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70)
  • 131화

    * * *

    팀은 썩은 뼈 동굴에 있는 제단을 파괴하기로 던전 클리어 방향을 결정하고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물론 그 전에 아얄타의 나무 타투를 몸에 새겼다. 용맹성이 증가하며 신체 능력을 비롯한 스태미나 회복 속도가 좋아지는 아얄타의 나무 토템은 개방형 던전에서 활동하는 걸 도와주는 탁월한 타투였다.

    타닥, 탁!

    흙 발바닥 기술을 가지고 있는 매주궤는 돌을 골라낸 땅에서 맨발로 춤을 추며 주문을 강화했다. 거기서 나오는 힘으로 타투를 한 명 한 명에게 새겨줬다.

    주술사만의 독특한 주술 체계를 두 눈으로 처음 본 은섭은 신기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보병인 그는 갑옷을 벗는 데에도 한 세월이었다. 철판으로 보강된 부위 보호대를 벗고 체인 메일을 벗은 뒤에 실크와 천을 겹으로 붙인 옷도 벗어야지만 맨살이 보였다.

    트랜지셔널 아머는 판금 갑옷보다는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탈착이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부상을 입었을 때 갑옷을 벗기기 쉬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과정 사이에도 여전히 검은 늑대를 사냥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충호와 주궤의 반대가 있었지만 산박은 이를 강행했다. 그리고 둘 다 거기에 굴복했다.

    충호는 사업적 수완이 없어 산박에게 차용증을 쓸 정도로 경제적 지식과 경험이 적은 자였기에 산박에게 귀속된 낭인처럼 사회적 입지에서 차이가 났다. 돈으로 목줄을 찬 것과 같았다. 그는 산박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무력과 전사로서의 센스, 스펙까지 생각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산박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박은 조용히 그를 움켜쥔 채 다루고 있었다.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검은 늑대에 탐욕을 부린 주궤는 팀 내에서 영향력이 전무했다. 의견을 내도 날파리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왜 그렇게 돈이 필요합니까? 굳이 안 잡아도 됩니다.”

    산박의 말에 주궤가 볼을 긁었다.

    “요즘 마음에 드는 게임이 있는데 거기서 가챠를 좀…….”

    미쳐버린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현실이었다. 다른 사람이 왈가불가할 게 아니었다.

    돈 쓰는 건 자기 마음이다. 그렇기에 산박은 그를 탓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도 않았다. 소비 생활은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나무라는 순간 지능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꼰대가 되며, 나쁜 오지랖을 부리는 못난 사람이 된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그만큼 말은 신중하게 해야 했다. 그게 지능이 좋은 사람이었다.

    “여기도 놈의 흔적이 있네요. 보세요.”

    산박이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족히 3구는 되는 시체가 보였다. 허벅지와 팔뚝 등 살집이 있는 곳만 먹은 흔적은 실로 사치스러운 사냥이었다.

    “이거 무슨 괴물이죠?”

    주궤가 순수하게 물었다. 그는 던전 정보에 돈을 쓰는 자가 아니었다.

    “망가진 크놀(Spoiled Knoll)이라 불리는 놈들입니다. 보다시피 골반이 기형인 놈들입니다.”

    “체격이 대단한데요.”

    주궤가 두려워하며 이를 언급했다. 털로 뒤덮인 개 얼굴을 지닌 이족 보행의 괴물은 상체가 이상할 정도로 비대했고, 대신 하체는 평범했다. 키는 170cm가 넘을 정도로 컸으며 철제 무구를 쓰고 있었다. 또한 무기와 따로 하나같이 길쭉한 대장장이 망치를 소지하고 있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뒤틀려 있죠? 한쪽만 그렇네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충호가 정보를 덧대었다.

    “크놀들은 지하 종족인데, 왜 여기까지 온 걸까요?”

    “몰이를 당한 거겠죠. 아무래도 밤에 뛰쳐나온 듯한데……. 근처에 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산박은 자신이 할 일을 했다.

    크놀은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종족이었다. 그들의 가죽에는 화염에 대한 내성이 존재했다. 공정을 통해서 화염 내성의 힘을 추출할 수 있는 게 던전 기업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심장은 생명력을 회복하는 물약에 쓰였다. 특히나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는데 소모된 생명력 자체를 단번에 끌어 올려 줘서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는 물품이었다.

    다른 회복 물약도 많았기 때문에 매우 인도적인 결과로 크놀 심장은 오직 병원에서만 소모가 가능했다. 그래서 값이 비쌌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적인 규제가 심장을 어둠의 루트로 팔리게 하였고, 자연스럽게 희소성이 커져서 값 자체가 비싸진 결과를 낳았다.

    개당 2.5만 원에 팔리고 이에 마진을 붙여서 병원에 도달하면 병원은 거의 두 배 가격에 사는 셈이었다. 거기에 병원이 다시 환자에게 팔기 때문에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의료 보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건 세금으로 퉁치는 셈이다. 파는 사람만 큰 이득을 보고 있었다.

    운 좋게 크놀들의 가죽과 심장을 얻었다. 내장까지는 보지 않고 살코기만 먹고 입 싹 닫은 검은 늑대가 얼마나 풍요로운 사냥을 하고 있는지 모두가 알게 되었다. 팀을 두 개 조로 나누어서 주변을 잠깐 정찰하며 검은 늑대의 배설물을 찾아다녔다.

    “배설물 안 속 깊숙이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멀리 간 게 틀림없네요. 크놀 굴은 제가 찾았습니다. 보초는 없습니다. 검은 늑대가 한번 휘저어 놓은 상태입니다. 피도 제법 있고요.”

    “잡으실 생각입니까?”

    “스포일 크놀은 그렇게 대단한 괴물은 아니니까요.”

    그에 비해서 심장은 굉장히 비싸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였다. 이거 심장 하나면 0레벨 던전 한 번 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철제 무구는 안 가져가나요?”

    “이놈들 건 별 볼 일 없어요. 깡통이죠.”

    원래 철도 낮은 단가를 지니고 있는데 던전에서 나오는 철까지 스크랩으로 처리하다 보니 말 그대로 폭락이었다. 수많은 철강 산업은 대단히 위축된 상태였다. 어디서든 철이 계속해서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풍요로울수록 빈곤해지는 건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살하는 가족이 있어도 배춧값이 폭락하면 다 땅에 묻어 버리는 게 이 바닥이었다.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였다.

    “굴은 깊고, 출입구도 여럿 될 겁니다. 이 망가진 크놀들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굴이 미로에 가깝고 그들끼리도 길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엉망진창이네요.”

    “그러니까 검은 늑대도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퇴로가 하나뿐인 곳을 들어갈 정도로 스포일 크놀의 굴은 혼란스러웠다.

    “들어가겠습니다.”

    큰 준비는 필요 없었다. 곧바로 진입했다. 긴장한 은섭이 선두를 맡았는데, 경험을 위해서였다. 한 걸음 차이로 충호가 함께하고 있었고 주궤가 중심이었으며 산박이 가장 후방이었다. 대장삵은 산박의 어깨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조명이 많네요.”

    횃불부터 급하게 놓아둔 동물 지방에 들러붙은 작은 불꽃까지 다양했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먼지도 쌓이지 않은 초도 보였다. 초를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망가진 크놀들의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준수하다.’

    필요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 기술이었기에, 검은 늑대와 함께 더부살이를 하는 망가진 크놀에게 초가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또한 동굴 벽의 굴곡진 그림자도 없었다.

    ‘반듯하게 깎아놨네.’

    자연 동굴에서 으레 보이는 울퉁불퉁한 요철이 없는 통로는 그들이 얼마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럴 만도 하죠. 보스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식인 호랑이와 사는 인간 마을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건 그보다 더 심했다.

    “여길 보십시오.”

    마치 호환(虎患)을 당하듯이 그대로 끌려간 흔적이 길쭉하게 이어져 있었다. 출혈이 대단했는데 그만큼 검은 늑대의 잔혹함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앞서 나가서 습격의 최초 지점을 산박이 훑었다. 책으로는 얻을 수 없는 높은 지혜가 단번에 직관적으로 정보를 뇌로 전달했다.

    “단번에 물고, 고갯짓을 하며 상처를 크게 벌려놓고 더 깊게 박아 넣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동맥이 찢어지며 피가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그 이후는 뻔했다. 미친 듯이 끌려가졌고, 허우적거렸을 터였다. 이족 보행을 하는 종족은 넘어지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고로 스포일 크놀의 최후는 정말 형편없는 죽음이었을 것이었다.

    ‘하체가 부실하니…….’

    상체가 아무리 튼실해도 큰 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을 터였다.

    동굴 안에는 벽화도 곳곳에 자리 잡혀 있었다. 검은 늑대가 굉장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듯이 크게 그려져 있고 거기에 끌려가는 스포일 크놀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반대편에는 누군가를 숭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피로 이루어진 어떤 존재였다.

    ‘야만적인 놈들인데 야만신을 섬기지 않는가 보네.’

    팀은 곧 스포일 크놀과 마주할 수 있었다. 순찰을 돌던 놈들의 숫자는 여덟 마리가 넘었다. 그 정도 숫자는 순찰조치고는 많았다. 길목 하나 지킬 주둔군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방패를 쥔 네 마리의 방패병이 앞에 섰고, 그 뒤에서 창병 두 마리가 창을 겨누었다. 제일 뒤에서는 궁수가 활을 쥐고 있었는데, 그들은 태세를 갖추자마자 활을 쐈다.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다른 이에게 전하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스포일 크놀은 하나같이 얼굴이 한쪽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때문에 자세도 조금조금씩 달라서 조밀한 진형과는 다르게 빈틈이 많았다.

    “접근해서 섬광 단검이랑 화염 물약을 방패병한테 쓰세요. 주궤 씨, 방패병의 방패 안쪽 바닥에 화염 토템을 설치할 수 있죠?”

    “접근해야 하긴 하지만 가능합니다.”

    산박의 명령에 그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보호하면서 진행하겠습니다. 대장삵은 후방에 있어.”

    산박이 환도를 뽑았다. 잔잔벼락의 무기였다.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에도 좋았다. 작은 벼락을 맞으면 일순간이지만 몸이 마비되기 때문이었다. 매주궤를 성공적으로 키우기 좋았다. 무려 30년 동안 산박의 기업에 속해서 종놈이 될 자였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됐다. 그리고 동시에 경험도 쌓게 해야 했다.

    ‘이 작업이 끝나면 2레벨에 도전한다.’

    그때가 되면 산박의 옥시모론 던전 기업은 제법 구색을 갖추게 될 터였다.

    * * *

    장 노인은 누가 없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방 문과 창문을 닫았다. 굉려가 봉투를 보내왔지만, 그는 산박이 던전에 가기 전에는 결코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했다. 이제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였다.

    장 노인과 굉려는 시은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나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동시에 휼간을 고문하면서 얻은 정보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녀는 산박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과 동시에 인천 네크로맨서들에게도 제법 유망한 엘리트로 여겨지고 있었다.

    안팎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그녀는 요주의 인물이었고, 의심을 지울 유의미한 정황이 장 노인에게 필요했다. 산박에게 많은 걸 투자하고 있어서였다. 그 덕을 ‘부동 지구’와 ‘연기 장가(家)’가 보지 못하고 이시은이 독점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걸 미리 방지하는 건 많은 자원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 결정을 하기 전에 이시은이 어떤 사회인인지를 알아야 했다.

    ‘대체 무엇이길래 굉려가 그렇게 당부를 했을까.’

    장 노인은 봉투를 열었다. 그곳에는 이시은이 찍혀 있었다. 사진은 수두룩했다. 플래시를 켤 수 없었기에 어두워서 사진만으로는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장 노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굉려가 이시은을 감시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부동 지구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힌 게 장굉려였다.

    그 아래에는 굉려의 사견이 적혀져 있었다.

    ‘이시은의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태산박에 대한 집착.’

    “음…….”

    제대로 미친 년이다. 하지만 이 정보를 산박에게 내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시은의 사진이 그녀임을 말해주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굉려는 시은과 함께 던전에 가야 했기 때문에 보고서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뒷면에는 살인 사건과 방화 사건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증거는 없지만 산박이 벌인 짓이라고 짧게 적혀 있었다.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셈이지만 정황만으로는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 노인은 코웃음 쳤다.

    ‘증거도 없이 이딴 사견을 넣다니, 녀석도 아직 많이 멀었구나.’

    산박을 떠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다. 그는 넘어오지도 않고 그냥 잘라낼 것이었다. 확실한 증거만이 산박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압박도 필요 없었다. 그와 장 노인은 사업 파트너였다.

    ‘이시은이라.’

    장 노인의 고민이 깊어졌다. 딱히 그녀와 부딪칠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푹 묵혀놓는 게 좋았다. 잊고 있다가 필요할 때 딱 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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