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270)
  • 130화

    * * *

    태산박, 서충호, 매주궤, 김은섭 그리고 대장삵과 물의 연어. 이들은 1레벨 던전 공략을 위해서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장비를 확인하고 지하철 아래에 존재하는 검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식수를 챙기지 않았기에 그만큼 다른 이들보다 보급품을 많이 챙길 수 있었다. 남들보다 더 오랫동안 던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동시에 더 많은 던전 배낭들을 챙겼다. 더 많은 던전 상품들을 던전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강점을 소유했다.

    거기에 이들은 주궤 빼고 모두 1레벨 풀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박은 그 차이를 메꿔주고 싶었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으음…….’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변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바람이 불어왔다. 숲 바람은 날카로웠으며 싸늘했다. 눈발이 제법 날렸다. 순식간에 겨울이 내려앉은 곳에 도착했다.

    겨울은 인간의 적이다. 이번에도 던전은 인간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 차가운 송곳니는 인간이 가장 정복하기 힘든 종류의 적이었다.

    “우웃…….”

    주궤가 정신을 못 차렸다. 강풍에 숨을 못 쉬다가 몸을 돌려서 겨우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숲의 길목 중에서도 바람이 강한 곳에 있었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조금만 내려왔음에도 바람은 싹 사라졌다.

    “장비 확인하겠습니다.”

    모두 다시 한번 장비를 점검했다.

    “이상 없습니다.”

    모두 일제히 답했다.

    “무슨 던전 같습니까?”

    “눈에 덮여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주궤의 물음에 산박이 혀를 찼다. 시야는 뿌옜다. 눈 때문이었다.

    푸욱, 푸욱.

    발이 쑥쑥 들어갔다. 동시에 던전 식물이 산박의 눈에 들어왔다. 이를 움켜서 뽑았다. 흔들리는 갈대였다.

    흔들리는 갈대 씨앗은 온도를 에너지로 변경하는 효능이 있었다. 이와 달리 흔들리는 갈대는 운동력을 만들어 내는 특수한 던전 식물이었다.

    흔들리는 갈대는 보통 농축하여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크게 사용하는 건 풍력 발전소의 프로펠러였다. 운동력을 부여하면 더 적은 바람으로 회전시킬 수 있어서였다. 몇몇 스포츠 기구에도 사용되며 바퀴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돈이 되는 상품이었다. 물론 사용되는 곳의 가치에 비해서는 많이 받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물건을 사는 사람 마음대로였다.

    흔들리는 갈대와 갈대 씨앗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수익이 오를 수 있었기에 일행은 이를 정신없이 챙겼다. 그 정도로 흔들리는 갈대가 많았다.

    시시덕거리지는 않았다. 이곳은 던전. 조심해야 했다. 허리를 편 산박이 틈틈이 주위를 둘러봤다. 대장삵이 기울어진 나무 위에서 사주 경계를 꼼꼼히 하고 있었다.

    ‘주궤랑 충호는 완전히 갈라섰네.’

    나쁜 일인가?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둘이 힘을 합칠 리가 없다는 건 기업 내의 정치 구도의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편한 건 사장이다. 사장 입장에서 영향력 있는 직장인은 그냥 거지 새끼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1레벨 전담 팀으로 기업의 기반이 될 매주궤와 서충호의 대립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칼부림할 일이 일단 없기 때문이었다.

    둘 다 사람이었다. 사람 거죽을 쓴 괴물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충호는 시험을 통과한 자였고, 주궤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둘 다 산박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갈대를 제법 모으는 사이에 충호가 손을 흔들었다. 외치지 않는 모습에 모두 긴장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무언가 발견한 게 틀림없었다.

    “이거 보십시오. 나무에 거칠게 등을 문댄 흔적입니다.”

    “짐승 흔적 같은데…….”

    주궤의 말에 충호는 대답도 안 했다. 대신 산박에 행동하여 쭈그려 앉아서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털 같은 걸 집어냈다.

    “검은 털이네요.”

    털을 비볐다. 잔털은 솜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잔털 속에 굵직한 털들이 만져지고 보였다. 멧돼지 털처럼 굵직하다. 이렇게 굵은 털은 비나 눈을 맞아도 방수가 되어 체온이 잘 유지될뿐더러 화살이나 검도 막을 수 있는 방시, 방검의 막강한 생체 갑옷이었다.

    그리고 자잘한 솜 같은 잔털과 무겁고 두꺼운 센털이 뒤섞인 검은색 짐승 털은 1레벨 던전에서 하나뿐이었다. 허나 산박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재수가 없나?’

    그의 시선이 절로 은섭에게 향했다. 던전 세 번 실패의 커리어를 지닌 저 던전 사용자의 운이 적용된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던전 공략 팀과의 확률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나만 아니면 되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오네.’

    “사장님?”

    “후우……. 이거 검은 늑대의 털입니다. 들은 기억이 다들 있으실 텐데요?”

    “워킹 보스…….”

    충호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 보스 몬스터가 던전에 돌아다니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던전, ‘검은 늑대 던전’에 자신들이 들어온 것이었다. 거기에 개방형 던전이었다.

    흉갑을 비롯한 판금 보호구를 입고 무거운 할버드를 어깨에 걸친 은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자신을 탓하는 표정이었지만 충호가 그 어깨를 두드리고 농담을 던졌다.

    “뭘 그렇게 굳어 있어요? 대박 터진 거지. 검은 늑대는 모든 게 돈이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장님?”

    “서 팀장 말대로예요. 걸어 다니는 돈이긴 하죠.”

    이건 담합도 없었다. 사람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이 검은 늑대였다. 그 털가죽을 두르면 굉장히 은밀한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마치 세상이 자신을 돕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모든 암살자들이 좋아하는 만큼 경쟁이 엄청났다.

    시장에 나오면 무조건 사려는 기업들도 많았다. 뒷돈으로 팔리는 바에는 직접 사서 경호원에게 입히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다만, 구하는 게 힘들었다.

    ‘보통은 사냥을 못 하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검은 늑대와 만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놈은 항상 자신이 우위일 때만 나타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보이더라도 간잽이질도 자주 했다. 사냥꾼을 사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사냥감을 쫓아서 죽이는 사냥꾼의 인내심은 대단하다. 단순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생존율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는 게 이곳이었다.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지.’

    가장 껄끄러운 놈이며 무엇보다 보스 방이 아니라 개방형 던전 자체에 돌아다니는 게 문제였다. 너무나도 거대한 변수를 창조하고 다녔기에 모든 게 달라져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은 10일을 버티든가 ‘썩은 뼈 동굴 제단 파괴’를 노린다. 워낙 유명한 것이 검은 늑대 던전이라서 모든 클리어 조건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잡지 않는 방법을 강구합시다.”

    산박의 결론은 검은 늑대 사냥을 뒤로 미뤄두는 일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검은 늑대와 조우하면 가장 먼저 죽는 건 약한 놈이기 때문이었다. 주궤가 될 가능성이 컸다. 주궤가 검은 늑대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버텨 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갈대 씨앗이 널려있다.’

    또한 검은 늑대를 무리해서 추적하고 잡을 필요가 없었다. 다른 수익거리가 널려 있어서였다. 개방형 던전이라서 더더욱 던전 식물과 자원이 많이 있었다. 이를 캐는 건 기쁜 일이었다.

    “허면 뼈 동굴의 제단 파괴를 노리는 겁니까?”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호는 썩 불만인 표정이었다.

    “그래도 사장님, 이 정도 전력이면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검은 늑대와 싸워서 이기는 건 쉽습니다. 놈과 전투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10일 다 허비하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산박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저곳에 뼈 동굴과 제단이 존재했다. 이를 부수면 간단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가면서 돈이 되는 것들을 수확해서 가방에 넣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던전에 산박이 참여한 이유는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검은 늑대를 죽여도 수백만 원이 들어올 뿐이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주궤의 목숨이 더 귀했다.

    반면 충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주궤조차도 아쉬워했다. 검은 늑대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의 만용이었다. 충호는 산박이 있기에 능히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동물 변신’을 비롯해서 대장삵까지 있었다. 짐승이 짐승을 못 따라잡는 건 말이 안 됐다.

    은섭은 아무 상관도 없는지 그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도 괜찮고 저렇게 되어도 괜찮다는 식이었다.

    “그 가죽만 팔아도……. 예? 사장님…….”

    주궤가 자신만 믿고 던전에서 나대는 꼴에 산박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러 보여줘도 말썽이었다. 탐욕에 눈이 단단히 멀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었다.

    “뼈로 연구가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는지 같은 무게의 금보다…….”

    “그거야 그렇게 산다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루머 아닙니까.”

    어느 연구소가 그렇게 살지 의문이었다.

    만용을 부리는 주궤와 가능성을 알고 있는 충호는 작업하는 내내 시시때때로 산박에게 검은 늑대를 잡자고 말했다. 허나 산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기업의 안정화를 위해야 했다. 적어도 1레벨 던전에서 태산박은 더는 모험가가 아니었다. 철저한 자본가였다.

    * * *

    인천 포스코 타워. 300m짜리 거대 빌딩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네크로맨서들의 총본산. 그곳의 30층에서 모종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한 자들의 숫자는 고작 열 명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황패(黃牌)를 지닌 빙췌몽(氷萃夢)을 따르는 네크로맨서들로 대부분이 적패 네크로맨서들이었다.

    “박서후가 죽었으니 이제 우리 차례가 아닙니까?”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래도 경왜(慶矮)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다른 자가 죽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제 곧 백패 자리가 하나 비게 되는데 그 무슨 가벼운 소리입니까?”

    근 백 명이 넘는 백패 자리였지만 그것조차도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황패의 최대 파벌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돌아버릴 만도 했다.

    그들은 박서후 전담 팀이었고 결코 시선을 끌어서는 안 됐다. 단 열 명인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최대한 조용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시큰둥했다.

    실제로 열의에 넘쳐 하는 자는 없었다.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던 놈이었다. 좋아할 리가 없었다. 다만 자연스럽게 새로운 적패에 대해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물론 술도 곁들어졌다. 단번에 확 달아올랐다. 수많은 후보자가 있었지만 단연코 화제가 되는 건 ‘서리 해골의 이시은’이었다.

    “해골학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탄탄대로야. 지금 신분이 낮을 때 뭐라도 도와줘야 해.”

    취기가 오른 자가 반말을 지껄여 댔다. 여기 있는 자들이 다 아는 자였다. 그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전염되어 갔다.

    “운 좋게 복권 하나 터트린 것뿐이야. 언제까지 승승장구하겠어?”

    “그렇다 해도 다음에 적패가 될 자는 그녀가 될 거야. 적패에서도 활약한다면야 황패도 앞에 둘 수 있겠지. 그러니 뭐라도 줘야 우리가 편해질 수 있어.”

    황패가 되면 그들의 상관이었다.

    “빙췌몽 님이나 경왜 외에도 전부 그녀가 자기 줄을 잡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도와준다고 뭐가 변하겠어?”

    “그년, 예쁘긴 예쁘던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몸매긴 하지.”

    “몸매만? 얼굴도 최고지.”

    그들이 시시덕거렸다. 하지만 모두 망상에 불과했다. 포스코 타워에서의 이시은은 네크로맨서 학문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고로 교우 관계도 그리 대단치 않았다. 겉으로만 사근사근할 뿐이었다.

    “대충 보고서를 쓰고 올려 보내자고.”

    그들은 시간이 되자 서둘러 퇴근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중에 몇몇은 빙췌몽과 경왜에게로 향했다. 입 놀리기 좋아하는 간신배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걸 좋아하는 변절자들이었다.

    ‘곤란하게 되었어.’

    둘 다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시은의 성과는 대단했고,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싸움터가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백패 네크로맨서들은 이시은을 가지는 황패에게 자리를 내어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이 가지지 않는 이유는 이시은이 언제든지 빛을 잃을 수 있어서였다. 한 번 반짝인 돌이라고 계속 반짝인다는 보장이 없었다. 보석으로 탈바꿈되고 나서야 그들은 손을 뻗을 터였다. 압도적인 자본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