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270)
  • 128화

    <검은 늑대 던전>

    이시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산박은 요새 그녀를 자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바쁜 몸이고, 던전 기업에서 사무실은 사실 있으나 마나였다. 기업이 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존재할 뿐이었다. 강합과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경리 하나가 있는 게 전부였다.

    “결재해 주세요.”

    “의외로 빨리 오셨네요? 두 명은 모두 골랐어요?”

    산박은 제법 놀라워했다. 그녀에게 사람을 고르는 일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산박만의 착각이었다.

    이시은은 충동에 잡아먹혔을 때 누구보다도 사람을 선별하는 일을 했다. 운, 때, 실력과 희생자.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때를 위해서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대낮에도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때의 그녀는 그저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에 불과했다. 잡히지 않은 게 용했다.

    운이 따라줬나? 그건 아니었다. 단순히 여자라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연쇄 살인마가 여자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시은의 짐승과도 같은 충동 살해는 프로파일링에서도 여자는 아니라고 판명 날 정도였다.

    지금 캐리어 케이스라고 불리는 건 시은이 정신 차리고 나서 충동을 억제하며 생긴 이명이었다. 그전에는 육참마(肉慘魔)라고 불렸다.

    “탕만 씨도 있는데 굳이 전방 직업을 두 명 골랐네요.”

    “네. 아시잖아요? 전 충호 씨를 견제하고 싶고, 이 회사에서 이인자가 되고 싶어요.”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대놓고 말했다. 이미 한번 산박에게 그렇게 말하며 위기를 넘겨서였다. 살인자보다는 야심가가 괜찮았다.

    산박은 서류를 확인했다.

    “오축균(吳縮鈞), 26세.”

    “강합 씨의 대체제예요. 창술가죠.”

    레벨이 높은 던전일수록 던전 공략에 동원되는 던전 사용자의 숫자도 늘어난다. 전열을 두텁게 만들고 이 겹겹이 쌓아올린 전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사의 뒤에 설 전사가 필요했다. 창술가는 그 목적에 딱 맞았다. 다만 강합은 창을 쓰는 전사였고, 오축균이라는 자는 직업 자체가 창술가였다.

    “1레벨 풀 세트를 이미 착용하고 있어요.”

    “좋네요.”

    부모님 덕을 본 자였다. 주 무기는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염 장창이었다. 1레벨에서 가장 잘 통하는 힘이 불꽃이었다. 다른 장비들은 대부분 근력을 중심으로 신체 능력을 증가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후방에서 찌르는 장창을 위력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앞에 있는 전사를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었다. 화염을 일으키는 장창 덕분에 특수한 상황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이시은이 제법 고민을 많이 한 티가 나는 인선이었다. 강합의 대체제라는 것을 명분으로 삼기도 좋았다. 충호의 반발을 막을 수 있고 산박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인선이었다. 동시에 시은의 야심가적 면모도 충족시킨다. 분할 팀을 꾸리는 이유가 2레벨 던전 공략을 위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니까.

    “인물 됨됨이는 던전을 공략해 봐야 아니까, 일단은 임시 팀원이에요.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어요. 단발성 인력 확보죠.”

    큰 문제가 없다면 오축균은 합류하게 될 터였다.

    “기술로는 기본 창술과 창술사의 허릿심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기술을 올려주고 다른 하나는 신체 능력을 올려준다. 밸런스가 좋았다.

    “무위로는 장무로 원표근(遠標近)과 순무로 조익만참(雕翼挽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은이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틀었다. 작은 화면이었지만 오축균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원표근은 먼 물건을 가까이처럼 여길 수 있는 장무였다. 창을 놀리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묘기와도 같은 짓을 하는 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무력이 제법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허수아비 상대로 연습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영상을 실전처럼 만들어요? 이렇게까지 자기 PR을 하는 던전 사용자는 드물어요. 근면 성실하다는 거죠.”

    산박의 말에 시은이 반박했다. 맞는 말이었다.

    다음은 순무였다. 산박이 자세를 고쳤다. 순무야말로 전사들의 특권이나 다름없는 수법이었다.

    독수리의 날개가 확 펼쳐져서 날아가는 것처럼 축균의 창이 찔러지는 속도는 제법이었다. ‘무슨 요령’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허수아비를 찌를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속도였다.

    허나 목표물을 빗나갔다. 산박이 눈을 찌푸리기도 전에 단번에 당겨진다. 권투 선수처럼 훅보다 빠른 잽이 창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비밀은 왼손에 있었다. 단번에 당겨지며 날카로운 창날이 허수아비의 목을 베며 회수됐다. 조익만참은 훌륭한 한 수였다.

    “놀라운데요.”

    “이건 확실히 통하겠죠?”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무리를 짓는 지성 종족을 상대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다음은 더 기대해도 되나요?”

    그 말에 시은은 어깨를 으쓱했다. 산박이 서류를 넘겼다.

    “예흠(芮欽). 외자네요.”

    “외자죠.”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였다. 나이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굉장히 젊은 축이었다.

    “중졸이에요.”

    “고졸도 아니라고요?”

    “안 좋은 곳에 소속되어서 거기 휘말려서 징역형을 살다가 나왔대요. 나오고 보니 그 사람들도 개무시. 말 그대로 보기 좋게 이용당했죠.”

    “불쌍해서 받아준 건 아니겠죠?”

    그 말에 이시은이 눈웃음을 지었다.

    “맞는데요? 그런 삶을 살았기에 독해요. 전 독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시작부터 편애네요.”

    다만 깊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이 바닥이 그랬다. 매력이 피어오르는 구석이 있어야지만 선택받을 수 있었다. 똑같은 스펙을 지녀도 잘생기면 더 대우받는 것과 비슷했다.

    “기술로는 기본 무기술과 하찮은 원소술, 장무로 상중하경(上重下輕)과 주문으로 일염(一焰)을 가지고 있어요.”

    “직업이… 용 기사?”

    뜻밖의 직업이었다. 용 기사는 희귀한 직업이었고 그걸로 성공한 자도 없어서 생소했다.

    “일염은 인챈트예요. 불길 하나를 상대에게 쭉 뻗어 보내는 거죠.”

    “지속 시간은?”

    “반나절로 길어요.”

    “나쁘지 않네요.”

    상중하경은 상단을 공격할 때는 치명적이고 무겁게, 하단에서 놀릴 때는 경쾌하게 움직이는 무위였다. 나쁘지 않았다. 완급 조절을 상하단으로 나누어서 운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오히려 장단점이 확실해서 좋았다. 필요할 때 잘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영상을 보고 나니 더욱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장무라기에는 위력적이네요. 그리고 이 사람도 영상을 첨부했습니까?”

    “말했잖아요. 젊은데 독한 놈이라고요. 할 건 다 해요.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죠. 거기에 저희 회사는 지급 아이템이 많잖아요. 면접 보려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근데 하이브리드 전사 계열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나쁘지 않다고 봐요. 사장님은 드루이드잖아요? 전후방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전사 쪽에서도 이를 잘 받아주는 유연한 직업이 하나는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차라리 주 직업이 후방 쪽이면서 하이브리드인 직업을 찾는 게 좋지 않겠어요? 주문 궁수라든가……. 많잖아요.”

    “많아서 문제죠. 전 제가 뽑은 사람이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걸 원하시면 충호 씨한테 말해보는 게 어때요?”

    그 말에 산박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호가 데려간 팀원은 매주궤였다. 그는 후방 직업이고 서포터에 가까웠다. 차근차근 1레벨 주문과 기술을 터득하면 어엿한 1레벨 전담 팀을 꾸려 나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충호는 제대로 된 후방 직업을 데려가야 한다. 그런데 하이브리드? 어림도 없는 소리다.’

    형편이 달랐다.

    “좋습니다. 진행하세요.”

    산박이 서류에 결재했다. 시은은 곧바로 나갔고, 나가면서 매주궤와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무슨 일로 사무실에 오셨어요?”

    던전 사용자는 용무가 있을 때만 사무실에 왔다. 처음엔 얼굴도장을 자주 찍던 사람들도 사무실에서 할 게 없자 서서히 발길이 뜸해져 버렸다. 딱히 산박이 무조건 출근하라고 한 것도 아닌 걸 뒤늦게 알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시은도 오지 않게 되었다.

    “사장님이 불러서요.”

    메주궤가 좋지 않은 표정을 했다. 뭔가 서서히 상황이 꼬이고 있었고, 늪에 빠지듯이 계속해서 자신의 영향력이 회사 내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걸 그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시은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만져주며 말했다.

    “힘내세요.”

    “아! 예!!”

    그가 크게 소리를 냈다. 미인이 자신을 걱정해 주다니, 큰 행운이었다.

    다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장실로 들어가는 것부터 겁이 덜컥 났다. 산박은 평상시에도 조금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냉철한 리더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자처럼 여겨졌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네. 오시는 데 뭔 일은 없었죠?”

    “예. 근접전 연습을 좀 하고 0레벨 던전에 다녀온 거 외에는 별일 없었습니다.”

    경직된 그 모습을 보며 산박이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견과류와 육포에 캔 맥주를 직접 따서 건네줬다. 그는 거침없이 마시고 육포를 입에 물었다. 산박 또한 한 잔을 걸쳤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와 관계가 돈독해지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충호 씨 때문입니다. 짚이는 건 없습니까?”

    그 말에 주궤가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절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시죠.”

    주궤가 이에 대해서 말했다. 술자리를 가졌는데 계속 어색했고 이내 충호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라며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그런 태도부터 고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실전에서도 통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죠.”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산박은 혀를 찼다. 이런 유약한 남자에게 채찍은 소용이 없다. 먹히는 것 같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본인도 노력하지만 성격은 열다섯 살 이후로 불변 조건이었다. 느는 건 사회 기술에 불과했다.

    “걱정 마세요. 그것 때문에 제가 부른 것 아닙니까.”

    “예? 그럼… 충호 팀장님이 벌써 말씀을 하셨군요.”

    “네. 자기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고, 고치기 전까지는 불안하다고 말씀을 하더군요. 실질 전력이 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주궤는 반박하지 않았다.

    “하아아……. 저도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고정금을 받고 1레벨 던전에 가다가 제대로 공략을 하라니…….”

    “던전 클리어해서 뭘 선택했습니까?”

    “주문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주문입니까?”

    주궤가 이마를 긁었다.

    “올가미 나무 덫이라는 겁니다. 근데 하체만 봉쇄할 수 있는 거라서… 애매합니다…….”

    ‘또 함정 주문이네.’

    재수가 없었다. 산박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주궤가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본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충호 씨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저자세를 가진 채 서 팀장 말을 잘 따르세요. 그렇게 해서 경험을 충분히 쌓으면 독립해서 1레벨 전담 팀을 꾸리세요. 아셨습니까?”

    “예? 하, 하지만… 서 팀장님께서는 절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그 말에 산박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이 버러지가 지금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애처럼 찡찡거리다니…….’

    사회인답지 않았다.

    “주궤 씨.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예?”

    “충호 씨는 팀장입니다. 팀장보다 주궤 씨의 생각을 더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게 사장입니다. 아닙니까? 사장이 팀장 의견보다 사원의 말을 더 들어줘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팀장 쪽으로 옮기기에는 시은 씨와 주궤 씨의 포지션이 겹칩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서 팀장은 전사로서 던전에서 확실하게 주궤 씨를 지켜줄 겁니다.”

    “…….”

    그 말에 주궤는 대답하지 못했다. 충호와 주궤는 양립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주궤 씨, 대답하셔야지요.”

    “저보고 여차하면 칼 들고 나서라고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절 지켜 주겠습니까?”

    주궤가 갑자기 말했다. 그도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이놈 봐라?’

    반대로 산박은 제법이라는 표정이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한 말에 담긴 뼈를 매만졌다. 확실한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전 사장님이나 이 팀장님처럼 근접전이 젬병입니다. 0레벨도 장궁으로 클리어했고요. 남들보다 오래 걸려도 안전하게 0레벨을 헤쳐 나왔습니다. 근데 이제 와서 서 팀장이 칼 뽑고 싸우라는데 그걸 제가 대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도망치려는 주궤의 팔을 산박이 움켜잡았다.

    “앉으세요. 틀린 말 하신 거 아닙니다.”

    “그냥 사표 쓰겠습니다.”

    일용직처럼 살아도 사장 없는 게 던전 사용자였다. 0레벨 앵벌이를 해도 젊어서는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었다. 거기에 주궤는 욕심이 없는 자였다.

    “사장 말 안 들려요? 앉으세요.”

    두 번 말해서야 주궤가 겨우 앉았다.

    “저랑 같이 공략합시다. 그래서 일인분 할 때 저희 회사에서 1레벨 전담 팀장이 되세요. 이것도 못 합니까?”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산박은 미리 써둔 계약서를 눈앞에서 찢어 버렸다.

    “사장님?”

    찢은 계약서를 탁자에 놓고 산박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10년은 묶어 두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주궤는 겁쟁이처럼 보이지만 물면 도망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무는 자였다. 생각보다 더 가치가 높은 자였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없었다. 즉, 헌신적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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