg 정도 되는데 킬로당 천 원은 합니다.”

“짜네요.”

“한 마리에 만 원꼴이니 나쁘지 않죠. 뭣보다 녀석들은 덤비기는 또 잘 덤비거든요. 뒤로 물러나면서 천천히 사냥하겠습니다. 돌진에 맞받아쳐 주지 마세요.”

산박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링에 합금탄을 끼워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붕붕붕!

돌진하는 고라니 상대로 죽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피떡고라니의 피 냄새 진하게 퍼져 나갔고, 검은 그림자를 불러왔다.

검은늑대는 조용히 사냥감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놈은 그늘진 곳에 있었는데 눈동자마저도 흑색이었다. 그 무엇도 놈을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기괴한 건 음영의 수준에 따라서 털색도 서서히 바뀐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털이 많이 빠진다는 얘기였고, 대단히 빠른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는 괴물이었다.

검은늑대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검은늑대를 모든 이들이 사냥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먼저 찾을 수 없었다. 15년 이상의 추적 경력 혹은 그에 준하는 재능을 지닌 사냥꾼만이 검은늑대를 찾을 수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종류의 던전에서 그러한 조건을 이루기는 어려웠다. 직업이 사냥꾼이 아니면 아예 관련 재능을 썩히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수렵 생활에서 떨어져 나간 현대인이 15년 이상 단련된 사냥꾼만큼의 재능을 보유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런 자는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인간 중 검은늑대를 발견한 자는 없었다. 다른 육식 동물처럼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게 검은늑대였다. 놈은 사냥꾼이었다. 덫을 놓으며 운에 기대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네발로 쫓아서 잡아먹는 사냥꾼이었다.

동시에 검은늑대는 지능도 높았다. 단번에 이들의 수준을 훑었다. 그 검은 눈동자가 충호에게로 향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놈이었다.

일단 덩치가 컸다. 덩치가 크면 강하다. 단순한 논리였다. 그렇기에 1순위였다. 실제로 놈은 아주 잘 싸웠다. 피떡고라니는 검은늑대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놈을 상대로 싸우는 충호의 모습은 상당했다. 경계할 만했다.

육식 동물은 그런 리스크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거기에 검은늑대는 약한 놈을 하나 골라서 끌고 가 잡아먹는 게 능히 가능했다. 특히 이족 보행의 사냥감들은 한번 넘어지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어버버거리다가 목을 물려 죽는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산박에게로 눈이 옮겨 갔다. ‘사냥’ 실력보다는 무리의 중심을 잡고 있어서였다. 틈틈이 사위를 경계하는 모습마저도 일품이었다. 놈은 타고난 리더였다. 또 냉철하기도 냉철했다. 피떡고라니가 비명과 같은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어도 잔잔했다.

낼름.

검은늑대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 혀의 색마저 거무튀튀했다. 은섭과 주궤는 특히나 잡아먹기 좋아 보이는 서툰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걸 산박이 잘 막아주고 있었다.

곧 검은늑대가 물러났다. 순식간에 산박의 팀이 지닌 강점을 파악했고, 그렇기에 물러났다.

* * *

피떡고라니의 해체는 굉장히 힘들었다. 뼈를 다 골라내서 배낭에 담아야 해서였다.

“꼭 해체를 해야 합니까?”

“네. 배낭이 부족해요.”

‘제대로 뽕 뽑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 개방형 던전은 정말이지 돈 천지나 다름없어서 배낭이 부족했고, 결국 손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양으로 승부한다.’

여기서 뽕을 뽑는다면 주궤도 더더욱 던전에 가고 싶어 할 터였고 네 번째 시도 끝에 대박이 터지는 은섭 또한 팀에 대한 애착이 생길 것이었다.

그렇기에 열일했다. 동시에 던전 사용자가 어떠한 직업인지 주궤와 은섭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켰다. 레벨 업 시스템을 통해서 여러 가지 능력을 얻지만 실제 하는 일은 백정이었다. 피떡고라니 해체 작업은 이걸 인식시키기 좋았다. 던전 사용자는 전투가 끝이 아니라 노동해야 하는 자들이며 사주겠다는 사람에게 피 묻은 걸 건네주는 용병이었다.

뼈 외의 것은 모조리 버려졌다. 물의 연어를 통해서 샤워를 쏵 하고 피를 씻고 나서야 작업이 끝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스 몬스터와 조우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대장삵도 그러했다. 오감에 걸려들지 않는 검은늑대는 진정 보스 몬스터에 어울렸다.

그들은 큰 어려움 없이 큰 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썩은 뼈 동굴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킁킁!”

썩은 냄새를 쫓아가면 간단한 일이었다. 대장삵의 촉촉하게 젖은 코는 인간의 수백 배에 달하는 냄새 정보를 받아들이는 강력한 후각 생체 감지기였다.

“으……. 이게 대체?”

썩은 물이 줄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계곡의 위에 자리 잡은 게 썩은 뼈 동굴 제단이었다. 그곳에는 짐승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너무 악취가 심해서였다.

“여기는 검은늑대 걱정을 안 해도 되겠는데요?”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그만큼 썩은 내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행은 천을 찢어서 물을 묻히고 입에 두른 채로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은섭이 입을 열었다.

“저, 팀장님. 바람 정령으로 썩은 내를 좀 날려 보내도 괜찮을까요?”

이를 서충호가 산박에게 다시 묻자 그가 허락했다. 연두색의 바람의 정령이 드레스를 이리저리 좌우로 흔들었고, 바람이 일어나며 냄새가 옅어졌다.

“좀 살겠다.”

“빨리 들어갑시다.”

들어가면 또 냄새가 나겠지만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건 행복이었다. 쓸데없는 힘의 소비였음에도 산박이 허락한 건 그만큼 냄새가 지독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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